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삶 ]
어릴 때 아버지는 그냥 넘지 못할 커다란 태산이었습니다.
모두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마땅히 기억할만한 추억이 없습니다. 같이 여행을 가본 경험이 없습니다. 함께 놀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외식도 같이 한 기억이 없습니다. 사랑의 표현이 없었습니다.
때론 가난하게 사는 점이 부끄러웠지만 그렇다고 아버지를 원망한 적은 없었습니다.
불편함이 조금 있는, 그냥 그렇게 자랐습니다.
다른 집도 다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가슴에 품고 있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네가 공부하겠다면
끝까지 밀어 줄게"
이 한 마디가 항상 힘이 되고
방황할 때 등불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제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내 아버지로부터 아쉬웠던 것을 아이에게는 하지 말아야지 결심했습니다.
같이 여행도 다니고, 외식도 하고, 놀이도 함께 하고,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다정하고 자상한 아버지가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부지런히 추억을 쌓았습니다.
이제 아이들이 자라 학교도 가고,
학원 가고, 사춘기를 지나면서 조금씩 바뀌어 갔습니다.
자식과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공감 분야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세상도, 체력도,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가장으로서 짊어진 어깨는 점점 더 무거워졌습니다.
누구에게도 힘들다고 못했습니다. 아파도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돈이 없어도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살이 모진 풍파로 내 몸 하나 버티기에도 힘들었습니다.
세상이 나를 버려도 가족이 있기에
내 자존심을 먼저 버려야 했습니다.
술 한 잔 하면 그것으로 또 넘기곤 했습니다.
아버지가 되어 보니 그렇게도 큰 산으로 느꼈던 산은 그냥 초라하고 보잘것없었습니다
그리고 미안했습니다.
남들처럼 그렇게 넉넉하게 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뒤늦게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열심히 일하고 있었지만 세상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어디에서 무얼 하셨습니까? 아들이고 딸이고 할 것 없이 다들 ‘세상에서 우리 엄마만큼 고생한 사람 없다’고, 입만 열면 ‘엄마, 우리 엄마’ 외칩니다.
사람들이 어머니의 희생과 눈물은 칭송하면서도, 아버지가 흘린 땀과 무거운 한숨은 흘려보낸 채
잊고 사는 듯합니다.
아버지,
당신은 늘 말없이 집안의 울타리가 되고 담장이 되어 주었습니다. 새벽이면 남들보다 먼저 일터로 나갔고,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개의치 않고 묵묵히 당신의 몫을 다하였습니다.
때로는 윗사람 눈치를 보며
억지웃음을 지어야 했고,
또 때로는 아랫사람에게 치여가며 답답함을 삼켜야 했습니다.
출근할 때 미리 자존심은 집에 두고 나와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당신이 견뎌낼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당신 곁의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는 일이었지요. 때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내 논에 물 들어가는 것처럼 내 아이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을 보는 기쁨 하나로 하루하루를 이겨 내셨습니다.
아침이면 허리가 욱신거리고 어깨가 쑤셔도, '그래도 내 가족을 위해 한 발짝 더 내딛어야지' 하며, 한 몸을 부서지도록 일하셨습니다.
옛날에는 그래도 월급날마다
돈 봉투를 받아 들고 집으로 들어와, 아내 앞에 척 내어 놓으며 폼도 좀 잡았고 그걸로 가장으로서 위세라도 떨었습니다.
비록 큰돈은 아니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가 우리 집을 책임지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월급이 통장으로 그대로 꽂혀버리니, 아버지에게 떨어지는 현금 한 장 보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한 달 내내 기껏 받아 보는 것은 용돈이라 부르는 쥐꼬리만 한 금액이니, 그조차도 모자라서
아내에게 용돈을 좀 올려달라 애걸복걸해야 하지요.
집안일의 책임도 만만치 않습니다. 세탁기를 돌려가며 빨래하는 것도, 청소기로 방마다 돌아다니며 먼지를 빨아들이는 것도, 분리수거 날짜 맞춰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것도
전부 아버지의 몫입니다.
남편이자 아버지로 살아가는 일이 이토록 부담스러운 일이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아버지들이 정작 자신을 위해 투자한 시간과 돈은 거의 없습니다.
결혼하고 나면, 식구들을 위해 쓰는 비용은 늘어나는데 이상하게 아버지 자신을 위해 사치라도 부리고 싶어도 마음 한구석이 늘 꺼림칙합니다.
