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에서 현금 대신 사용되는 최고액 칩을 일컫는 블루칩이란 용어는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뉴욕증권거래소는 블루칩을 '품질과 신뢰성, 그리고 경기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수익을 낼 수 있는 능력이라는 면에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기업의 주식'으로 정의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형 우량주인 블루칩만큼은 아니지만 탄탄한 실적을 내는 중소형주를 옐로칩이라고 부른다. 서구에는 없는 한국식 조어이지만 한국에서는 정착돼 있다.
블루칩은 호황 시 시세 상승을 주도하고 불황기에도 쉽게 하락하지 않는다. 역대 정권의 온갖 부동산 규제에도 불구하고 불패 신화를 이어온 서울 강남 아파트가 대표적이다. 반면 옐로칩은 상승장에서 블루칩보다 늦게 오르고 하락장에서는 먼저 하락한다.
블루칩은 업계 1위 기업으로서의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다. 법률서비스 업계 1위인 김앤장은 외국계 기업의 법률자문을 독점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외국계 기업 임원에게 그 이유를 묻자 실력도 있지만 설사 소송에서 패하더라도 본사에 한국 최고의 로펌을 썼는데 안 됐다고 하면 해명이 쉽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다른 로펌을 썼다가 패소하면 왜 업계 1위를 쓰지 않았느냐는 질책을 듣기 때문이다.
블루칩은 상대적 개념이다. 비교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다. 서울대는 국내에서 다른 곳에 접근할 수 없는 블루칩이지만 세계 초일류 대학과 비교하면 우물 안 개구리다.
미국발 경기침체 우려로 세계 금융시장이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친 지난 며칠은 한국 증시가 옐로칩이라는 민낯이 역력했다. 한국 일본 대만 증시가 모두 사상 최대 하락폭을 기록한 6일 코스피는 8.8% 하락했다. 반면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 나스닥지수의 하락률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3.4%에 그쳤다.
닛케이평균이 12.4%나 폭락한 것이 한국에는 위안이었지만 닛케이평균은 다음날인 7일 10.2% 급반등하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였다. 이날 코스피 상승률(3.3%)에 비해 3배가 넘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등 세계적인 경제매체들은 아시아 블랙 먼데이를 전하는 기사의 초점을 일본 주식에 맞췄다. 한국 주식시장에 대해서는 기사 중간에 코스피도 많이 떨어졌다는 정도로 가볍게 언급했을 뿐이다. 아시아 증시에서 블루칩이 어디인지가 백일하에 노출됐다.
전문가들은 외풍에 취약한 한국 증시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려면 선진국 지수 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 세계 15조 달러의 투자자금이 기준인 MSCI(모건스탠리월드캐피털인터내셔널) 지수에서 일본은 최상위 선진국 시장(DM)에, 한국은 이에 준하는 신흥국 시장(EM)에 속해 있다.
신흥국 경제위기에 정통한 카멘 라인하트 하버드대 교수는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세계 투자자들은 신흥국에서 돈을 먼저 빼내지만 경제가 회복되면 선진국에 먼저 투자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신흥시장에 머무르는 한 '떨어질 때는 푹 가라앉고, 회복할 때는 서서히 올라가는' 상황이 항상 반복될 수 있다.
선진국 지수 편입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외환시장 24시간 운용과 공매도 전면 해금 등 MSCI가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난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2008년부터 여러 차례 선진국 지수 진입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고배를 마신 것은 그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기업가치 개선) 목표에 MSCI 선진국 지수 진입도 포함시켜 착실히 해결책을 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