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1일(목) 이사야 58:1-9a 찬송 623장
1.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2.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3.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5.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a.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개역 개정)
- 남유다의 종교적 외식에 대한 책망 -
58장은 이사야서 제 3부 40-66장 중
마지막 제 3편에 해당하는 제 58-66장의 개시(開始) 부분이다.
그리고 이 제 3부 3편은 패역한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궁극적인 구원과 천국의 복을 누리게 될 것을
선포하는 본 이사야서의 결론부라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58장과 59장은 선민의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모색하는 장으로서
양자의 관계를 가로막는 선민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지적한다.
한편 오늘 말씀은 이사야서의 서두 부분인 1:10-17과 유사한 내용으로서
남유다 백성들의 종교적 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금식의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모색한다.
본문 내용을 좀더 상세히 살펴보면,
1-5절은 한편으로는 경건한 척 금식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욕심과 쾌락을 위하여 다투고 싸우는,
즉 외식이 가득한 표리 부동(表裏不同)한 종교 행위에 대한 책망을,
6-7절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금식에 대해,
8-9a절은 바른 금식을 행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과 기도 응답의 약속을 기록하고 있다.
종교적 외식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더욱 신랄하게 지적된 바 있다.(마6:16; 마22:18; 23:27-28; 막12:15)
이 때에 ‘외식(hypocrite)’은 단순한 위선의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보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반항하는 것이며
진리를 떠나 사곡(邪曲)을 행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러한 외식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치명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인간들과의 관계도 필연적으로 파괴시키고 만다.
따라서 외식을 버리는 일은 일차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있어,
나아가서는 인간들과의 관계 회복에 있어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외식 행위가 없는지 돌아보고 이를 반드시 버리도록 해야 한다.
8-9a절)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금식의 결과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유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금식을 해도 하나님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였다.
즉 자신들이 금식하면서까지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도무지 응답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참된 금식은 반드시 응답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심으로
유다 사람들의 금식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금식이 아니었음을 지적한다.
하나님은 참된 금식의 결과를 네 가지로 말씀한다.
첫째는 네 빛이 새벽같이 비취게 된다.
이는 온 세상을 뒤덮는 어두움이 새벽의 광명에 순식간에 물러나듯이
어두웠던 삶, 암울한 형편이 신속히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는 네 치유가 급속하게 된다.
치유는 보통 질병의 치유를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그것이 유다라는 국가와 관련하여 사용되었으므로
고통스런 상황으로부터의 벗어남과 회복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즉 고통스런 상황으로부터의 회복이 빠르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셋째는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한다.
이는 안전의 보장을 말씀하신 것이다.
마지막으로 네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응답하신다.
즉 기도 응답을 약속하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참된 금식의 결과를 비록 네 가지로 말씀하시기는 하였지만
결국은 한 가지를 말씀하셨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씀으로 추정하여 보건대 아마도 당시 유다는 국가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고 그것을 타개하기 위하여
날마다 하나님의 전에 모여 금식하며 기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금식 기도를 드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으심에 대하여 불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의 금식 기도가 응답되지 아니한 이유를 지적하고
또한 참된 금식에 대하여 설명하신 이후에 유다가 그러한 참된 금식,
곧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기만 하면
그들이 바라는 바를 익히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당면한 위기에서 건지시고 안전하게 보호하실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참된 금식,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삶,
이웃의 아픔을 나누고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는 자비로운 삶은
결코 헛되지 아니하며 놀랍고도 확실한 응답으로 임하게 된다.
참된 금식에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다.
성경에 보면 금식 기도의 실례가 여럿 나온다.
그러한 금식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대표적인 것을 들면
모세의 금식 기도와 에스더의 금식 기도를 들 수 있다.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계명을 받기 위하여 산으로 올라간 사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숭배함으로 멸망의 위기에 처하였을 때에
이미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하여 40일이나 금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을 위하여 또 다시 금식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써 응답을 받을 수 있었다.(신9:18)
즉 그들을 멸망시키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돌이켜
다시금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돌보실 것이란 약속을 받아낸다.
또 에스더는 악한 하만의 음모로 인하여 온 유다인이 멸절의 위기에 처하였을 때
왕비의 신분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금식하며
목숨을 내거는 위기를 받아들이고 자기 백성을 위해 왕에게 탄원함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었다.(에4:16)
그런데 이 두 금식 기도의 특징은 모두 자기를 희생한 이타적 기도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담보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매달렸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참된 금식 기도의 요건을 충족시킨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의 금식 기도에 응답하셨다.
달리 말해 그들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감동하셨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참된 금식은 하나님의 긍휼의 역사, 은혜의 역사를 이룩하는 통로가 된다.
그러므로 단지 음식을 먹지 아니하는 것만으로 금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금식의 의미, 즉 타인을 위한 자기 희생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과 진실을 보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
우리가 처한 현실 상황이 아무리 암울하고 고통스러워도
우리와 우리의 이웃의 삶 가운데 변화의 역사,
회복의 역사, 기적의 역사를 이루어주실 것이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 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욜2: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