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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처리포트 사이트에서 올라왔던 글을 웹 서핑하다 흥미로워서 올려봅니다. 영어공부차원에서 번역하며 올렸는데 중간에 실수가 있다면 얼마든지 지적해 주십시오. 스티븐 레스닉의 글입니다.
누가 NBA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인가에 대한 논쟁은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 논쟁의 중심엔 마이클 조든이냐 윌트 체임벌린이냐가 있다.
누가 위대한지 가리기 힘든 동안,마이클에게로 추가 쏠린다, 난 왜 그런지 살필 것이다. 조든과 체임벌린이 완전히 다른 포지션에서 다른 책임을 지고 플레이하는 것 만큼이나,둘이 플레이한 시대를 비교하는 사실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수비적으로 누가 좋은 수치를 남겼느냐 역시 어려운 문제인데 그것은 체임벌린의 선수생활 시절, 블락과 스틸은 기록되지 않았고,수비 팀도 그의 선수생활 후기에 생겼다는 것 때문이다.
내가 처음 살펴볼 선수는 체임벌린이다. 자 그럼 그가 뛰던 시절도 살펴보고,그의 성취,업적등을 살펴보자.
그의 선수생활동안, 체임벌린은 NBA통산 1위인 23,924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했고,통산 평균 출장시간 1위인 45.8분을 뛰었고,평균 리바운드 1위에 해당하는 수치인 22.9개를 기록했고,평균 30.1득점을 했다. 2위라고 하기엔 너무나 좋은, 3위에 해당하는 12,681개의 필드골 성공갯수,5위에 해당하는 47.859분 출장 그리고 6위의 필드골 시도횟수.
수상경력을 보면 그는 1959-60시즌 신인왕을 수상했고,MVP4회 수상,파이널MVP1회,7회의 퍼스트팀,3회의 세컨드팀에 선정되었다.
플레이오프에서 체임벌린은 2위에 해당하는 3,913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했고 평균 2위인 24.5리바운드와 4위에 해당하는 1627개의 자유투를 시도했다.
그의 14시즌동안 기록들을 보자, 그들은 분명히 인상깊어할 것이나, 대부분은 기록에 만족해하지 않는다.
사실,내가 마주한 체임벌린에 대한 언급이 있다:체임벌린의 시대에 경쟁자가 없었기 때문에 스탯상의 지배력을 기초로 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 진술의 문제는 체임벌린은 경쟁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빌 러셀,월트 벨라미,돌프 셰이즈,네이트 서먼드,제리 루카스,카림 압둘-자바,밥 페팃,엘빈 헤이즈,윌리스 리드,그 외에 그의 시대에 빅맨들 기타 등등...
체임벌린의 시대가 조든의 시대보다 빅맨기근 현상이었단 건 정확하지 않다. 시실 가드의 전성시대였다.
체임벌린의 시대에 가드가 득점을 했던 건 의문의 여지가 없으나, 그들은 효율적이지 못한 득점 기계들이었고. 포인트가드의 어시스트 숫자역시 인상적이지 못했다.
체임벌린의 리바운드 숫자를 보자, 그것들은 어마어마하다,그러나 다른 빅맨들 역시 그만큼의 리바운드를 기록한 것을 이해하는 것 역시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월트 벨라미의 61-62시즌 루키시절 기록을 보자. 벨라미는 31.6점 19리바운드 2.7어시스트를 기록했고 51.9프로의 야투를 기록했다.(리그 1위에 해당하는 기록) 그는 자유투라인에서 64.4프로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체임벌린 시대에,낮은 필드골 성공률은 벨라미,체임벌린,러셀,기타 등등의 선수들이 엄청난 리바운드를 기록했는가를 설명한다
그시대 센터가 50프로의 야투성공률을 상회하는건 중요한 성과였다.
이것은 체임벌린 선수생활 시절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5할대의 야투율 이상을 기록했는가 목록들이다.
