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시동 잠금장치 확산… 통근버스-개인車도 설치
두산에너빌리티, 통근버스에 도입
임원차량 50대에도 설치 추진
개인-기업-기관 구매문의 이어져
국회도 도입 공감… 입법 논의 가속
오비맥주가 지난해 6월부터 석 달간 전국 직매장으로 맥주를 배송하는 화물차량 20대에 설치한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 이 장치를 통해 음주 측정을 통과해야 차량 시동이 걸린다. 오비맥주 제공
“우리가 먼저 해봅시다.”
두산에너빌리티(구 두산중공업)가 박지원 회장(사진)의 지시로 사내 출퇴근 버스에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를 도입했다. 혹시라도 나타날 수 있는 사내 음주운전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운전자가 술을 마시면 차량 시동이 걸리지 않게 한 것이다.
● 출퇴근 버스 이어 임원 차량에도 설치 검토
20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두산에너빌리티는 최근 경남 창원공장 출퇴근 셔틀버스 일부에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를 설치했다. 다음 달 초까지 창원공장과 경기 성남시 본사 두산타워를 오가는 버스 2대에도 같은 장치를 설치할 계획이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평소 안전사고 방지에 관심이 많던 박 회장이 제안해 사내 출퇴근 버스부터 시범 적용을 시작한 것”이라며 “시범 운영 결과를 평가해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전체 임원 차량에 같은 장치를 확대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8일 대전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배승아 양(10)이 숨지는 등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가 이어지자 동아일보는 11일 ‘도로 위 생명 지키는 M-Tech’ 시리즈를 통해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 도입의 필요성을 소개했다. 이후 공감대가 확산되자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도 전날(19일) “음주운전 방지장치 의무화 법안을 당 차원에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시동잠금장치는 운전자가 차량에 설치된 음주측정기를 활용해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하고 술을 마시지 않은 것으로 판정돼야 시동이 걸리는 장치다. 대리 측정을 막기 위해 운전 중간에도 일정 시간마다 재측정하도록 한다.
● 공감대 형성되며 국회 법안 논의에도 속도
본보 보도 후 자발적으로 시동잠금장치를 설치하는 차량도 늘고 있다. 경기 수원시의 한 시동잠금장치 설치업체 관계자는 “이달 들어 설치를 원하는 개인 운전자가 늘고 있다. 기업 및 기관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설치 비용은 대당 250만 원가량인데 최근 클라우드를 활용해 원격 제어하는 방식이 도입되면서 가격대가 낮아지고 있다. 경기 화성시에 거주하는 한 여성은 “과거에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 장치를 설치해서라도 습관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업체를 찾았다”고 했다.
시동잠금장치는 미국 유럽 등 교통안전 선진국에선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은 전체 주 50곳 중 36곳에 도입돼 2006∼2018년 음주운전 사망자 수를 19% 줄이는 등 효과를 냈다. 유럽연합(EU) 국가에선 음주운전 유죄 판결 시 운전 금지 조치와 시동잠금장치 설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18대부터 현재 21대 국회까지 계속 관련 법이 발의됐지만 14년째 계류 중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관계자는 “개인정보 보호, 설치 의무화 대상 범위, 비용 분담 등 쟁점이 남아 있지만 최근 도입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어 국회 논의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고 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음주운전 재범률이 줄지 않는 점을 감안해 음주운전 전력자를 대상으로 우선 설치할 필요가 있다”며 “중장기적으로는 학교 및 학원 버스나 화물차 운전사 등에 대해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다빈 기자, 변종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