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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카페」로뎀나무 원문보기 글쓴이: 카페지기
용서에 대한 예화 모음 뒤늦게 경찰서로 달려온 부인의 남편은 너무나 분하고 원통하여 들어서자마자 곱슬머리 청년을 두들겨 팼습니다. 길길이 뛰며 틈도 안주고 사정없이 내려치는 부인의 남편을 그때 경찰이 말리지 않았다면 청년은 맞아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칼을 사서 가슴에 품고 눈을 부릅뜨고 `복수! 복수!' 하는 아들을 어머니가 보았습니다. 한참 듣던 아들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옆방으로 뛰어가 어머니를 와락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것을 안 세 사람은 다시 한번 끌어안고 이번에는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방바닥에는 두개의 칼이 번득이고 있었습니다. ⓒ최용우 여러신문에 실렸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연설에서 민간인 마을에 폭탄을 투하한 비행기 조종사를 만나면 그를 용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자리에 죤 머플러라는 비행기 조종사가 참석하여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도저히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습니다. 일로 인해 전 그동안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용서해 주시오. 용서해 주시오" 그리고 다들 용서를 빌고 용서하는 감격스런 장면 앞에서 눈물을 훔치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동생은 원래 동생이니 동생이라는 말을 들어도 아무 상관없겠지만 형은 ‘동생’이라는 말을 들으면 곤란합니다. 부드러운 말씨로 되갚아 주세요. 상대방의 오만불손함이 당신을 화나게 할 땐 예의바른 공손함으로 되갚아 주세요. 당신을 화나게 한 상대방은 하나 더 미움을 얻고 가련함이 더 해지고 당신은 하나 더 미움을 지우고 사랑이 더해집니다. 미움은 단지 순간의 실수일 뿐 지니고 있어야 할 의미는 없습니다. 용서함으로써 우리들은 성숙해져 갑니다. 미움은 늘 어딘가에 서성이고 있습니다. 미움에 지배받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용서가 만든 지우개가 필요합니다. 용서함으로써 지우개를 만드신 당신 당신 가슴 속에 채워진 것들 중 만약 미움을 지운다면 그 만큼 당신은 무엇을 채우시렵니까? /월간 좋은 생각 다만 우리 스스로가 미움에 갇혀 삶의 평안을 잃고 주님께 나아오는데 어려움을 겪을까 염려하시며 용서함으로 마음의 자유함을 얻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용서의 다리를 내려 주님께 진심을 아뢰십시오. 해결되어지지 않는 미움의 문제를 주님께 맡겨드리십시오. 오늘, 용서함으로 주님 안에서 평안과 자유를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는 제후의 영지에 있는 농노들이 당하고 있는 부당한 처사를 지적하고서 앞으로는 자비로 대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런데 그의 너무도 단도직입적인 말투에 몹시 화가 난 제후는 언성이 높아지더니 급기야 티흘의 얼굴을 후려치게 되었다. 이 같은 제후의 행동에 참을 수 없게 된 티흘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집을 나왔다. 그러나 얼마간 걸어갔을 때 그는 제후를 화나게 한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즉시 제후의 집으로 되돌아간 티흘은 그의 발치에 엎드려 그를 격분케 한 데 대해 용서를 빌었다. 제후는 너무도 놀라서 이 선한 사람 곁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고 서로 축복을 빌었다. 그 이후, 제후는 농노들에 대한 그의 부드럽고 관대한 친절함으로 그 지방 전역에서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분노를 뒤로하고 오히려 무릎꿇고 먼저 용서함으로 긍휼과 평화를 심은 티흘 주교를 통해서 나의 삶의 모습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때 남루하고 몹시 피곤해 보이는 한 인디언이 지나가다가 그 신사에게 빵을 좀 달라고 애걸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이 마시는 맥주라도 한 잔 주십시오"하고 부탁했으나 역시 거절 당했습니다. 몹시도 배가 고프고 갈증이 난 인디언은 마지막으로 물 한 모금이라도 달라고 사정했지만 미국신사는 "너처럼 개같은 인디안에게 줄 물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인디안은 슬픈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방향감각도 없이 산 속에서 헤매는데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그때 그 곳을 지나가던 인디언이 그의 딱한 사정을 보고 당장 구출해서 자기 집으로 안내하며 후히 대접했습니다. 그 신사가 정신을 차리고 난 후 가만히 보니 자기를 구출한 인디언은 바로 얼마 전에 자기가 박대했던 그 인디언 이었습니다. 미국신사는 너무 어이가 없고 부끄러워서 어쩔줄 몰라하였습니다. 그런 미국신사에게 이 인디언은 조용히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얼마 전에 나에게 한 것처럼 내가 당신을 대했다면 지금쯤 당신은 산중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감동시키며 감복하게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잠25:21-22) 성만찬의 순서가 있었습니다. 장로님과 그 성도는 주님의 몸과 피를 서로 나누면서 각각 떨어져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그 교회의 목사님이 이런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예배가 끝난 후에 장로님에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를 상대하기도 싫기 때문에 떨어져 앉았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유다가 자신을 팔아 넘길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와 함께 앉아서 만찬을 나누시지 않았습니까?” 사실 돈 거래에서 그가 딱 한 번 실수를 했던 것 뿐인데 그것을 가지고 자신과 차별을 두는 것은 자신이 비난받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장로님은 그 성도와 좋은 관계를 회복하여 가까이 앉아 성찬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 창고는 쥐가 많아 목화를 상하게 하므로 고양이 한 마리를 사 놓되 고양이 값을 4등분하여 지불하고 각자 고양이 다리 하나씩을 맡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가 왼쪽 다리를 다치게 되어 그 다리의 주인이 기름 묻은 붕대를 감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고양이가 난로에 너무 가까이 있다가 붕대에 불이 붙게 되었고, 심하게 뛰어다니다 결국엔 목화더미를 불태우고 말았습니다. 세 사람의 상인은 붕대를 감은 다리의 주인을 고소하였습니다. 붕대 감은 다리 때문에 불이 난 것이니 그 다리 주인이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재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 나머지 세 다리의 주인이 배상해야한다." 유명한 랍비 힐렐은 "네가 그 사람의 환경이나 입장이 될 때까지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가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용서하지 못할 대상은 아무도 없습니다. /장자옥 목사 | 간석제일교회 우물 주인 토비아스가 물을 거저 주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토비아스는 아들과 함께 먼 길을 떠나며 하인에게 ‘누구에게든지 물을 거저 주라’며 우물 관리를 맡겼다. 하인은 모든 사람에게 물을 주었지만,얼마 있지 않아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에게만 물을 주었다. 시간이 흐르자 자기에게 잘 보이는 사람에게만 물을 주었다. 주민들은 하인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우물가에 주인의 아들이 나타났다. 그 는 하인을 꾸짖고 주민들에게 예전처럼 마음껏 물을 가져가라고 했다. 주민들은 나쁜 짓을 한 하인에게 물을 주지 말라고 했지만 아들은 “하인에게도 물을 주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라며 종을 용서했다. 하나님은 내게 많은 책임을 맡기셨다. 주님과 같이 모든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 책임까지도 말이다. 진정한 사랑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다. /장학일 목사(예수마을교회) 그는 붉은 신호가 들어온 것을 보고도 직진하다가 벤츠 승용차를 받아버렸다. 벤츠는 조수석 문짝이 부서지고 목사 차는 폐차할 정도였다. 상대 차에서 신사가 나오고 부서진 소형차에서 목사가 나와 서로 몸은 안 다쳤느냐고 물었다. “죄송합니다.저는 목사인데 붉은 신호가 들어온 것을 보고도 기도하며 운전하다 사고 냈습니다. 모든 잘못은 제게 있으니 어떤 요구도 수용하겠습니다.” “목사님이 잘못 인정하시니 고맙습니다. 목사님이 제 차문 부서진 것만 보험으로 고쳐주십시오.” 목사는 매우 고마워 명함을 주었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보험 청구서가 날아오지 않았다. 대신 중형 새 자동차 한 대가 교회로 배달됐다. “저는 지난번 사고 때 만난 집사입니다. 저는 큰 회사를 경영하고 있어요. 가난한 목사님을 보고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자동차를 드립니다. 그리고 내 차는 내가 고쳤습니다.” /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 관해 말하고 있다. 