1959-1960: 0
1960-1961: 1
1961-1962: 2
1962-1963: 5
1963-1964: 3
1964-1965: 2
1965-1966: 4
1966-1967: 3
1967-1968: 6
1968-1969: 7
1970-1971: 8
1971-1972: 10
1972-1973: 11
평균적으로,1시즌에 4명의 선수만이 체임벌린의 선수시절동안 5할을 상회하는 야투율을 기록했다.
그 시대의 가드들의 평균 야투율을 살펴보자.
보스톤 셀틱스의 명전 포인트가드 밥 쿠지는 체임벌린이 리그에서 뛰는 기간동안 38.4%의 야투성공률을 기록했다.
체임벌린의 동료 가이 로저스는 37.7퍼센트,맥코이 맥레모어는 39.4,네잇 서몬드는 41.2 프레드 헤첼은 42.1퍼센트 폴 아리진은 42퍼센트.
그 시절엔 많은 선수들이 슛을 잘 넣지 못했다, 또한 팀 야투 성공률을 보는 것 역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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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0시즌,필라델피아 워리어스 40.9퍼센트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39.7퍼센트,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 38.6퍼센트 신시내티 로얄스 41.2퍼센트 시라큐스 내셔널스 41.4퍼센트 보스톤 셀틱스 41.7퍼센트 세인트 루이스 혹스 41.9퍼센트,뉴욕 닉스 42.1퍼센트
60-61시즌엔 셀틱스 39.8,레이커스 40.3 닉스 41 혹스 41.1 피스톤스 41.7 내셔널스 41.8 워리어스 42.4 로얄스 43.8
61-62시즌은 시카고 패커스 41.2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41.5 뉴욕 닉스 41.8 시라큐스 내셔널스 41.8 보스톤 셀틱스 42.3 레이커스 42.7 혹스 43 워리어스 43.9 로얄스 45.2
62-63시즌 셀틱스 42.7 닉스 42.9 혹스 43.1 피스톤스 43.2 레이커스 44.1 내셔널스 44.5 워리어스 45 시카고 제피어스 45.3 로얄스 45.9
63-64시즌은
셀틱스 41.3 식서스 41.8 피스톤스 42.1 혹스 43 워리어스 43.8 레이커스 44 불리츠 44 닉스 44.5 로얄스 45.3
64-65시즌엔
워리어스 40.3 셀틱스 41.4 피스톤스 41.8 식서스 42.2 혹스 42.4 닉스 42.6 레이커스 43.7 불리츠 44.2 로얄스 44.7
65-66시즌
피스톤스 40.9 셀틱스 41.7 워리어스 41.8 혹스 43.1 불리츠 43.8 로얄스 44.4 레이커스 44.4 식서스 44.6 닉스 45
66-67시즌 피스톤스 41.2 불스 41.9 불리츠 42.7 워리어스 43.3 혹스 44.3 셀틱스 44.7 레이커스 44.7 로얄스 44.9 닉스 45.3 식서스 48.3
67-68시즌 로케츠 41.7 워리어스 42.3 불스 42.9 불리츠 43.8 슈퍼소닉스 43.9 셀틱스 44 피스톤스 44.8 혹스 45.1 닉스 45.6 로얄스 46.8 식서스 47.1 레이커스 47.7
68-69시즌 워리어스 41.5 불스 41.8 벅스 42.8 로케츠 42.8 선즈 43 셀틱스 43.1 슈퍼소닉스 43.5 불리츠 44 피스톤스 45.1 식서스 45.4 닉스 45.9 혹스 46 로얄스 46 레이커스 46.9
69-70시즌 워리어스 43.2 로케츠 43.6 셀틱스 44.3 불스 44.4 로얄스 45.5 불리츠 45.8 레이커스 46.1 슈퍼소닉스 46.2 피스톤스 46.6 선즈 46.8 식서스 46.9 닉스 47.7 혹스 48.3 벅스 48.8
