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감실 석(祏)자, 옛적에 신전에는 가장 깊은 비밀의 방인 지성소가 있었고, 그 신(示)을 상징하는 돌(石)을 나무 궤에 넣어 모셔 두었다. 이 돌은 신의 뜻을 나타내어 말하는 돌로서 구원의 돌(石)과 심판하는 돌(石)을 상징하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도 최고 신(示)으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구원의 돌(石)과 심판의 돌(石)이 되신다는 글자이다.
감실(龕室)이란 신전 안에 그 신주를 모셔 두는 궤나 상자를 말한다. 구약 성경에서는 두 돌 판을 담은 ‘언약 궤’에 해당하는 가장 중요한 성물(聖物)인 것이다. 그 신전의 주체가 되는 상징물을 담아 두는 돌 감실(龕室) 석(祏)자는 제단 시(示)와 돌 석(石)자로 되어져 있는 글자이다. 위의 ➀번의 글자가 석(祏)인데 돌 석(石)자에 구(口)가 생략되어 있고, ➁번의 글자는 돌 석(石)자로 입 구(口)가 포함되어져 있다. 김경일 교수는 “석(石)자는 벼랑에서 석재를 떼내는 모습으로 단순한 돌덩이가 아닌 석재의 의미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뜨인 돌’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A.D 100년 허신은 『설문해자』에서 “돌 감실 석(祏)은 종묘(宗廟)의 주인이다(宗廟主). 『주례』>에 교사(郊祀), 종묘제사, 석실(石室)제사가 있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나오는 3가지 제사 중, 교사(郊祀)제사는 그들의 하나님 상제(上帝)에게 드려지던 야외 제사이며, 그리고 종묘(宗廟)제사에서 드리는 제사는 자신들이 섬기던 최고 신을 모신 신전을 말한다.
그렇다면 최초의 갑골문자를 사용했던 상(商)의 고종인 무정(1250-1191 B.C)시대에 그들의 종교적 특징은 무엇이었을까? “상나라 시대의 종교 신앙의 최대 특징은 상제(上帝) 숭배에 있다.”라고 하였기 때문에 이 종묘(宗廟)의 주인은 당연히 그들의 하나님 상제(上帝)인 것이다. 나진옥은 ‘갑골문자에 혈실(血室: 피의 제사를 드리는 장소)라고 했는데, 이는 종묘(宗廟)이다’라고 하였다. 종묘가 최고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신전이었으며, 그 돌 감실인 나무상자 궤가 있는 곳이 바로 피의 제사를 드려지는 혈실(血室)이었다고 했다. 이 혈실은 바로 대속죄일에 지성소(至聖所)의 두 돌판을 모신 속죄소 위와 앞과 동편에서 피의 제사를 드렸다는 것을 구약이 증거하고 있다는 점이다(레 16:14-15).
그렇다면 돌 감실 석(祏)자를 구성하고 있는 제단 시(示)자와 돌 석(石)자에 대하여 정밀 분석해 보도록 하자. 보일 시(示)자는 원래 제단 시(示)자라고 한다. 정산(丁山)은 ‘시(示)의 一이나 二는 상제(上帝)의 상징이다’ 허신(許愼)은 ‘시(示)는 신의 일이다(神事也)’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허신이 말한 이 신(神)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귀신’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다. 천지와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을 의미한다. 허신은 ‘신(神)은 하늘의 신으로서 천지만물을 이끌어내어 창조하신 분이다(天神, 引出萬物者也).’라고 하였다. 학자들은 이 제단(示)에서 희생 제사를 드리면 신(神: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늘의 신)이 그의 계시(啓示)를 보여 주었기 때문에 ‘보여 줄 시(示)’자가 되었다고 한다. 석(祏)자에 있는 시(示)는 곧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다(요 1:1-3절).
허신은 ‘돌 석(石)은 산의 돌이다. 언덕 바위 아래에 있으며, 구(口)의 형태는 돌의 모양을 본 떴다.’라고 하였는데, 이 돌은 산과 언덕에서 떼어낸 돌이다. 다니엘서 2장 34절의 ‘산에서 뜨인 돌(개역개정)’의 ‘뜨인’의 원어가 게자르(גןר)로 ‘자르다’, ‘결정하다’는 의미로 어떤 도구에 의하여 잘라져서 떼어낸 돌이다. 이에 대하여 허신은 ‘산의 돌’이라고 했고, ‘언덕 바위 아래’에 있다고 한다. 갑골학자들은 이 돌은 산에서 잘라서 나온 돌이라고 했는데, 이는 ‘뜨인 돌’인 것이다.
제단 시(示)자의 T자에 대하여 강량부(강량부)는 ‘거석기념물’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고인돌로 이 위에서 희생짐승의 피가 흘려졌던 것이다. 제단 시(③)와 수메르의 제단(④)이 비슷하며, 단지 위아래의 돌이 바뀌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필자는 세계문화유산(유네스코) 유적인 전남 화순에서 200백 톤이 넘는 고인돌을 직접 가서 확인하였다. 그런데 그 모든 돌들은 그 위에 있는 산에 있는 바위에서 절단시켜(뜨인) 옮겨와서 설치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학자들은 그냥 ‘산의 돌’이라든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돌로서 취급을 한다. 그런데 이 중요한 돌은 바로 메시아에 관한 계시이기도 하다. 이 신성한 돌에 대하여 제카리아 시친(Zecharia Sitchin)은 『틸문 그리고 하늘에 이르는 계단』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를 요약하면, 로마가 세계를 제패하던 400년 동안 쥬피터 신에게 바쳐진 최대 규모의 신전은 로마에 있지 않고 레바논 산에 있었다. 로마의 황제들은 로마로부터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을 성역화하고 특별히 보호했다. 왜냐하면 신의 뜻인 신탁(神託)을 듣고 자신들의 운명을 알기 위해서였다. 이 지역은 세계고대의 서사시의 처음이었던 길가메시 서사시에 엔키두와 함께 찾아갔던 지역이 바로 ‘삼목나무 산’인 바로 레바논 산으로 되어져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1,000-1,200톤이 넘는 다듬어진 ‘경이로운 세 개의 돌’이 발견 되었는데, 이집트의 피라미드의 가장 큰 돌이 200톤인 것에 비하면 정말 거대한 것이다.