그 교회가 위치한 곳은 자그마한 촌이었기 때문에 그 거짓된 비방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즉 마을 사람이면 누구나 그녀가 나쁜 여자인 줄로 잘못 알게 되었다.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도 그녀를 멀리 했다. 이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목사와 장로들 그리고 교인들을 한없이 미워했다.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그녀는 7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집안에서 보내면서 하나님이 교회를 징계하시기를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너무 외로워서 '만일 그들이 당장 용서를 구한다면, 나 역시 그들을 용서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방의 사과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극심한 심적 고통을 느꼈다. 이에 그녀는 무조건적으로 그들을 용서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께 자신을 비방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축복할 수 있기를 간구했다. 그리고나서 그녀가 교회로 돌아갔을 때, 놀랍게도 모든 교인들이 그녀를 환영했다. 이로써 결국 그들간의 화해가 이루어진 것이다. 용서하기를 실패하면 분노, 원한, 불만 그리고 불화가 초래된다.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하나님이 능력 주시면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반은 남자들 뿐이라 누구의 주먹이 센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친구들은 서로 자신을 드러내려고 주먹질을 하기도 했고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65번인 내 짝과 시비가 붙었습니다. 내 짝은 반에서 힘 깨나 쓰는 녀석이었기에 약간 겁이 났지만 용기를 내어 냅다 주먹을 몇 번 날렸습니다. 65번은 맞더니 당황해하면서 화를 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움인지 수업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주먹 한 번 못 날리고 억울하게 몇 대 맞은 65번은 분해서인지 수업 시간 동안 '너 죽었다'는 듯이 계속 뭐라고 중얼거리더군요. 솔직히 전 몹시 떨었습니다. 수업 종이 울리면 보나마나 맞을 것이 분명했으니까요. 어떻게 수업 40여분이 지나갔는지 모릅니다. 종이 울리자 65번은 천천히 일어섰습니다. 난 속으로 "난 이제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손을 내밀더군요."미안해! 내가 잘못했다. 우리 사이 좋게 지내자." 의외였습니다. 그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전 맞을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느낄 때면 가끔 65번이 생각납니다. 그때 65번이 무슨 이유로 그렇게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상처 준 사람들에게 손 내밀지 못하는 나로서는 지금도 나에게 손을 내밀던 짝의 그 용기가 부럽기만 합니다. ⓒ최용우 벤자민 스미스라는 사람이 무차별하게 난사한 총탄에 맞아 쓰러저 숨을 거두었습니다. 윤원준군은 서든 일리노이 대학을 졸업하고 인디에나에서 대학원 공부를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꿈을 키우고 있던 청년이었습니다. 희생당한지 여드레가 지난 후 7월 12일 오후 7시 미국 전 지역에 추모예배광경이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예배의 마지막시간에 희생당한 윤원준 군의 사촌형인 박성호 목사님이 나와서 가족을대표해서 인사를 하는 순간, 그의 인사말 때문에 전 미국인들이 전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오늘 가족을 대표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 형제를 죽인 벤자민 스미스를 용서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 사랑하는 형제의 꿈을 빼앗아가고 피를 흘리게한 이 미국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용서를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족은 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즉 임금은 전의 적이었던 그들을 분명하게 용서했으며 목숨을 보장했다는 것인데 왕이 직접 그린 검은 십자가는 ..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의 한량없는 은혜로 용서받았으므로 자기도 과거의 원수를 한사람 한사람 모두 용서한다는 의미로 검은 십자가를 그렸다는 것이었다. 다른 일엔 일체 비밀이 없으셨지만 오직 노트에 대해서는 함구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이 되서야 비로서 그는 노트를 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노트에 적힌 것은 가족들의 이름과 친구들의 이름 그리고 낯선 사람들의 이름이었습니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생각했던 그는 적잖이 실망했습니다. 부부들에게서 우리는 그들이 안고 살아가는 고통을 보곤 한다 해결되지 않은 관계의 무거운 짐에 눌려 신뢰와 믿음은 깍여 가고 자유와 기쁨은 사라진다 그러나 용서가 있는 곳에는 자유가 뒤 따른다 우리는 인간이 하나님께 가장 가까워지는 때는 바로 자비를 주고받는 과정에 있을 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다 잊어버린 듯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고 해서 그 상처가 아무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먼저 말로 주님께 상처를 시인하고 상처의 원인이 된 누군가를 용서하기로 작정하십시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용서의 문제 이전에 나의 상처 치유를 위한 첫 번째 단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해지길 바라고 원하십니다. 용서를 통해 자유함과 행복을 되찾아 승리하는 인생을 사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고도원 아침편지 얘기입니다. 화가 난 직장 상급자에게서 빰을 맞게 되었답니다. 처자식이 있고, 나이도 있는 사람이 여러 사람 앞에서 뺨을 맞았으니, 얼마나 창피하고, 분하겠습니까? 집에 와서, 며칠 동안 회사도 무단결근하며, 분을 삭이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 두려고 결심하고, 사표를 내기 전, 산으로 올라가서 기도드렸답니다. 뺨 맞은 서러운 생각, 분한 마음, 막상 직장을 그만 두려니 막막한 두려움 등으로 간절히 하나님께 호소하셨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는 중, 뜻밖의 음성을 들으셨답니다. 너를 위해 십자가를 지었다...." 당신의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길을 오르셨던 우리 예수님. 달라고 하셨던 그 예수님의 음성이 아닙니까? 뺨 한대 맞은 것은 어찌 고난이라고, 분해하고, 직장까지 그만두려했을까요? A 집사님은 그 신비한 음성에, 그리스도의 고난을 깊이 생각하며,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고, 눈물로 회개하셨답니다. 그리고는 산을 내려와서 다음날 직장으로 출근하셨습니다. 며칠 간의 무단 결근 후의 출근이었죠. 근데, 회사에서는 그 며칠동안 놀라운 일이 벌어져있었습니다. 그의 뺨을 때린 그 상급자가 아주 곤란한 지경에 처하여, 징계를 받을 처지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상급자가 회사에서 처리했던 여러 일들이 문제가 되었던 모양인데, 그 중에서 A 집사님의 빰을 때린 사건도 문제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A 집사님은 자신의 뺨을 때린 그 분을 두둔하며, 그 분의 구명을 위해 힘썼습니다. 피해 당사자인 A 집사님이 적극 나서서 그 분을 도우니, 결국 회사에서 내리려던 징계도 잘 해결되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뺨을 때렸던 그 상급자는 A 집사님의 "이해하지 못할" 관용과 사랑에 감동되어,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었고요, 지금은 직장 선교회의 한 지부의 leader(지도자)가 되어 열심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술 안마신다고 뺨을 때렸던 바로 그 사람이 말입니다. A 집사님께서 자신의 빰을 때린 그 분을 용서하고 도울 수 있었던 것은 어디에서 나온 힘일까요? 바로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 사랑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그 엄청난 구원을 너무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진 않는지요. 억울하고 슬픈 일을 당할 때, 십자가에서 달리셔서 모든 것을 쏟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우리를 향한 그 한없는 사랑을 마음으로 깊이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용서하지 못할 그리고,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이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우리 모두 늘 사랑하며 섬깁시다. 그녀는 남편이 죽기 바로 전에 남편과 싸우고 그가 사고라도 당하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남편이 큰 사고를 당해 죽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녀를 용서하셨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다시 행복을 바라는 것은 죽은 남편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의 모든 죄와 실패에 대해 대가를 치러주셨는데, 왜 우리는 계속해서 후회합니까? 