70-71시즌 로케츠 42.1 캐벌리어스 42.4 블레이저스 43.5 브레이브스 43.6 선즈 43.7 불리츠 44.2 셀틱스 44.2 워리어스 44.8 피스톤스 44.9 닉스 45 식서스 45 불스 45 로얄스 45.4 슈퍼소닉스 45.6 혹스 46.5 레이커스 47.6 벅스 50.9
71-72시즌 캐벌리어스 42.8 로케츠 43.4 워리어스 43.9 블레이저스 44.2 식서스 44.4 불리츠 45 브레이브스 45.1 불스 45.1 셀틱스 45.3 피스톤스 45.4 선즈 45.7 닉스 45.9 로얄스 45.9 혹스 46 슈퍼소닉스 46.5 레이커스 49 벅스 49.8
72-73시즌 식서스 42 캐브스 43.5 불스 44.4 셀틱스 44.8 브레이브스 44.9 슈퍼소닉스 44.9 워리어스 45.5 선즈 45.5 로케츠 45.7 블레이저스 45.8 혹스 46.1 피스톤스 46.3 불리츠 46.4 닉스 46.7 킹스 47.8 레이커스 47.8 벅스 48.1
이 수치에 따르면 70-71시즌 밀워키 벅스 한 팀만이 체임벌린의 선수생활 14년동안 5할의 야투율을 넘겼다는 걸 알 수 있다.
자 야투율은 체임벌린이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되지 못하는 1가지 이유일 뿐이다. 체임벌린은 7번의 파이널에서 2회의 우승을 했고 2-5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체임벌린이 정규시즌에 무시무시한 선수임엔 의문의 여지가 없다. NBA는 결코 다시 50.4득점 25.7리바운드를 1시즌에 어떤 누군가가 기록하는걸 보지 못할 것이다. 또한, NBA는 체임벌린이 달성한 어시스트 기록,리그 10위 내에 4번 진입,토탈 어시 1위(702개)와 평균 어시 2위(8.6)개를 1번에 기록한 걸 포함해서 그가 한 기록을 하는 센터를 찾으러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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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또한 체임벌린이 누의 도움도 받지 못한 것이 아니란 걸 증명하는 것이다. 워리어스시절 ,그는 명전 멤버인 톰 골라,폴 아리진,네잇 서몬드와 함께 했고,식서스 시절엔 할 그려와 빌리 커닝햄과 함께 했다,마지막으로 레이커스에선 명전 멤버인 엘진 베일러,제리 웨스트,게일 굿리치이와 함께 했다.
도합,그는 8명의 명전 선수와 함께 했다.
그는 파이널에서 3팀과 만났다, 셀틱스,워리어스,닉스
이 팀들은 빌 러셀,존 하블리첵,톰 헤인손,릭 배리,네잇 서몬드,베일리 하웰,윌리스 리드,월트 프래지어 데이브 드부셔 빌 브래들리,얼 먼로를 보유하고 있었다.
체임벌린은 분명히 파이널에서 경쟁을 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정규시즌을 지배하면 플레이오프를 지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점에서,이제 왜 조든이 체임벌린을 압도하는지 볼 수 있다. 체임벌린 선수시절 대부분의 세월동안 수비팀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 난 그것을 비교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조든은 통산 평균 30.1득점을 기록했고, 통산 3위인 32,292득점,3위에 해당하는 야투시도,필드골 성공 4위,4위의 자유투 성공과,9위의 자유투 시도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는 체임벌린처럼 신인왕을 수상했고,5회의 MVP,그것보다 더한->6회의 파이널MVP기록을 가지고 있다.
플레이오프에서 조든은 통산 최고인 33.4득점,야투 시도1위,자유투성공1위,2위의 자유투시도, 2위의 필드골 성공과 어시스트 7위를 기록했다.