차라리 이 돈으로 아이 학원비를
더 쓰는 게 낫지 않을까,
마누라 예쁜 옷이라도 한 벌 사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고요.
화장품 하나 없이, 대충 같은 옷을 걸쳐 입고 출퇴근하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집안에만 있으면 ‘삼식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내 입장에서는 남편이 집에서 세끼 다 먹고, 온종일 가정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 부담이 되는 모양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또
“아버지, 엄마 좀 편하게 놔 드리고, 여행도 다니시고 친구들도 만나시고 그러세요”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도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젊을 때부터 주말이고 평일이고
허리가 끊어져라 일만 하다 보니,
막상 시간이 생겨도 갈 곳도,
만날 친구도 마땅치 않습니다.
어디 재미나게 놀 만한 습관도 들지 않았고, 괜히 여행지에 가면 ‘돈은 또 얼마나 들까, 집에 문제는 없을까’ 하며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러니 차라리 아내의 눈치를 보더라도 집 안에 머무르는 게 마음이 편하고, 주는 밥이나 먹고 지내는 편이 그나마 속이 덜 쓰리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세태가 억울하고
마음이 아프지 않나요?
아버지의 어깨는 그렇게 무거운데, 세상은 아버지의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아버지의 희생이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당연히 그래야 하지’하는 말속에, 아버지의 힘든 얼굴과 지친 걸음걸이는 늘
뒤로 밀려나 있습니다.
아버지도 한때는
세상을 놀러 다니고 싶었고, 막연한 꿈도 꿔보고 싶었는데, 가족을 위해 걸어온 삶의 시간이 너무 길고,
너무 깊어져서 이제는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어느새 어색해 버렸습니다.
술 한 잔 기울이려 해도
“아니, 애 엄마 힘든데 집에 일찍 들어오지 않고 어디 가서 술이야?”
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이고, 몸도 마음도 쉬어 갈 틈 없이 바쁘기만 합니다.
때론 주변에서
“남자가 너무 집안일에 매달리는 것 아니냐?”
라고 은근히 놀려대기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들이 한없이 작아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으니,
적어도 가족만이라도 그 노고를 조금은 알아봐 주었으면 하는 게 아버지의 작은 바람일 것입니다.
아무리 시대의 흐름이라지만,
아버지의 마음 한구석에 안타까움이 밀려듭니다.
아버지도 언제까지나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루하루 쌓여 가는 피로와 외로움은 결국 어느 날 문득 깊게 드러나
자신을 휩쓸어 갈지 모릅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세상살이 뒤로 한 채, 기나긴 삶의 여정으로 이미 지친 아버지.
그간의 소임을 무사히(?) 마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는 아버지. 그러나 마땅히 설 자리가 없습니다.
세상살이 힘 있을 때
미련하게 깨닫지 못했던 아버지의 기대는 현실 앞에는 소용이 없었습니다.
세상살이 때 아버지에게
익숙한 모든 것이 가족에게는 불편하다고 합니다.
가정도, 아내도, 자식도 더불어 함께 하기에는 집안에서의 인생살이가 그렇게 또 녹록하지 않습니다.
이제 아버지의 권한, 집착과 책임으로부터 손을 분담하여 가족 각자의 자율을 존중하고 스스로의 책임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라도 당신을 위해 사십시오.
평생 식구들 바라보고 달려왔으니
이젠 조금은 ‘나 자신을 위해서’ 시간을 내도 됩니다.
혼자 여행을 떠나도 되고, 그동안 미뤄 둔 취미 생활이나 친구들과 만남에 용기 내어 도전해도 좋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외투를 걸치고
한 걸음 밖으로 나가 보십시오.
아내 눈치가 좀 보이더라도 좋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낯설겠지만,
이젠 가족만큼이나 소중한 당신 자신을 위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할 때입니다. 단 한 가지 명심할 것은 가사는 분담하셔야 합니다.
아버지, 당신의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세상살이 모진 풍파로 미쳐 채울 수 없었던 자신만의 인생 모자이크를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채워가면 됩니다. 그 길이 잘 보이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지만 그래도 한 발 한 발 내디디다 보면 분명 언젠가 환한 빛으로 당신의 앞길이 펼쳐질 것입니다.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당당히 걸어가는 당신의 뒷모습은 여전히 아름답고 황홀합니다.
첫댓글 가슴에 와닫는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