그리스도는 모든 죄의 짐과 실패의 억압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번민하며 자책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에 그는 이전에 결코 깨닫지 못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목적은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을 지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효력이 미치는 것입니다. 만일 그분의 희생이 우리 죄를 씻기에 충분하지 못하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상급생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죽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복수심에 이를 갈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탄식하며 기도할 때 심령 깊은 곳에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용서하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분은 15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서 마음 속으로 원수를 수없이 살리고 죽였습니다. 학교 관계자들은 얼굴을 들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분은 부드러운 말로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들을 데려가셨습니다. 처음엔 저도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독생자를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 인류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변화를 받았습니다’라고 말하며 관계자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검사에게 아들을 죽인 피의자를 관대하게 처리해 달라는 탄원서를 보냈습니다. 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통해 완전한 속죄를 하셨으므로,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서 죄 없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시편을 통한 매일묵상집(아가페) 그것은 바로 용서하는 것이다. - 톨스토이 - 용서에는 한계가 없으며 용서해 주는 일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요 책임임을 선언하는 말이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용서를 빌러 오기전 에 이미 선포 되어야 한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에 대하여 사과하면 용서하겠다가 아니라 사과하러 오기도 전에 용서해 주고 잊어버리는 것이 성서적인 용서관이다. 책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죄악에 대한 솔직하고도 적나라한 인정이다. 용서하기도 쉬운일은 결코 아니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인과 인정, 즉 회개가 없이는 용서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회개함이 없는 용서는 값싼 싸구려 은혜라고. 이 용서는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귀중한 은혜이며 큰 기쁨이다. 그러나 이 은혜와 기쁨을 맛보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과 죄악을 용감하게 신인하고 또한 그것을 정녕 가슴아파하는 사람이다. 우선적으로 선언되는 용서, 그리고 그것을 회개함으로 받아들이는 단계에서 모든 고통과 상처가 치유되리라고 믿는다. 다 죽임을 당했다. 그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고문하고 온갖 고통과 수모를 주던 바로 그 전범이 아직 살아서 자신과 악수하고 있지 않은가? 그 순간에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즐거웠다고 고백했다. 절대 필요하다. 소년의 이야기다. 난 하나님이 그 죄를 어떻게 도말하고 어떻게 치우시는지 모르겠어요.도말한다는 말이 무슨 뜻이예요?" 도안가라는 사람과 내기를 한다. 탄환으로 눈을 맞히되 팔이나 어깨를 맞히면 무승부로 하고 아무데도 못맞히면 큰 잔으로 벌주를 마시기로 했다. 이런 형편이니 죄없는 백성들의 원성이 오죽했겠는가? 궁중 요리를 담당한 요리사는 왕의 성화가 하도 급하여 허둥지둥 요리를 해서 바쳤다. 그런데 그 요리를 먹어본 왕은 충분히 익지도 않은 요리를 가져왔다고 그를 때려죽인다음 그의 사지를 토막내어 버리고 말았다. 한명도 없었다. 천하 만민이 그가 죽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석한 신하들에게 술 한잔씩 따라드리라고 했다. 왕의 특별한 호의였다. 분간할 수 없는 어둠에 휩싸여 버렸다. 바로 그때였다. 주가 허희의 가냘푼 허리를 감아 당기는 것이 아닌가? 허희는 순간적으로 그 사람의 갓 끈을 끊어쥐고 몸을 뺀다음 왕에게로 달려가 이런 일이 있었다고 보고했다. 이 말을 들은 순간 왕은 불을 켜려는 시종들의 동작을 제지하면서 말했다. 오늘은군신간의 허물없는 즐거움을 위하여 마련한 자리니 경들은 지금부터 거추장스러운 갓끈을 모조리 끊어 팽개치고 마음껏 술을 들자고 권했다. 모든 사람들이 갓끈을 끊어버리고 마음껏 즐기다가 돌아갔다. 그때 선봉을 자청한 당교라는 장수의 특별한 지략으로 예기치 못한 전과를 올리자 왕은 그에게 특별한 상을 주려고 햇다. 그러나 당사자는 이미 왕으로부터 한없는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 더 이상 상을 받을 수 없다며 그 옛날 연회석상에서 허희의 허리를 안은 사람이 바로 자기라고 고백했다. 적기가 지산에 떨어지는 것을 보는 순간 그 적병의 생명이 염려스러워서 적기를 따라 착륙했던 영국 비행사관은 죽은 자의 몸에서 한장의 사진을 발견하게 되었다. 거기에는 [너의 어머니로 부터]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를 죽이게 되었으며 또한 자신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죽은 아들의 심정이 되어서 어머니에게 쓰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연을 읽고 보니 그 원수가 도리어 아들로 소생해서 이 어미에게 편지를 보내준 듯이 느겨집니다.] 사진에 쓰여 있던 "너의 어머니로부터"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병사의 어머니가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였다면 서로에게 용서라는 보상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진정 나의 잘못을 정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고린은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며 그의 어머니는 주정뱅이여서 소랑케라는 그의 누이와 함께 살았다. 얼마후 석방되었을때 불구인 동생이 병석에 눕게 되었는데 직장을 얻을수가 없어 그녀의 몸을 팔아 동생의 약값을 대었다. 어느날 우고린은 몰지각한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조롱을 당하였다. 그들은 우고린을 넘어뜨리고 그를 중심으로 춤을 추면서 "네 누이의 연인들이 각각 한 프랑씩을 지불했다."라고 조소하며 그를 모욕하였다. 그 때 그 동리의 나이많은 한 신부가 와서 그들을 물러가게 하고 우고린을 구해주었다. 그 다음날 그 곱추는 모멸감과 치욕을 참을수 없어 강에 뛰어들에 자살을 하였다. 그리고 그의 누이 소랑케는 총으로 자살하였다. 장례식때 교회가 가득 찼다. 그 신부는 강단에서 추도 설교를 하면서 통곡하였다. 주님께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세 번째로 나에게 네 양이 어디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들은 양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리떼였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용서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인 내적 확신의 외적 표출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무서운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용서를 받았는가 못 받았는가 하는 여부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가 아니하는가로 선언하는 셈이 된다. 만일 용서를 받았다면 용서를 할 것이다." 기사 피어홈은 세계 도처에 많은 다리와 터널들을 건설하여 큰 명성을 얻었으나. 뒤에 질병과 실패로 인해 부인과 어린 딸을 데리고 낙향하였다. 죽이고 만 것이다. 노인이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은 그를 냉소했다. 맨 밭을 간 후에 씨를 달라고 애걸하는 노인의 모습을 피어홈은 보았다. 그는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 광에 가서 자신이 쓸 씨앗 반 되를 꺼냈다. 피어홈은 열심히 노인의 밭에 씨를 뿌려 주었다. 긍휼은 우리들이 원수의 밭에 좋은 씨를 뿌리도록 요구한다. 그 로 말미암아 비록 우리 자신의 밭 일부가 맨 땅으로 남겨진다고 하더라도.. 그때 한 교회에 다니던 장인과 사위가 여러 해를 두고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두 사람이 모두 주일날마다 꼬박꼬박 교회에 참석하지만 장인은 이쪽에. 