경쟁에 대해서, 조든은 역사상 위대한 빅맨 뿐 아닌 뛰어난 가드들과 함께 경쟁했다
이들의 이름은 매직 존슨,래리 버드,조 듀마스,데니스 로드맨,하킴 올라주원,데이빗 로빈슨,칼 말론,존 스탁튼,개리 페이튼,패트릭 유잉,알론조 모닝,샤킬 오닐,케빈 맥헤일,도미닉 윌킨스,크리스 웨버,클라이드 드렉슬러,찰스 바클리 등등 많은 선수들..
그의 시대에, 선수들은 효율적으로 득점을 했고,포인트 가드들의 어시스트 숫자는 인상적이었다.
선수의 필드골 성공률은 어떨까? 빅 디퍼의 시절처럼 어려움을 겪었을까? 글쎄, 선수들의 야투율이 근본적으로 상승함에 따라 5할대 야투율을 기록하는건 더 이상 힘든 일이 아니었다.
힌트를 주자면 84-85시즌, 그러니까 MJ의 루키시절,20명의 선수들이 5할 이상의 야투성공률을 기록했다.
더 인상적인 건 1시즌에 5할대 야투율을 기록한 팀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조든의 선수생활동안 그 기록들을 살펴보자.
1984-1985: 7
1985-1986: 5
1986-1987: 3
1987-198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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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기억에,체임벌린 시절 벅스 1팀만이 5할대의 야투율을 상회하는 기록을 세운 걸로 생각이 들 것이다. 조든이 뛰던 시절 리그 27팀이 1시즌에 5할야투율을 상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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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왜 조든시대에,그리고 오늘날, 한경기에 20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는 선수가 나오지 않는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이것은 또한 한 경기에 20개의 리바운드를 잡는 것이 위대한 성과가 된 게 체임벌린 시절보다 멀리서 슈팅을 쏘기 때문인 이유이기도 하다.
체임벌린이 리그 등장 이전, 어떤 시즌,어떤 팀을 들여다봐도 4할의 야투를 상회하는 일이란 어려운 일이었다. 가령,56-57시즌 챔피언 보스톤 셀틱스를 보자. 두 명의 선수만 4할의 야투율을 넘기는 기록을 했다.
그래서. NBA팬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리그 경쟁력 수준의 향상을 보아왔다.
그리고 이것은 야투성공률 뿐만이 아니라,체임벌린과 달리 조든이 파이널을 지배했다는 점이다. 조든은 6번의 결승 무대에서 항상 불스를 우승에 올려놨다.
내가 전에 말했듯이, 체임벌린은 8명의 명전 입성자와 선수생활동안 함께했다. 그렇다면 조든은? 조든은 딱 1명, 스카티 피펜의 원조만을 받으며 뛰었다.
어떤 팀들을 불스가 이겼을까? 어떤 명전입성 선수와 맞닥뜨렸을까? 제임스 워디,매직 존슨,클라이드 드렉슬러,찰스 바클리,존 스탁튼,칼 말론.
체임벌린은 파이널에서 더 많은 명전에 간 선수와 맞딱드렸을 뿐만 아니고 조든보다 더 좋은 원조를 받았다.
궁극적으로, NBA역사에 위대한 선수를 정하는 일이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조든은 6개의 반지,체임벌린보다 뛰어난 경쟁심으로 플레이오프를 지배했단 점에서 체임벌린보다 우월하다.
이 글 다음으론, 빅 디퍼가 MJ보다 위대한 이유에 대한 번역 칼럼을 쓸 계획입니다.
그리고 둘이 비기는 내용의 번역 칼럼을 올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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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러고 보니 슛이 실패해야만 리바운드를 시도할 수 있는 거네요.... 그래서 다른 선수의 야투율이 특정 선수의 리바운드 갯수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구요.... 그 동안 전혀 생각 못한 신선한 관점이군요. ㅋ
챔벌린 시대에는 더 많은 야도 시도를 했고, 더 많은 득점을 했습니다. 그 말인즉슨 엄청나게 쏘고 엄청나게 리바하고 엄청나게 실패했단 거죠. 게다가 챔벌린은 팀내 야투시도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습니다. 당시 챔벌린 신체는 지금봐도 7풋이 드문판인데 지금으로 치면 야오밍이 하워드처럼 펄쩍펄쩍 뛴거나 다름 없었습니다. 닥터제이님이 알럽 게시판에 올린 걸 보면 당시 리그의 분위기가 지금과 비교하면 얼마나 열악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보아도 챔벌린이 얼마나 압도적인 선수인지..여러모로 놀랍기만 하죠.
