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잔뜩 안개가 자욱 끼고 찌푸린 날씨가 오후가 되더니 비가 땅을 적셨다. 오늘은 부산 현대백화점 8층 갤러리 H에서 <천연염색 빛깔 모음전>이 열리는 날이다. 오블의 이웃지기 지시랑님의 작품이 전시되는 것이다. 4시 반에 병원문을 나섰다. 우산을 쓰고 부산대학병원 앞에서 지하철을 타고 범일동역에서 내렸다. 지하로 연결된 백화점으로 들어가 승강기를 탔다. 백화점에는 몇 년 만에 들른 것 같아 휘황찬란한 불빛이 낯설기조차 했다. 8층에서 내려 갤러리 H를 찾아갔다.
2007년 5월 16일 - 5월 21일까지 전시를 알리는 팻말이 갤러리 앞 천정에 매달려 있었다. 이번 모음전에 참가한 ‘물을 들이는 사람들’의 작품과 참여 작가(18명)의 경력을 알리는 판자가 놓여있다. 한 지숙. 반가운 이름을 발견하고는 갤러리 안으로 들어갔다. 지시랑님은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다가 나를 보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고 준비된 오미자차를 마시며 떡을 한 조각 먹으면서 근황을 서로 물었다. 오블 이웃지기들은 마치 오래된 동무를 만나는 것 같은 묘한 친근감이 언제나 있다.
지시랑님은 경남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 774-1에서 <지시랑>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병원에서 푸른 수술복만 입어왔던 나로서는 쪽물과 감물로 물들인 의류, 스카프, 생활용품들의 다양한 빛깔을 보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견으로 만든 시원하기 그만인 옷을 입은 지시랑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갤러리를 둘러보았다. 주로 모자를 만들어 출품을 했다고 했다.
바늘꽂이를 보면서 어린 시절 반짇고리에 바늘이 꽂혀있던 기억을 떠올리고, 보자기를 보고는 집에 돌아왔을 때 밥상을 덮고 있던 보자기와 아랫목 이불 속에 넣어 놓은 밥그릇의 추억이 생각났다, 갤러리에는 속속 사람들이 구경하러 왔으며, 외국인부부의 모습도 보였다. 전시작품을 둘러보면서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기성복을 입고 지내는 오늘날 우리들은 옷을 만드는 기술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정련을 잘 해 둔 천을 담그고 주무르고 치대면서 손목이 시큰거리는 중노동을 통해 이렇게 화려하면서도 담백한 빛깔의 작품들을 만들어 내는가 보다. 찌고 말리고 물들이는 과정도 쉬운 작업은 아닐 것이다. ‘물들이는 사람들’이 새롭게 보였다. 그동안 지시랑님은 또 얼마나 밤을 하얗게 새면서 바느질을 했을까. 하나의 모자를 만들기 위해 감치고 공굴리고 했을까. 나는 지시랑님이 만든 모자를 만져보기도 하고 머리에 써보기도 했다. 신라대학교 교수님께서 찍어주는 사진기 앞에서 다정스레 모자를 쓰고 지시랑님과 나란히 서기도 했다.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나에게 지시랑님이 나를 부른다. 떡을 싼 종이가방을 내민다. 사람 사는 일이 이런 게지 싶다. 행복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와서 옆지기와 아이들과 떡을 나누었다. 자연 속에서 빛깔을 찾아내려고 애를 쓰고 처음으로 전시회를 갖는 지시랑님과 함께 한 짧은 시간이 마냥 행복하다. 素하고 淡하게 자연에 물들여 전시회를 연 지시랑님, 축하드려요. / 플라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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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터님의 <천연염색 빛깔 모음전>이 지난 수요일부터 시작되었을텐데 어찌되었나 궁금하여 글터님의 블러그를 들렸다가 마침 다녀오신 분의 글의 있어 사진으로라도 함께하고자 퍼왔습니다. 탐방글을 쓰신 플라치도님은 부산에서 노동자와 사회의 약자들의 편에서 인술을 펴시는 외과의사님이십니다. 월요일까지 행사를 한다니 천연염색, 바느질에 관심이 있으신 부산 인근에 사시는 오두막 식구들 계시면 이번 주말에 다녀오심도 좋을 듯 합니다.^^*
늘 마음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무지기님... 이러저러 민망한 전시회, 무사히 마쳤구요, 사진 정리되는 대로 전시회장 풍경 보여드릴게요^^
글의 주인공 지시랑 님이나 글 쓰신 플라치도(이탈리아 식 발음?) 님이나 다아 멋지다.
'플라치도'는 세례명으로 알고 있어여, 숲님... 오블의 몇몇분과는 1년 넘게 도타운 우정을 나누네여. 고맙습니다^^
가 보고 싶었는데......아쉬운 마음 입니다
가까이 계셨으면 함 다녀가셔도 좋았겠어여 댓잎바람님... 저의 것보다 동료들의 참 정성스런 작품들이 우아하고 아기자기했거든여^^ 담 기회, 기다려여^^
욕심이 많아서 세상의 모든것들을 배우고잡네요. 천연염색보면 이것도 배우고잡고 다도도 하고잡고 서예도하고잡고 수영도~ 하지만 사람공부가 더 많이 밀려있어서 늘 뒷전으로 밀립니다. 상담교육을 내일 1박2일로 교육들어갑니다. 끝없는 배움인것같고 먼길같지만 천천히 갈렵니다.^^
'사람공부', 젤로 귀하고 또 귀한 것 공부하는 거자녀여, 혜강님... 많이 배우셔서 조금씩 나누는 지혜가 되길여...^^
늦게나마 글터님 화이팅!~~
ㅎㅎ 내내 쥐구멍에 숨어 있었어여...흐... 늘 토닥여 주셔서 고마워여, 서강둑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