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값이 15,000원이라니? 말도 안 된다. 책 내용에 비해 너무 저렴하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0을 더 붙여도 될 것 같은데 말이다. 지금까지 저자가 새 책을 낼 때마다 굶주린 사람처럼 하던 일들을 잠시 멈추고서라도 꼭 읽었다. 읽던 책도 잠시 내려놓고 말이다. 감동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꼭 소감을 남기는 것도 늘 잊지 않았다.
이번 책 <곁에.서.>도 그럴 작정으로 읽어내려갔다. 금요일 저녁부터 읽기 시작해서 화요일 그러니까 5일 만에 마지막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한 장 한 장 읽어내려가는데 예전만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교회에서 일어난 가스폭발 사고로 화상을 입은 아이들의 상처가 머리 속에 그려졌을 뿐만 아니라 그 아이들의 마음의 상처까지 안고 가야 했던 저자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겠나 생각하니 결코 즐겁게 읽어내려갈 수가 없었다.
저자도 책의 끝부분에서 원래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쓰지 않는데 쓰고 나서도 고민이 많았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았다.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불편하게 보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슬픔이 낸 길을 헤쳐 나가며'를 읽으면 저자의 진심을 십분 이해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왜 그토록 아이들 내면의 슬픔을 보려고 했는지,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아픔으로 가져왔는지, 평생 아이의 마음으로 교직에서 외롭게 분투하려고 했는지 독자들은 책장을 덮으며 사랑은 아름다움을 넘어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약자와 강자를 하나로 만드는 이름, 엄마!' 를 읽으며 세상에 가장 위대한 사람은 엄마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세다고 말하는 것처럼. 저자가 만난 시골 산골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대부분 엄마 없이 생활하는 아이들이었다. 엄마야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기에 사랑하는 자녀를 두고 멀리 떠나갔겠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충격 그 자체였을 것이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기죽어 지내는 아이들을 보듬는 역할을 담임 선생님이었던 저자가 고스란히 담당했다. 엄마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불안한 감정이 폭력으로 나타날 때 소리를 지르는 대신에 '무슨 일 있니?' 라고 폭력성을 나타내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린 것도 저자의 남다른 교육방법이었다.
아이들에게 있어 엄마라는 존재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어릴 적 생활이 기억이 났다. 엄마가 보고 싶어 벽을 보고 울었던 그날 밤 기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엄마와 같이 있게해달라고 어린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던 적이 있다. 할머니라는 어떤 낯선 분에게 나를 맡기고 어머니는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어머니를 다시 만난 것은 국민학교 5학년 때였던 것 같다. 사글세 방에 살아도, 밥에 간장을 비벼 먹고 살아도 엄마와 같이 산다는 것 자체가 따뜻하고 배부름이었다. 저자가 만난 엄마 없는 아이들과 비교하면 나는 참 괜찮은 유년 시절을 보낸 격이다. 아빠 없는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 엄마 없이 할머니 집에 자라는 아이들을 학교에서 만날 때마다 나의 어릴 적 생각이 문뜩 떠오른다.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 상실의 아픔 때문에 폭력을 밖으로 나타내는 아이들, 하루 아침에 산사태로 목숨을 잃은 아이들, 갑작스런 큰 질병으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아이들을 유독히 더 마음에 두고 그들과 함께 고통의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교단을 지켜온 저자의 교직30년 생활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진다.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분들이 있다면 나와 같은 사람들일 것 같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단지 직업으로 여기며 하루하루 아무런 감흥없이 살아가고 있는 나와 같은 교육자들
말로만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하지 실제로 그와 같은 행동과 삶은 전혀 보이지 않는 나와 같은 사람들
자녀의 아픔을 바라보지 못하고, 그리고 함께 울어본 적이 없는 피상적인 부모들(자녀만 낳았다고 해서 부모가 아닌데 말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자 하는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
고통과 아픔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모르는 냉담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