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에 화근을 남기게 된 '8.7 우치다 회견', 일본은행의 독립성을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 / 8/18(일) / 동양경제 온라인
일본은행은 이번 금리인상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대소동으로 1998년 획득한 비원의 중앙은행 독립성을 스스로 잃어버렸다.
이게 누구 때문인가. 누구에 의해, 일본은행의 독립성은 살해되고 말았는가. 그것은 세상이다.
■ 주가 대폭락 후 불길 잡으려던 일본은행・우치다 부총재
7월 30~31일의 금융정책결정회합 후의 기자 회견(31일)에서, 우에다 카즈오 총재는 지금까지의 설명을 일변시켰다.
"환율 변동은 리스크이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한다" "앞으로는 물가 전망이 예상대로 순조롭다면 금리 인상을 계속하겠다" "적게 잡아도 1%까지는 올려도 중립금리까지 미치지 못한다" 등. 그동안 너무 신중할 정도로 신중, 너무 비둘기파였던 것이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이에 놀란 트레이더들은 쌓였던 엔화의 투기 매도 포지션을 해소했고, 엔 캐리 트레이드는 단숨에 되감겨져 세계 리스크 자산 시장 전체를 폭락시켰다. 비트코인 등 암호자산까지 폭락한 것이다.
8월 2일의 미국 7월 고용 통계가 우연히 예상보다 약한 쪽으로 돌아섰다는 등의 요인도 겹쳐, 엔저의 반격이 한층 더 가속. 급격한 엔고, 일본주의 대폭락이 되었다.
이에 당황한 일본은행은 8월 7일 하코다테에서 열린 우치다 신이치 부총재의 금융경제 간담회를 이용해 불끄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가와 환율이 혼란스러운 동안에는 금리를 올리지 않는다. 엔화 약세에 따른 물가 상승 위험은 엔화 약세의 급격한 해소로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그야말로 표변이다. 다짐하듯, 이것은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라, 일본은행의 견해이며, 우에다 총재도 공유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에 따라 환율은 엔화 약세로 반전, 주가도 급상승했다.
결정회동 종료 후 우에다 총재의 기자회견은커녕 결정문 자체에 써넣은 금융정책 결정을 부총재의 강연 기자회견에서 부정해 버렸고, 이는 총재도 공유하고 있다고 단언해 버린 것이다. 결정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미래의 경제 물가 금융 상황에 따라 현재 실질금리가 극히 낮은 수준임을 감안할 때 이번 전망 보고서에서 제시한 경제 물가 전망이 실현된다면 그에 따라 계속해서 정책금리를 올리고 금융완화 정도를 조정해 나갈 것으로 본다"
■ '주가와 환율에서 금융정책은 좌우된다'고 말한 일본은행
이러한 비판을 상정하고서인지, 우치다 부총재는 다음과 같은 코멘트도 했다. 「 「장래의 정세 나름」이라고 써 있어, 정세가 바뀌었으니, 금리 인상의 전망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실수다. 그동안 일본은행은 경제 물가 금융정세에 주가는 물론이고 환율조차 직접 들어가지 않는다고 거듭 주장해 왔다. 물가 나름이고, 물가가 거의 전부, 그것과 경기 정세, 라고 말해 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주식시장이 불안정한 동안에는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이번 주식시장은 확실히 대혼란이었다. 하지만 주가가 요동치고 있지만 대폭락 후 회복됐고 은행 시스템에 불안감은 없다. 금융정세는 원래 금융시스템 불안을 말하는 것인데 이번 금융시장 혼란은 주가뿐인데 이에 대응해 금리를 올리지는 않겠다고 한 것이다.
엔저 수정도 페이스는 대단했지만 수준으로 보면 여전히 엔저이고 연초보다는 엔저 수준이다. 게다가 이로써 7월 31일의 금리인상은 환율에 의한 것이었다고 고백하고 말았다. 그리고 앞으로의 금리 인상의 필요성도 엔화 약세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멀어졌다고 했고, 앞으로의 금리 인상도 엔화 약세에 달려 있다고 말한 것이다.
