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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터넷 펌
난 정말 고궁을 사랑한다
계절따라 변하는 자연을 즐기기위해 제일 먼저 고궁을 산책하는 것이다.
이 사진을 보세요 얼마나 아름다운가
푸른 하늘아래 흰구름은 노닐고
저 멀리 꽃잎처럼 드리워진 인왕산 북악산이 펼쳐진 가운데
낮으막히 앉혀진 건물들
청청 푸른 소나무들
한폭의 수채화가 이리 곱고 아름다울수 있단 말인가
지금 현대 건물들이 앞을 가로막혀 그 본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엣날엔 어땠을까
이 궁궐을 보면 축소된 우리나라의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는 것 같다.
덕수궁 - 덕수궁이란 궁명은 조선시대 초부터 있었던 이름으로
양위한 태조의 소어궁을 정종이 개성에 건립하여 덕수궁이라 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지금의 德壽宮은 본래 이름은 慶運宮이라 불렀으며 월산 대군의 사저로 쓰였다가
임진왜란 뒤 선조가 임시로 왕의 거처로 쓰면서 궁이 되었다.
광해군이 이곳에서 즉위하였는데 그해 완성된 창덕궁으로 떠나면서 경운궁이라는 이름 붙임
1623년 인조가 곳에서 즉위하였고
또한,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곳이기도 하다 삿가스님 해설
대안문 → 대한문
한마리의 새가 깃을 활짝펴고 날을 것 같은 위풍당당한 기상
문 안에 내비치는 수묵화같은 소나무의 위상이 그 향기 드높고도 아름다워라
오너라 오너라 내 품으로
얼마나 그리던 이 세월아니던가.
대한문 지나 누구나 잘 아는 금천교
난 다리난간 조각이 개인적으로 whgdkgksek.
일반 백성과 신분이 다른 왕을 만나기 위해서는 필히 이 다리를 건너야 되는 의식같은 다리다.
처음 중층지붕의 장대한 규모로 세워져 인터넷 해설
2층으로 조성된 월대(月臺) 위에 정면 5칸, 측면 4칸의 건물이었다.
그러나 1904년 화재 뒤 재건되면서 규모를 줄여 단층건물로 만들었다.
중화전 주변에는 사방에 행각이 세워져 있어 중화문에 연결되어 있었으나 이것도 철거되어 없어졌다
중화문 역시 당초는 중층건물이었으나 재건되면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건물로 축소되었다
1985년 중화전 및 중화문이 보물 제819호
500년 세월이 녹아든 고궁
정전으로는 좀 적은 듯해도 위풍당당하다.
인터넷 사진
지금은 퇴색으로 초췌하나 옜날엔 내부의 화려함이 돋보였을 옥좌입니다- 낭만
함녕전이 보물 제820호로 지정되었다. 인터넷 사진
덕흥전
덕흥전은 고종의 침전인 함녕전 바로 옆에 있는 전각이다.
이곳은 명성황후의 혼전으로 사용되었던 경효전이 위치했던 곳으로 함녕전 옆의 전각이다보니
고종황제가 고위 관료와 외교사절을 맞이하는 접견실로도 활용된 곳이다.
푸른 하늘아래의 전각들은 정말 아름답다
곡선을 안고 흘러내린 기와 골
뻗은 나래
졸라니 앉은 잡상들
유연한 곡선의 추녀( 이 곡선을 위해 새끼를 길게 늘어뜨려 그려진 허공의 곡선을 잡았다는데
아름다운 곡선이 3개 있다는데
청자의 어깨선이요
한복의 팔 배래선이요
한옥의 추녀가 그려낸 선일 것이라하던데?
조선궁궐의 대부분이 그러하지만 덕수궁의 전각들도 상당부분 훼손되었다.
이때 수많은 행각건물들도 같이 없어졌는데 인터넷 사진과 해설
그래서 상당수 건물들이 휑그레 하다. 덕흥전도 그러한데 넓은 마당안에 전각이 좀 외로와 보인다.
임금을 시중들던 궁인들의 거처와 관료들의 대기실 역할을 했던 행각과 부속건물들도 같이 복원되면
좋겠다고 해설자가 말씀하신다.
덕흥전 내부의 모습이다. 명성황후의 신주를 모셨던 혼전인 곳을 1912년 일제가 편전으로 개조해서
덕흥전으로 바꾼 것이다.
