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기 전만해도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는 수도권 인기 주거지이자 ‘투자 1번지’로 꼽혔다. ‘자고 일어나면 아파트값이 수천만원씩 오른다’는 말이 나왔다. 크기에 상관없이 분양가에 1억원 이상 웃돈이 붙는 것은 예사였다.
수지구의 운명은 2008년 하반기 들어 180도 달라졌다. ‘자고 일어나면 아파트값이 수천만원씩 떨어진다’는 말이 나왔다. 아파트값만 떨어지는 게 아니라 거래도 뚝 끊겼다.
악성 미분양이라는 준공 후 미분양이 쌓이고 대출이자에 허덕이는 ‘하우스 푸어’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꼽혔다. 지금 수지구는 수도권 주택시장의 대표적인 문제아가 됐다. 도대체 이 일대 집값이 얼마나 떨어진 걸까.
5년새 아파트값 평균 1억원 이상 내려
신모(56ㆍ여)씨는 2006년 1월 수지구 신봉동 자이2차 134㎡형(이하 전용면적)을 6억8000만원에 샀다. 입주가 시작된지 6개월 정도 된 새 아파트인 데다 무엇보다 주변환경이 마음에 들었다. 광교산자락에 자리 잡아 녹지가 넉넉한 데다 취미생활인 등산을 즐기기 편했다.
분당신도시가 가까워 생활편의성도 괜찮았다. 전용 110㎡ 이상 중대형 아파트가 대부분인 점도 마음에 들었다. 부촌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다.
집을 산지 1년만에 아파트값(2007년 1월)은 1억2000만원 올랐다. 투자측면에서 연 수익률이 20%에 달했다. 이후 8억원대 초반을 유지하던 집값은 2008년 4월 이후 조금씩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집값은 1년만에 1억6000만원 떨어져 2009년 1월 6억4000만원까지 내렸다.
이후에도 하락세는 이어져서 현재 4억8000만원에 시세가 형성됐다. 신씨가 샀을 때보다 1억6000만원 떨어졌고 고점 대비 3억원 가까이 가격이 추락한 것이다. 신씨는 “자녀들이 출가해 집을 팔려고 내놓은지 1년이 지났지만 집 보러 오는 사람도 없어 매달 이자로만 130만원씩 축내고 있다”고 말했다.
수지구에는 신씨 같은 이들이 적지 않다. 중대형이 몰려 있는 탓에 자금 압박도 다른 지역보다 크다. 대출금 규모가 크고 이자도 많기 때문이다. 집값 하락폭이 커서 집이 팔려도 문제다. 신씨의 경우 현재 아파트 시세는 매입가격 대비 24% 떨어졌다. 시세대로 팔아 대출금을 갚고 나면 1억8000만원이 남는다. 인근에 전셋집을 얻기도 여의치 않은 금액이다.
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수지구 집값은 2007년 1월 대비 23.8%(올 10월 기준) 떨어졌다. 2007년 1월 5억원짜리 집을 샀다면 1억2000만원 정도 떨어져 현재 3억8000만원이라는 의미다. 반면 같은 기간 수도권 집값은 6.4% 상승했다.
국토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동천동 현대2차 홈타운 84㎡형은 2007년 3월 5억1300만원(10층)에 거래됐지만 올 7월 2억9600만(14층)에 팔렸다. 2억1700만원 떨어진 것이다. 상현동 성원상떼빌 106㎡형도 2007년 1월 6억1000만원(20층)에서 2012년 8월 3억4500만(19층)으로 거래 가격이 2억6500만원 내렸다.
중대형 공급 몰린 데다 업무시설 없는 '베드타운' 조성
대형이 몰려 있는 성복동은 하락폭이 더 크다. 성복동 엘지빌리지6단지 164㎡형은 2007년 1월 8억7000만원(4층)에 거래됐지만 올 9월 4억8000만원에 거래돼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지구 주택시장의 영광이 곤두박질친 가장 큰 이유로는 넘치는 공급이 꼽힌다. 용인시청에 따르면 현재 수지구에는 아파트만 8만9691가구가 있다. 이 중 6만7224가구가 2000년 이후 입주했다. 특히 2000~20006년에만 5만9000여 가구 입주가 한꺼번에 몰렸다. 인근 판교신도시 총 가구수는 3만 가구 정도다.
입주가 몰린 데다 중대형 중심의 주택형도 발목을 잡은 요인이다. 수지구는 전용 60㎡ 이하 소형 아파트를 찾기 힘들다. 반면 전용 130㎡ 이상 대형 비중이 높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불황기에는 소형이 인기를 끌고 중대형이 찬밥이 되게 마련인데 수지의 경우 불황의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2000년대 후반 들어 성남시 판교신도시, 수원ㆍ용인시 광교신도시 입주가 시작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주변에 대규모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수요가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수지구는 마땅한 업무시설이 없어 사실상 ‘베드타운’으로 조성됐다. 유입 인구는 마땅찮은데 수요가 빠져나가면서 수급 불균형이 더 심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수지구의 집값이 쉽게 오르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집값 상승을 이끌만한 마땅한 대형 호재가 없다는 것이다. 신분당선 연장선 호재가 있지만 수지구에는 상현역(가칭) 1개역 뿐이라 전체 주택시장을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란 전망이다.
반면 집값이 더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가격이 떨어질 데로 떨어진 데다 서울 강남ㆍ성남 분당신도시의 위성도시로서의 매력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신본동 신봉공인 관계자는 “애초에 수지가 부각된 이유도 광교산을 끼고 있는 쾌적한 주거여건과 서울 강남 접근성 등이었는데 용인 서울간 고속도로와 크고 작은 도로가 생겨 교통여건이 더 좋아져 경기가 회복되면 충분히 회복세를 탈 것”이라고 말했다.
신분당선 연장선의 파급 효과가 클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수지구를 지나는 지하철역이 없는 만큼 새로운 교통망의 개통 여파가 클 것이라는 예상이다. 신분당선 연장선이 뚫리면 상현역(가칭)에서 강남역까지 20분이면 이동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공급이 거의 없었던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수지구는 2011년 이후 새 아파트 입주가 없었다. 새 아파트 분양도 거의 없었다. 동천동 T공인 관계자는 “대중교통여건은 좋아지고 향후 3년 정도는 새 아파트 입주도 없어 고점 대비 90%까지는 가격이 회복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자료원:중앙일보 2012. 1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