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 스님의 주련] 30. 제주 선덕사 대적광전
눈 밝은 이라면 웃음으로 도리 증득
함허득통 스님의 ‘금강경’ 해설
진리의 영원성 해와 달에 비유
지혜가 천하를 두루 비추지만
미혹한 중생 장님처럼 모를 뿐
제주 선덕사 대적광전/ 청남 오제봉(菁南 吳濟峯 1908~ 1991).
誰知王舍一輪月 萬古光明長不滅
수지왕사일륜월 만고광명장불멸
呵呵他日具眼者 見之當發大笑矣
가가타일구안자 견지당발대소의
누가 알리요. 왕사성(王舍城)의 둥근달이/ 만고에 광명이 멸하지 아니 하리라는 것을 알겠는가?/ 하! 하! 다른 날에 눈 밝은 이가 있다면/ 이것을 보고 마땅히 크게 웃을 것이다.
이 주련은 ‘금강경오가해’에서 ‘금강경오가해서설’에 나오는 내용이다. ‘금강경오가해서설’은 함허득통(涵虛得通 1376~1433) 스님이 서설(序說)을 쓰고 이 글에 다시 본인이 설의(說誼)를 해서 붙인 글이다. 여기서 설의(說誼)라고 하는 것은 풀이를 말한다.
함허득통 선사는 조선 초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유(劉)씨며 속명은 수이(守伊)다. 21세 때 관악산 의상암에서 출가해 그 이듬해에는 양주 회암사에서 ‘무학대사’로 널리 알려진 무학자초(無學自超 1327~1405) 스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1415년 황해도 자모산 연봉사에서 ‘금강경오가해’를 강설한 것이 이 책의 설의에 해당한다. 1420년 오대산 월정사에서 세종대왕의 청으로 법을 설한 적이 있으며 만년에는 문경 희양산 봉암사에서 입적했다.
수지(誰知)는 “누가 알겠느냐?”란 표현으로 불특정 다수를 말한다. 왕사(王舍)는 임금이 머무는 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인도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王舍城)을 말한다. 지금의 인도 비하르(Bihar)주 파트나(Patna)시 남쪽 라지기르(Rajair)가 여기에 해당한다. 부처님은 이곳에서 많은 경전을 설법하셨다. 경전에 등장하는 영축산으로 불리는 기사굴산, 죽림정사, 기원정사, 제1차 경전 결집을 하였던 칠엽굴 등이 모두 이곳에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왕사성’이라는 표현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틀어 말한다. 그리고 일륜월(一輪月)은 하나의 둥근달이기에 부처님 가르침의 골수를 말한다.
만고(萬古)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을 의미한다. 광명(光明) 일륜월과 대비되는 표현으로 진리를 말함이다. 진리는 멸하려야 멸할 수 없기에 영원한 생명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교종에서 보면 일승(一乘) 또는 불승(佛乘) 등으로 나타내고 선종에서는 견성(見性)을 말한다. 다만 중생은 미혹으로 가리어서 지혜의 달이 만고에 빛나며 천하를 비추건만 스스로 당달봉사가 이를 보지 못함이다.
가가(呵呵)는 한바탕 크게 껄껄 웃는 모양이다. 단순한 웃음이 아니라 법문의 종지(宗旨)를 알아차린 이라는 표현이다. 설법의 종취(宗趣)를 알아듣는 이가 바로 눈 밝은 자다. 그러므로 만약에 이러한 자가 있다고 한다면 하고 가정하여 놓은 표현이다.
설법의 종지를 알아챈 이가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박장대소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되어 너와 내가 없는 모두가 부처라는 도리를 증득하게 될 것이다.
참고로 ‘조당집’ 제4권에 보면 다음과 같은 선사들의 일화와 법문이 기록돼 있다. 약산유엄(藥山惟儼 751~834) 선사가 어느 달 밝은 밤에 약산(藥山)에 올랐을 때 문득 느낀 바가 있어서 하늘을 향해 한바탕 크게 웃었다. 그 소리가 동쪽으로 90리나 떨어진 예양까지 들려서 그날 밤 사람들이 웃음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들은 모두 자기네 쪽 이웃에서 웃음소리가 들린 줄 알았다. 그들은 웃음소리가 들린 곳을 차츰차츰 찾아와 약산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또한 승조(僧肇 384~414) 스님은 “천지여아동근 만물여아일체”라며 “천지는 나와 한 근원이고 만물은 나와 한 몸이라고 하였으니 이 정도쯤 되면 한바탕 크게 웃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기에 수행 정진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