성경에서는 ‘뜨인 돌’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라고 한다. 다니엘서 2장 45절에서 지금 성경은 ‘손대지 아니한 돌’이라고 했지만 개역성경에서는 ‘뜨인 돌’이 산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우상을 친 ‘뜨인 돌’이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다고 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대홍수 이후에 ‘무지개 약속’을 주시면서 온 세상을 덮는 대홍수가 있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카드어의 대홍수의 기록에 보면 무지개가 아니라 ‘청금석(靑金石)’으로 언약을 주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돌(石)은 약속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성경은 하나님을 반석이라고 했다. 특히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반석(石)이라고 했는데, 구약의 백성들은 그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령한 양식과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고 했다(고전 10:3-4). 그러면서 그 산 돌(石)이신 분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구원을 얻을 것이지만(벧전 2:6), 믿지 않고 이 돌(石) 위에 떨어지면 깨지고 가루가 되어 흩어질 것이라고 하신다(마 21:44).
고대문서 중에서 바알이 아나트에서 보낸 비밀스런 메시지의 내용을 보면 ‘속삭이는 돌’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이 돌은 신의 뜻을 전달하는 신탁(神託)을 전해 주는 물건이었다고 한다. 신의 뜻을 전달하는 돌을 ‘옴파로스’라고 한다. 수메르에서 나바(NA.BA), 나바르(NA.BAR)의 뜻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밝게 빛나는 돌’이라는 것인데, 여기에서 셈어인 예언하다는 나바라크(nabohrk)가 나오고 예언자라는 나비(nabih)가 나오게 되었다. 수많은 기록을 통해서 그리스의 델포이 신전에서 가장 성스러운 물건이 옴파로스 돌(石)이었는데, 그 돌은 아폴론 신전의 가장 안쪽 지성소의 특별한 자리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또한 여기에서 왕이나 영웅들이 물었던 신의 뜻은 이 옴파로스에서 나왔다고 하며, 아폴론은 ‘돌의 그 사람’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성자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시며, 또한 반석(盤石)이시며, 구원의 산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시는 돌이 되신다.
출애굽 이후 하나님이 임재 해 계신 성막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바로 가장 안쪽에 위치한 지성소였다. 이 지성소의 언약궤 상자 안에서 가장 중요한 성물은 바로 십계명 두 돌판(石)이었다. 그런데 이 두 돌 판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쓰시고 새기신 것이었다(출 32장). 십계명 두 돌판으로도 가장 중요한 계명들을 말씀하셨다. 그 이후 하나님은 그 돌판으로 직접 말씀하지는 않으셨으나 그 돌판이 있는 언약궤 위에서 말씀하셨다. 두 돌 판의 언약궤 위에는 두 그룹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덮게 하였는데, 하나님은 거기에서 모세와 만나고 하나님께서 하실 말씀을 모세에게 친구에게 속삭이듯 하시는 곳이었다(출 25:22절). 그래서 돌 석(石)자에 입 구(口)자가 있는 것은 신이 그 돌이 있는 장소에서 말씀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갑골문에 보면 석(祏)자는 대부분 제사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희생제물을 잡아 절단되어져서 제탁(石)위에 드려졌다. 그 돌 제단 위에서 희생 짐승의 피가 흘러졌다. 마찬가지로 ‘뜨인 돌’이라는 말은 산에서 절단되어 나왔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절단이 되듯이 고난을 당하심으로 자신을 찢기셨다. 그렇게 하심으로서 그 분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뜨인 돌이시며, 우리의 모퉁이의 주춧돌이 되셔서 그 안에 붙어 있는 자로 하나님이 영원히 거하실 성전이 되게 하는 은혜를 주셨다(엡 2:20-22).
이 뜨인 돌이신 메시아는 건축 전문가들로부터 버림받으신 돌로서 하나님께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 되어 있다(시 118:22).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시고 이 말씀을 인용하셨다(마 21:42-44). 하나님은 이 버림받은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셨는데, 믿는 우리에게는 보배로운 산돌이시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윗돌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벧전 2:6-8).
그렇다면 건축가들이 쓸 모 없다고 버렸던 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건축자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그들은 성경 전문가들이라고 했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율법사와 서기관, 장로들이었다(마 21:45). 그런데 지금도 예수님은 성경의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로부터 여전히 버림받으시는 돌이 되고 계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고든 피(Gordon D. Fee)는 ‘오직 예수를 이용하여 번영과 부와 성공이라는 변질된 복음은 여전히 예수를 떠나게 하는 것으로, 이런 것을 대신할 대안은 장엄한 하나님의 심판 밖에 없는데, 나는 그 심판이 하나님의 집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확신 한다’라고 한다.
예수님은 ‘뜨인 돌’로서 자신의 몸이 절단되듯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시기까지 하셨다. 그분은 그렇게 하심으로서 우리와의 단절된 관계를 이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십자가 사랑에 늘 감격하면서 그 분의 사랑을 헛되게 하지 않는 신앙인들이 되어, 이 사랑을 흘려보내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송태정 목사 성경적 갑골한자해석연구소 대표, 석사논문 '구약의 제사와 중국 갑골문의 제사에 나타난 희생양의 연관성 연구', 순복음해남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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