경건하고 업숙했을 전각 내부는 편전에 맞게 화려하게 변경된 것인데 이곳의 설치미술을 담당한
하지훈 작가는 이를 변형과 왜곡이라는 테마로 크롬도장의 좌식의자를 가득 늘어놓았다.
창살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을 크롬도장 의자의 반사효과를 이용해 황홀한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라는데 원래는 여인의 흐느낌, 찻잔 부딪히는 소리, 웃음소리의 음향효과도 있다고 했는데
음향은 들리지 않았다.
천장의 단청무늬가 바닥의 요철에 불규칙하게 반사되기 때문에 느낌이 좀 묘했다. 인터넷 사진 해설
인터넷 사진 해설
넓은 평원에 의도적으로 세워졌던 경복궁과 달리 다른 궁들은 구릉지에 세워져 있다.
덕수궁도 마찬가지인데 덕흥전 뒤편 후원은 언덕에 있기에 위 사진에서처럼 담장이 계단식이다.
이런 담장들이 덕흥전 주변도 휘휘 들렀을 터인데 좀 허전하지...?
인터넷 사진
덕흥전 천장에 매달린 전등이다.
이미 고종당시 궁궐에 전기가 들어왔기 때문에 이런 전등장치를 달 수 있었을 것이다.
덕흥전 내부는 별도의 조명을 하지 않았는데도 전혀 어둡지 않았고 천장의 무늬는 정말 아름답다.
밖에서 건물 외관만 보지 않고 이렇게 안에 들어와서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단 말이냐...
이번에 갔어도 이리 아름다운 것을 보지 못했으니 어쩌나
다음에 꼭 다시와서 들려보아야 할 것 같다.
정관헌
함녕전 덕흥전 사이에 소나무 숲사이에 함년전 뒷쪽 계단으로 걸어가면 한 건물이 있었으니 바로 정관헌이다.
정관헌 조용히 정원을 내려다 본다는 뜻으로
서양식 건물로 고종이 다과를 들고 음악을 감상하던 곳으로,
한때는 태조·고종·순종의 영정을 봉안하기도 하였다.
한식과 양식이 절충된 건물이라 한다
너무도 아름답지 아니한가 인터넷 사진
이곳에서 쉬는 고종임금님의 고뇌가 조금은 덜해질 것 같은 곳(이 아름다운 사진을 찍어주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도 싶다'
석어당
정동덕수궁 안에 있는 조선 말기의 이층 전각
원래의 석어당은 임란 때 선조가 피난으로부터 환도하여 승하할 때까지 16년간 거처하였던 곳이고
석어당은 궁내 유일한 2층 전각으로 본래 이 건물은 한때 인목대비가 유폐되었던 곳
인목대비가 광해군을 이 건물 앞뜰에 꿇어 앉혀 죄를 책한 곳이며
단청을 하지 않음
석어당의 문창살
(직선의 나열이 참으로 단아합니다 , 낭만)
석어당의 눈물
인터넷 사진
인터넷 사진 해설
덕수궁 안에 있는 근대 서양식 건물.
3층 석조건물로 1층에는 거실, 2층에는 접견실 및 홀,
3층에는 황제 황후의 침실·담화실·거실·욕실 등이 있다.
높은 기단 위에 장중한 도릭오더의 기둥을 세우고 정면과 양 측면에 튀어나온 현관을 만들었다.
건물 앞의 정원과 함께 18세기 신고전주의 유럽 궁전의 건축을 모방해 지은 것이다.
석조전은 석조건물로, 이 건물이 들어서면서부터
이웃한 궁의 정전과 주변의 한식 건물들이 가지고 있던 고유한 건축구성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더욱이 석조전의 남쪽에 일본인들이 미술관을 세우고 그 앞에 서양식 연못을 만들면서
궁의 본래의 모습이 상당히 파괴되었다
1945년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장으로 사용되었으며
6·25전쟁 이후 1986년까지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광명문(光明門)은 덕수궁 함녕전(咸寧殿)의 정문으로 1904년 화재로 함녕전은 소실되고 이 문만 남았다.
1938년 이왕가 미술관을 개관할 때 현재 위치로 옮겨왔다.
현재 내부에는 자동시보장치가 있는 물시계 자격루와 1462년에 제작된 흥천사 동종과 화약을 이용하여
100발의 화살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는 위력적인 무기인 신기전기화차 등을 전시하고 있다.[원시문양 설명]
(유물들을 자세히 볼걸 대충 훑고 나왔으니 아쉬움이 더한다 낭만 .)