사위는 저쪽에 뚝 떨어져 앉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단 앞으로 나와 주님을 영접하라는 초대를 했을 때 나는 이 쪽에 앉은 장인이 발끝을 들고 살그머니 일어나 무리 저쪽에 앉아있는 사위를 쳐다보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위 쪽을 얼른 바라보았더니 사위 역시 모인 무리의 머리 너머로 장인을 힐끗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뒤따라 사위도 다른 통로를 걸어 내려오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설교단 앞에서 두 사람이 서로 마주치자 그들은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서로 손을 내밀고 악수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채 악수를 하기도 전에 그만 두사람은 서로 얼싸안고 흐느껴 우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두 사람 사이의 모든 난관을 뿌리치고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장벽이 무너졌던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께서 용서할 줄 모르는 마음을 지니고 계신다면 그로 말미암아 많은 다른 이들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고백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당신네들 기독교인인들에 대해 가장 부럽게 생각하는 것은 당신들이 용서함을 받았다는 거예요. 내게는 나를 용서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요" 나타니엘 호오손의 .주홍글씨.에는 양심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비극적 최후를 마치는 젊고 유능한 딤즈데일 목사의 눈물겨운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우리가 다 이 양심이라는 것 때문에 많은 괴로움을 당하지만. 이 양심이 없었든들 이 세상은 이미 망한 지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 세상에는 자기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죄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살인 강도나 사기 횡령뿐 아니라. 시기와 분쟁. 악담과 분노 이러한 모든 죄도 다 이웃에 대하여 무서운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일일이 빚으로 치부되는데. 도무지 갚을 길이 없으니 한심합니다. 인간의 과거. 인간의 역사라는 것은 동판에 아로새긴 기록같아서 지울래야 지울 수도 없고 고칠래야 고칠 수도 없습니다. 과거는 과거이어서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죄가 이제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처럼 관대한 처분에는 오직 한가지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너도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라.는 간단한 조건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우리는 우리 빚을 갚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안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웃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하는 것만이 우리 자신의 모든 추악한 죄를 용서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제독이 한번은 상습적인 탈영병 부하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기 직전에 말하기를 그러나 너는 돌이키지 않았고,새로와지지도 않았다.별 수 없이 너는 죽어야 한다." 하지 않았으며 웰링턴의 충성스런 부하가 되었다. 용서가 가져온 삶의 변화이었다. 생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 왔다. 수가성 여인은 무엇을 발견했는가? (자기의 형편) 예수를 발견했음(19). 메시야를 발견했음(25).(왕, 속죄 주, 예배 대상으로 발견) 그것은 어떤 삶의 태도가 가장 하나님께 영광되고 자기에게 가장 큰 삶의 보람과 행복을 갖고 오는 것일까? 우리들은 이 질문에 대하여 성서가 가르쳐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자. 하겠나이까? 인생에 소외된 삶을 산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을 소외시키고 이웃과 자기를 소외시 킨다. 그뿐 아니라 자기 양심과 자기 의를 소외시켜 가장 고독한 인간으로 만든다. 용서와 사랑과 참된 성공적인 방향으로 돛을 달 것이냐 복수와 미움과 이기주의의 돛을 달 것이냐? 그 돛에 따라 도달하는 항구가 달라진다. 복이 있도다" (롬4:7,8). 결국 인간의 육신의 수명이 다하여 죽는 것이며, 죽은 후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사망이 죄 가운데 사는 인간의 심령 속에 현재 역사하고 있다. 이것이 고통으로 느껴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시32:3,4). 다른 모든 일들은 모두 표면적이어서 죄 용서함을 받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도 또 다른 문제가 여전히 발생한다. 그러나 주님 앞에 우리가 죄 용서함을 받으면 근본적으로 해결되어서 다른 모든 것이 해결된다. 오늘밤에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부를지도 모른다. 다른 일들은 내일로 연기해도 좋으나 하나님 앞에 죄 용서 함을 받기 위하여 회개하고 자백하는 일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 제일 좋은 날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자기의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셨고, 주님은 우리 죄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이 모든 일들은 우리를 용서하시고자 함이 아닌가? 주님은 베드로에게 형제의 죄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 하라고 가르치셨다(마18:21,22). 이것은 곧 하나님 자신의 널리 용서하심의 뜻을 계시하신 것이다. 주님은 십자가의 오른쪽에서 회개하는 강도를 용서하셨다(눅23:43). 여러분 중에 세리, 창기, 간음자가 있어도 하나님은 이시간 용서하신다(눅15:12, 요8:1-11). 주님께 마음을 바치라. 하나님은 여러분을 널리 용서하신다. 하루는 감옥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감옥 속으로 밀쳐 던져졌는데, 침침한 감방 속에서 그 사람이 누구인가 알아지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지나갔다. 감방 속의 모든 크리스챤들은 곧 그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들을 체포하고 고문하던 비밀경찰의 대위였다. 얼마전에, 열 두 살 된 소년이 자기를 면회왔다고 하여 사무실로 들여 보내라고 했다. 수줍어하며 자기의 사무실에 들어 오는 소년의 품에는 아름다운 꽃다발이 한 아름 안겨져 있었다. 소년은 입을 열어서 말을 했다. 꼭 꽃다발을 사서 엄마에게 선물하고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려 왔어요. 그런데 금년에는 당신이 우리 부모님을 체포해 갔기 때문에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는 꽃을 선물할 수 없게 되었어요. 우리 어머니는 크리스챤이기 때문에 나에게 늘 가르쳐 주시기를, 원수도 사랑해야 하고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나에게는 지금 어머니가 안 계시니까 이 꽃으로 대위님의 애기들의 어머니를 기쁘시게 해 드리고 싶어서 가지고 왔어요. 이 꽃다발을 대위님 부인에게 전달해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어떤 신부가 자기 교구의 교인 한 명이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과거, 현재, 미래를 다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정말 그런 은혜를 받았는지를 알고 싶어서 신부가 그를 만났습니다. 있겠습니까?" 진정한 용서는 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인은 모든 일을 그와 의논하고 그에게 많은 일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힘이 좋고 젊은 노예를 사려는데 조우가 병든 노예를 사자고 주장해서 주인은 조우의 말대로 그 노예를 사 왔습니다. 병든 노예는 집에와서도 별로 일을 하지 못했지만 조우는 열심히 그를 간호하고 잘 돌보아 주었습니다. 조우는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런데 뜻밖에 저 사람도 노예가 되어 병들어 있습니다. 내가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기를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저 분이 세상 떠날 때까지 사랑할 것입니다.” 그 여인은 몸을 너무 많이 데었기 때문에 살 수가 없다는 것이 곧 밝혀졌다. 술이 반쯤 깬 남편을 경찰이 연행하여 병실로 끌고 들어왔을 때, 책임 담당관은 그 여인의 목숨이 얼마 안 남은 것을 알고, 어떻게 그런 화상을 당하게 되었는지 경찰에 그대로 말해주기를 재촉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그의 시선이 남편의 그 억센 손에 닿게 되었다. 여인의 얼굴이 잠시 고결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책임 담당관을 향하여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다. 다 받아들여 짠 염수로 정화하여 깨끗한 해수로 만들어 버린다. 자비라는 염수로 깨끗이 정화되어 하나님의 사랑의 염수로 만들어 버리신다. 그러므로 세계에서 더러워진 육신의 생각을 세상적인 지식이나 교양이나 덕망으로 정화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로 깊이 뛰어들어 자비의 염수로 정수되도록 해야 한다. 