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3 언어로 표현된 사회의 모습
교육평론 원고
저자 : 안재오
제목 : 언어로 표현된 사회의 모습
ㅡ “사축(社畜)” 과 “미친 한국인”을 중심으로 ㅡ
1. 서론 : “말”로 본 시대의 모습 : 말이 현실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다들 직장을 못 구해서 괴로워한다. 경제가 어렵고 더욱이 젊은이들은 진입장벽에 갖혀 사회의 고통을 더 많이 받고 있는 중이다. 한 때나마 좋은 시절을 누렸던 기성세대 , 즉 40~50대는 그래도 그 시절 사회에 진입하여 사회적 분배의 혜택을 좀 누린다고 한다면, 처음부터 취업과 복지의 한파(寒波) 가운데 사회에 첫발을 디뎌놓는 20대는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쓰린 맛을 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요즘은 "N포 세대"라는 말이 유행을 하고 "헬조선"(지옥 한국의 뜻)이라는 말이 돌아다닌다.
그리고 지난달 필자가 <교육평론>에서 기술한 숟가락 계급론, 소위 흙수저 금수저 론(論) 역시 사실임이 최근 권위 있는 정부 기관의 연구로 알려졌다.
'금수저'는 돈 많고 능력 있는 부모를 둔 사람을 가리키지만, '흙수저'는 돈도 배경도 변변찮아 기댈 데가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노력보다 부모의 배경에 따라 장래가 결정된다는 현실 자조적인 인식을 담은 표현이다.
31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방안Ⅱ' 연구보고서(책임연구자 여유진·정해식 등)를 보면, 우리 사회가 이른바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를 거쳐 정보화세대로 넘어오면서 직업지위와 계층의 고착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16.01.30)
“이번 생에서는 망했다”는 뜻으로 “이생망” 이라는 말도 있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이처럼 어둠과 좌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부정적인 언어들 , 특히 청년들에 관한 부정적인 언어와 단어들이 자꾸 주조(鑄造)되고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환경이 그만큼 열악하여 어린 영혼들이 거의 질식할 정도가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위정자들은 심각한 깨달음을 얻고 현실의 근본적인 방향을 돌리기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의 정치인들 혹은 지도자들은 아직 다가올 어두운 미래를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단순히 청년 실업의 문제를 생각하지만 사태는 보이는 것보다 심각하다. 작은 풍랑 뒤에 더 큰 풍랑이 몰려오고 있다. 드러난 일부의 얼음 덩어리만 보고 배의 방향을 잡으려다가는 수면에 드러나지 않고 있는 거대한 얼음덩이에 의해서 사회가 충격을 받을 것이다. 마치 북대서양의 빙산이 세계 최대의 타이타닉 호를 침몰시킨 것처럼 그렇게 대한민국이 침몰할 수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청년 관련의 부정적인 말들은 단순히 언어, 말이 아니라 실은 사회적 현실을 담고 있는 알맹이가 있는 "살아있는 말(living words)"들이다. 최근 더해진 새로운 부정적인 언어는 "사축(社畜)"이라는 말이다. ‘사축(社畜)’은 회사에서 키우는 가축이라는 뜻이다. 혹독한 업무환경과 박봉, 고용 불안, 불합리한 조직문화 등에 고통 받으면서도 저항하지 못하는 직장인의 현실을 자조하는 표현이다.
‘아까 한 말을 대리님이 언짢아하신 것 같고/ 비품 하나 빌리러 갈 때도 조마조마하고/ 사수의 한숨 하나하나가 나로 인한 것이 아닐까 겁나고/ 내 이름만 불려도 혹시 뭘 잘못한 걸까 싶고/ 심지어 복사기가 평소와 미묘하게 다른 소리만 내도/ 무슨 실수라도 한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된다.’