흥천사 화제로 범종만 남음
자격루(마지막 본것이 이 광명문이었는데 그안에 있는 보물이 이종과 자격루다
(약동하는 용의 모습, 얼마나 ㅇ수한 조각인가, 낭만
마지막으로 준명전
준명전 사진 해설 인터넷 펌
'광명이 계속 이어져 그치지 않는 전각'이라는 뜻의
덕수궁 중명전重明殿은 1897년 황실도서관으로 탄생했다.
서양식 전각 중명전은, 원래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었으나
원래 경운궁 안에 있었으나 도로가 생기면서 궁 밖에 위치하게 되었다.
광무 10년(1906)에 황태자인 순종과 윤비와의 가례가 이곳에서 진행되었으며
일제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 또한 이곳에서 조인되었다.
일제시대 경운궁을 축소시키면서 외국인에게 임대하여 1960년대까지
외국 사람들의 사교장으로 사용되었다.
단순한 2층 벽돌집이지만 1층의 창문은 무지개 모양으로 꾸몄으며,
2층 서쪽에 베란다를 설치한 것이 특이하다.
1925년의 화재로 벽면만 남아있던 것을 다시 원래대로 지었으나 처음의 모습과는 조금 달라져 있다.
중명전은 우리나라에서 궁중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로는 최초의 것 중의 하나이다.
2006년까지 서울시에서 관리(서울시유형문화재 제53호)하여 왔으나 당초 덕수궁 권역의 건물이고,
문화재청으로 소유권 이전등기(‘06.9.1)됨에 따라 덕수궁에 포함시켜 보존 관리함이 타당하다고 판단되어
사적 제124호 덕수궁에 추가지정(2007.2.7)하고 해제하였다.
[출처] 정동길 근대유산 6- 준명전, 정동극장|작성자 온유한자
옛 궁궐과 한 몸이었던 현재삘딩
옛날과 현재 공존하는 함이 좋은 기분보다는 찢어발겨진 우리문화를 생각할 때
흐르는 구름보며 뼈저린 옛상처 통증으로 가슴 한켠에는 텅빈 공허함으로 아리기도 하나
지금 궁궐만으로도 눈물같은 꽃한송이 피어 있는 것 같다.
둥글게 서서 점호를 하는 우리들
90여명 가까이 모인 우리 까페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우린 살아있고
모이고
즐기고 있다.
이 소중한 인연은
꽃피는 날에도
새우는 날에도 함께 더부러
네가 있는 곳에 내 가 있어
우리가 하나된다는 것 만으로도 즐거움이 넘치니
공부도 좋고 바람쐬는 것도 좋지만
삥 둘러 모여 하나, 둘 점호하는 것만으로도 신바람이 절로나
우리의 마음은 한조각 한조각 모여 꽃구름이 되어 햇살아래 찬란히 빛나는 것이다.
소나무 앞에서 소녀처럼 웃는 모습이 해맑아라
어디가 경치가 좋고 어디가 아름답다 하지만
아무렴 궁궐만한 운치와 격조높은 건물 식물들이 또 있으랴
여인들 뒤에 소나무가 특이해 들여다 보니
오랜세월을 견뎌내느라 휘고 뒤틀림이 굵은 뱀 몇마리 이리저리
웅크리고 앉아 몸 일부를 땅에 박은 듯 뻗음이 대단하나
험하고 늠름한 기상에서 푸르고 푸른 청청의 소나무
수백년전 옛 비밀스런 이야기 듣는 듯 고요한 정적에서 지나간 세월속에 잠깐 멈춘듯하다.
(멋있고 예쁘신 공무님 김민정님 )
두분 덕에 우리는 지금 얼마나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는지 모른다.
맑은 날이나 궂은 날이나 언제나 우리를 위해서 애쓰신 모습을 올려 감사를 표합니다
역탐방에 귀하신 역사학자 삿가스님 모시고 웃음짓는 선 후배님들
밝은 내일이 있으려면 어제의 역사를 알아야하고
우리문화유산인 고궁을 샅샅이 훑어주시어 내것의 소중함을 알게함을 체질화시켜주시는 소중한 분
오래 머물며 듣는 해설은 金科玉條 .
고궁의 품격을 그대로 닮으신분 감사를 드립니다
낭만 2 (날마다 혼자 집에 두고 다니는 것이 안쓰러워 오늘은 같이 나와 고궁을 걸었다.
