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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沙島)
일곱 개의 섬이 하나로 묶이는 아름다운 섬
사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에 딸린 섬으로 동경 127°45′, 북위 34°28′, 여수에서 27km 지점에 위치하며, 동북쪽에 화양면, 북서쪽에 고흥반도가 자리 잡고 있다.
면적 0.36km2, 해안선 길이 6.4km, 인구는 23가구 42명(2010년)이다.
지명 유래
바다 한가운데 모래로 쌓은 섬 같다 하여 모래 사(沙) 자와 호수 호(湖) 자를 써 ‘사호도(沙湖島)’라 불렀는데 행정 구역 개편 때 ‘사도(沙島)’라 하였다고 한다.
또 하나의 유래로는 섬 주위에 모래가 많아 ‘사도’라 불렀다고도 전해진다.
행정안전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008 휴양하기 좋은 섬 Best 30’에 선정되기도 한 사도(沙島). 공룡이 뛰놀았다던 사도는 공룡 몸집에는 어울리지 않게 작고 아담하다. 0.36km2, 해안선 길이 6.4km인 본섬 사도를 중심으로 추도와 중도(간도)·증도(시루섬)·장사도·나끝·연목 등 일곱 개의 섬이 빙 둘러 마주하고 있다. 사도 왼쪽의 연목과 나끝은 방파제로, 오른쪽 간도는 석교로 각각 연결돼 있다. 또 간도와 이웃한 시루섬과 장사도는 각각 모래 해변과 바윗돌 지대로 이어져 있다. 추도를 제외하면 사실상 여섯 개 섬이 하나로 연결돼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사도와 추도에만 사람이 살고 나머지는 모두 무인도다.
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때로, 성주 배씨가 이곳을 지나다가 해초류가 많아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겠다 생각되어 들어와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안동 장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했으며, 입향 시조인 성주 배씨의 묘가 현재 시루섬에 한 기 있지만 성주 배씨의 후손은 한 가구도 살고 있지 않으며, 현재 섬에는 안동 장씨가 많다.
바다 한가운데 모래로 쌓은 섬 같다 하여 모래 사(沙) 자와 호수 호(湖) 자를 써서 ‘사호도’라고 불렸으며, 일제 강점기 이후 ‘사도(沙島)’로 불리기 시작했다. 예로부터 전해 오는 이름 사도라는 이름을 따라 섬 전체가 모래로 이루어진 듯 물이 고이기가 힘들어서인지 예전부터 물이 귀한 편이다.
사도는 여름에는 곱게 펼쳐진 하얀 모래사장의 피서지로, 또 거북바위, 얼굴바위, 고래바위 등 기암괴석과 공룡 화석지로 자연 생태 학습장으로서 각광받고 있으며 도서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또한 일명 ‘모세의 기적’으로 불리는 자연 현상이 일어나면 사도 인근 바다에 폭이 약 15m, 길이 780m 정도의 큰 길이 만들어진다. 특히 음력 정월 대보름이나 2월 보름을 전후로 2~3일 동안과 4, 5월에 가장 규모가 큰 자연 현상이 일어나 썰물 때마다 사도와 추도 사이의 약 750m 바닷길이 약 10m의 폭으로 열려 장관을 이룬다. 본도와 추도·간도·시루섬·장사도·나끝·연목 등의 섬이 디귿 자로 연결돼 한 개의 섬으로 나타난다. 사도와 추도 사이로 바닷길이 열리면 청각, 미역 등의 해초도 채취할 수 있다. 평소에 드러나지 않던 암초가 보이기도 한다.
섬 주민은 23가구 42명(2010년 현재)이 살고 있다. 독거노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구가 민박집을 하고 있으며, 농산물로 보리·땅콩·고구마·홍마늘 등이 생산되고, 수산물로는 미역·김 등의 양식과 약간의 멸치와 쥐치·전복·해삼 등을 어획하고 있다. 사도 해수욕장에서 원투낚시로 노래미·볼락·도다리·보리멸·농어·감성돔 등이 낚인다. 1954년 개교한 여산초등학교 사도분교는 1996년 폐교된 뒤, 지금은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 수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사도는 여수항에서 남서쪽으로 27km, 배로 두 시간 남짓 가는 거리이지만 지금은 백야 대교로 연륙된 백야도에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다. 백야도의 선착장에 이르면 태평양 해운에서 카페리3호가 하루 세 번 왕복(1인 편도 5,000원)하며, 출발 시간은 오전 여덟 시, 오전 열한시 삼십 분, 오후 두 시 오십 분이다. 가족끼리 휴가를 떠난다면 백야 등대 구경과 백호산 행에 세 시간 정도 소요되므로 꼭 이 코스를 추천하고 싶다. 낚시를 겸한다면 백야 대교 직전의 당두항에서 낚시선이 수시로 출발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면 좋은데, 선비는 1인 왕복에 15,000원 정도 받고 있다.
