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나치 경찰국가로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헤르만 괴링은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계획을 입안한 전범 중 전범이었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으나 형 집행 전날 밤인 1946년 10월 15일 청산가리를 삼켜 사법적 단죄를 피해 버렸다.
폴란드 북동부 케트리진의 숲속에는 괴링의 집이 있었다. 인류 역사에 가장 추악한 범죄를 저지른 나치 지도자들이 최후의 저항을 획책하던 곳이다. 괴링의 집은 '늑대 소굴'로 불리는 지하벙커 단지 안에 있었다. 30차례 이상 암살 시도에 시달렸던 아돌프 히틀러는 전쟁 기간 철저히 숨어 독소전쟁 등 2차 세계대전을 지휘했는데 특히 전쟁 막바지 이곳에 800일 이상 머무르며 핵심 작전 본부로 이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히틀러의 오른팔로 수많은 학살을 주도한 괴링의 집 지하에서 팔다리가 없는 5구의 유골이 발견돼 전문가들이 조사에 나섰다. 지난 1일(현지시간) 독일 일간 슈피겔을 비롯한 외신들은 괴링의 집 부근을 발굴하던 독일과 폴란드의 아마추어 고고학자들이 5구의 유골을 발견했으며, 그 가운데 두 구는 청소년과 신생아의 것이라고 보도했다. 연구진은 현지 경찰의 수사 결과를 기다려야 하겠지만 이들 유골의 주인공들이 괴링과 개인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다시 말해 가족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번에 발견된 유골들은 나무바닥에서 10~20cm 밖에 파내려가지 않은 상태에서 발견됐다. 또 서로 한 방향을 바라보는 것처럼 놓여 있었다.
그런데 2차 대전이 끝난 지 70년 가까이 흘렀고, 괴링의 집을 샅샅이 뒤져 보지 않았을 리 없고, 매년 관광객 20만명이 이곳을 찾는데도 바닥에서 10cm 밖에 파내려가지 않은 지점에 묻혀 있는 유골들이 이제야 발견된 점은 의아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에게 늑대 소굴은 독일군 장교로 반나치 쿠데타를 기도했던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 계획인 '발키리 작전'을 벌이다 실패한 장소로도 낯익다. 그 실패의 과정을 실감나고도 긴박감있게 그려낸 것이 2008년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작전명 발키리’다.
현대인들은 나치의 비밀 지하벙커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구석이 없지 않은데, 이 단지는 무려 6.5평방km에 건물만 100채로 구성돼 있었다. 다시 말해 가족들과 지내면서도 작전 회의를 통해 전쟁을 치를 수 있었다.
두 나라 고고학자들은 괴링의 집 가운데 욕실 바닥을 조사하던 중에 이들 유골을 발견했다. 특히 이들은 목숨을 잃은 뒤 누군가 옷을 벗겨낸 듯 모두 알몸 상태로 묻혀 있었으며 특히 손발이 없는 상태라 놀라움을 안긴다.
이에 따라 집주인 괴링이 생활하는 공간 아래 이런 시신들이 널려 있는지 알고 있었는지가 의문이며, 이들이 다른 장소에서 살해된 뒤 이곳 욕실 바닥에 옮겨졌을 가능성, 또 1945년 1월 이곳에 진입한 소비에트 군대에 의해 뒤늦게 능욕을 당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실제로 소비에트 병사들은 이곳에 불을 지르기도 했는데, 이날 유골들 옆에 타다 남은 재도 발견됐다.
발굴 작업을 주도한 그단스크 역사단체 라테브라 재단의 아드리안 코스트제바는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유골을 발견하고 매우 놀랐다”면서 “처음에는 동물 뼈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지점에 이르러 인간의 두개골이 나타났다”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이 유골이 언제 묻혔는지, 누구인지, 왜 손과 발이 없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발키리 작전은 제3제국 내부 반란이 일어났을 경우 보충군을 소집해 독일 국내 국방군 및 무장친위대 병력이 집결해 계엄령을 선포한다는 작전이었다. 해외방첩청(아프베어)의 빌헬름 카나리스 총수가 건의해 프리드리히 울브리히트 보병대장이 입안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히틀러가 독일을 망국으로 이끈다며 반기를 든 반나치 조직 '검은 오케스트라'의 중심 인물이었다. 해서 북부 아프리카 튀니지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히틀러를 직접 알현해 발키리 작전 수정 명령에 대한 결재를 받아낸다. 히틀러의 친위 쿠데타 계획을 활용해 나치 정부를 무너뜨리겠다는 작전이었다.
이제 비밀 벙커 안에서 히틀러만 암살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날 운명의 날에 히틀러가 베니토 무솔리니 이탈리아 총통을 접견하기 위해 회의를 앞당겨 개최하면서 회의장이 창문이 많은 1층으로 바뀌고,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기폭장치 하나만 작동시킨 가방을 히틀러 가까이에 놔두고 나왔는데도 테이블이 넘어지면서 폭발 위력을 떨어뜨림으로써 히틀러는 극적으로 목숨을 구하게 됐고, 반나치 세력의 쿠데타는 실패하게 된다. 검은 오케스트라 멤버 등 5000여명이 체포된다.
영화 '작전명 발키리'에도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LP가 스치듯 나오는데 3막의 전주곡 '발퀴레 기행'에서 반나치 쿠데타의 작전 이름이 붙여졌다. 히틀러가 이 음악을 좋아했으며 바그너를 존경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여신들이 날개 달린 말을 타고 죽은 전사들을 찾아 전장에 나선다는 중세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도 등장한다. 베트남 전쟁 때 이웃 캄보디아 마을을 초토화하기 위해 미군 헬리콥터에 스피커를 매달아 이 음악을 들려줘 주민들의 공포감을 배가한다는 설정이었다.
APOCALYPSE NOW Clip - Ride of the Valkyries (1979) Francis Ford Coppola (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