지난해 말 출간된 강백수(본명 강민구) 씨의 저서 ‘사축일기’의 한 대목이다. 회사 내 모든 존재의 눈치를 보는 직장인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이 책 제목의 ‘사축(社畜)’은 회사에서 키우는 가축이라는 뜻. 혹독한 업무환경과 박봉, 고용 불안, 불합리한 조직문화 등에 고통 받으면서도 저항하지 못하는 직장인의 현실을 자조하는 표현이다. 올해로 스물아홉 살이 된 저자가 ‘친구’들의 민낯을 담아낸 이 책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헬조선 청년은 취업을 하든 못 하든 불쌍한 존재’(온라인 서평)라는 공감을 얻으며 화제몰이 중이다. (주간동아, 출구 없는 사회 ‘죄송한’ 청년들 2016.02.01.)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직장을 구한 청년들도 위에서처럼 불쌍한 존재들이라는 것이 바로 “사축(社畜)”으로 비하된 직장인들이다. 그런데 이 사축으로 비하되는 직장인들이 생기는 이유는 회사 경영의 불합리성 때문이다. 강백수(본명 강민구) 씨의 저서 ‘사축일기’의 다른 곳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 공범
오늘도 왕창 깨졌다. 팀장이 시킨 일을 기한 내에 못했다. 나는 무리라고 했고 팀장은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기한을 못 맞춘건 내 잘못이다. 내가 무능한 것이라면 무능한 내게 기한내에 못할 일을 준 팀장이 잘못이다. 무능한 내가 이 팀에서 일하는 게 잘못이라면 그것은 내를 이 팀에 배치한 인사팀 잘못이다. 어쨌거나 기한을 못 맞춘 건 내 잘못이다. 같이 잘못했는데 나만 깨진다. (강백수 『사축일기』 중에서)
신입 사원 혹은 말단 사원들이 스스로를 회사의 가축으로 여기는 이면에는 이처럼 회사 조직과 운영의 불합리성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의 불합리성이 결국 생산성과 경쟁력의 약화를 가져오고 청년들에게는 취업의 불안과 위기를 가져 온 것이다. “팀장”을 보면 팀장도 나도 인사과도 모두 잘못이라는 혹은 무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문제는 모두 잘못인데 하급 사원인 작중화자만 깨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형평성과 정의(正義)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모두 무능하고 비민주적인데 약자만 희생을 시키는 악습이 있다. 아직 한국은 권위주의 사회를 탈피하지 못한 것이다. 능력과 창의성이 무시되고 갑질이 횡행하고 약자에 대한 무자비한 희생이 강요되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약자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강자들에게 의존적으로 된다. 이 때문에 더욱 한국의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이 시급히 요구된다. 어려울수록 약자는 더욱 약해지고 강자는 더욱 강해진다.
청년 그들은 법적 형식적으로는 성인이지만 사회에서는 가장 약한 위치에 속한다. 그들은 모은 재산도 없고 경력도 없고 능력이나 자격을 인정받지도 못했고 사회적인 관계망도 미흡하다. 옛날처럼 기분 나쁘다고, 어렵게 들어간 일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도 없다.
그래서 이들이 실은 사회에서는 가장 약자들이다. 그들은 회사의 가축(家畜) 즉 사축(社畜)이라는 극히 자기비하적인 상표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다.
2. 본론 : 불합리한 조직문화
위의 『사축일기』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요즘 젊은 세대들은 직장에서도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이들이 경제적인 한파와 불경기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이직(離職)을 고려해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직장 내에서의 상급자들의 하급자들에 대한 횡포가 기승을 부리는 것같다. 사실 예전 같으면 사표를 낼 상황에서도 요즘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특히 예전에는 기존 사원들에 비해서 신입사원들의 이직률이 상당히 더 높았다. 그러나 직장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 앞에서 신입사원들이 예전처럼 자기 적성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퇴사를 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여진다. 이런 것과 별도로 대기업에서의 불합리한 조직 문화 역시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큰 이유가 된다.