사도 선착장에 도착하니 화려했던 옛날을 떠올리듯 거대한 공룡 모형 두 마리가 반긴다. 관광 안내소 앞에는 열대 식물들이 반갑게 맞아 열대 지방에 관광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관광 안내소 우측 길을 돌아가면 산책로 초입에 데이노니쿠스라는 귀여운 아기 공룡이 풀밭에서 사람을 놀라게 한다. 바로 옆에는 화석층에서 복제한 발 크기가 33cm나 되는 공룡의 발바닥 모형이 있는데 화석 바위의 공룡 발자국을 구분하려면 여기서 눈도장을 확실히 찍어 두어야 한다.
일단 거대한 공룡 모형 두 마리가 지키고 있는 사도 관광 센터를 지나면 입구에 ‘신비의 모래섬(사도)’이라는 마을 표지석이 있다. 해안에는 공룡 화석지를 중심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사도 마을 공원은 마을의 가까운 곳인 서북쪽에 있는데, 모래 위에 잔디가 잘 자라 있으며, 잔디 위에는 드문드문 수백 년 된 푸르른 소나무와 느릅나무가 서식하고 있다. 공원 바닥이 보도블록으로 되어 있다.
밭에는 양파들이 많이 심어져 있다. 마을 안 골목에는 돌담들로 되어 있는데 바닥은 벽돌로 된 보도블록이다. 사도의 담장은 추도의 담장과 함께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다. 돌담은 돌로만 쌓은 ‘강담’ 구조로서 돌의 크기와 형태는 일정치 않고, 평평한 것부터 둥근 것까지 다양하며 대체적으로 길이가 10cm에서부터 큰 것은 30~50cm 정도 된다. 돌담의 형태는 큰 돌과 작은 돌이 서로 맞물린 형태이며 그 두께는 대부분 50cm 정도 내외이다.
마을을 돌아보는 데에는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인기척도 찾기 힘들다. 그러나 예전에는 사도에만 60가구가 넘게 살던 부자 섬이었다. 1950년대에는 500여 명의 주민이 살았고, 초등학생만도 90여 명이었다. 뛰어난 고기잡이 기술을 가졌던 사도 주민들은 칠산 바다에 조기잡이가 한창일 때 사도에는 대여섯 척의 조기잡이 배와 30여 척의 작은 거룻배들이 있었다. 먼 바다와 가까운 바다의 경계에 있어 섬 주변은 항상 물고기가 득실댔다. 사도 사람들은 어선을 상대로 고기를 거둬 내다 파는 상고선(상선)도 많이 했다. 큰 배에 20~30개 큰 항아리를 채우고 바다로 나가 어선에서 잡은 고기를 거둬 소금에 차곡차곡 절여 쌓고는 그 독들이 다 차면 멀리 경남 마산까지 가서 팔아 많은 수입을 올렸다. 그래서 섬에는 많은 돈이 돌았고, 주민들은 인근 낭도에 농사지을 경작지를 사들이기도 했다.
그러다 1959년 9월 추석 무렵, 8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라호 태풍이 사도를 덮쳤을 때 사도는 직격탄을 맞았다. 사도 주민들의 생명 줄이자 희망이었던 30여 척의 배들이 모두 파괴되었다. 학교 옆에 아름답던 숲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때 그 좋은 모래가 다 휩쓸려가 버리고 많은 주민들도 섬을 떠났다. 그 사건 이후 지금도 사도에서는 고기잡이배를 바다에 띄우지 않는다. 결국 지금은 더 이상 젊은이들이 살지 않는 곳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현재 남아 있는 23가구 중 16가구가 여성 독거노인이며, 민박과 해산물 채취, 고구마와 마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섬에서 흔히 보는 고깃배는 한두 척으로 근처에 잠깐 나가 반찬거리를 잡아올 정도이다. 특히 사도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양식’과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독거노인을 제외한 나머지 주민들은 대부분 민박집 등 관광업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사도에는 거의 모든 집에서 민박이 가능하고 해수욕장 주변의 야영 시설도 잘 되어 있어 관광하기에 불편함은 없다.