혹여 모임 자리를 누추하게 하지 않나 걱정했는데 많은 분들이 이해해 주셔서 모처럼 고궁을 즐겼습니다.)
우리모임에 외따로 걷는 늙은 남자가 있다
萬古風霜상 겪은 모습
고궁 앞에 서니 퇴색된 분위기가 웬지 어울려 올려본다
따스한 햇살이 만들어진 소나무 그림자뒤에서 마음을 감추고 있는 이 쓸쓸하고 고독한 사람
그래도 한때는 청청했던 한 청춘의 푸름이 우련 내비치기도 하는...
앞으로 낭만인 내 인생을 다 말아 먹을 것 같은 사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그는 나의 그림자
때때로 나를 울게 하는
애틋한 나의 사랑
그를 지키는 것이
나의 남은 생의 소명이라 생각해
아주 작아진 그와 같이 하면서 소소한 내 일상의 행복을 찾게 하는 늙은 할아버지. 낭만 2.
지기님
회장님
김민정님 삿가스님
사진 빌려주신분 친구
선후배님 감사합니다.
회원님들 사진외에는 전부 인터넷 사진입니다
인터넷에 올려주신분께 감사를 드립니다.ㅎ
2016 2. 3 낭만 씀
첫댓글 아 ~ 낭만선배님!
너무 감동적인 글입니다.
어제사실 설명을 들었어도 산만하여
제돼로 못들었는데 선배님의 해설의글을 읽으니 덕수궁의역사를
자세히 알게되었네요 ~
고맙습니다 항상건강하세요 ^^
낭만 선배님 얼마나 반가웠는지요 ?
잘 쓰신 글에 덕수궁 역사를 다시 배웁니다
선배님 사랑합니다 ^^
역사공부 다시합니다.....
솔직히 모르는게 많습니다만 .그 중에 함녕전을 잘 몰랐습니다.
모처럼 부부동반 나드리 참 좋아보였는데 일찍 자리를 뜨시니 서운했답니다.
감사합니다 세세히 역사해설과 추억의 사진
수고많으셨습니다
느즈막히 일어나 어제의 역탐방 하루를 떠 올려 봅니다.
여유롭게 복습도 ,낭만님 부부의 알뜰한 애정도 그려보는 좋은 시간 감사드립니다.
낭만님에 글을읽으며 잠시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감사합니다;;
잘보구 갑니다 감사합니다
낭만 선배님 반갑습니다
자세히 설명하신 역사해설 공부잘했읍니다 감사합니다
꿈꾸는 노년의 그림 한장 ~~
두분 참석 해주셔서 더욱 고마운 하루 였습니다 .
추억도 행복한 낭만 선배님 ㅎ
로맨스 그레이로 유명한 두 노 부부가
고궁을 거니는 모습이 아련하게 떠 올려지네요.
사진 보니 더욱 젊고 핸섬해지신 남편님, 우리 갑장
낭만의 힘이 아닌가 생각되고 역사탐방 자주 와서
추억의 데이트도 하고 더욱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기 바래요.
축하하고 하루의 즐거운 시간 함께 못해서 아쉽지만 아무튼
이 친구도 열열히 박수 보내는거 알아 주었으면 좋겠어요.
낭만님께서 정성스레 올려주신 글,
감사히 보고 마음에 담아갑니다.
낭만님 오랫만에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부군을 모시고 역 탐방에 참여하신모습 아름다웠습니다
남편의 외로운 시간을 낭만님이 함께 해주시는 모습
아름다운 부부의 동행
부부는 평생을 함께걸어가리라 시집오던날 맹세
부부는 병들때나 즐거울때나 부부가 서로 돌보아
주어야만한다고 주례선생님 말씀!!. 나는 기억해요.
참석은 못했으나
( 낭만 ) 선배님 글 앞에 웃습니다
두분 건강하시고 선배님 ? 화이팅 ~~ ^~^
함께 나오셔서 반가웠는데 단체사진 찍을때도 함께하였으면 좋으련만
야중에 보니 안보이드라구요
어쩌면 글을 이리 잘 쓰시는지요.
특히나 남편님을 묘사하시는 부분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눈물이 쏙 빠지려고 합니다.
늙어 가시는 남편에 대한 애틋한 사랑
그를 지키는 것이
나의 남은 소명이라 생각하며
청청했던 젊음의 흔적, 푸른 잎 소나무같았던 청년에서
아주 작아진 나의 그림자같은 존재.......
감동과 함께 느껴지는 안식과 평화
역사를 잘 배우고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