게다가 금리 인상 결정으로부터 1주일 이내에. 다음 정책결정회의도 거치지 않고 결정문에 써넣은 것도 부인해 버린 것이다. 개인적 견해로서 말하면서도, 그러나, 정세가 바뀐 것은 우에다 총재와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판단이라고 말해 버렸다. 이래서야 결정회동은 의미가 없다. 우치다 부총재 발언만 보면 된다.
지금은 주가가 돌아왔다. 8월 7일 기자회견에서의 (우치다 부총재의) 발언은 모두 다시 바뀌어 7월 31일로 돌아갈 것인가.
일본은행은 언제부터 주가를 지탱하기 위해 금융정책을 펼치게 되었는가. 2008년의 리먼 쇼크와 같이 세계 금융 시스템이 붕괴 위기에 있는 것도 아니고,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과 같이 경제·사회가 곤란에 직면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주가가 출렁거렸을 뿐이다. 일본은행 역사상 처음으로 적어도 1999년 독립성을 얻은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 세상에 혼나고 달라진 일본은행
도대체 일본은행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세상에 혼났기 때문이다.
원래 그런 기색은 있었다. 7월 31일의 우에다 총재 기자 회견 때도, 비둘기파에서 갑자기 매파로 바뀐 것처럼 보였다. 정책의 내용이라기보다는 설명하는 방식이다.
미디어에서는 「자민당의 유력자나 대신 혹은 수상까지도, 엔저에 관해서 쓴소리를 했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금리를 올린 것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시장의 재촉도 있었다.
금리 인상 기대가 해외에서 7월 초에 높아졌다. 그러나, 국내세는 당초, 미디어로부터의 사전의 기사가 나오지 않는 것으로부터, 「이번 금리 인상은 없는 것이 아닐까」라고 보고 있었다.
과연 31일 당일 아침 세부적인 금리 인상 결정 가능성 기사가 여러 매체에서 나왔다. 그 내용은 금리인상 결정의 내용, 설명문과 합쳐도 사후적으로도 너무 사전 보도는 정확한 '가능성'의 '억측' 기사였다. 이 매번의 누설도 정치가 관계된 것인가. 일본은행은, 이것에 항의하지 않는 것인가.
정치, 시장에 임박해서, 일본은행은 이것에 굴복한 것인가. 나는 그것이 아니라 정치도 시장도 아닌 제3의 힘 세상의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언론뿐 아니라 엔화 약세가 어떤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아주 평범한 국민들로부터 일본은행의 정책 때문에 엔화 약세로 고물가가 되어 정말 곤란하다 생활이 어려운 것은 일본은행의 탓이라고 꼬리표를 붙여 이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원래 일본은행이라는 조직에는 우등생적인 풍토가 있어 매우 성실하고 성실한 집단이다. 신뢰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싫기 때문에, 정치의 질퍽질퍽한 것이나 시장의 「잘라진 것」에는 약하다. 약하다기보다는 털을 싫어한다.
가능한 한 그런 추잡한 것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 경제이론의, 금융이론의 깨끗한 세계에서, 이론적인 논리의 세계에서 살고 싶다. 그런 사람들이다.
한편, 그 결과 굴욕도 있었다. 1985년의 플라자 합의 이후의 급격한 엔고에 대해서 금리 인하를 강요받아 엔고 불황의 이름 아래, 경제 자체는 불황이 아니라, 오히려 버블이 맹렬하게 부풀어 올랐는데, 정치의 압력이 대장성을 경유해 전해져, 금리 인상을 할 수 없었다. 토지 거품을 일찍 터뜨리지 못했다. 그 회한이 있다. 「우리의 이론이 정치, 대장성에 찌그러졌다」라고.
그래서 1998년 독립성을 획득한 이후 이런 더러운 정치적 판단이 들어가지 않도록 막무가내로 중앙은행은 물가안정에 전념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주식시장은 물론 환율에도 상관없는 정치적 의도에 따른 통화정책 압력을 피하려 했다.
■ '비정상적인 금융완화를 한 장본인'으로 지목된 일본은행
그러나, 독립성을 얻은 한편, 모종의 더러움역을 지고 있던 「대장성」이라고 하는 눈 위의 혹이지만, 모종의 방어벽을 잃었다. 이들은 거시경제 이론도, 금융정책의 학술적 논의도 모르면서 일본 경제를 위해서라며 예전에는 정책을 압박해 왔다.
