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8월 8일자 가톨릭신보는「한국 요인들의 교황 예방」기사를 3면 박스 속에 묶었다. 물론 사진과 함께였다. 로-마소식이라는 문패를 달고 있는 기사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고국에 계신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이 멀리서 염려해 주신 덕택으로 이곳「로-마」에 와 있는 신부들과 신학생 일동은 다 잘 있습니다. 이곳에 있으면서도「가톨릭신보」를 통하여 고국 교회의 여러 가지 소식을 잘 듣고 있으며 여러분들의 성심 협력으로 가톨릭신보가 자라고 있음을 보고 진심으로 기뻐합니다』
제법 크게 자리 잡은 이 박스 기사를 세분해 보면 모두 3개의 꼭지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 첫째가 한국의 임시 교황 사절 막시밀리안 더 푸르스텐베르그 대주교와 재 로마 한국 교회 신부, 신학생의 만남이었다. 당시 주일 교황청 공사로 한국 교회의 임시 교황 사절을 겸임하고 있던 푸르스텐베르그 대주교와 재 로마 신부 신학생들과의 만남은 전란 복구로 여념이 없는 한국과 한국 교회 그리고 늘어가는 영세자 수와 이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출판물 보급 등에 관한 사항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두 번째 소식은 바로 제목으로 뽑힌 한국 정부 요인들의 교황청 방문·가톨릭교회의 중심지「바티칸시국」을 다녀간 당시의 한국 정부 요인은 백두진 국무총리와 농림부 차관 정재설씨였다. 다음은 앞머리를 생략한 기사 내용.『백두진 국무총리가 다녀가셨으며 농림부 차관 정재설씨는 「김 비서」를 대동하고「이 신부」의 안애로 교황 성하를 알현하였으며 성하로부터 기념 성패를 받았습니다』
이어지는 기사는 당시 국회의장 신익희씨와 김동성 의원이 백 디오니시오 신학생의 안내로 교황 성하를 알현하였으며 이 기회에『신입생 세 명도 양(兩)씨를 따라 교황 성하를 배알하는 영광을 얻었음』을 알리고 있다.
여기서 잠깐 기사 내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당시「김 비서」를 대동한 농림부 차관을 교황 성하께 안내한「이 신부」는 과연 누구였을까? 유추해 보건데 이 신부는 당시 로마 성 세실리아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있던 서울대교구 고 이문근 신부로 추정된다. 아울러 신익회 국회의장과 김동성 의원의 교황 알현을 안내한「백 디오니시오군」은 지난해까지 주교회의 사무총장을 지낸 백남익 몬시뇰임을 쉽사리 알아낼 수 가 있다.
53년 당시 로마의 한국 교회 유학생(신부 신학생 포함)은 모두 8명이었고 이들의 명단은 바로 전해인 52년 10월 15일자 천주교회보에 게재된 바 있다. 80회 생신을 맞은 포교성(현재 인류 복음화성) 성장관 푸수마니 추기경 생신 축하식에 참가한 한국 유학생들과 푸소마니 추기경의 기념 사진 촬영과 더불어 당시 로마 유학 중인 한국인 신부와 신학생 명단이 나란히 소개가 되었기 때문이다.
무수한 기사 중 유독 이 기사가 눈에 띈 것은 53년도 한국 교회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내용 때문이다. 당시가 어떤 때인가. 전화로 얼룩진 이 땅은 상처도 아물기 전이었고 일상의 고단한 흔적들이 우리 삶 곳곳에 남아 있던 참담한 상황이 바로 당시가 아니었던가.
그 아픔 속에서도 한국 교회의 일꾼들은 계속 자라고 있었고 이를 확인하는 일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시 로마에서 수확하던 8명의 유학생들은 60년대와 70년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 교회의 든든한 초석으로, 기둥으로 큰 몫을 담당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물론 한국 교회의 음악 발전에 초석을 놓았던 이문근 신부와 또 한 명의 신부는 이미 유명을 달리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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