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향기
거룩한 도성, 바티칸시에 가면 성 베드로 성당이 자리하여 우리를 반갑게 맞아줍니다.
교황님은 로마교구의 교구장이시며 전세계 가톨릭을 이끌어가는 수장입니다. 주교좌 본당인 성 베드로 대성전 제일 오른편에 있는 "성문(거룩한 문)"은 희년에 교항님이 개봉하기 전에는 닫혀 있기에 그 다음의 오른 편 문인 "성사의 문"(칠성사의 내용을 부조해 놓은 문)을 통해 대성전으로 들어갑니다. 참,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문 이야기를 해볼까요. 제일 오른쪽부터 "거룩한 성문", 그리고 "성사의 문"이 있지요. 그 다음에 성경과 천국의 열쇠를 들고 있는 베드로 사도와 칼을 들고 있는 바오로 사도의 모습이 부조 되어있는 "중앙 정문"이 제일 중간에 위치합니다. 그리고 그 왼편으로는 "선과 악의 문"과 맨 왼편으로는 "죽음의 문" 모두 다섯 개의 문이 있습니다.
성 베드로 성당 오른 쪽에서 두 번째 문 성사의 문을 들어서 대성전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조각품이 바로 피에타입니다. 대리석으로 빚어낸 아름다운 조각품, 저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지요. 피렌체의 "다비드"와 로마의 성 베드로의 쇠사슬 성당의 "모세상"과 더불어 미켈란젤로의 3대 걸작품이라 하지요.
오늘은 피에타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고자 합니다.
미술사에 보면 미켈란젤로가 지닌 예술적 영감의 근원은 그에게 결핍돼 있었던 두 가지에서 왔다고 주장합니다. 모성애에 대한 그리움과 미(美)와 위대성에 대한 향수 그것을. 미켈란젤로는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잃었다지요. 아버지는 아들에게 냉정했고 그는 계모의 냉대를 견뎌야만 하는 고아나 마찬가지였던 신세였답니다. 그가 평생에 걸쳐 성(聖) 모자(母子)상에 매달린 까닭을 어머니의 정(情)이 그리웠기 때문이라고. 미켈란젤로는 살아있을 때 전기가 출판된 서구 최초의 미술가입니다. 그의 재능을 신성한 것으로 추앙했기에.
현재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조각상 '피에타(Pieta)는 1499년 완성 당시 겨우 24세 였던 미켈란젤로에게 최고의 명성을 안겨준 작품입니다.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의 '피에타'는 십자가형을 받고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시를 매장하기 전, 마리아는 마지막으로 죽은 아들을 당신 무릎 위에 안아 봅니다. 애끓는 성모님의 표정은 보는 이로하여금 그만 주저 앉고 말게 되지요.
이 피에타를 두고 새롭게 보자는 제 의견을 들어볼까요.
이탈리아어로 슬픔, 비탄을 뜻하여 피에타라고 칭해지는 이 주제는 복음서 구절이나 외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이 실제 겪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들의 시신을 무릎 위에 눕힌 마리아가 조용히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있다.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예수의 얼굴은 고통을 받고 죽었다기보다는 곤히 잠든 아기처럼 해맑고 평화롭기 짝이 없다.
우리가 성 베드로 성당에서 보는 피에타는 정면, 성모님이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을 피에타의 전부로 생각하고 있지 않는지 모른다. 이 것은 바로 인간의 시각으로 보는 장면이다. 하긴 피에타 상과 우리의 눈높이가 비슷하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볼 필요는 없는가. 피에타상을 미켈란젤로는 어떤 생각으로 조각했을까? 다시 말해보자.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을 누구에게 봉헌했을까?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인류 최고의 봉헌인 예수님을 봉헌 받으실 하느님의 시선으로 봐야 하는 게 순리가 아닐까?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하늘에 계신다고 주기도문에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셨듯이 하늘에 계신 하느님과 땅은 내려다보는 각도이다. 그러면 우리가 위에서 피에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베드로 성전에 피에타 앞에 사다리를 세워 순례자들이 사다리를 올라가서 내려다보게 해 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대성전의 전체 모양을 우습게 만들 수 있지 않은가?
그러면 내가 제안하는 방법은 어떨까?
오래 전에 딸아이가 순례 다녀와 피에타 사진첩을 선물했다.
로버트 후프카(Robert Hupka)가 피에타를 찍은 사진 150매를 묶은 책이다. 온전히 피에타를 각도를 달리하여 찍은 피에타 작품집이다. 밑에서 위로, 위에서 밑으로, 옆에서 뒤에서 등 아주 작정을 하고 찍은 작품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하느님께 바치는 최고의 봉헌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자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각으로 찍은 사진이 제일 많았다. 분명, 이 사진으로 본 예수님의 모습은 슬픔을 뛰어넘어 내 표정을 보라고 재촉하신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달리하자는 제 의견은 틀린 걸까?
