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1일(화)
아침 일찍 잠이 깨어 배낭을 챙겨 택시를 타고 10코스 출발점인 화순해수욕장으로 갔다. 아침 6시 40분이다. 출발하자 길은 바로 산방산 자락으로 접어든다. 산중턱으로 오르는 숲길을 따라 목재계단과 돌계단을 연이어 오르면 산방연대(봉화대)와 만나면서 산방산의 위용이 드러난다. 산방산은 약 80만년 전에 형성된 종모양의 용암덩어리로 산 정상 쪽에는 온난한 기후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울창하고 서쪽 암벽에는 희귀한 식물들이 암벽에 붙어 자생한다. 산방산에는 한라산과 얽힌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어느 사냥꾼이 한라산에서 사냥을 하다가 사슴을 발견하고 화살을 쏘았는데 화살이 빗나가 옥황상제의 엉덩이에 맞았다. 화가 난 옥황상제는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서 던져버렸고 그것이 서쪽으로 날아가 바닷가에 박혔다. 봉우리가 뽑인 자리가 백록담이고 서쪽 바닷가에 떨어진 봉우리가 산방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산방산의 아래 둘레와 백록담의 아래 둘레가 엇비슷하다고 한다.
산방산을 뒤로 하고 해변으로 접어들면 서남쪽 바다가 망망하게 펼쳐지고 길은 용머리해안으로 이어진다. 용머리해안에는 유명한 하멜전시관 배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1653년에 타이완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중 폭풍을 만나 제주에 표류하여 그 일행이 13년여 동안 조선에 억류되어 있다가 탈출하여 표류기를 썼고, 그로 인해 조선이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용머리해안은 거대한 퇴적암이 기묘한 형태로 펼쳐져 있는데 용머리라는 이름은 이곳의 지형이 마치 용이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힘찬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용머리해안을 지나 마을길을 통해 사계포구를 지나면 송악산으로 오르는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오르막 포장도로가 끝나면서부터 목재 데크가 오르락 내리락 이어진다. 오름을 보호하기 위해 길은 송악산 정상으로는 가지 않고 빙 둘러간다. 데크 길 중간중간에 전망대가 있고 길 어느 곳에서나 서쪽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고 가파도와 마라도가 아주 가깝게 보인다. 송악산에는 말을 방목하는 마굿간이 있어 군데군데 말들이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다. 송악산 북쪽으로 내려오면 섯알오름 숲길로 이어지고 숲을 벗어나면 길 왼쪽으로 현대사의 비극의 현장인 섯알오름 위령탑이 보인다. 1950년 8월 계엄군이 예비검속이란 명목으로 양민 210명을 이 자리에서 총살했다. 계엄군은 숨진 희생자들을 웅덩이에 던진 뒤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 유족들은 시신을 수습할 수 없었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현장을 찾은 유족들은 뒤엉킨 시신들이 유골을 제대로 수습할 수 없었고 고민 끝에 칠성판 위에 두개골 하나와 등뼈 하나씩을 놓고 얼추 유골을 맞추었다고 한다. 이렇게 맞추어 만든 공동묘지가 백조일손묘다. 조상은 백 명이나 자손을 하나인 무덤, 조상을 알 수 없어서 모든 조산의 자손이 되어 모신다는 뜻이다. 섯알오름 비극의 현장을 뒤로 하고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나오면 넓은 들판이 나오는데 이곳이 알뜨르비행장이다. 알뜨르는 제주어로 ‘아래 있는 넓은 들’이라는 뜻이다. 넓은 들판 여러 곳에 일본군이 지어 놓은 비행기 격납고 진지가 산재해 있다. 이 알뜨르에서 출격한 비행기가 가미카제 훈련기다. 실제로 일본군 전투기 600여 기가 이 들판에서 날아올라 중국 난징을 폭격했다. 넓은 밭을 가로질러 최남단해안로를 따라 걸으면 가파도 선착장이 보이고 하모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조선시대 네델란드인 하멜 일행이 표류한 곳으로 해변에 기념비가 서 있다. 해수욕장을 지나 마을길을 따라 한참을 더 걸어서 10코스 종점인 하모체육공원에 도착했다. 12시 40분이다. 6시간 걸은 셈이다.
10-1코스 가파도
숙소에 배낭을 내려놓고 택시를 타고 가파도 선착장으로 갔다. 오후 1시 반 배편인데 승객이 만원이다. 배가 항구를 벗어나는가 했는데 어느새 가파도에 도착한다. 모슬포항에서 5km 가량 떨어져 있는데 10분 정도 걸린다. 가파도에는 17만 평에 이르는 청보리밭이 펼쳐져 있는데 보리가 본격적으로 푸르러지는 3∽4월과 청보리가 익어 황금보리로 바뀌는 5월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자전거를 빌려서 한 바퀴 도는데 지금은 청보리밭에 때 이른 코스모스와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좀 늦은 점심으로 동쪽 부근덕 부근 식당에서 밀가루 면에 청보리를 갈아 넣어 면이 파란 해물짜장면을 맛있게 먹었다. 3시 배편으로 모슬포로 나와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쉬었다. 오늘은 모두 35,000보 23km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