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만춘정은 프랑크푸르트에 오래 근무하여 지리를 소상히 아는지라, 혼자서 시내 Grosser Hirschgraben街에 있는 Goethehaus와 Goethemuseum을 시간 여유 있게 관람한 바
- Goethehaus는 Goethe가 태어나서 (1749. 8. 28) 청년시대까지 살았으며, 특히 이 집 4층 "시인의 방"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고 또한 그 유명한 "파우스트"의 집필을 시작하였다고 하며, 제2차 세계대전중 폭격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전후에 "Goethe기념사업회"가 결성되어 매우 충실하게 복원한 결과, 독일 복구기술의 최고 걸작품의 하나라고까지 말해지고 있으며, 또한 생활용품과 그의 각종 작품 및 초고들은 폭격전에 疎開되었기 때문에 戰禍를 면하여, 이 가옥 복구후 잘 정리되어 진열되어 있다.
- Goethemuseum은 "Goethe기년사업회"가 Goethehaus복구시 이 집과 인접한 건물을 구입, Goethemuseum으로 개조하여 Goethe의 생애와 그 가족들 관련 그림 뿐만 아니라, 당시까지도 갑부였던 그의 부친 (요한 카스파를르 괴테)이 생전에 구입한 수백점의 명화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그의 미술에 대한 안목과 이들 수많은 명품들의 구입을 위해 투자한 금액을 생각하면 그저 경탄스러울 뿐이다.
0 대개 有史時代를 5000년으로 잡고 있는데 이 기간동안 태어난 위인들은 가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나, 寡聞한 만춘정의 우견으로는 Goethe 보다 더 "위대하고 더 복많은" 인물은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바, 이제 그의 위대성과 多福에 대하여 하나하나 짚어보면
1) 출생 : 세습귀족으로 대대로 갑부인 명문으로, 아버지 (요한 카스파를르 괴테)는 당시 독일제국 황제의 법률고문이었고, 어머니 (카트리느 엘리자벹 괴테)는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다.
2)정치인으로서의 Goethe : 1775년 바이마르 大公國의 "카를 아우구스트" 大公의 초청으로 재상이 되어 10여년간 국정에 참여하여 많은 치적을 쌓았다.
2) 과학자로서의 괴테 :
- 比較解剖學의 선구자 : 그 때까지만 하여도 동물에만 있고 인간에게는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던 간악골 (間顎骨)을 그는 1784년 발견하여 공인을 받았으므로 비교해부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 식물학자 : 1790년 植物變態論을 발표하였다.
- 광학자 : 1810년 色彩論 (Zur Farbenlehre)을 발표하였는 바, 그는 이 논문에서 뉴턴의 광학이론의 오류를 비판하였다.
3) 변호사로서의 괴테 : 라이프찌히 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변호사가 되어 고향 (프랑크푸르트)에서 변호사업을 하기도 했다.
4) 미술가로서의 괴테 : 만년 이태리 여행중에 그린 1,000여점의 그림 가운데는 명품으로 평가받는 작품도 많다.
5) 문학가로서의 괴테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빌헬름마이스터의 편력시대, 파우스트등과 같은 소설 및 희곡 그리고 예술가의 저녁노래, 5월의 축제와 같은 수백편의 명시를 발표하는 등 시인, 소설가 및 극작가로서 활약한 바, 세계 4대 詩聖 (단테, 셰익스피어, 괴테, 타골)의 한 사람으로 추앙 받고 있다.
6) 女性愛護家로서의 괴테 (괴테가 사랑한 여인들) :
- 그레트헨 : 괴테의 첫사랑이었으며, 이때 괴테는 15세였다.
- 크레텐베르크 : 어머니의 친구, 당시 신비주의와 중세 연금술에 심취해 있던 괴테는 그녀의 감화로 경건파 신앙에 귀의하였으며, 연모한 나머지 후일 괴테는 그녀를 "아름다운 영혼의 고백"의 모델로 삼았다.
- 프리데리케 브라운 : 약혼까지 하였으나 일방적으로 파혼하였고 이로 인한 회한과 심적 부담이 훗날 시의 주제가 되었다.
- 샤를로테 부프 : 그녀와의 비련을 겪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지었다.
- 샤를로테 폰 슈타인 : 유부녀으로서 괴테와 12년간 열애하였으며, 괴테가 이테리 여행을 떠남으로 애정관계가 끝났으나 괴테는 그녀를 잊지못하여 " 타우리스섬의 이피게니", 에그몬트" 등을 써서 그녀에게 바쳤다.
- 크리에스티에네 불피우스 : 가난한 조화업자의 딸인 그녀와의 열애끝에 정식 결혼하여 비로소 가정의 행복을 누리면서 "타소", "로마의 哀歌" 그리고 과학논문인 "植物變態論" 등을 발표하였다..
- 미나 헤르츨리프 : 이 소녀와 열애를 하였으며, 그녀를 모델로하여 " 친화력" (Die Wahlverwandtschaften)을 썼다.
- 빌레머 : 아네내 불피우스가 죽은 후 알게된 유부녀로서, 그녀를 사모하여 읊은 시를 모은 "西東詩集" (West-ostlicher Divan)을 간행하였다.
- 우를리케 폰 레베초 : 74세의 괴테가 19세인 그녀에게 구애를 하였으나 거절당하고 나서도 그녀를 연모한 나머지 "마리엔더의 비가"란 시집을 발간하여 그녀에게 바쳤다.
- 이외에도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많은 연인들이 있었다고한다.
7) 현재 독일 외무부는 해외에 독일문화를 홍보하고 외국에 親獨逸 인물들을 양성하기위해 그 산하에 "독일문화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명칭이 Goethe-Institut이며, 국내에도 서울, 부산 광주 등지에 분관이 설립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0 괴테라는 인물은 태생에서부터 축복받았고, 생시에도 만고의 부위영화를 누렸으며, 사후에도 文名을 떨치고 칭송을 받고 있으니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가! 草芥같은 만춘정이 괴테를 숭상하고 흠모하는 것은 너무나 속물적인 심보가 아닌지..... ***** (나드리 이야기, 次號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