그래서 최고의 공격리바운드 팀은 슛율이 최악인 팀이라는 농담도 있죠.
수비리바운드 많은 팀은 수비가 좋아서 상대팀 슛율이 낮은 팀이고요.
하지만 이건 단순 리바운드 숫자만 본거고
리바운드 점유율은 이와는 관계 없습니다.
조던 아닌가요
조든이라길래 누군가 했습니다. ㅋㅋ
영어발음은 졸든이나 조든으로 발음됩니다~
흠... 채임벌린이 뛰던 시대에 4할에서 5할로 필드골 성공률이 높아졌다고 가정해도 채임벌린의 리바 수치는 22.9X(5/6) 하면 대략 19.1 은 나오는군요...... 그래도 엄청난 수치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도 궁금합니다. 답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답변을 주시지 말고 게시판에 공개적으로 답변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계속 무응답으로 일관할 경우, 그저 가넷에 대한 악의적인 모함으로 판단내리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쪽지로 보낼게요^^
석수님 그런건 아닌거 같네요 카페 어디 글에보면 하워드를 저당시로 수치화 한것이 잇엇는데 그렇게 되면 24개정도 나왓던 걸로 본 기억이 됩니다 아마 보신분들 잇으실텐데 저당시 팀 리바운드가 지금보다 훨씬 많앗던걸로 알고 잇습니다.
체임벌린이 위대한 선수가 아니라는것이 아니라 저당시 특급이라 불리는 빅맨들은 거의 20개이상 기록을 햇던걸로 본것 같네요 정확히 수치를 못갈쳐드려 죄송합니다.
하워드 리바가 현재 평균 12.7갠데 저 당시로 수치화 하면 24개 정도 된다면 2배나 가까이 높아진 거네요. 채임벌린이 뛰던시절에 얼마나 리바운드 하기가 쉬웠길래 2배 가까이나 스탯이 늘수가 있는지 정말 신기하네요 -_-ㅎㅎ
그리고 제가 계산해 놓은건 그냥 단순히 필드골 성공률이 높아져서 리바할 상황이 더 줄어든다면? 이라고 가정하에 계산해 본겁니다. ㅎㅎ 계산 자체는 틀리지 않았어요.
하워드의 최고 시즌 리바운드 기록을 저당시에 그대로 대입해도 평균 24개 안됩니다.그리고 시즌 평균 20개 이상 리바운드를 잡아내던 선수는 역사상 단 5명에 불과합니다.60년대에 리바운드 스탯이 엽기이긴 해도 많은 숫자가 아니죠.체임벌린,러셀,써몬드,페팃,루카스.역대 시즌 평균 20리바운드 이상은 총 24번입니다.그중에 체임벌린이 10번,러셀이 10번,루카스 2번,페팃과 써몬드가 각각 1회입니다.이것만 봐도 단순히 시대빨이라기엔 체임벌린과 러셀이 너무나 압도적이죠.
저도 Worm Rodman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웜 로드맨 님이 위에 언급하신 다섯 명은 우리들이 흔히 최고의 리바운더들이라 얘기하는 로드맨, 바클리, 모제스 말론 등과 동급이거나 더 뛰어난 리바운더들이었습니다. 하워드의 리바운드 스탯을 저 당시의 상황 속에 대입해 본다 치면 17~18개 정도가 나왔을 것으로 보는 게 더 자연스럽습니다.
석수// 당시엔 경기 페이스가 지금보다 훨씬 빨랐습니다.