역겨웠지만, 그러나, 일본 경제를 생각하는 마음은 같았고(손에 드는 이론과 시점이 다를 뿐이었다), 더러웠어도, 논리로, 이치로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였다.
그런데 독립 후 대치하는 것은 그것들을 개의치 않는 정치인이 되었다. 디플레 탈피라는 구호, 캐치 카피에, 모든 이론은커녕 이치조차 지워져, 비정상적인 금융완화를 강요당했다.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결과 주가가 오르면서 세상은 저쪽 편에 섰다. 더구나 일본은행이 조직적으로 따르는 바람에 일본은행이 비정상적인 금융완화의 주체, 주역, 장본인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이번, 지금까지의 정책의 반동, 외상이 엔저나 고물가로서 국민 생활을 덮쳐 왔을 때, 비난은 모두 BOJ에 밀려 왔다.
일본은행은 정치의 압력에는 忸怩한 마음이 있었겠지만 세상의 압력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이것이 재무부라면 자신들은 미래의 국가를 위해 정치의 포퓰리즘(대중영합적인 자세)과 싸우고 있다. 그 영향을 받은 국민이 포퓰리즘에 물들어 있으면, 국민이 포퓰리즘 정책을 추구할수록, 그것은 국가의 길을 그르치게 한다고 불타오르고, 세상의 비판을 받을수록 자신들의 사명이 중요하다고 믿으며 안티 포퓰리즘에 매진한다.
■ '꼬리표 제거' 바랐던 '8월 7일 회견'
한편, 일본은행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조직 풍토에서, 「이론상 올바른 것을 순수하게 한다. 순수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압력, 비판으로부터는 무관하고 싶다. 그래서 정치는 고사하고 세상에 혼나는 것으로 자신들의 순수한 구석을 잃을 수 없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7월 31일 결정회동 결과 발표 직전 언론에 오르내린 전 일본은행 유력 인사의 발언이다. "이번에는, 세상에 혼나지 않고 금리인상을 할 수 있다." 정치에도 세상의 압력에도 관계되지 않기 위해 진공지대를 찾아, 진공이 성립했을 때만 정책을 움직인다.
그래서 일본은행의 금리인상만이 이유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 대혼란이 '일본은행의 금리인상 때문이다'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게다가 그것이 정치가 아니라 세상의 인식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 딱지를 떼기 위해 8월 7일 우치다 부총재는 7월 31일의 매파적인 기자회견을 부정하고 딱지 제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크게 화근을 남겼다. 딱지는 제거될 리 없고 잘못된 역사인식 '일본은행의 금리인상이 주식을 폭락시켰다'는 것은 이제 세상의 기억에 영원히 기록돼 버렸다.
그러면서도 대단한 정치인과 시장 투기꾼들은 일본은행은 압력을 가하면 움직인다. 주가 변동, 환율 변동으로 금융정책 전망을 휙휙 바꾼다는 약점을 잡은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행은 「그런 일은 없다」라고 부정하든, 향후는 시장과 정치의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고 마음에 맹세하든, 일단 그러한 인식으로 얽히게 되면, 이제 정직하고 건전한 쪽은 압력과 뒤얽힘으로 맞설 수 없다.
■ '현재와 미래의 일본은행'으로 무거운 부채 갚기 어려워
향후,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릴 수 없게 되어, 크게 금융 정책의 수정이 늦어지거나, 용기를 가지고 금리를 올렸을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라고 시장의 투기가에게 철저히 공격당한다. 시장을 혼란시킨 것은 투기꾼인데, 그것을 관찰한 정치가, 미디어, 그리고 「세상」은 「또 일본은행이 저질렀다」라고 몰아세울 것이다.
그리고 이 근본적인 요인을 만든 것은 디플레이션 탈피를 캐치카피로 한 아베노믹스, 즉 정치이며 이를 실행해 버린 이차원 완화에 있는 것이지 현재의 일본은행 집행부가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뒤엎고,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은 현재의 일본은행이며, 향후 장래에 걸쳐 미래의 일본은행이 이 부채를 변제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갚기는 어렵다. 앞으로 재정 문제가 있는 데다 중앙은행도 이것으로 꼼짝 못하면 정부도, 일본은행도 죽을지 모른다.
