공동체 마인드 오늘의 성구는 자력으로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동정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동정심만으로 그들을 도울 수는 없다. 왜냐하면 동정심은 단지 충동적 감정일 수 있기 때문이고, 또한 개인은 근원적 해결책을 질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감정이입을 가지되, 개인적 차원보다 사회적 차원의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여러 가지 종류의 사회 복지 제도가 그것이다. 최저 생계비 지원, 주택 급여, 의료 혜택 등을 국가가 지원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들이 완화될 수 있다. 그러면 이렇게 소외되기 쉬운 계층을 돌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공동체에 속하기 때문이다.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는 가족이고 최종적 공동체는 자연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공동체를 어떤 범위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지원의 범위도 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자녀 중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신체가 손상이 되었다면 부모는 그 자녀에 대해 안스런 마음이 들어 특별히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들이 성실하게 살더라도 사회 제도가 완벽하지 못하여 불이익을 당할 수 있고, 생계 마저도 위협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그 사회의 형편에 따르는 복지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복지 제도가 잘 되어 있었고, 우리 나라에도 그 제도를 본받아 정착된 제도 중에서 의료 보험 제도가 가장 잘 되어 있다고 판단된다. 한편 서구 사회에서는 지금에 이르러 나라의 살림이 어려워지고 있다. 그들은 제조업에서 동양 3국에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지 제도도 이러한 사정에 의해 개편이 될 필요성이 제기된다. 고령자의 연령 한도를 높이고 전쳬 예산에서 복지비로 지출되는 부분의 비율이 조정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불평과 불만이 일어나게 된다. 매일 만원을 기부 받던 거지가 어느날 5천 원을 기부 받으면 기부한 사람에게 화를 내게 된다. 그는 만원의 기부를 마치 자기가 거두어 가는 세금처럼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복지 제도의 내용도 나라 형편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당사자는 감사하는 마음과 저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복지에 절대 지출이 아니라, 비율적 상대 지출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고령자나 병약자의 증감의 변화에 따른 조정도 필요할 것이다. 이것은 국가는 물론 작은 공동체 단위에서도 적용되는 원리다. 어떤 경우에도 그 사회 또는 공동체가 잘 연합되기 위해서는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보호받는다는 생각을 가질 때, 그 사회는 튼튼한 연합을 유지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제도가 가장 완벽하게 정착되려면, 전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세계 단일 정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단일 정부는 가장 먼저 나라들의 국방 예산을 거의 0%에 가깝게 절감시킬 수 있다. 이 비용을 복지에 투여시킨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래서 단일 정부가 형성되지 못하는 원인들을 정확히 분석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세운 다음, 실행에 옮기려는 의지를 가진 조직이 먼저 결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강제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목표 자체가 선이기 때문이고, 선은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존재론을 탐구하는 철학자들(종교인을 포함하여)의 책임이 크다. 존재가 행복의 바탕이고, 존재를 강화시키는 것이 행복을 증가시키는 것이며, 그것이 곧 선(善)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