또한 사도는 워낙 작은 섬이라 오토바이는 고사하고 자전거조차도 볼 수 없다. 본도와 추도 사이는 어선으로 오가는 실정이나 본도와 간도, 중도 초입까지 각 400m의 해안 도로가 나 있어 걸어서 이동하는 데 불편하지는 않다.
사도 관광은 마을 뒤편 언덕의 산책로에서 시작된다. 천천히 걷기에 딱 좋다. 노송 우거진 산책로. 울창한 상록수림은 영화 〈쥬라기 공원〉에 나오는 이슬라누블라섬을 닮았다. 발끝에선 아직 지지 않은 새하얀 구절초와 보랏빛 해국이 스친다. 벼랑 위 전망대에선 벤치에 앉아 모든 것을 잊고 망망한 바다만을 바라볼 수 있다. 쪽빛의 바다 위로 햇살이 떨어지고 부드러운 남녘의 바람이 불어온다. 정상의 높이는 고작 25m.
다리 아래 공룡 화석지가 있다. 사도에는 공룡 발자국 화석이 지천이다. 간뎃섬과 연결된 다리 아래 퇴적암층에 공룡 발자국이 선명하다. 공룡들의 발자국이 퇴적층 위에 선명하다. 이곳이 공룡의 놀이터이다. 예전 이곳은 진땅, 앞쪽 바다는 거대한 호수였다고 추정된다. 호수로 향하던 공룡이 진흙에 발자국을 남겼고 굳어진 자국 위로 흙바람 불어와 모래가 덮었다가 사암층이 벗겨지며 다시 그 발자국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사이 7,000만 년의 시간이 흘렀다. 두꺼운 종이를 쌓아 놓은 형상의 퇴적층엔 육식 공룡이 호수의 먹이를 향해 달려간 듯 발가락 끝이 뾰족하고 삼지창을 닮은 발자국이 선명하다.
간도와 시루섬을 잇는 양쪽으로 바다를 즐길 수 있는 양면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해수욕장의 길이는 약 2km이고 폭은 50m, 수심은 1~2m. 해수욕장 주변에 소나무가 우거져 있고 바닷가 전체가 모래로 구성되어 있으며 입자가 가늘고 단단하다. 해수 온도는 23~25도 정도이다. 밀물 때는 잠기고, 썰물 때는 모래 해변이 드러난다. 양쪽이 바다로 트인 해수욕장의 모래는 잘게 부서진 조개껍질로 햇빛이 구름 속에서 고개를 내밀 때마다 영롱한 진주처럼 빛난다. 조개껍질이 부서져 만들어진 모래사장이라 빛이 희고 곱다. 모래 위엔 지난밤 달빛 아래 놀다 간 해달의 발자국들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장사도와 시루섬은 양면 해수욕장과 연결되는 거대한 바위 군락으로 이어져 있다. 장사도는 하루 두 번 물이 빠지면 건널 수 있지만 시루섬은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바둑판처럼 늘어서 있어 언제나 걸어갈 수 있다.
시루섬은 기암의 천국이자 수석 전시장이다. 시루와 닮았다는 시루섬은 왕성한 화산 활동으로 형성됐다. 입구의 거북바위는 거북이 머리를 쳐들고 있는 형상으로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발명한 모티프가 됐다는 전설을 안고 있다. 사람의 옆모습을 닮은 단발머리 소녀바위와 이마와 코의 선이 조각 작품처럼 정교한 얼굴바위를 돌아 들어가면 높은 돌 천정을 갖춘 야외 음악당 모양 같은 200여 명이 앉아도 넉넉한 멍석바위가 있다. 멍석바위와 바다에 파여 지붕처럼 형성된 처마바위도 눈길을 끈다.