그것도 감안되어야겠죠
조던이 월트-자바 보다 먼저 이름을 올리는 것은 더맨우승 횟수와 독보적인 느바 영향력이겠죠. 그러나 개인 기량은 2번의 외도로 인해 이들에 비해 다소 뒤처진다고 봅니다.
글 출처 정도는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bleacherreport.com/articles/429469-why-wilt-chamberlain-will-always-be-number-two-to-michael-jordan 이곳입니다.
재밌는 글이네요^^ 좋은 번역글 잘봤습니다^^
체임벌린은 마치 전설의 신화속 괴수와 같죠. 뭔가 이름 들으면 배경음악 깔리고ㅋㅋ 다른 현실감 없는 전설같다는ㅋ
조던을 역대 최고라고 평했던 레전드들의 말을 보면 커리어가 화려해서 그렇다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실력이 최고라고 하더군요. 공격과 수비에서 완벽한 기량을 갖췄고 고작 6피트 6인치로 리그를 지배했다고....ㅋ 실제로 조던과 역대최고를 경합하는 선수들은 주로 센터이고 조던이 한창 활약하던 리그에서도 좋은 센터들이 즐비했죠. 그런데 2미터가 채 안되는 가드가 빅맨들을 다 발 아래 두고 최고로 인정받은 겁니다. 알면 알수록 정말 대단한 선수.
그건 월트옹도 마찬가지죠 거의 신화급에 달하는 에피소드들이 괜히 나오는게 아니고... 러셀옹조차 공식적으로 자신보다 월트옹이 개인기량에서는 위라고 인정했습니다
똥배짱 님//위대한 50인이 조던을 평한 글을 읽고 한 말이구요 제 글의 핵심은 2미터도 안되는 가드가 신체적인 불리함을 딛고 위대한 빅맨들보다 높게 평가받는다는 것입니다. 윌트는 신체조건이 역대 탑인 선수죠....;; ㅋ 그리고 개인기량으로 체임벌린이 러셀보다 위라는 건 농구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그시절 야투율이 떨어진건 3점슛제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코트에 10명이 바글바글 거리는 그런시대였기에. 슛성공률이 떨어질수밖에 없었죠. 터프샷도 많을수 밖에 없구요. 리바수치는 많이 나올수 있지만. 그만큼 따내기도 쉽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아마 제가 대충 기억은 안나지만. 가드들도 리바수치가 현재의 가드보다 마찬가지로 많을겁니다. 야투율 떨어지고. 리바는 누구나 더 많이 잡는 그런시대였습니다. 오스카 리바수치 후덜덜하죠. 멀리서 던지는 ㅂ ㅅ 짓은 할필요가 없었구요. 3점이 없는시대니깐. 그래서 키큰 센터의 시대가 될수밖에 없는 시대였습니다. 또한 3점의 무기가 사라진 가드는 불리한 시절이었구요.
덕분에 농구의 신 오스카는 그시대의 조던이었으나 트리플더블시즌의 상징성과 러셀-웰트를 제치고 시즌MVP딴것.그리고 말년에 자바와 함께 2옵션으로 우승반지 1개 챙긴거 외엔 건진게 없었던것도. 다 그와같은 맹락입니다. 센터에게 엄청나게 유리한 룰이었고. 시절이었습니다. 조던도 그시절에 뛰었다면 오스카이상은 힘들었을겁니다. 그래서 오스카를 아직도 매직보다 위로 보는 전문가도 많은겁니다. 골대밑에 10명이 우글거리는 시대. 가드는 야투율 떨어질수밖에 없고 센터에 의존할수밖에 없고. 가드는 죽을수밖에 없는 시절이었지요. 가드의 필살기 3점슛이 없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사이즈가 타고나서 시대가 그러해서라고 러셀-윌트의 압도적 개인스탯(특히 리바부문)을 폄하할 필요는 없습니다. 웨 웜 로드맨님이 잘 자료를 제시해주셨네요. 윌트-러셀은 지금시대에 와도 15리바이상은 가능할겁니다. 아니 지금시절에 태어났다면. 신장이 220센티 내외는 되셨겠죠. ㅎ 그러고도 움직임은 야오밍이 아닌 샥-하킴 수준. 윌트-러셀은 조던과 동급으로 보는게 타당하고 보네요.
