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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영상 ▒▒ 스크랩 가리봉동(4)
대은 추천 1 조회 99 11.06.06 07:51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가리봉동(4)

 

 

 

                                                                                                                                                                - 여강 최재효

 

 

 

 

 성탄절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아침부터 하늘이 회색빛이 되어 꾸물거리더니 오후

접어들자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어릴 때부터 눈을 좋아하는 나는 이유도 없이

가슴이 설레면서 소풍가는 초등학교 학생처럼 기분이 들뜨기 시작하였다. 나도 모르게

아다모가 불러 히트시킨 ‘눈이 나리네‘를 흥얼거렸다. 오늘은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나는 창문을 열고 솜사탕같은 눈을 손바닥에 받아 혀로 맛을 보기도 하고 일부러 머리

창밖으로 길게 내밀어 눈을 맞기도 하였다. 머리에 눈이 쌓인 모습이 궁금해 거울

들여다보았다. 퍽 행복해 보이지는 않고 즐거워 보이는 표정도 아닌 한 젊은이가 나

를 응하고 있는데 어딘가 모르게 우수가 눈가에 잔잔히 묻어나고 있었다. 나는 거울

속의 사나이가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이리저리 머리를 돌리며 살펴보았다.

 

 금방 눈물이 또르르 떨어질 것만 같아 불안했다. 나는 왜 나의 얼굴이 이처럼 우수에

모습으로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 눈이 점점 더 큰 형태로 내렸다. 곧 세상이 새하얀

(雪國)으로 변할 거 같아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성탄절 이전

화연이를 찾아내고 싶었다. 며칠 전 부터 나는 가리봉동에 가기 위하여 사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사전준비라야 가까운 복덕방에 가서 가리봉동의 위치와

구조 그리고 주거지 밀집지역등을 파악하고 메모하는 거였다.

 

 그러나 아무리 지도를 보며 가리봉동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아도 지도만 의지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화연이를 처음 알게 된 그해 크리스마스이브에 나는 화연이와 장호원읍

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읍내에서 여학생과 함께 다니다 담임선생님이나 나를 아는 사람

들 눈에 띄면 이상한 소문이 돌 것 같았다. 

 

 여주에서 아침 일찍 만나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만에 장호원에 도착한 우리는 장호원

읍내를 아무 거리낌 없이 활보하면서 데이트를 즐겼다. 중국집에 가서 입에 자장면을

뜩 묻히며 자장면을 먹다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배꼽을 잡기도 하였다.

 

 그날 화연이와 내가 본 영화는 송재호와 염복순이 열연하는 ‘영자의 전성시대’였는데

도시화와 산업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청년들의 슬픈 멜로물이었다.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영자와 창수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가슴 졸이며 관람하는 나와

화연이 가슴에 충격이며 우리 스스로 성인이 되었음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스크린 속에서 창녀가 된 영자와 때밀이 청년 창수가 사랑을 나누는 야릇한 장면이 나오

자 나는 가슴이 떨리고 속이 울렁거려 어디다 시선을 둬야할 지 몰라서 괜히 킁킁 거리며

몰래 화연이를 살펴보기도 하고 아래와 옆 좌석에 앉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도 하였

다. 얼굴이 화끈거려 나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하면서 슬그머니 일어나 로비에 나와 길

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 언제 내 뒤를 따라 나왔는지 화연이 배시시 웃으며 내 팔짱을 꼈다.


 “바보......”
 “......” 나는 화연이의 말뜻을 얼른 알아듣지 못해 그녀에게 되묻고 싶었지만 벌겋게 달궈

진 양 볼이 화끈거려 똑바로 볼 수 없었다.
 “하필이면 제일 멋진 장면이 나오는데 화장실 갈게 뭐람?”