육신의 골짜기에서 더러워진 영혼이 깨끗함을 받을 수 있다. 그 영혼의 대해에는 자비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이 제독이 한번은 상습적인 탈영병 부하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기 직전에 말하기를 "나는 너를 교육도 시켜보았다. 채찍을들어 너를 때려도 보았고 노동도 시켜 보았다. 굉장히 심각한 벌도 주었다. 그러나 너는 돌이키지 않았고, 새로와지지도 않았다. 별 수 없이 너는 죽어야 한다. 이 때 지혜로운 웰링턴제독 부하 한 사람이 제 독에게 나와서 않았으며 웰링턴의 충성스런 부하가 되었다. 용서가 가져온 삶의 변화이었다. 그 한 집에는 아이가 없는 중년 부부가 살고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들 부부는 싸움이 그치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옆집에는 젊은 부부가 시부모를 모시고 두 아이를 기르며 많은 가족이 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싸우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어느날 옆집을 찾아가서 "대체 어떻게 해서 그 많은 가족들이 매일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살아가십니까? 그 비결을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청했다. "우리 집에 싸움이 없는 것은 우리들은 모두 나쁜 사람들만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내가 방 한가운데 놓여 있던 물그릇을 모르고 발길로 차서 엎질러졌다고 합시다. 나는 `아, 이것은 내 잘못입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저는 저대로 나쁜 사람이 될려고 합니다.그 것이 우리의 비결입니다. 목사님, 저 같은 사람도 희망이 있을까요?"라고 말했습니다. 형제님이 주 안에서 회개하는 순간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라고 말한 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형제님의 온갖 더러운 죄는 십자가 다리 밑에 흐르는 예수님의 보혈에 의해 다 떠내려갔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위로가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기뻐하고 새로운 용기를 가지십시오." 이제 저는 새로운 생수를 받아서 새 삶을 살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밝은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흥같이 붉을 지라고 양털같이 되리라(사1:18)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다리 아래로 흐르고 있는 것은 용서와 의와 사랑과 소망입니다. 우 리는 정죄 의식이나 열등의식이나 좌절감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마귀의 참소를 제하여 주시며 한번도 죄를 짖지 않는 의인으로 삼아 주십니다. /조용기 목사 <설교예화> 부인이 놀라 뒤따라 나가서 남편을 붙들고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스티븐슨이 말하기를 "오늘은 내가 죄를 용서해달라고 주기도문을 주님께 드리기가 괴롭소, 마음이 편치 않소" 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 우리는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하면서도 주일마다 의젓하게 하나님앞에 이 기도를 드립니다. 종교 개혁자 루터가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고 하나님 앞에 뻔뻔스럽게 이 기도를 드리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얼마나 기막힌 말입니까? 그러므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자녀의 신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백번, 만항이라고 형제의 죄를 용서하고도 남을 수 있는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했었다. 너무 화가 나고 분해서 다빈치는 그와 싸운 화가의 얼굴을 유다의 얼굴로 그리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해서 복수도 하고, 그 사람을 불명예스럽게 하여 울화도 풀겸, 대대로 비난을 받게 하고자 했다. 그래서 유다의 얼굴이 제일 처음 완성되었다. 누가 봐도 그것이 레오나르도와 싸운 화가의 얼굴임을 쉽게 식별할 수 있었다. 뭔가 꺼림직하고 그가 최선을 다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생각 끝에, 그 원인은 바로 그와 싸운 사람의 얼굴을 유다의 얼굴로 그렸다는 사실이라고 결론지었다. 드디어 당대의 걸작품이 성공리에 완성되었다. 그것도 동시에 증오와 미움을 색깔로 다른 얼굴을 그리면서... /한국컴퓨터선교회 죄만 보면 실형에 처해야 마땅하지만 이번 한번만 특별히 용서해 주는 것이니 다시는 죄를 저지르지 말아요』 鄭씨의 품에 안긴 영문을 알턱이 없는 아이는 그냥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 朴판사는 이날 鄭씨에게 벌금 1백만원을 선고해 석방했다. 전과 6범이나 되는 鄭씨에게 이례적으로 벌금형이 선고된 것은 임신상태에서 구속돼 그동안 딸을 출산한 鄭씨가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아이를 키울 사람이 없는데다 鄭씨의 불우했던 인생역정이 고려됐기 때문. 적발돼 구속됐었다. 어려서 일찍 부모를 잃은 鄭씨는 돌봐줄 친척도 없어 고아처럼 자라야했다. 鄭씨의 도벽은 생존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되다시피해 절도전과 6범이 됐다. 교도소에 갇혀 실형을 산 것만도 두차례에 2년10개월. 임신8개월의 만삭이었다. 검찰도 鄭씨가 만삭인 점을 고려, 상습절도가 아닌 단순절도로 鄭씨를 기소했다. 그사이 鄭 씨는 지난 4월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나 충남 예산 고향에 내려가 건강한 여아를 출산하고 한달반만에 다시 딸과 함께 구금됐었다. 鄭씨는 1심에서는 전과 6범이나 되는「범죄경력」때문에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었다. /한겨레신문 법원에 제출돼 눈길을 끌고 있다. (당시 34)씨의 아버지 박권기 (60.전남 목포시)씨는 지난달 26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안씨를 자신의 양아들로 입적시켜 회개시키겠다는 탄원서를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유현 부장판사)에 제출했다. 영구가 아들 노릇을 할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고 호소했다. 풀게 됐다. 김씨의 이런 정성이 계속되면서 이에 감동받은 박씨는 1차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말했다. 80년 5월항쟁 때 광주에 투입돼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대야만 했던 당시의 공수부대원이 희생자들을 참배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이다. 공수부대원이 망월동까지 오는데는 무려 15년의 세월이 흘러야만 했다. 고개를 쳐들 면목도 없는 제가 망설이기만 하다가 오늘에야 찾아왔습니다." 광주역 앞에서 비무장 시위대와 맞부딪쳐 총을 쏴야 했던 이상래(37.건설노동자.광주시 광산구 신가동)씨다. 그날 오후 8시께 광주역에 시위대가 버스로 바리케이드를 치며 밀려오자 작전에 동원됐다. 눈을 감고 말았다. 전진하라니까 명령을 어길 수가 없었어요. 뒤돌아보면 권총으로 죽이겠다고 위협해대고...." 이날 시위대는 비무장이었고, 택시승강장에서 역전 분수대까지 붉은 피가 흥건했다. 광주교도소로 이동한 일병은 다음날 아침 가마니에 덮여 손수레에 실려온 `폭도'주검 4구를 교도소 마당에 파묻었다. 고향 출신의 부인과 결혼해 올해 국민학교에 들어간 아들을 두었다. 지척에 두고도 찾지 못하다가 지난해 겨울 혼자 슬쩍 둘러본 뒤 이날은 술과 꽃을 들고 제대로 참배에 나섰다. 유족들과도 언젠가는 만나 용서를 빌고 싶다"고 말했다. 이 결정의 배경에는 2차대전 이후 세계정치질서를 지배했던 냉전구도가 붕괴되고 나서 인종.문화.종교적 차이로 인한 지역분쟁이 급증하는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스웨덴 웁살라 대학의 평화연구학과에 따르면 지난 89년부터 94년 사이에 세계에서 발생한 90여건의 무력분쟁 중 오직 4건만이 국가간의 분쟁이었다. 나머지 모두가 국내에서 일어난 인종.민족.종교 분쟁이거나 영토.정치 문제를 둘러싼 내전이었다. 인종주의.자민족 중심주의.극단적 민족주의.외국인 혐오증.종교적 적대 등이다. 전문인력의 교류, 개발도상국의 미디어자원 개발 등 커뮤니케이션 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다. 나의 열네 살 난 아들은 제 방을 칠하기로 계획했었다. 그 애는 어느 틈엔가 페인트를 사왔고, 나는 내일이면 도와줄 수 있겠다고 말했지만 나를 닮아 조급한 성격이었던 아들은 한 번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즉시 그것을 행동에 옮기고야 마는 성격이었다. 내가 그 애 곁으로 한 발짝 발을 내디뎠을 때 일이 벌어졌다. 열려진 페인트 뚜껑을 통해 하얀색의 페인트가 마치 슬로우모션같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순간 우리들의 눈이 마주쳤다. 페인트가 쏟아지며 사방으로 튀겨 나갔다. 아들의 몸에, 거실의 카페트위에, 그리고 벽지에도..... 난 말문이 막혀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그 페인트는 물로 씻겨지는 페인트였다. 표정이었다. 그 다음엔 '엄마는 이제 곧 고함을 지르실 것 같아요.' 라는 표정이었다. '엄마, 야단치지 않은 것 감사해요. 난 오늘 일을 평생 기억할 거예요!"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작은 정원에는 잘 다듬어진 화초들이 물방울을 머금은 채 반짝거리고 있었다. 작지만 참 정겨운 집이라 생각하며 그가 막 골목을 돌아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꼭 한 번 방문해 보고 싶은 집이었는데 잘됐다 싶어 흔쾌히 승낙했다. 