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older;주시자 - 발단 (1)

[The Arcturus]

희미한 달빛이 흔들리는
고요한 강가를 바라보며
쓸쓸한 소슬바람 사이를
혼자서 외로이 헤메이네

나그네 고달픈 여행길은
언제나 괴로움뿐이지만
다시금 심신을 추스르며
혼자서 외로이 헤메이네

강렬한 뙤약볕 아래에서
망망한 대양을 바라보며
갈증에 지쳐 울부짖어도
혼자서 외로이 헤메이네

그러나 그대가 알 수 없는
진실한 자유로움 하나로
아직도 나는 이 긴 여정을
혼자서 외로이 헤메이네


라프란드의 산길은 역시 고요해서 좋다. 게다가 이 곳에선 내 목소리가 더욱 잘 반향되어 즐겁다. 이 분위기에 맞춰 노래도 더욱 운치가 살아나는듯 싶다. 인간들의 예술을 추구하는 열망 하나는 정말 감탄할 만한 것이다. 감정의 기복이 거의 없는 비홀더인 나조차도 노래 하나로 감상적으로 만들 정도이니까. 물론 옆에 흐르는 개울물에 고즈넉한 달빛까지 비치고 있는 풍경도 지금 나를 이렇게 만든 요인중 하나일 테지만.
감정이 타인에 의해 조절된다는 것이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이런 경우라면 즐겁다. 문득 눈을 들어 달을 바라본다. 마치 금가루를 뿌리듯이 은은한 빛을 발하는 달은, 정말, 정말 아름답다. 나도 모르게 이런 중얼거림이 흘러나온다.

“달이, 아름다-----------------운걸.”

정말이지, 오늘 밤만은 감정에 샘물에 한껏 젖어들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밤이다. 단지, 불청객들만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결국 불안은 현실이 되어 버렸다.

“어이, 거기 예쁜 아가씨! 잠깐 우리랑 놀다가지?”

뒤에서 날 부르는 걸걸한 음성. 순간 모든 흥이 다 깨져버리는 것을 느낀다. 어리석은 인간들, 난 이런 사소한 일로 힘을 쓰고 싶지 않은데...
다시금 그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이, 이봐! 튕기지 말고, 잠시만 같이 놀자고?”

젠장, 기분 더럽네. 그 낯짝이나 한번 볼 셈으로 뒤로 돌아본다. 다듬지 않은 지저분한 수염이 텁수룩하게 얼굴을 뒤덮은 더러운 사내 셋. 아무래도 눈을 버린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졌는지, 실실 쪼개던 사내들이 기분 나쁘다는 투로 말한다.

“그렇게 경멸하는 듯한 눈으로 보지 말라고, 아가씨. 우린들 뭐 이 산골짜기에 짱박혀서 이러고 싶을 것 같아? 엉?”

사내가 아무리 외쳐댄들, 그가 산적이라는 사실이 변할 리가 없다만, 그는 내가 그의 말을 흘려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지껄여댄다. 어리석은 인간은 ‘흐름’을 느끼지 못하고 자기가 싫어하는 모든 사실을 부정한다. 바보들. 저런 녀석들에게 꼭 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

“바보녀석들, 불쾌하니까 지랄 말고 썩 꺼지지 않으련?”

순간 사내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역시 재미있다. 말 한마디로 인간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물론 나는 즐겁지만 저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는 듯 사내들이 험악한 표정을 짓고 슬슬 나에게 다가온다. 뭐, 그들이 나를 공격한다면, 나도 그 이상은 어쩔 수 없다. 그들을 벌하는 수밖에. 사내 한명이 내 코앞에 그 더러운 얼굴을 들이밀고 말을 걸어온다.

“이봐, 이봐. 이렇게 예쁘장한 아가씨께서 얼굴에 흉터라도 나면 쓰나... 그냥 오늘, 우리랑 한 번 놀아주고 가. 뭐 닳는 것도 아니잖아?”

더러운 녀석. 욕망에나 빠져 사는, 인생을 헛산 녀석. 내가 이 사내들에 대해 최종으로 판단을 내린 결과다. 더 이상 이렇게 시간 끌 필요는 없다. 한번에... 보내줘야지.

“자, 자. 제가 불꽃 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음... 게헨나 블레이즈(Gehenna Blaze).”

나는 그들을 향해 손을 내뻗으며 조용히 말한다. 하지만 사내들은 내가 마지막에 한 말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내 목소리를 듣고는 헤벌레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으니까.
곧 내 손에서 불길이 나간다. 하지만 보통의 붉은 불길이 아닌 이글거리는 녹색의 불길이다. 당연하다. 이 불길은 타르타로스의 제 1전당, 게헨나에서 불러들인 불꽃이니까. 망자들의 영혼까지도 태워버리는 이 불길을 사용한 것이, 너무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지만 이미 늦어있다. 불길은 이미 사내들을 감싸고 그 육신을 게걸스럽게 취하는 중이니까. 하지만 이대로 놔둘수도 없다. 저 불길이 이 아름다운 산을 다 태워버릴지도 모르니까.

“디스어피어런스(Disappearance).”

내 손에서 자그마한 푸른 구체가 반짝 반짝 빛난다. 하지만 이 외양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 구체는 무엇이든 다시 원래 자신이 태어난 무(無)의 공간으로 돌려보내는 무서운 물체다. 곧 초록 빛깔의 불길은 이 구체 속으로 빨려들어 소멸되었다. 나는 푸른 빛의 구체를 사라지게 한 후 다시 길을 거닐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다시 그 노래를 읊조렸다.

희미한 달빛이 흔들리는
고요한 강가를 바라보며
쓸쓸한 소슬바람 사이를
혼자서 외로이 헤메이네

.........

글틀

[키릴]

운율이 좋군요.

[c.e.마녀]

성질 있는 아가씨네. ㅇ_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