 “그, 급해서. 참고 앉아 있다가 오줌 싸면 어떻게 하라고.” 나는 수줍게 몇 마디 하고 비실

비실 거리며 매점에서 과자를 사왔다.
 “누가 과자 먹는대?" 화연이는 뾰로통한 얼굴로 나를 원망하는 눈치였다.
 “그럼, 나 혼자 먹는다.” 나의 눈치 없는 한마디가 화연의 심기를 건드린 듯 했다.


 “너, 정말로 바보구나.”
 “......” 나는 그녀가 정말로 화가 난 것 같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냥 멍하니 서있자

그녀는 얼른 극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럴 땐 어찌해야하지? 얼른 따라 들어가서 살며시 화연이 옆에 앉으며 될까? 분명

화연이 나에게 알 수 없는 그 무언가를 갈구하는 눈치였는데. 그런데 우린 아직 고등학

교 학생이잖아. 이런 야한 영화를 몰래 들어와 보는 것도 가슴이 떨려 죽겠는데 화연이가

삐쳐 있으니 어떻게 풀어준담? 에라 모르겠다. 일단 들어가고 보자.’

 

 내가 슬며시 화연이 옆자리에 앉자 화연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

다. 공교롭게도 영자와 창수가 또 진한 사랑의 합주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콩닥거리는 가

슴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화연이 손을 잡자 화연이 처음에는 거절하더니 이내 나에게 손을

맡겼다. 나는 점점 더 화연이에게 바싹 달라붙어서 팔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려

고 하자 화연이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머리를 기울였다. 그녀의 머리에서 향긋한 냄새가

났다.


 “어, 이렇다 오늘 가리봉동에 못가는 거 아닌가?” 나는 잠시 미몽(迷夢)에서 깨어나

회색빛 하늘을 원망하였다. 함박눈이 좀 전보다 더 큰 모양으로 떨어졌다. 마음이 다

급해지기 시작하였다. 몸은 이미 버스 안에 있었다. 두꺼운 겨울옷을 단단히 무장하고

집을 나섰다. 생전 처음 가보는 가리봉동이었다. 영등포 시장 앞에서 가리봉동 가는

버스를 무작정 올라탔다. 무뚝뚝하게 생긴 차장 아가씨에게 가리봉동이 얼마나 걸리

느냐고 물으니 오늘은 눈이 많이 내려서 40분 이상 걸릴 거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였

다.


 운전기사는 벌써 성탄절을 맞은 듯 크리스마스 캐럴 송을 크게 틀어 주었다. 눈이

그치려는지 하늘이 맑게 개면서 눈발이 약해졌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차창 밖의 풍경을 유심히 보았다. 버스와 택시가 눈길에 미끄러져 충돌사고가 나 났는

지 버스 승객들도 내려서 두 운전기사가 싸우는 모습 바라보고 있었다.  점심 때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 시내에는 많은 행인들이 오고갔다. 연말의 어수선하고 들뜬 분위

기가 전해졌다. 버스는 구로동을 경유하여 거의 한 시간 만에 가리봉동에 도착하였다.


 여차장은 나에게 눈짓을 하며 내리라고 하였다. 눈 속에 파묻힌 가리봉동은 무척

낯설게 다가왔다. 마치 이국의 어느 중소도시에 온 것 같았다. 거의 같은 모양의 파란

색 기와를 얹은 단층 주택이 일렬로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았다. 우선 나름 준비한 지도를 펴가며 가리봉동을 한 바퀴 돌아 볼 요량으로 눈길을

걸었다. 눈이 운동화를 거의 파묻을 정도로 쌓여 있었다.

 

 막 개발붐을 탄 지역처럼 여기 저기 건물을 짓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약간 야

트막한 구릉 위에도 다닥다닥 주택들이 게딱지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눈밭을 헤매고

다니며 가리봉동을 전체적으로 살펴본다는 일이 얼마나 무모하고 황당한 가를 나는

뒤늦게 깨닫게 되면서 서서히 희망이 실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처음 가리봉동을 찾

은 기분은 사막에서 잃어버린 낙타를 찾으러 온 사람처럼 어디를 먼저 가야 할지 난감

하였다.

