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의 대화
미셸 푸코의 지식 고고학이란?
미셸 푸코가 말한 지식 고고학적 방식이 뭔가요?
지식 고고학적 방식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가 제안한 연구 방식 중 하나입니다. 이는 고고학적 발굴처럼 각 시대의 지식이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고 작동했는지를 밝혀내는 작업입니다. 푸코는 이러한 변화를 지식의 고고학이라고 부르며, 지식의 구조와 형태를 분석하여 그 시대의 권력 구조와 문화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푸코는 지식이 단순히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대와 문화적 배경에서 형성되고 변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지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권력이 작용하며, 이를 통해 지식이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되고 유지된다고 보았습니다.
지식 고고학적 방식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대적 구분: 지식 고고학은 지식의 형태를 시대적으로 구분하여 분석합니다. 푸코는 지식의 형태(틀, 역사적 구조)을 에피스테메(episteme)라고 부르며, 각 에피스테메는 고유한 특성과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언어와 담론: 지식 고고학은 언어와 담론을 중요한 분석 대상으로 삼습니다. 푸코는 언어가 단순히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지식을 구성하고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보았습니다.
권력과 지식: 지식 고고학은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중요하게 다루었습니다. 푸코는 권력이 지식을 생산하고 통제하며, 이를 통해 사회적 질서를 유지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비판적 분석: 지식 고고학은 기존의 지식 체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합니다. 이를 통해 지식의 한계와 문제점을 파악하고, 새로운 지식 체계를 모색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지식 고고학적 방식은 철학, 역사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현대 사회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미셸 푸코의 저서 《지식의 고고학》은 지식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지를 탐구하는 중요한 작업입니다. 이 책에서 푸코는 지식이 단순한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권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주요 개념과 요지:
지식의 구성: 푸코는 지식이 특정한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지식이 단순히 진리나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과 권력 관계에 의해 형성된다고 강조합니다.
고고학적 방법: 푸코는 '고고학'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과거의 지식 체계를 분석합니다. 이는 과거의 지식이 어떻게 구성되었고, 어떤 규칙과 조건 아래에서 의미를 갖는지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권력과 지식의 관계: 푸코는 지식이 권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지식이 권력을 생산하고, 권력이 지식을 형성하는 상호작용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담론: 푸코는 특정한 담론이 지식의 형성과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담론은 특정한 주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규범을 포함하며, 이는 지식의 경계를 설정합니다.
요약:
《지식의 고고학》에서 푸코는 지식이 단순한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 권력과 사회적 맥락에 의해 형성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고고학적 방법을 통해 과거의 지식 체계를 분석하고,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탐구함으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 책은 지식의 본질과 그 사회적 역할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출처: 돌삐사랑
https://naver.me/FLKKyuAQ
미셸 푸코의 두 핵심개념 (에피스테메, 파놉티콘)
미셸 푸코(1926-1984)는
프랑스의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다
그는 서구 문명에서 이성에 의해 소외돼버린 '비이성'과
비이성에서부터 나오는 인간의 '광기'에 대해 논했다.
1. 에피스테메(episteme)
미셸 푸코의 핵심개념 중 하나는 에피스테메다
지식, 지성, 학문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을까에 대한 답을
에피스테메'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미셸 푸코의 '에피스테메'란 앞의 틀(=지식의 틀)을 뜻하는 단어다
헌대사회의 앎의 틀과 중세시대의 앎의 틀은 다르다 머릿속에 든 것이 다르다는 말이다. 그러니 두 시대 사람들의 생각도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중세는 원칙적으로 신을 숭배하였으며 신을 의심하는 것이 기저부터 억압된 나머지 그것을 억압이라고 인지하기 힘들었다.
당연시 여기는 것들을 의심하는 순간부터 당연함의 당위성은 공신력을 상실한다.
그때부터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갇힌 틀을 직시할 수 있게 되고 점차 그 틀에 감히기를 거부하게 된다.