글로벌 거대기업 연수원. 영하 12도의 자정인데 신입사원들이 무리 지어 운동장을 달린다. 5개월 연수 기간 동안 매주 한 번 42㎞를 팀 전원이 함께 완주해야 하는 ‘주간 마라톤’ 중이다. 전 세계에서 온 임원들은 야외에 캠프파이어를 마련해 놓고 테이블별로 무대로 나가 그룹 부회장 앞에서 술잔을 들고 다짐을 하며 경쟁적으로 소리를 질러댄다. 징 소리가 울리면 7분 휴식하고 다시 징 소리가 울리면 착석한다. 다른 해의 중역 연수 때에는 실내에서 테이블에 올라가 주먹을 높이 들어올리며 다짐을 큰 소리로 외치기도 했다. 이어 촛불을 켜고 모두 손에 손을 잡은 후, 명상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부회장이 영예와 의무, 용기를 주제로 한 시를 낭송했다. 임원들은 직급 순으로 한 명씩 부회장 앞에 섰고, 부회장은 앞으로 힘든 싸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여러분을 믿는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LG전자 프랑스 법인장을 역임했던 프랑스인 에리크 쉬르데주가 저서 『한국인은 미쳤다!』에서 “초현실적인 장면들이었다”며 회상한 풍경들이다. 최근에도 대보그룹 단합대회로 성탄절 새벽 4시부터 지리산 등산을 하던 42세 직장인이 사망한 일이 있었다. 기분 나빠할 건 없다. 쉬르데주는 한국의 전원돌격 특공대식 경영이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견인했다는 측면 역시 공정하게 강조하고 있으니까. 문제는 21세기에도 이런 방식이 계속 유효할 것이냐다. 쉬르데주는 군대식 서열 구조로 이루어진 한국 기업 문화 속에서 직원들은 고객이 아니라 상사를 만족시키기 위해 보여주기 식으로 일한다고 증언한다. 한국에서 본부장이 방문하자 유통매장들에 방문 기간 동안만 자사 제품을 눈에 띄는 곳에 진열해 달라고 간청하며 막대한 비용을 지출한 사례를 들며.
좋든 싫든 최첨단에서 혁신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합리적 개인주의를 토대로 한 수평적 조직문화의 미국과 유럽이다. (〔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한국인은 미쳤다! [중앙일보] 입력 2016.02.02.)
위의 긴 인용문에서 보는 것처럼 LG전자 프랑스 법인장을 역임했던 프랑스인 에리크 쉬르데주가 저서 『한국인은 미쳤다!』에서 군대식 서열 구조로 이루어진 한국 기업 문화 속에서 직원들은 고객이 아니라 상사를 만족시키기 위해 보여주기 식으로 일한다고 증언한다. 한국의 전원돌격 특공대식 경영이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견인했다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더 이상 그런 방식으로 “빛의 속도로 진화, 발전하는 정보통신의 사회”에서 효과를 거둘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영하 12도 그것도 자정에 전 신입사원들이 무리지어 운동장을 달리는 나라와 그런 기업이 과연 제 정신인지 의심이 된다. 이런 식으로 해서 한국은 근대화, 산업화에 성공을 했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와 IT 기업을 일구어 냈다. 세계 최고의 디스플레이와 OLED 생산국이 되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이다. 더 이상 새로운 기술은 없다. 모두 선진국에서 발명, 제조한 것들을 베끼고 개선하여 그들을 앞지른 것이다. (fast follower 전략) 이런식으로 성장을 하는 경우 조직 개개인의 창의성보다는 지도자나 상급자의 명령을 잘 따르면 높은 효율성을 올릴 수가 있었다. 특히 산업 독재 혹은 개발독재라고 규정될 수 있는 박정희 시대에는 이런 식의 하향식 리더쉽이 잘 통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들의 창의성이 전체 산업의 효과를 좌우하는 시대이다. 더 이상 상명하복(上命下服)과 장유유서(長幼有序)에 의거한 조직문화로는 치열한 경쟁의 시대에 살아 남기가 불가능하다. 뒤에서 다시 논하겠지만 이런 상명하복(上命下服)과 장유유서(長幼有序)의 기업 문화는 특정 교육시스템과도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 특정 교육 시스템이란 여기서 학벌주의를 말한다. 혹은 주입식, 입시지옥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군대식, 특공대식 경영으로 말미암아 사축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최근 한국 경제 지표의 하향성은 바로 이런 상명하복의 일제식의 군대 문화가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3. 결론 : 학벌주의 교육의 지양(止揚)을 위하여
위에서 우리는 최근 한국 젊은이들의 절망적인 상황인식을 강백수씨가 쓴 『사축일기』를 보면서 이해했고 프랑스인 에리크 쉬르데주가 저서 『한국인은 미쳤다!』에서 “초현실적인 장면들”을 통해서 한국의 집단주의 조직문화가 가져올 병폐를 예견했었다. “돌격 앞으로” 하는 상관의 지시에 따라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조직문화를 가지고는 더 이상 21세기 세계화, 신자유주의 경쟁 사회를 헤쳐 나갈 수 없다.