시루섬 최고의 걸작품은 약 30m 길이의 용미암. 용암에 쓸려 내려가던 나무가 화석이 된 규화목과 용암이 바다로 흘러내리다 급격하게 식으면서 형성된 용(龍) 모양을 하고 있다. 유독 푸른색을 띤 바위가 꼬리를 바다에 드리운 채 바위섬에 머리를 묻고 있다. 이 바위 부근의 거대한 바위 속에는 또렷한 형태의 규화목(硅化木)이 박혀 있는가 하면, 그 위쪽의 갯바위에는 공룡들의 줄지어 이동한 발자국 화석이 방금 전에 찍힌 것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다.
시루섬은 파도가 세기로도 유명하다. 세상을 삼킬 기세로 고깔 모양의 가마섬에서 몰려온 파도가 갯바위를 유린한다. 때론 공룡의 울부짖음 같기도 하고 때론 화산의 폭발음처럼 들리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시루섬 자체가 사람의 얼굴을 빼다 박은 듯하다는데 사도에서 추도로 가는 길에 봐야 가장 완벽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사도는 관광지로서 주위 경관은 충분히 훌륭한 것 같다. 계속적인 시설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관광지로서 편의 시설이 부족한 게 흠인 듯하다. 하루 빨리 시설이 나아져 관광객이 하루라도 머물다 가는 사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보며 섬을 뒤로 한다.
관광 명소
사도 바닷길
추도·간도·시루섬·장사도·나끝·연목 등 일곱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사도는 1년 중 조수간만의 차가 제일 큰 음력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일곱 개의 섬이 디귿 자로 연결되는 장관을 볼 수 있고 매월 2∼3차례 신비의 바닷길이 길이 750m, 폭 15m로 열리고 섬이 하나로 연결된다.
사도 해수욕장
기암괴석들이 있어 시원한 여름바다의 풍경을 한층 더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길이는 약 2km이고 폭은 50m, 수심은 1~2m. 해수욕장 주변에 소나무가 우거져 있고 바닷가 전체가 모래로 구성되어 있으며 입자가 가늘고 단단하다. 이곳은 특히 세계 최장의 보행렬(84m)을 포함해 4,000여 개의 공룡 발자국이 발견되어 가족 단위 및 학생들의 고생태 체험 학습의 장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주변에는 20여 그루의 벚나무와 곱게 깔린 잔디가 심어져 있다.
시루섬의 기암괴석
이순신 장군이 가끔씩 앉아 있었다는 장군바위와 장군의 눈에 띄어 거북선을 구상하게 했다는 거북의 모습과 닮은 거북바위가 흥미로우며, 중턱에서 맑은 물이 솟아나는 젓샘바위는 예로부터 사도의 아낙들이 출산 후 젖이 부족하면 치성을 드리곤 했다고 한다. 제주도 용두암의 꼬리라는 용꼬리 바위와 200여 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다는 멍석바위 등이 천연의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시루섬에는 신생대 초(약 1억 5천만 년 전)로 추정되는 화석층이 해변을 따라 길이 1km, 높이 5m에 걸쳐 뚜렷이 나타나고 있고 이는 전남 지방에서 최초로 발견된 화석층으로 시루섬에 있는 기암괴석들과 어울려 비경을 이룬다. 처음 섬에 들어온 함안 조씨의 묘도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사도·추도 옛 담장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사도 마을의 돌담은 돌로만 쌓은 ‘강담’ 구조로서 돌의 크기와 형태는 일정치 않고, 평평한 것부터 둥근 것까지 다양하며 대체적으로 길이가 10cm에서부터 큰 것은 30~50cm 정도 된다. 돌담의 형태는 큰 돌과 작은 돌이 서로 맞물린 형태이며 그 두께는 대부분 50cm 내외이다.
특산물
홍마늘·미역
사도의 홍마늘은 그 속이 단단해 오랫동안 저장해도 상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며,
돌미역 또한 인근 해역 중에서 가장 질 좋기로 소문난 특산물이다.
저자 : 이재언 | 섬 탐험 전문가
섬에서 나고 자란 저자는 우리나라의 섬 탐험 전문가이다. 대학에서 복지학을 전공했고,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90년-1996년까지 바나바선교회 섬 선교사로 파송되어 선교선 등대호를 타고 선교활동을 하던중 섬의 중요성을 깨닫고 전국의 446개 섬을 3번이나 순회하였다. 저자는 많은 섬을 찾아다니며 섬의 기본 현황과 역사, 문화, 민속, 주업, 삶의 애환 등 수많은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사진을 촬영하여 기록을 남겼다. 2009년부터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에 재직중이며 전남일보 섬전문 시민 기자이다.