 

 우선 지형적으로 가장 높아 보이는 곳으로 올라가 보았다. 교회가 보이고 구로동 방

향으로 수백 채도 더 되는 공장건물들이 보였다. 나는 속으로 저 공단 어딘가에 화연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화연이가 저 공단에서 일을 하고 있다면 주로 단층

주택들로 꽉 들어찬 가리봉동에 방을 얻어 언니하고 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회색 하늘로 공장 굴뚝에서 나는 파란색 연기가 곧장 올라가며 침침한 하늘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잠잠하던 눈이 한 두 송이씩 내리면서 하늘은 다시 심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눈이 더 쌓이기 전에 화연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아내야 했다. 언덕에

서 내려다 본 가리봉동의 주택가가 한 눈에 들어오기는 하는데 그 숫자가 너무 막막하

여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수첩을 꺼내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가리봉동의 지형을 대충 스케치 하고 다시

큰길가로 내려가 복덕방을 찾기로 하였다. 버스에서 내린 정류장 근처 복덕방에 들어

섰다. 허름한 복덕방에 세 노인들이 앉아서 바둑을 두고 있다가 내가 들어서자 한 노

인이 벌떡 일어서더니 억지로 웃었다.


 “어서 오세요? 아이쿠, 총각이구만. 방 구하려고?” 도수가 무척 높아 보이는 안경

을 콧등에 걸치고 신문을 뒤적이던 60중반의 한 노인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저어, 사람을 좀 찾으려고 왔습니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복덕방 주인

눈치를 보며 겨우 한마디 하였다.
 “집을 구하러 온게 아니고? 몇 번지에 사는 누굴 찾는데?” 복덕방 주인의 말투가

금방 달라졌다.


 “번지는 모르겠고요. 여자 친구인데 가리봉동에서 살면서 회사에 다니고 있거든요.”

나는 복덕방 주인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좁혀지는 모습을 보며 불안해하였다.
 “허-, 그 것참. 주소도 모르면서 어디서 사람을 찾는단 말인가?”


 “그 애가 시골서 올라와 회사에 다니니까 직장 생활하는 아가씨들이 몰려 사는 주택

지역이 어디쯤 있는지 좀 알려주세요.” 나의 사정에 복덕방 주인은 이상한 시선으로 나

를 바라보며 이상한 상상을 하는 듯 했다다. 복덕방 주인은 상당히 깐깐해 보이는 성격

의 소유자 처럼 보였다.


 “대학생 같아 보이는 데, 서울에는 김씨, 이씨, 박씨, 최씨성 가진 사람이 모래알

보다 많아. 그런데 대충 사는데 만 알아가지고 어떻게 자네 여자 친구를 찾는다는 게야?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일세.” 신문을 뒤적거리고 있던 노인이 나의 여린 가슴에

말뚝을 박고 있었다.


 ‘염병, 알려주기 싫으면 그만이지 무슨 악담을 한담.’ 나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나왔

다. 동시에 세 노인들이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내 뒤통수에 날아들었다. 나는 다른

복덕방을 들어가 보았다. 이번에는 50 중반의 퉁퉁한 여자가 나를 반겼다. 후덕해 보

이는 여자는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아주머니, 사람 좀 찾으려고요.”
 “여긴 집이나 방을 보러오는 곳인데? 사람 찾으려면 파출소에를 가야지.” 복덕방

여자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제 친구가 가리봉동에 산다고 해서 무작정 왔습니다. 이십대 초반 아가씬데요. 집을

몰라서요. 어떻게 찾는 방법 없을까요?” 복덕방 여자 역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

며 신기한 듯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방을 보러왔다고?” 여자의 얼굴이 금방 굳어졌다.
 “죄송합니다.”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미안해하였다.