이런 앤 부인에게 왠지 마음이 끌린 그는 앞으로도 친한 이웃으로 지내고 싶었다. 앤 부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는 장식장에 진열된 도자기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중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는 도자기가 가장 눈에 띄었다. 그런데 그 도자기를 한 번 만져 보려다가 그만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건 앤 부인이 동양인 친구에게 선물 받은 가장 아끼는 물건이었다. 앤 부인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안절부절못하는 그를 쳐다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걱정거리 하나를 덜었으니."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앤 부인의 따뜻한 한마디에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녀에게 마음의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도 몰래 그렇게 했다. 그런데 그의 누이인 루시가 이런 행동을 모두 보고 말았다. 루시가 말했다. 할머니는 거실로 나가며 빌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 빌리는 루시 누나에게 무척 화가 났지만 비밀이 누설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얌전히 굴어야 했다. 그 다음에 놀아도 늦지 않을 거야." 빌리는 하루 종일 잡초를 뽑고 담을 쌓느라 무척 지쳐 있었다. 그날 오후 당장 할머니에게 하는 얘기를 들은 빌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빌리는 당장 할머니에게로 가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다. 그때 할머니께서 온화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제 울지 마라. 빌리는 할머니의 따뜻한 품에서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몇해 동안 힘써 일하고 성공한 후에 그는 어느 안식일에 야만인 생활로부터 개심한지 얼마 안되는 한 지방에서 성찬식을 베풀고 있었다. 그 선교사가 성찬식을 인도하고 있을 때 사람들 중에 어느 한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막 그러더니 곧 돌아와서 조용히 제자리에 갔다. 할 때. 나의 아버지를 죽여서 그 피를 빨아먹은 이웃 종족의 추장이 바로 내 다음 사람임을 알아챘다. 충동이 거의 나를 압도하여. 당신이 보다시피 그 힘에서 벗어나려고 나는 돌진했다. 내가 그방 반대편 그들을 용서하옵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나이다. 라고 기도하시는 주님을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나는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 옆에 와서 무릎을 꿇었다”라고 그는 대답하였다. 가능한 것이다. 나타니엘 호오손의 『주홍글씨』에는 양심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비극적 최후를 마치는 젊고 유능한 딤즈데일 목사의 눈물겨운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우리가 다 이 양심이라는 것 때문에 많은 괴로움을 당하지만. 이 양심이 없었든들 이 세상은 이미 망한지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죄는 양심의 문제입니다. 그러면 죄가 법을 어김으로써 생긴다는 말의 뜻은 대체로 알아듣는다 하지만. 범죄가 곧 빚을 걸머진 상태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 세상에는 자기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죄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살인 강도나 사기 횡령뿐 아니라. 시기와 분쟁. 악담과 분노 이러한 모든 죄도 다 이웃에 대하여 무서운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일일이 빚으로 치부되는데. 도무지 갚을 길이 없으니 한심합니다. 인간의 과거. 인간의 역사라는 것은 동판에 아로새긴 기록같아서 지울래야 지울 수도 없고 고칠래야 고칠 수도 없읍지다. 과거는 과거이어서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옥중기』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괴롭고 부끄러운 우리의 과거를 말소시켜 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죄가 이제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처럼 관대한 처분에는 오직 한가지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너도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라』는 간단한 조건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우리는 우리 빚을 갚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안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웃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하는 것만이 우리 자신의 모든 추악한 죄를 용서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녀석, 바보같이 매일 매만 맞고 다녀. 당장 나가. 나가서 때리고 들어 와. 다시는 매 맞고 들어 와서 울면 가만 놓아 두지 않을 테야. 얼른 나가서 때리고 와!"귀한 아들이친구에게 얻어 맞고 우는 모습을 기분 좋게 생각할 어머니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반응은 참 중요하다. 이왕 친구와 싸워서 얻어 맞은 것도 속이 상하는데 엄마에게까지 얻어 맞으며 야단 맞을 때 어린 마음은 얼마나 비참해지겠는가! 그럴 때에는 먼저 위로해 주어야 한다. "어머나, 우리 똘이가 얼마나 아프겠니? 가엾어라"하면서 엄마는 일단 아들을 꼭 안아 주고 눈물을 씻어 주며 아픈 곳을 만져준다. 그런 다음 조용히 위로해 준다."똘이야, 그래도 넌 참 훌륭했어. 네가 끝까지 친구를 때리지 않고 참은 건 아주 훌륭한 행동이야. 남을 아프게 하는 일은 그리 좋은 일은 아니란다. 우리 그 친구를 용서해 주자." 손해를 끼친 이웃 사람을 향해 미움과 원망을 품고 적대시하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들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인간의 모든 한계를 초월한 온유함이 드러날 수 있다.' 원수를 사랑할 만큼' 온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목적이며 이 세상도 바로 그러한 사람들 때문에 아름답고 풍성해지는 것이다. 주인공이 적군과 총칼을 겨누고 있다가 참호에서 갑자기 뛰어나와서 적을 향해서 외치는 그 절규가 “친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죽이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까지 그대들을 적으로만 인식하여 왔다. 그러나 오늘 처음으로 그대들을 나와 똑같은 동료로 바라보고 있노라. 그대들은 더 이상 나의 소총이나 수류탄 투척의 대상이 아니다.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나와 똑같은 불행한 인간들이다. 그대들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자식들을 전쟁터에 내보내고 가슴을 태우면서 지금도 기도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리고 우리는 꼭같이 죽음을 두려워 하고 있지 아니한가. 친구들이여.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적일 수가 있단 말인가. 우리는 다만 모두 죄인일 따름이다. 용서를 필요로 하는 죄인일 따름이다.”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새로운 민족사의 내일을 꿈꾸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총칼을 겨누었던 북의 형제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형제들이여. 나는 당신들을 용서하오.” 용서를 체험한 내가 내 곁에 있는 이웃을 붙들고 “형제여. 자매여. 아버지여. 어머니여. 내 사랑하는 아내여, 될 것입니다. 그런지 몇달 후 그는 교수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스스로 질문을 할줄 아는 사람이야." 그로부터 일 년 후 그 교수님은 또 밥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에게 새로운 도전을 줄 수 있는 다른 학교로 옮겼으면 좋겠네..." 그런데 그와 같이 관대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기도를 많이 하고 나서, 약사는 그의 두 동생에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마련해 주어 형이 그들을 부양하지 않아도 되게끔 했다. 그리고 젊은이에게는 대학 과정을 마치는데 필요한 전 비용을 빌려 주었다. 이제 돈을 갚을 준비가 된 그는 자기 은인을 찾아가서 말을 꺼냈다. 