신장이 220센티미터 내외에 움직임이 샥과 하킴의 수준. 그리고 요즘 시대에 걸맞는 발달된 웨이트 프로그램과 영양섭취로 인한 신체능력 향상. 아...... 상상이 안갑니다. 샤킬이나 드림보다 더 심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어우
윌트의 이야기를 쭉보고 있으면 사람이 아닌것 같습니다 역대최고의 몸땡이 그누구도 범잡할수 없죠~ 220내외의 센터가 전미 높이뛰기 세단뛰기에서 입상을 하고 팀의 어떤 가드보다 빠르며 타팀선수들의 노골적인 반칙과 그당시의 열악한 의료상황과 코트, 운동화 등을 신고도 45분의 출장시간으로 30대 후반까지 뛰는 불가사이한 내구력 무지막지하게 덤비는 르브론을 대놓고 막을 선수는 윌트옹 밖에 없지 않을까 싶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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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이죠. 심지어 체임벌린은 말년에 야투율 70%까지 찍은 것도 있는데 이런 것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고 말이죠. 당시 팀 야투율이 30%대건, 40%대건, 50%대건, 60%대건 체임벌린이 위대한 리바운더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죠. 저 글만 보면 5~60년대 웬만한 빅맨들은 다들 리바 15개씩은 잡았는 줄 알겠어요. 당시도 두자릿수 리바운드만 잡아도 충분히 우수한 급이었습니다. 다만 몇몇 괴물같은 선수들이 무시무시한 리바 스탯을 찍었을 뿐이죠. 그리고 그런 무시무시한 선수들은 90년대에도 더러 있었구요. 그저 수치만 잔뜩 집어넣어서 보는 사람들을 현혹시키지만 논리는 빈약하기 짝이 없는 스탯빨 글로 보입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야투율 5할 넘는 선수가 거의 없는 가운데 5할을 넘겼다는게 더 대단한건데 말이죠. 그걸 리바운드에만 적용해서 과장된 리바운드 수치라고 만 이야기하고 마니 스탯을 너무 가공해서 원하는대로만 조작한 느낌이네요.
시대적인 상황이 있는데..예전에 그랬다고 해서 폄하될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느정도 수준에 오른 선수들은 어느 시대에 가도 실력을 유지한다고 보거든요...
야투율이 낮다고 리바운드가 많은 건 단적으로 그렇게 보일수 도 있지만...그렇다고 해서
체임벌린이 현 시대에 온다고 해서 10개도 못잡고 그럴 거 같진 않다는 얘기죠...
명예의 전당급 레벨의 선수는 시대를 초월해서 와도 바로 현대 농구에 적응할 클래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ㅋ
전형적인 왜곡글이라고 보이네요 더해서 일단 결론을 내놓고 거기에 이유를 끼워맞춰 논리가 어그러진 글의 전형으로 보입니다
그 당시의 NO.1의 선수들은 현 시대에 태어났어도 NO,1 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만큼 뛰어난 선수들이었기에 그런 시대에도 월등한 업적을 남겼겠죠.
체임벌린은 8명의 명전 멤버와 함께 했고 조던은 겨우 하나였다... 참 억지 논리군요. 체임벌린은 팀을 자주 옮겼으니 당연히 여러 동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고, 조던은 거의 한 팀에서만 뛰었으니 적었던 것에 불과하죠.
그렇기도 하고 그당시에는 팀이 지금보다 절반밖에 안되었기에 올스타급 레벨의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한 팀으로 모였죠. 러셀의 팀도 거의 전원이 명전멤버입니다. 그렇다고 그의 우승을 폄하하지는 않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