 “학생 같은데, 지금 밖에 눈이  태산처럼 쌓였는데 주소도 없이 어디 가서 학생 여자

친굴 찾는다고? 이 가리봉동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있는데. 쯔쯔쯔……. 다시 가서

여자 친구 주소를 알고 와요. 주소를 정확히 알고 다시 오면 내가 그 집이 어디 있는지

알려줄게.” 나는 더 이상 여자에게 도움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아 복덕방을 나와 무작정

주택가로 들어갔다.


 ‘아아, 참으로 무모한 짓이야. 복덕방 주인들 말이 백번 맞아. 아무리 가리봉동이

작다고 하여도 주소도 없이 사람을 찾으려 하다니. 나도 참 엉뚱하다.’ 나는 속으로 중

얼거리며 수첩을 꺼내 나름 지역을 분할하여 스케치한 구역을 살펴보고 제일 먼저 구로

동 쪽 방향부터  찾아보기로 하였다.

 

 다세대 연립 주택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대개가 2-3층 정도였다. 나는 제일 첫 집으로

2층연립 주택을 선택하고 올라갔다. 201호라는 번호표가 철문에 자랑스럽게 붙어 있었

다. 초인종을 누르자 금방 문이 열렸다.


 “누구세요?” 30중반의 여인이 도끼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저어, 이집에 이름이 화연이라고 하는 20대 초반 아가씨가 살고 있지 않나요?”
 “이 집에는 저 밖에 없는데요. 다른데 가보세요.” 여자는 재수 없다는 얼굴 표정을

지으며 철문을 사정없이 닫아버렸다.


 “원, 인심하고는? 내가 무슨 동냥 달라는 거지인가?” 나는 첫 집부터 기분이 몹시 상

했다. 202호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안에서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네. 사람 좀 찾으러 왔습니다.”


 “무슨 사람이오?” 덩치가 남산만한 남자가 속옷 차림으로 문을 열고 서서 나를 노려봤

다. 입에서 술 냄새가 풍겼다.
 “여기 혹시 화연이란 이름의 20대 초반 아가씨가 세 들어 살지 않나요?”
 “없수. 나 원, 재수가 없으려니까 별놈이 다 와서 귀찮게 하네.” 


 “뭐라구요? 아저씨, 내가 별놈으로 보여요?” 나는 순간 화가 나서 남자에게 대들었다.

 “그래, 이눔아 별놈처럼 보인다.”
 “정말, 이 아저씨가? 사람이 없으면 없는 거지 욕은 왜하세요?” 나는 씩씩거리며 문밖에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있을 때 남자의 마누라 되는 여인이 나오더니 다짜고짜 문을 쾅하고

닫아버렸다.


 “원, 빌어먹을 인간들을 봤나?” 나는 큰 소리로 한마디 내뱉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초반부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하면서 나는 다리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겨우 두 집 알아보고 포기한다면 나 자신이 우습게 되는 것 같아 어떠한

일이 있어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세요?”
 “아네, 사람 좀 찾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앳된 여자애 목소리가 문 안에서 들렸다.
 “무슨 사람이요?” 여자는 문도 열지 않고 다시 물었다.
 “이집에 화연이라 아가씨가 세 들어 살고 있지 않나요?”
 “그런 사람 없어요. 다른데 가서 알아보세요.”
 “미안합니다.” 나는 큰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몸을 사리고 옆집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안에서 나이든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더니 막 잠에서 깬 듯 부수

수한 중년 여인의 맨 얼굴을 내밀었다.
 “사람 좀 찾습니다. 이집에 화연이란 아가씨가 살고 있지 않나요?”


 “고등학교 다니는 우리 딸이 화연인데. 그 애를 왜 찾노?”

 “제가 찾는 화연이란 아가씨는 스물한 살인데요?” 여인은 나의 말에 아무런 대구도 없이

문을 닫아버렸다.


