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화려한 변신
누가 아직도 욕심 많은 돼지라고 하는가. 오로지 먹을 것만 찾는 꿀꿀 돼지라고 하는가? 바보 같은 돼지 평생토록 먹을 것만을 찾다가 죽는 불쌍한 돼지라 하는가. 밖에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우리에 갇혀서 평생토록 먹고 자며 씻고 닦을 줄을 몰라서 지저분하기 짝이 없고 온갖 냄새 풍기는 돼지라고 하는가. 정말 저렇게 생기기도 어렵다면서 못생긴 돼지라고 하는가.
여럿이 함께 있어도 먹을 때는 혼자뿐 몰라라 오직 저만 아는 돼지라고 비웃는가. 살만 뒤룩뒤룩 쪄서 앉았다 일어서기도 어설퍼 보인다고 하는가. 장마에 떠내려갈 때 돼지 헤엄치는 것을 보았는가. 생전 처음이지만 열심히 훈련받은 것처럼 훌륭한 수영 실력으로 얼마나 잘 치는지 타고난 수영선수다. 여건이 안 되어서 안 한 것일 뿐인 막상 닥치면 깜짝 놀라게 한다.
돼지도 볕들 날이 있다. 아마 너희도 이런 호사는 누려보지 못했을 것이다. 돼지는 죽어 마지막 가는 길이 상상을 초월한 변신에 변신으로 호강한다. 그 누가 저런 모습을 보고 부럽지 않으랴. 저렇게 멋지게 마감하는 삶이 진짜 대박이 난 것이다. 수백 명 종업원을 거느리고 잔소리 심한 호랑이 사장님 아니 회장님도 쩔쩔매는 모양새로 공공연하게 청탁까지 한다.
우리 회사가 작년도와 마찬가지로 올 한 해도 아무런 사고 없도록 보살펴 주시고, 회사 운영도 잘 되어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온갖 정성을 다하여 고사상을 마련하고 술잔을 경건하게 따라 올리면서 꾸벅꾸벅 절을 한다. 그 뒤를 이어 차례대로 콧구멍에 신사임당 돈을 접어 꼽고 절을 올린다. 절을 받고 용돈 받고 술잔에 좋은 안주가 가득하다.
잠깐 돼지를 보면 비록 머리뿐이지만 고사상 한가운데 떡 버티고 앉아 근엄한 차림이다. 어디에 저렇게 훤하고 잘생긴 모습이 있었던가 갸웃거려진다. 면도를 깔끔하게 하고 몇 번이고 씻고 씻으니 덥석 부리 꼴사나운 얼굴이 아니다. 감히 바라보기 사장님보다 더 두렵다. 살짝 눈웃음에서 얼굴 전체에 번지는 미소는 무엇이든 소원을 들어줄 것 같은 인자함이 있다.
사람 팔자 알 수가 없다더니, 오늘 이 시간은 정말 돼지 팔자 알 수 없다. 저런 융숭한 대접 받고 마지막을 마감하는 돼지가 부럽기까지 하다. 초상집에 영정 사진은 왠지 아쉬움에 좀은 안되어 보이며 쓸쓸하기만 하다. 그러나 저 돼지는 생글생글 머금은 웃음기에 바라보는 눈빛에서 호탕하며 예사롭지 않다. 쌓이는 용돈을 보며 나는 필요 없으니 너희나 쓰라고 한다.
이제는 먹지 않아도 되고, 그렇다고 돈을 싸서 가지고 갈 것도 아니다. 그동안 돼지를 보면 알게 모르게 선입감에 얕잡아 보이고, 눈치 보며 꿀꿀 재촉을 많이 했다. 어쨌든 지금껏 먹이고 재우고 거두어 주어 고맙다.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나는 마당에 그래도 의리가 있는 듯 이처럼 넘치는 술상에다 소원까지 빌고 있으니 가슴에 담았다가 도와줄 것으로 믿는다.
이제는 더는 돼지가 아니다. 우리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신의 사자이다. 직접 그만한 능력은 없을지라도 그간의 잘잘못에 친소를 접고 내려놓으며 신의 사자로서 잘 인도해주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당장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너무 약삭빠른 인간이었지만 어여삐 여겨 좋은 길로 인도해주길 천지신명을 대신한 영물 돼지에게 빌고 빌며 걸음마다 평안하길 기원한다.
누가 감히 오늘 같은 날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온갖 구박에 비웃음을 못 들은 척 잘도 참아내더니 그것이 묵언수행 수양이었구나. 너무 마구 대한 것 같아 떨떠름하다. 당장 약하다 얕잡아보지 마라. 언제 누구의 팔자가 뒤엎어질지 모른다.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한다. 엄연히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이다. 돼지님! 노여움 거두고 통촉하소서! 어쩌면 나에게도 희망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