적어도 독립성은 죽었다. 죽인 것은, 과거의 일본은행인가, 이번 기자 회견인가. 어쨌든, 일본은행에 의한 독립성의 자살인 것이다.
(본 기사는 「회사사계보 온라인」에도 게재하고 있습니다)
오바타 마코토 : 게이오기주쿠 대학 대학원 교수
https://news.yahoo.co.jp/articles/bc8a06bb4f32731ac07ccde337df665b92097632?page=1
歴史に禍根を残すことになった「8.7内田会見」、日本銀行の独立性を殺したのはいったい誰なのか
8/18(日) 9:32配信
154
コメント154件
東洋経済オンライン
8月7日に函館の金融経済懇談会で株価暴落後の火消しに走った日銀の内田真一副総裁(左)。筆者は「日銀史に禍根を残した」と主張する(写真:ブルームバーグ)
日本銀行は、今回の利上げをめぐって起きた一連の大騒動で、1998年に獲得した悲願の「中央銀行の独立性」を自ら失ってしまった。
これは誰のせいなのか。誰によって、日銀の独立性は殺されてしまったのか。それは「世間」である。
■株価大暴落後、火消しに走った日銀・内田副総裁
7月30~31日の金融政策決定会合後の記者会見(31日)で、植田和男総裁はこれまでの説明を一変させた。
「為替変動はリスクであり、それに対応するために利上げする」「今後は、物価見通しが見込みどおり順調なら、利上げを継続する」「少なく見積もっても1%までは利上げしても、中立金利にまで届かない」などなど、これまで慎重すぎるほど慎重、あまりにハト派だったのが、雰囲気一変となった。
これに驚いたトレーダーたちは、積み上がった円の投機売りポジションを解消し、円キャリートレードは一気に巻き戻され、それは世界のリスク資産市場全体を暴落させた。ビットコインなどの暗号資産まで暴落したのである。
8月2日のアメリカ7月雇用統計がたまたま予想よりも弱いほうに振れたなどの要因も重なって、円安の巻き戻しがさらに加速。急激な円高、日本株の大暴落となった。
これに慌てた日銀は8月7日、函館で行われた内田真一副総裁の金融経済懇談会を利用して、火消しの記者会見を行った。「株価と為替が混乱している間は、利上げはしない。円安による物価上昇リスクは、円安の急激な解消によってなくなった」などと説明した。
まさに豹変である。念押しのように、これは個人的な見解でなく、日銀の見解であり、植田総裁も共有しているという趣旨の発言を行った。これを受けて、為替は円安へ反転、株価も急上昇した。
決定会合終了後の植田総裁の記者会見どころか、決定文そのものに書き込んである金融政策の決定を、副総裁の講演の記者会見で否定してしまい、それは総裁も共有していると、断言してしまったのだ。決定文には、以下のように書いてある。
「先行きの経済・物価・金融情勢次第であるが、現在の実質金利がきわめて低い水準にあることを踏まえると、今回の『展望レポート』で示した経済・物価の見通しが実現していくとすれば、それに応じて、引き続き政策金利を引き上げ、金融緩和の度合いを調整していくことになると考えている」
■「株価と為替で金融政策は左右される」と述べた日銀
このような批判を想定してか、内田副総裁は以下のようなコメントもした。「『先行きの情勢次第』と書いてあり、情勢が変わったのだから、金利引き上げの見通しも変わって当然だ」。
しかし、それはまったくの間違いだ。今まで日銀は、経済・物価・金融情勢に株価はもちろん関係ないし、為替でさえ直接は入らない、と繰り返し主張してきた。物価次第であり、物価がほぼすべて、それと景気情勢、と言ってきた。それがいきなり、株式市場が不安定な間は利上げしない、と宣言してしまったのである。
今回の株式市場は確かに大混乱であった。しかし、株価は乱高下はしているが、大暴落のあと回復したし、銀行システムに不安はない。金融情勢とは、本来は金融システム不安のことであるのだが、今回の金融市場の混乱とは株価だけの話であるのに、これに対応して利上げはしないとしたのである。