 “죄송합니다만, 이집에 화연이란 아가씨가 살고 있지 않나요?”
 “그런 사람 없어요.”
 “안녕하세요? 이집에 혹시 화연이란 아가씨가 살고 있지 않나요?”

 “없어요 그런 사람. 원 별꼴이야.”


 “죄송합니다만 이집에 화연이란 아가씨가 세 들어 살고 있지 않나요?”
 “이 집엔 남자들만 있소.”

 “사람을 찾습니다. 화연이란 아가씨가 혹시 살고 있지 않나요?”
 “다른데 가봐요. 그런 사람 우리 집엔 없어요.”


 “안녕하세요? 화연이란 아가씨가 이집에 살고 있지 않나요?”

 “원 별일일세. 백주 대낮에 아가씨를 왜 찾노? 청량리 오팔팔에나 가보던지.”
 “화연이란 아가씨가 혹시 이집에 살고 있지 않나요?”
 “총각 우리 집엔 화자는 있는데. 화자 만나게 해줄까? 마흔 네 살인데. 흐흐흐흐흐.”

 
 “아주머니 이집에 혹시 화연이란 아가씨가 세 들어 살고 있지 않나요?”
 “우리 집엔 남자회사원 한명이 세 들어 살고 있는데.”
 “죄송합니다만, 이집에 화연이란 아가씨가 살고 있지 않나요?”

 “우리 집엔 두 늙은이 밖에 없소.”


 “저어 미안합니다만, 이집에 화연이란 아가씨가 살고 있지 않나요?”
 “있는데. 와 그랴? 그 애 아침에 지에미랑 유치원 갔는데.”

  눈이 도로위에 20센티미터 이상 쌓인 듯 했다.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겨우

연립주택 50여 가구를 뒤졌을 뿐이었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며 시장기를 느꼈다. 집

에서 출발할 때 점심을 단단히 먹고 왔는데 벌써 배가 고팠다.

 

 눈 속을 걸어 다니느라 운동화도 젖은 상태에서 거의 얼어있었다. 발도 아프고 허기도

졌지만 이를 악물었다. 사람이 사람을 찾는데 집 주인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마음이 여린

나는 큰 상처를 받고 있었다. 시간은 6시가 훨씬 넘어 7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다시 화연이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아주머니, 우선 소주 한 병 주시고요. 김치찌개 얼큰하게 해주세요.”
 “어이구, 몸이 꽁꽁 얼었나 봐요. 이리 와서 난로를 좀 쫴요.” 나는 소주 한 병을

안주도 없이 단숨에 마셔버리고 또 한 병을 주문하였다. 소주 두병과 김치찌개를 드

니 얼었던 몸이 녹는 듯 했다.

 

 나는 급한 김에 빨리 식사를 마치고 다시 화연이를 찾아 나섰다. 사방이 하얗게 보

였다. 가로등 불빛이 눈 위에 쌓이면서 오렌지 빛을 띠었다. 마치 사방의 길이 아득한

꿈길 같았다.


 ‘아아, 이렇게 찾다가는 한 달 아니 일 년을 찾아도 못 찾겠어.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

할 수도 없고. 어쩌지? 오늘은 그냥 집으로 갈까. 아니야, 최 씨가 고집이 있지 여기서

포기하면 안 돼. 끝까지 찾아보는 거야. 끝까지.’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시  주택

가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눈길이 차량과 행인들 발걸음에 반질거렸다.

 

 자칫 잘못하면 길바닥에 나뒹굴기 십상이었다. 거리에는 행인도 뜸했다. 눈은 그쳤지

만 바람이 살살 불었다. 바람이 세계 불면 눈보라가 골목길을 뒤덮었다.  금방 양 볼이

얼어 버리고 손발이 저려왔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반사된 눈이 마치 사막의 모래

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심호흡을 한뒤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단단히 채비를 하고 골목길로 들어섰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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