자,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우리는 인간의 시각에서 피에타를 보면 성모님의 슬픔을 느끼고 만다. 피에타, '자비를 베푸소서.'는 바로 거기서, 고작 성모님의 슬픔에서 머물고 말 것인가?
하느님의 인류구원사업을 완성시킨 예수님은 고통스럽기보다 하느님이 주신 사명을 마침내 다 이루어서 만족해보이고 지극히 평화로워 보인다. 이 사진첩을 본 나는 놀라운 환희와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성모님의 슬픔에 머물고 말 것이 아니라 한 걸음을 떼어보자 딱 한 걸음을 더.
이 책은 영어본이다.
그렇다. 모든 사건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이 다 같을 수야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의 좁은 시야를 더 넓은 시야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면 하느님의 마음을 알게 되는 은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피에타를 찍은 사진 150장은 전부 시각을 달리했다).
사진작가는 미켈란젤로가 이 조각을 빚으면서 의도했던 걸 제대로 파악한 것이다.
예수님은 마치 자는 듯 편안하게 하느님을 향해 들어 올려 진다. 당신이 세상에서 해야 할 모든 사명을 완수한, 그야말로 미소를 띤 편한 모습이다. 그대는 달릴 길을 다 달려 온 자의 편한 모습을 보신 적이 있는가?
피에타는 눈물겹도록 거룩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피에타'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어떤 이들은 중년의 마리아가 지나치게 젊고 아름답다며 조각가를 비난했다.
이에 대해 미켈란젤로는 마리아의 순수한 영혼이 완벽한 육체를 영원히 지켜주었다고 답했다. 몸은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임으로, 영혼이 아름답다면 몸 또한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미켈란젤로가 신봉하던 신(新)플라톤주의의 믿음이었거든. 피렌체에서 성장한 미켈란젤로는 메디치가(家)의 후원을 통해 학자들과 교류하며 신플라톤주의에 심취해 있었던 것이기에 그리 말했을 테지.
결국 미켈란젤로의 신플라톤주의 외모론은 "마음이 고와서 얼굴도 예쁘다", 다시 말해 "예쁜 게 착한 거다"랄까. 평범한 외모를 가진 대다수 사람들은 신플라톤주의보다는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라는 가수 남진의 노랫말이 진리이기를 바라겠지만.
다시 돌아가 피에타를 본 제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십자가 위에서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숨을 거두신 예수님의 시신을 당신의 무릎에 끌어안으신 성모님의 모습에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비탄에 빠져 있는 성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애절한 한 여인의 일생을 돌아봅니다.
열두 사도들과 달리 성경의 전면에 나타나지 않으시고 늘 아드님 곁에서 마음 졸이며 ‘그분’의 가르침에 순종하셨던 여인. 일찍이 어머니를 여위었던 미켈란젤로의 눈에 비친 성모님은 이리도 아름답고 나이를 먹지 않은 영원한 성 처녀로 묘사되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네요.
누군가, 미켈란젤로에게 당신의 작품에 싸인을 하지 않은 까닭을 물었다고 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도 내가 지었다고 서명을 하지 않으신데....." 미켈란젤로는 작품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답니다.
위대한 걸작, 피에타를 미켈란젤로, 네가 만든 거 맞아 하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많았대요. 그럴 수밖에, 그때는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던 스물넷 청년이었으니... 자기의 재능을 무시하던 사람들에게 항변하면서 흡사 미스 코리아들이 어깨에서 비스듬히 아래로 "미스 경북"하는 띠를 두르듯이 미켈란젤로라고 뚜렷이 이름을 새겨둔 띠를 매고 있네요.
이 작품을 제작하던 24살, 젊은 날의 미켈란젤로의 치기를 보는 듯해서 웃음을 베어 물었답니다.
참, 피에타는 유리 상자 안에서 우리를 맞이하는데 이는 한 정신병자가 휘두른 망치에 피에타상의 발이 손상된 사건이 벌어졌대요. 이후 피에타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유리 상자 안에 가두었답니다.
딱한 일이지요! 너무 예쁜 성모님과 자기 어머니를 비교하고 심술이 났나 봐요.
고개를 들어 둘러보면 거룩한 성 베드로 대성전은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찬란한 예술품들이 웅장한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듯 순례자는 무릎을 꿇고 맙니다.
제 워드 실력이 바닥이라 사진을 올릴 수가 없네요. 피에타 사진 150매가 들어 있는 사진첩에서 내려다 보이는 예수님 사진을 올린 다면 제 견해에 공감하실 것으로. 명도회에서 연락 주시면 사진첩을 제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