円安修正もペースはものすごかったが、水準で見れば依然円安であり、年初よりはなお円安水準にある。しかも、これで7月31日の利上げは為替によるものだったと告白してしまった。そして、今後の利上げの必要性も、円安が進まなくなったから遠のいたと言い、今後の利上げも円安次第と言ってしまったのである。
しかも、利上げ決定から1週間以内に。次の政策決定会合も経ずに、決定文に書き込んだことも否定してしまったのである。個人的見解として述べつつも、しかし、情勢が変わったのは植田総裁とも共有しているから、同じ判断だと言ってしまった。これでは、決定会合は意味がない。内田副総裁発言だけを見ていればいいことになる。
今は、株価は戻った。8月7日の記者会見での(内田副総裁の)発言はすべてまた変わり、7月31日に戻るのだろうか。
日銀は、いつから株価を支えるために金融政策を行うようになったのか。2008年のリーマンショックのように世界金融システムが崩壊危機にあるわけでもなく、2011年の東日本大震災のように経済・社会が困難に直面しているわけでもない。株価が乱高下しただけなのだ。日銀史上初、少なくとも1999年に独立性を得てからは、初の出来事である。
■世間に怒られ、変わった日銀
いったい、日銀に何があったのか。「世間」に「怒られた」からである。
もともと、その気配はあった。7月31日の植田総裁記者会見のときも、ハト派から急にタカ派に変わったように見えた。政策の中身というよりも、説明の仕方だ。
メディアでは「自民党の有力者や大臣あるいは首相までもが、円安に関して苦言を呈したからではないか。それが理由で利上げしたのではないか」と言われた。市場の催促もあった。
利上げ期待が海外で7月初めに高まった。しかし、国内勢は当初、メディアからの事前の記事が出ないことから、「今回の利上げはないのでは」とみていた。
はたして、31日当日の朝、詳細な利上げの決定の可能性の記事が複数のメディアから出た。その内容は、利上げ決定の内容、説明文と合わせても、事後的にもあまりに事前の報道は正確な「可能性」の「憶測」記事であった。この毎度のリークも政治が関係しているのか。日銀は、これに抗議しないのか。
政治、市場に迫られて、日銀はこれに屈したのか。私は、そうではなく、政治でも市場でもない「第三の力」「世間」に非難されたからだとみている。
メディアだけでなく、円安がどんな過程で起きているのかもよくわかっていないごく普通の国民から「日銀の政策のせいで、円安で物価高になって本当に困っている」「生活が苦しいのは日銀のせい」とレッテルを貼られ、それに耐えられなかったのである。
元来、日銀という組織には優等生的な風土があり、非常にまじめで誠実な集団だ。信頼できる。その一方で、いやだからこそ、政治のドロドロや市場の「きったはった」には弱い。弱いと言うよりも、毛嫌いしている。
できるだけ、そのような汚らわしいものにはかかわりたくない。経済理論の、金融理論のきれいな世界で、理論的な論理の世界で生きていきたい。そういう人たちである。
一方で、その結果として、屈辱もあった。1985年のプラザ合意以降の急激な円高に対して利下げを迫られ、円高不況の名のもとに、経済自体は不況ではなく、むしろバブルが猛烈に膨らんでいったのに、政治の圧力が大蔵省経由で伝わり、利上げができなかった。土地バブルを早めに潰せなかった。その悔恨がある。「われわれの理論が政治、大蔵省に潰された」と。
だから、1998年に独立性を獲得して以降、このような汚れた政治的判断が入らないように、頑なに「中央銀行は物価の安定に専念する」という理屈を盾として、株式市場はもちろん、為替にもかかわらない、政治的な意向による金融政策への圧力を避けようとしてきた。
■「異常な金融緩和をした張本人」にされた日銀
しかし、独立性を得た一方で、ある種の汚れ役を負っていた「大蔵省」という目の上のたんこぶだが、ある種の防御壁を失った。彼らは、マクロ経済理論も金融政策のアカデミックな議論もわからないくせに、「日本経済のために」と言って、以前は政策に圧力をかけてきた。
