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6~8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나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여호와 하나님 앞에 ,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단이 같이 자리를 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천사라고 해석을 하시는 분들도 있고,
아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그러니까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다라고 해석을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해석의 경유를 들어보면 일리있는 근거들이 있지만서도 저는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사단과 급이 맞먹는 천사장급들이라고 해석을 하겠습니다.
혹자중에는 히브리서를 언급하며 하나님이 천사을 보고서는 아들, 딸이라고 하지 않으셨다라고 이야기를 하지만서도여, 저마다 갖고있는 번역서의 선호도가 있겠지만 분명 특정 천사들에 대해서는 아들이라 표현을 한 곳이 있고 종급 선자자들 중에도 아들로 표현을 받는 대목이 있기도 합니다.
이로 볼때 우리가 히브리서 1장 5절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사로 해석하는 것은 안된다라고 하기보다는 전후 구절을 좀 더 살펴보시면 모든 천사와 피조물에 상반하여 예수님을 하나님의 맏아들로 표현하시면서 댓구절로 천사와 아들, 피조물과 창조주를 명확히 구분하려는 어법으로 쓰인 의미도 있다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여하튼 이것은 단어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니 여기서는 이 정도로 차치하겠습니다.
다시 구절을 보시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너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대답하길 두루두루 땅을 다녀보고 왔습니다 하지요.
바로 이어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하십니다.
이 말은 "사단아 두루 다니면서 내 종 욥을 좀 남들에 비해 유의해서 보고 오지..." 이런 말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어디에서 왔는지 다 아시고 계십니다. 몰라서 사단에게 너 어디서 왔느냐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사단이 욥을 참소할 것도 이미 아시고 계시지요.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라는 말씀은 반어적인 표현입니다. 다시 말하면 "너 사단아, 두루 다니면서 내 종 욥을 심히도 유의해서 보고 있더구나. 그래 먼가 참소할 만한 것을 찾았느냐"라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는 욥을 칭찬하십니다. 이 칭찬은 동시에 사단 너가 이젠 참소하려는 것은 영계의 공의에도 합당하지 않다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셨는데 감히 누가 하나님의 인정하심이 잘못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당시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적으로 죄를 짓지 않으면 죄가 성립이 되지 않는 시대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큼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며 악에서 떠난 자이기에 사단이 송사할 수 있는 영적 공의가 성립이 안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단은 1:8~11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바를 복되게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라고 말하고 있지요.
사단도 영계의 공의를 아는지라 욥이 순전하지 않다라고, 정직하지 않다라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아니라고, 여전히 악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자라고 말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둘러서 빗대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욥이 그런 사람인 것은 저도 알지만 그가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느냐" 라고 말하지요.
여기서 보시면 사단이는 어떻하든 꼬투리를 잡고 핑계거리를 삼아 사람에게 시험환난을 주려고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이런 사단의 태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을 발견해 보아야 합니다.
상대가 다른 이를 칭찬하고 있으면 다 듣고나서는 꼭 이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하면서 나쁜 쪽으로 이야기를 몰아가지요.
사단은 욥에게서 영계의 공의 가운데 참소거리를 찾지 못하니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니까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거 아닙니까. 하나님이 한번 손을 들어서 그 복을 치십시요. 그러면 욥은 분명 하나님을 욕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단이 인간의 마음을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복을 받으면 즐거워하고 행복해하고 감사해 하지만서도 누리던 복을 잃어버려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하면 이내 원망과 불평이 나오고 하나님께 감사했던 마음도 이제는 멀어지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인간의 이러한 간사한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사단은 욥의 소유물을 쳐보면 이내 욥의 본심이 드러나리라 하나님께 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보시면 사단은 자신이 욥의 소유물을 치겠다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소유물을 칠 것을 요구하고 있지요.
이것은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말해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사단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종 어떤 목회자들 보면 사단도 치료해준다. 사단도 복을 준다. 이런 말들을 하면서 주변에 치료의 사역이 나타나는 교회들이나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리는 교회들이 있으면 그것은 마귀가 역사해 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보곤 합니다.
