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와 꽃가루로 콧물 기침이 괴롭다면
광해군은 나름 별미를 즐겼다. 실록은 ‘사삼 각로 권세가 처음에 중하더니 잡채 상서 세력은 당할 자 없구나’ 하였는데, 각로 한효순의 집에서는 사삼(沙蔘)으로 밀병을 만들었고, 상서 이충은 채소에다 다른 맛을 가미하였는데, 그 맛이 희한하였다. 한효순이 만든 사삼은 더덕이다. 한약재 사삼은 잔대라는 고유 명칭을 지닌 다른 약재다. 한마디로 더덕과 사삼을 잘못 분류한 오류다. 영조, 즉위년에도 똑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사삼을 거론하며 “이것이 맛이 아주 좋고 사탕과 함께 드시면 기침을 할 때 침에 피가 섞여 나오는 증상에도 좋다고 합니다.”
세종은 쌀이 부족해지자 더덕을 식량 대용으로 사용하라는 어명을 내린다. ‘쌀을 더 주기도 역시 어려우니, 더덕·도라지 등 산나물을 많이 캐서 섞어 먹게 할 것이다.’ 사삼으로 쓰는 잔대와 더덕의 차이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관능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맛이다. 쓴맛이 강한 잔대는 주로 약으로 사용하고 단맛과 향이 좋은 더덕은 맛난 음식으로 요리했다.
더덕엔 액이 많다. 뿌리 속에 물을 지닌 것도 있다. 줄기를 자르면 흰 즙이 나온다. 그 즙이 양의 젖 같다고 해서 ‘양유’라고도 한다. 흰 즙이 나오는 식물은 젖이 부족한 여인에게 좋다. 민간에서 여성 음부의 액이 줄어들어 가려움증이 생기면 더덕을 가루로 만들어 먹는데 이는 음기를 늘리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음식도 더덕에 고추장 양념을 발라 구워 먹는다. 점액질을 포함한 음기가 강해서 찬 성질로 소화 능력을 떨어뜨릴까 봐 불로 굽거나 고추의 매운 양기를 보강해서 먹는 것이다.
둥굴레는 시원하다. 대나무와 닮은 데가 많다. 대나무 잎이 시원하듯 둥굴레 잎도 시원하고, 대나무에 마디가 있듯이 둥굴레에도 마디가 있다. 또한 둘 다 땅속 뿌리줄기로 번식한다. 그래서 둥굴레를 ‘옥죽(玉竹)’이라 한다. 옥액을 간직한 대나무라는 뜻이다. 둥굴레 뿌리에는 옥액 같은 점액질이 많다. 이것도 점액을 보강해준다. 더덕 60g에 둥굴레 뿌리 10g을 가루로 만들어 꿀에 재웠다가 하루 5g씩 먹으면 좋다.
면역은 우리 몸에 침범하는 모든 이물질을 방어하는 인체 내 자율 작용으로 ‘자연면역 시스템’이라고도 한다. 특히 점액은 우리 몸의 외부 최전선에서 먼지나 이물질, 미생물 등을 저지하는 구실을 한다.
황사와 꽃가루를 저지하는 면역의 역할에 있어 핵심은 점액이다. 한 번 호흡할 때마다 들어오는 이물질은 20만 개 정도이다. 그중에 5μm(마이크로미터) 이상의 것은 코털이 바닷가에서 모래를 막는 송림처럼 방어 작용을 하며, 85% 이상을 제거한다. 5μm 이하의 것은 점액층이 끈끈이주걱처럼 흡착하여, 방출하거나 삼켜서 제거한다. 누런 황사와 송홧가루 꽃가루를 막는 핵심에 점액이 있고 그것을 방어하는 점액의 분비 능력의 보강에는 더덕이 좋다.
점액은 신체의 대부분에서 분비된다. 눈물, 콧물, 침, 소화액 등 기관과 생식기에 이르는 모든 부분이나 피부에서도 개구리 표면처럼 매끈한 액이 약간씩 분비된다. 이들 점액에는 다양한 세균과 인플루엔자, 헤르페스, 감기바이러스 등 엄청난 종류의 외계 분자에 대한 항체가 포함되어 있다. 자연면역의 최전선에서 코팅 처리를 하는 것처럼 신체의 외부를 감싸고 방어한다. 광해군은 더덕을 먹고 사관들에게 과도한 욕을 얻어먹었지만, 더덕은 현대의 황사와 꽃가루철엔 필수인 약선음식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