이를 극복하고 합리적인 개인주의 조직문화를 정착하기 위해서는 기업도 노력을 해야 하지만 전국민적인 차원의 개혁을 위해서는 교육의 개혁을 시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불합리한 사회적 풍토가 기업뿐만 아니라 정치와 행정 모든 기관에 두루 퍼져 있기 때문이다. 부정부패와 무능이 전체 사회의 저변에 깔려 있다. 이는 결국 오랜 기간에 걸친 잘못된 교육의 결과이다. 혹은 잘못된 사회 풍토와 잘못된 교육이 상호 영향을 주고 받고한 역사적인 결과이다.
지난호 <교육평론>에서도 필자가 말한 것처럼 휴식과 취미를 인정하지 않는 현재의 교육은 정신의 공백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이런 살인적인 학교 교육을 창의성과 자발성, 주체성을 파괴시키기 마련이다. 이런 살인적인 경쟁, 전국의 모든 수험생들을 한 줄로 세우는 시험이 필요한 교육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개인의 창의성과 건전한 사회성을 파괴한다. 사람ㄷ르은 법을 안 지키고 또 엉터리 법을 양산한다. 개발독재의 시대, 모방과 베끼기의 시대에는, 발빠른 추적자의(fast follower) 시절에는 그런 교육도 필요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도리어 추적을 당하는 시대가 되었다. 중국은 불과 1~2년을 사이에 두고 한국을 따라 오고 있다. 이제 한국은 선두 주자(first mover)가 되어야 한다. 입시지옥에서 학생들을 풀어 줄 수 있는 사회적 개혁을 해야 한다. 이런 개혁은 단순히 교육의 개혁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실은 국가의 기본을 다시 짜야 하고 새로운 공화국을 수립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간 얼마나 많은 교육 개혁, 입시제도의 개혁 혹은 학교 시스템의 개혁이 있었는가? 그러나 그 때 마다 항상 결과는 더 나빠지는 방향으로 변화되었다. 예를 들어 최근의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시도된 자유학기제도 그런 예에 속한다. 한 학기 동안 시험도 보지 말고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직업 탐구같은 것을 하라고 쉬게 하는 제도지만 실은 강남같이 사교육이 심한 곳에서는 이 기간 동안 선행학습과 사교육을 집중적으로 실시하고 가난한 강북 아이들만 공부를 쉬는 그런 제도로 변질이 되기 쉽다. 그리고 (시험)공부를 한 학기 동안 쉬게 되면 그 다음 학기에는 진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이 제도 역시 큰 부작용을 가져 올 것이 명약관화하다.
이제는 교육과 보육의 책임을 개인에서 국가로 돌려야 할 때이다. 이는 출생율의 저하를 막기 위해서 더욱 그러하다. 독일이나 북유럽 국가가 그런 것처럼 교육의 비용은 거의 전적으로 국가가 부담하고 경제는 시장의 자유와 자율에 맡기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