그렇게 중세의 신에 대한 믿음의 당연함은 당연함에서 의심으로, 의심에서 억압으로 억압에서 자유로 나아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현대에 사는 우리는 종교와 믿음에 대한 자유를 얻은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현재 우리는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을 당연시 여기지만 수백년이 지난 뒤에는 이렇게 옷을 껴입고 다니는 것 또한 억압이라 인식하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른다
이렇게 한 현상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처럼 시대의 보편적 인식도 점차 변화한다. 앎의 틀 또한 계속해서 변화하게 된다
이렇게 앎의 틀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미셸 푸코는 '에피스테메가 변한다' 라고 표현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우리가 겪는 '세대차이'도 에피스테메의 차이로 인해 생기는 것이다
앞의 틀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데 반해 사람들은 앎의 틀을 고수하는 성향이 있다 이것을 바로 '보수'라고 한다
보수 = 기존의 에피스테메
진보= 새로운 에피스테메
2. 파놉티콘
미셸 푸코의 두 번째 핵심개념은 파놉티콘 (panopticon) . '우린 왜 세상이 만든 규칙을 지키며 사는가'에 대한 이유를 이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파놉티콘이란 '원형감옥'을 뜻하는 단어로 중앙 탑에서 죄수들을 관찰할 수 있게끔 설계됐다
파놉티콘이란 감옥은 대략 아래와 같은 형태로 생겼다고 생각하면 된다
감시자는 A의 위치에서 감시하고 수감자들은 B의 위치에서 수감생활을 한다
파놉티콘 형태가 지니는 특징은 수감자와 감시자 사이에
정보의 불균형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감시자는 언제나 수감자를 지켜볼 수 있지만 수감자는 감시자를 절대 수 없다.
따라서 수감자들은 감시자가 그들을 감시하고 있지 않더라도 언제나 감시당한다고 생각하게 되고
매순간 자신들의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미셸 푸코는 이 감옥의 형태에서 오는 규율의 비가시적 권력 작용이 근대 사회에도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법이라는 규율이 실시간으로 우리 사회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언제나 감시받는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푸코는 가시적인 권력보다
이런 비가시적인 권력이 위력적이라고 말한다
가시적인 권력: 처벌
비가시적인 권력: 감시
https://naver.me/5JVkPMwH
미셸 푸코의 '에피스테메'와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지식, 권력, 억압. 서로 무언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이질적인 이 세 단어는 철학자 '미셸 푸코'를 설명하는 키워드들이다.
에피스테메
다소 생소한 이 '에피스테메'라는 단어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서양 철학의 오랜 전통이 있는 이원론적 세계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서양 철학에서는 세계를 두 개로 나눠왔다. 현실세계와 초월적 세계, 소위 '이데아'가 바로 그것이다. 현실세계는 가시적인 세계이다. 이 세계는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세계이다. 반면 우리는 초월적인 세계와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없다. 우리는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현실계에 묶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가 있는 초월적 세계와는 달리 현실계에서 우리가 보고 느끼는 건 독사(Doxa), 즉 허상이다. '에피스테메'는 이 중 초월적 세계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플라톤이 말했던 이데아 속의 대상이다.
지식의 문제
'푸코'에 따르면 우리의 지식 사이에는 불연속적인 층이 존재한다. 이 불연속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서 알아보자.
르네상스 시절, 사회는 '유사성'을 '에피스테메'로 삼았다. 즉, '유사성'을 문화를 이끄는 하나의 키워드로 여겼다는 것이다. 다만 이들이 '유사성'을 키워드로 삼는다고 인식했던 것은 아니다. '유사성'은 이 시대 사람들의 무의식에 자리를 잡은 것 뿐이다.
시간이 흘러 고전주의 시절, '에피스테메'는 어느 순간 '표상'으로 바뀌게 되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한 순간에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불연속이라는 것이니까.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표상'은 문화를 이끄는 새로운 핵심이 되었다.
근대주의 시절에는 '표상'이 '주체'로 바뀌는 일이 일어났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은 유추할 수 있겠지만 이 변화도 불연속적이기에 무언가를 계기로 서서히 변했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서양의 역사와 그 시대의 '에피스테메'를 설명하며 간단히 알아보았지만 '미셸 푸코'가 말하는 지식의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그건 바로 공간과 시간에 따라 '에피스테메'는 불연속적으로 변화하며 이는 그 시기, 그 상황 속의 사람들의 무의식에 자리잡아 사회문화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에피스테메와 패러다임
여기까지 듣다보면 누군가는 이 '에피스테메'라는 것을 쿤의 '패러다임'과 유사한 것을 볼 수 있다. '에피스테메'와 '패러다임' 모두 시대를 지배하는 키워드이자 배경이 되지만 이 두 단어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에피스테메'는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는 개념이다. 즉, 사람들은 스스로가 '에피스테메'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패러다임'은 다르다.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명백하게 '패러다임'을 인식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패러다임에 대한 인식 없이는 하위 연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패러다임'이 하위 연구의 전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에피스테메'에는 합리적인 기준이 없다. 위의 예시를 다시 가져와보면 르네상스 시절 '유사성'이 '에피스테메'로 등장한 것은 무슨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이유로 자리를 잡은 것 뿐이다. 반면 '패러다임'에는 이유가 있다. 아무리 잘못된 패러다임이라도 그 '패러다임'이 등장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양자역학 이전의 '패러다임'은 현재 예외나 오류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더라도 그것이 아무 이유없이 등장한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