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 가세요 / 강성은
달력을 넘겼다
어서 오세요
반기는 것 같아
달력을 넘기고 또 넘기고
어서 오세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줄을 서서
천막 속으로 들어간다
줄은 길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픽픽 쓰러지고
어서 오세요
재난과 안전이 번갈아 수신되고
어서 오세요
누군가 여전히 밭에 씨를 뿌리고 있다
봄이 올 때가 한참 지났다는 것을 알고도
어서 오세요
없어진 레코드점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노래는 사라지지 않고 입속을 맴돌고
어서 오세요
봄이 오지 않는다는 걸 모두가 아는데
어서 오세요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나는 얼음처럼 녹는다
어서 오세요
어느 날 심란한 꿈에서 깬 나는
여느 때처럼 현관문 앞에 있는 종이 신문을 가져왔다
불행한 페이지와 행복한 페이지를 넘겨도
죽은 사람들과 웃는 사람들을 넘겨도
오후가 오지 않았다
파란 하늘이 유난히 맑았는데
ㅡ계간 《청색종이》(2026, 가을호), 제9회 김종삼시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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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은 시인
1973년 경북 의성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숙명여대 불문과 4년 휴학.
2005년 《문학동네》 시 등단.
시집『단지 조금 이상한』『Lo-fi』『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슬로우 슬로우』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