그 부인은 아프리카에서 첫 선교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선교사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과 응답받은 많은 기도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할 선교사임에도 불구하고 선교지에서 너무 고독해서 자신이 죄를 범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낙심해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며 그래서 다시는 선교지에 되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요한일서1:9에 있는 약속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지은 죄의 일부분을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고 권면했지만 그 선교사는 그 말씀을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선교사와 여러 시간 동안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선교지에 다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편지를 보면 언제나 우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영국에서 열린 케직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습니다.. 집회기간에 외국에서 온 방문객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는데 참 재미있는 시간입니다. 어떤 때에는 60―70개의 국가에서 온 손님들을 소개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부인이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흔히 하는 대답을 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그런 죄도 용서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또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문제입니다. 그때 한 교회에 다니던 장인과 사위가 여러 해를 두고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두 사람이 모두 주일날마다 꼬박꼬박 교회에 참석하지만 장인은 이쪽에. 사위는 저쪽에 뚝 떨어져 앉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단 앞으로 나와 주님을 영접하라는 초대를 했을 때 나는 이 쪽에 앉은 장인이 발끝을 들고 살그머니 일어나 무리 저쪽에 앉아있는 사위를 쳐다보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위 쪽을 얼른 바라보았더니 사위 역시 모인 무리의 머리 너머로 장인을 힐끗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장인이 통로를 따라 내려와 설교단 앞으로 걸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뒤따라 사위도 다른 통로를 걸어 내려오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설교단 앞에서 두 사람이 서로 마주치자 그들은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서로 손을 내밀고 악수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채 악수를 하기도 전에 그만 두사람은 서로 얼싸안고 흐느껴 우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두 사람 사이의 모든 난관을 뿌리치고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로부터 시작하여 놀라운 부흥의 물결이 홍수가 일듯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장벽이 무너졌던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께서 용서할 줄 모르는 마음을 지니고 계신다면 그로 말미암아 많은 다른 이들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신분의 자학으로 자살하려고 한 것이다. 있었다. 완전하지 못한 인생과 인간의 한계를 비뚤어진 발자국에서 깨달은 여인은 친어머니를 용서하고 인생의 전기를 마련한다. 일본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에 나오는 이야기다. 연말을 "용서의 날"로 보내자. 토끼는 무거운 몸으로 도망을 쳐봤자 곧 잡히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호랑이 앞에 엎드려 사정했다. 그 후에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함정 속의 호랑이를 발견했다. 포수는 곧 호랑이를 향해 총을 꺼내 겨누었다. 그런데 호랑이를 노려보던 포수는 문득 호랑이의 애절한 눈빛에서 뱃 속에 새끼가 들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바로 그날 아침 출산을 위해 섬마을 친정으로 떠난 아내의 얼굴이 떠올라 얼른 총을 거두고 함정에서 호랑이를 끌어내 풀어주었다. 물 속으로 가라앉아가는 배 위에서 두려움이 떨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모두 태우고 난 구조선에 요행히도 자리가 하나 남게 되자 사람들은 기꺼이 임신을 한 포수의 아내에게 그 자리를 내어 주었다. 임산부를 태우면 두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포수의 아내도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였다. 안타깝게 소리쳤다. "제발 죽기 전에 신부님을, 모셔다 주세요. 제발." 너무나 간절한 적군의 부탁을 들어 주어 신부님을 모셔왔다. 그러나 신부는 침착하게 군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마을에서도 사제관을 뒤졌으나 신부는 없고 그래서 그의 부모와 형제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분이 이 죄많은 나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굴복하지 아니하고 마침내 마을의 새벽종소리가 울리는 시각에 처형당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죽음을 맞게 되자 소녀는 생각끝에 종지기 노인에게 찾아갔다. 제발 부탁입니다." 내가 종을 치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고, 또 그렇게 되더라도 아마 그들이 종을 칠거다." 반란군 대장은 새벽종소리를 기다려도 울리자 않자 종지기 노인을 찾아가 소리쳤다. 유인했다. 그는 누두 사진을 찍으려면 미리 감기약을 먹어야 한다고 속여서 극약이 든 캡슐2개를 감기약과 함께 마시게 했다. 이동식은 나체인 채 극약을 먹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순간들을 포착하여 21장의 사진을 찍었다. 집요한 추적 끝에 범인 이동식이 잡혔고 그 끔찍스러운 엽기적 살인사건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범인은 사형선고를 받은 후 86년 6월 교수형으로 일생이 끝나고 말았다. 이들은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살인마의 집안이라고 단란하게 살던 가락동 아파트에서 일주일만에 쫓겨났다. 아이들이 입양되어 해외로 떠나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철없는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자식을 저버릴 수가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서형사는 자신에 대해 증오심으로 붙타고 있는 김여인을 눈물을 쏟으면서 끈질기게 설득하였다. 그는 결국 김여인을 전자회사 공원으로 취직시키고 아이들도 데려오게 하여 다시 가정을 이루게 했다. 오리털이 가득 든 가방을 준비한 여인에게 목사님은 이 오리털을 온 동네에 다 뿌리고 오시오 하고 말했다. 얼마 후 이 여자는 목사님의 지시대로 하고는 다시 찾아와 “목사님, 목사님 하라는 대로 했는데요. 이제 저의 죄가 다 없어진 것인가요?”하고 물었다. 하지만 목사님은 “아닙니다. 다시 돌아가서 조금전에 떨어뜨려 놓았던 오리털을 주워서 다시 가져와야 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목사님은 남을 헐뜯는 말은 쉽게 떨어뜨릴 수 있지만 그것을 다시 거두어 들일 수는 없습니다”라고 교훈하였다. 받을 것이니라”(마7:2)다른 사람을 헐뜯는 것은 바람에 날아가 다시 거두어 들일 수 없는 오리털처럼 거두어 들일 수 없는 무서운 죄임을 깨달아야 한다. 조선 팔도 전역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백성들의 간절한 바램을 외면할 수 없었던 성종도 금주령을 내리고 직접 논으로 나섰다. 뙤약볕 아래에서 농부들과 논을 둘러보던 성종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풍악소리에 놀라 벽력같이 고함을 쳤다. 화를 냈다. 그럴 수 있단 말이요!" 궁리끝에 아들들의 이름으로 용서해 주기를 간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자 성종은 더욱 화가 났다. 바로 김세우의 열 살된 아들 김규였다. 군졸들은 왕 앞에 김규를 데려갔다. 임금이 물었다. 소년은 단숨에 글을 지어 임금께 받쳤다. 글을 훑어본 성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버지에 대한 그 효심으로 나라에 충성하도록 하여라." 그런 패륜의 자식을 러시아의 모든 아버지의 이름으로, 민족의 이름으로 고발한다." 그러나 유명한 노 변호사는 이렇게 변론을 시작합니다. 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에게 러시아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돌을 던지지 말기를 바랍니다."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방청객들도 눈물을 닦았습니다. 철통같은 수사망 속에서 종횡무진 시민들을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고 다녔던 그들은 부모 형제의 눈으로 본다면 가증스럽고 괘씸하기 전에 가엾고 안타까운 마음이 앞설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지 못하여 그런 무서운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는가고 생각할 때 일찍이 그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살인범의 형이 되는 사람은 공직에 있는 동안에 아주 많은 공로를 세워서 잘알려진 사람이었다. 이 형은 주지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자기 동생을 사면해주기를 간청했다. 주지사는 동생을 위하여 탄원하는 형의 잊혀질 수 없는 공로를 참작하여 그 동생의 죄를 사면해주었다. 