매우 어리석고 영적으로 무지한 말을 하는 것이며 슬하의 성도들까지도 하나님과 담을 만드는 못된 마음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권능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시편 62:11), 치료는 여호와의 주권이라는 것입니다(출애굽기 15:26).
성경 어디에도 사단이 아픈 영혼을 치료해준 역사는 없을 뿐더러 사람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경우도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저 사단이 할 수 있는 것은 미혹하고 속이고 영적으로 병들게 하요 지옥으로 끌고나는 어둠의 권능을 가지고 있을 뿐이요 육적으로도 사람의 몸을 병들게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치료와 회복, 생명의 권능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라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치료와 회복, 생명의 권능이 나타나는 교회와 목회자를 우리는 이런저런 인간적인 잣대와 기준을 갖고서 판단하며 어둠의 역사로 몰아가는 것은 성령훼방, 모독죄에 걸릴 수 있다라는 것을 명심하고 내가 직접 확인하고 검증해 본 바가 아니라면 어설픈 사람들의 구설에 자기 생각을 내주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참소를 허락하십니다.
12절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여기서 소유물이란 재산 뿐 아니라 욥 슬하의 자녀들도 포함되고 있습니다.
이후 13절서부터 21절까지를 보시면 여러 차례에 걸쳐 재산들이 풍지박살나며 종들과 자녀들도 죽는 사건으로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
내용을 잘 보시면 포도주를 마시며 웃고 떠들고 즐기는 시간에서 재난을 당한 것을 보게 됩니다.
일전에 어느 댓글에서 욥의 자녀들에 대해서 비약이 심한거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욥의 자녀들은 욥마냥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두고 싶습니다.
자녀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환난을 당했다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자녀들이 맷돌을 돌리며 양들을 치는 가운데 당했다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그저 포도주와 각종 풍족한 안주들로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드는 가운데 이런 환난을 맞이하게 된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와도 비슷하지요.
자녀들은 아버지 욥처럼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람들이 아니며 더욱이 깨어 기도하는 사람들이 단 한명도 없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자녀들중에 단 한명이라도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분명 지킴받았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것으로 볼때 우리도 조심해야 합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치 악하고 음란하며 자극적입니다.
기도와 말씀을 게을리하면서 나 기독교 가문에 있다. 내 아버지 어머니 목사와 권사다. 나 한때는 교회 잘 다녔다. 나 지금도 교회는 간다. 세상을 벗삼아 생활하면서도 이런 것으로 정신이 혼미해져있어 구원의 문에서 멀어지고 있는 정작 자신의 본 모습은 발견하지 못할 수 있으니까요.
아무쪼록 22절에 보시면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은 재산과 자녀들이 죽는 뼈아픈 사건속에서도 결코 입술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겉옷을 찢고 머리터를 밀며 땅에 엎드리어 하나님께 찬양으로 경배하였음을 성경은 말해주고 있지요.
이것으로 볼때 욥운 참으로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임은 분명합니다.
오늘날 이런 믿음을 찾아보기 정말 힘든 시대 아닙니까.
조금만 어려움이 오고 기도 응답이 없으면 이내 불평들 하며 담임목사에게 투정부리고 하나님께 몽니 부리는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들도 참 많습니다.
목회자, 교역자 수십년 했어도 자기 아들 딸 병 걸리거나 목숨을 잃게 되면 하나님 떠나는 분들도 제법 보았습니다.
몇십년 직분자라해도 일터와 사업터에 어려움이 오면 이내 교회에서도 잠적하고 표정은 시무룩해서 곧 땅이 꺼질것마냥 우울해하는 분들도 있는 것이구여.
그러나, 분명 이 시대에도 욥의 이런 믿음을 갖은 목회자, 직분자, 성도들이 있을 것입니다. 엘리야 시대와 같이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과 순종의 7천인들이 예비되어 있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욥은 사단의 1차 시험은 능히 통과하였습니다. 당시 욥의 입장에 서 본다면 통과하였다라는 표현이 민망하기도 하지만서도 어찌되었든 욥은 재산과 자녀들을 잃은 사단의 공격에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였고 감사 찬송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2차 시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으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