鼻持ちならなかったが、しかし、日本経済のことを思う気持ちは一緒だったし(手にする理論と視点が違うだけだった)、汚れていても、論理で、理屈で話し合える相手だった。
ところが、独立後、対峙するのは、それらを意に介さない政治家になった。デフレ脱却というかけ声、キャッチコピーに、すべての理論どころか理屈でさえかき消され、異常な金融緩和を迫られた。
それに従うしかなかった結果、株価が上がったことで、世間は「向こうの味方」についた。しかも、日銀が組織的に従ったために、日銀が異常な金融緩和の主体、主役、張本人だと思ってしまった。
今回、今までの政策の反動、ツケが円安や物価高として国民生活を襲ってきたときに、非難はすべて日銀に押し寄せてきた。
日銀は、政治の圧力には忸怩たる思いがあっただろうが、「世間」の圧力にはなすすべがなかった。
これが、財務省ならば「自分たちは未来の国家のために、政治のポピュリズム(大衆迎合的な姿勢)と戦っている。その影響を受けた国民がポピュリズムに染まっていれば、国民がポピュリズム政策を求めれば求めるほど、それは国家の道を誤らせる」と燃えに燃え、世間に批判されればされるほど自分たちの使命が重要だと信じ、アンチポピュリズムに邁進する。
■「レッテルの除去」を願った「8月7日会見」
一方、日銀はそれとはまったく違った組織風土で、「理論上正しいことをピュアにやる。ピュアにやるためには、そういう圧力、批判からは無縁でいたい。だから、政治はともかく、世間に怒られることで、自分たちのピュアなよりどころを失うことはできない」。だから、とにかく怒られることは避けるのだ。
これを象徴するのが、7月31日の決定会合の結果発表直前にメディアで流された元日銀の有力者のコメントだ。「今度は、世間に怒られずに利上げができる」。政治にも世間の圧力にもかかわらないために真空地帯を求めて、真空が成立したときだけ政策を動かす。
だからこそ、日銀の利上げだけが理由ではなかったにもかかわらず、株価の大混乱が「日銀の利上げのせいだ」というレッテルを貼られることになった。しかも、それが政治ではなく、世間の認識となってしまったために、そのレッテルを外すべく、8月7日に内田副総裁は7月31日のタカ派的な記者会見を否定し、レッテルの除去を願ったのである。
しかし、これは大いに禍根を残した。レッテルは除去されるはずもなく、間違った歴史認識「日銀の利上げが株を暴落させた」ということは、もはや世間の記憶に永遠に記録されてしまった。
その一方で、したたかな政治家と市場の投機家たちは「日銀は圧力をかければ動く。株価変動、為替変動で金融政策の見通しをころころ変える」という弱みを握ったのだ。
実際に、日銀は「そんなことはない」と否定しようが、今後は市場と政治の圧力に屈しないと心に誓おうが、いったんそういう認識で絡まれるようになったら、もう正直で健全な側は圧力と絡みに歯向かうことはできない。
■「現在と未来の日銀」で重い負債を返済するのは困難
今後、日銀が利上げできなくなり、大きく金融政策の修正が遅れるか、あるいは、勇気をもって利上げした場合には「話が違う」と市場の投機家に徹底的に攻め込まれる。市場を混乱させたのは投機家なのに、それを観察した政治家、メディア、そして「世間」は「また日銀がやらかした」と責め立てるだろう。
そして、この根本的な要因を作ったのは、デフレ脱却をキャッチコピーにしたアベノミクス、つまり政治であり、それを実行してしまった異次元緩和にあるのであり、現在の日銀執行部でないのだ。しかし、すべての尻ぬぐい、責任を負わされるのは現在の日銀であり、今後将来にわたって未来の日銀がこの負債を返済していくのである。
しかし、この返済は難しい。今後、財政の問題があるうえに、中央銀行もこれで身動きが取れないとなれば、政府も日銀も死んでしまうかもしれない。
少なくとも、独立性は死んだ。殺したのは、過去の日銀か、今回の記者会見か。いずれにせよ、日銀による独立性の自殺なのである。
(当記事は「会社四季報オンライン」にも掲載しています)
小幡 績 :慶応義塾大学大学院教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