양복 안주머니에 주지사의 사면장을 받아 넣은 형은 곧바로 감방 안에 갇혀 있는 동생을 찾아갔다. 동생을 만나본 형은 물어보았다. “만약 네가 사면을 받고 살아나간다면 너는 무엇을 하겠니.” 그러자 동생은 안면을 찡그리더니 즉시 대답을 했다. “만약에 내가 살아서 감방을 나간다면, 첫째로 나에게 사형언도를 내린 판사를 찾아 그 놈을 죽이는 일이고 그 다음에는 내 재판에서 증인으로 섰던 놈을 찾아서 그 놈을 쏘아 죽이는 일이야.” 그대로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이 용서와 사랑으로 채워져 있지 않으면 천사도 가지고 왔던 하나님의 축복을 당신에게 전달하고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위대한 연예인으로 보냈을 것이다. 자비뿐이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건져주실 자, 우리의 허물을 대신 짊어지실 자,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그가 가정에서 가족들과 예배를 드리던 어느 날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부인이 놀라 뒤따라 나가서 남편을 붙들고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스티븐슨이 말하기를 “오늘은 내가 죄를 용서해 달라고 주기도문을 주님께 드리기가 몹시 괴롭소. 마음이 편치가 않소”라고 말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과 스티븐슨은 그래도 염치가 있고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 사례들이 비일비재 하면서도 주일마다 의젓하게 하나님 앞에 이 기도를 드립니다. 정말 괴로운 문제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가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고 하나님 앞에 뻔뻔스럽게 이 기도를 드리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양심의 가책없이 기도하는 사람은 시편 109: 7에 있는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편 109:7에 나오는 저주가 무엇인지 압니까. “그 기도가 죄로 변케 하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말입니까? 그러므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자녀의 신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백 번, 만 번이라도 형제의 죄를 용서하고도 남을 수 있는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18일밤 경남 울산공연에서 눈물을 훔치며 공중에서 줄을 탔다.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노원경찰서에 구속된 것이다. 곡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곡예사일을 시켜 아동학대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처벌을 받았다. 자매곡예사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년전 어머니가 가출한데 이어 자신들을 맡아 기르던 안씨로부터 폭행까지 당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안 아버지 윤씨는 올 8월 노원경찰서에 안씨를 고소했으나 합의금 5백만원을 받자 두 딸을 그대로 서커스단에 머물게 했다. 경찰조사결과 안씨는 자매를 2년 전부터 17차례나 상습폭행 한 것으로 밝혀져 결국 구속됐다. 그리고 아버지 윤씨도 곧 구속된 것이다. 소녀 곡예사들에게 아버지는 그래도 아버지였다. 목사님, 저 같은 사람도 희망이 있을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형제님, 하나님께서는 어떤 죄인이든 용서하십니다. 형제님은 예수님 안에서 새로 태어났습니다. 형제님이 주 안에서 회개하는 순간 죄를 용서받았습니다.”라고 말한 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나간다. 다시 본다. 이번엔 아주 맑은 물이 흐른다. 형제님, 왜 이미 용서받은 죄를 붙들고 괴로워합니까? 형제님의 온갖 더러운 죄는 십자가 다리 밑에 흐르는 예수님의 보혈에 의해 다 떠내려갔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위로가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기뻐하고 새로운 용기를 가지십시오. ”그러자 이 사람은 “아, 그렇군요. 이제 저는 새로운 생수를 받아서 새 삶을 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밝은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다리 아래로 흐르고 있는 것은 용서와 의와 사랑과 소망입니다. 우리는 정죄 의식이나 열등 의식이나 좌절감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마귀의 참소를 제하여주시며 한번도 죄를 짓지 않은 의인으로 삼아 주십니다. 지키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원들은 그가 독실한 그리스도인임을 알자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머리에 물을 붓기 시작하였지만 아무도 그의 가슴에 붙은 신앙의 불을 끌 수는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원들은 그의 허리에 밧줄을 묶어 배 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 자신이 죽을 것으로 안 그는 하나님께 선원들을 용서해줄 것을 기도했고 또 자기의 시신을 어머니에게 보내 줄 것을 선원들에게 부탁했습니다. 다시 그를 끌어올린 선원들은 그가 자기네들이 가지지 않은 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선장을 비롯한 몇몇의 선원들이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목사로서 이분처럼 구체적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열정을 가졌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당신은 왜 선교사로 갔습니까.”하고 그분께 물었더니 “그 야만인 지역은 전파가 통하지 않습니다. 또 글이 없어서 책을 줘도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몸으로 직접 가는 방법 외에는 다르게 그들을 사랑하는 표시,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감동했습니다. 부풀어 올랐습니다. 사랑해야겠다는 결단이 있었습니다. 그 설교, 예수님의 실재설교, 사랑의 그 많은 설교 앞에, 예수님의 사랑의 행동 앞에 제자들과 사람들은 많이 감동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누가 높은가”하는 문제 때문에 서로 다투었습니다. 실재적으로 사랑할 때 우리에게 고통이 있고 아픔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르치시기위해 마지막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친히 대야에 물을 떠오시고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면서 자신의 몸 전체로 사랑의 수고를 보여주셨습니다. 사랑은 실제로 어렵습니다. 참 사랑한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가를 치루는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인 것입니다. 그는 너무도 자존심이 강해서 교인들 중의 누가 자신보다 더 신령하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의 교회 초신자들 중의 한 명이었던 필리스라는 여인은 대단한 사랑의 사람이었기에 다른 교인들에게 놀라운 영향을 주었다. 이 목사님은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첫째로 목사님은 주일 저녁예배 시간 중에 그녀에게 회심에 관한 간증을 하라고 한 뒤부터 화가 났다. 그녀의 간증 내용 자체 때문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들어본 것 중에 가장 훌륭한 설교라고 칭찬했기 때문이었다. 그 목사님은 자신이 영적으로 그녀보다 우수하며 사람들은 자기를 더 필요로 한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방도를 찾기 시작했다. 목사님은 그녀가 정말로 영적인 일들에 관해 별로 모른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를 노렸다. 필리스는 초신자였지만 마침내 목사님과 대면을 청했다. 그녀는 사랑속에 갈등을 품고 말했다.“ 목사님, 목사님은 저의 목사님이십니다. 저는 목사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목사님과 제가 싸우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우리는 같은 편이니까요.”그녀는 또 목사님에게 심려를 끼친 것을 용서해달라고 하였다. 두 시간 반 동안 두 사람은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목사님은 자신이 얼마나 비굴했었는지 깨닫고 심지어 당황하기까지 했다. 이 초신자는 목사님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도록 도와드렸다. 그는 순전한 사랑 안에서 용서를 받았으며 자신의 사역을 가로 막았던 경쟁심과 시기심을 고백했을 때 그는 다시 용서를 구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뿌듯한 해방감인가? 수 개월도 안되어 전 교인은 새로운 자유를 느끼게 되었다. 그 의 설교도 더 나아졌다. 그의 부당한 싸움을 관대하게 품어주었던 필리스의 사랑의 영이 그가 갖고 있던 나쁜 감정을 덜쳐버릴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마지막날을 기다리고 있을 때 영국에 사는 유대인 꼴란즈는 아이히만 석방운동을 대대적으로 일으키고 있었다. 꼴란즈는 원수 아이히만을 용서하자는 심금을 울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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