추도(鰍島)
노인 두 명이 사는 공룡 화석지가 있는 아주 작은 섬
추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에 딸린 섬으로 동경 127°44′, 북위 34°28′에 위치하며
면적 0.04km2, 해안선 길이 2.6km, 인구는 2가구 4명(2010년)이다.
여수에서 남서쪽으로 21km, 낭도에서 남동쪽으로 1km 해상에 위치하며
부근에 사도·장사도·하화도·부도 등이 있다.
지명 유래
섬 이름이 한자로 미꾸라지 ‘추(鰍)’ 자인데 화정면 관내에서 아주 작은 섬이라 고기 중에서 작은 미꾸라지에 비유하여 ‘추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유래는 취나물이 많이 자생하여 ‘취’ 자를 썼으며 이것이 변음되어 ‘추도(鰍島)’라 하였다고도 한다.
낭도리에 속하는 추도(鰍島)는 여수 화양반도 앞바다에 떠 있는 화정면에서 가장 작은 섬이다. 여자만(순천만)의 입구이자 가막만의 변두리쯤 되는 곳. 아무도 찾지 않는 외로운 낙도, 섬 중의 섬, 새끼 섬이다.
추도 마을은 언제부터 이 섬에 사람이 살았는지 확실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약 200년 전 전주 이씨와 함안 조씨가 입도하여 살았다고 전하고 있다. 섬 이름이 한자로 미꾸라지 ‘추(鰍)’ 자인데 화정면 관내에서 아주 작은 섬이라 고기 중에서 작은 미꾸라지에 비유하여 ‘추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는 근거가 없고 추도에는 취나물이 많이 자생하여 ‘취’ 자를 썼으나 변음되어 ‘추도’라 하였다는 설이 더욱 유력하다.
추도의 동쪽 해안 일부에 해식애가 발달하였고 서쪽으로 길게 꼬리를 내민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남해 어장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부근 해역은 어로 활동이 활발하다. 섬 안에는 밭농사 지역이 조금 있으며 근해에는 장어·감성돔·문어 잡이 어업이 소규모로 이루어진다. 또한 해마다 질 좋은 미역이 나지만 그대로 바다에 방치한다. 고생하여 미역을 채취하여 말려도 값이 없어서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사도에서 1km 떨어져 있어 추도는 2월 영등사리 때 물길이 갈라지면서 사도와 연결된다. 이 길을 따라가며 고동·조개·톳이나 미역을 따는 재미가 있다. 부안 채석강의 축소판인 추도는 모세의 기적이 일어날 때를 제외하곤 배를 타야 상륙할 수 있다. 거기다 뭍에서 직접 가는 배편이 없어 옆의 사도까지 간 뒤, 다시 주민 배로 갈아타고 가야 하는 외딴 섬이다.
그래서 추도는 객선도 우체부도 오지 않는 버림받은 섬이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가 밥을 지어 먹고 빗물을 받아서 설거지와 빨래를 한다. 나무로 불을 지펴 구들장을 달구며 목욕과 이·미용은 연례행사이다. 예전엔 전기도 밤에만 제한 송전되었지만 최근에는 철탑을 통해 전기가 들어온다. 그렇다 할지라도 추도는 여전히 여객선도 닿지 않는 조그만 오지의 섬이다. 문명을 버리고 오지 체험을 하고 싶다면 추도를 추천하고 싶다.
추도 돌담길
추도 선착장에 내리면 돌담길이 가장 먼저 외지인을 맞는다. 추도는 규모가 작은 마을이긴 하지만 마을의 돌담이 견고하게 집약적으로 형성돼 있고, 주변 풍광과 잘 어우러져 인상적인 마을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집과 집, 골목과 골목이 모두 돌담으로 연결되어 있어 정겨움이 묻어난다. 이 돌담은 기왓장처럼 떨어지는 퇴적암층을 주워다가 지은 것이다. 태풍이 잦은 섬에서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이 돌담이 유일하다. 현재 이 돌담은 외딴 섬의 고단한 생활사를 오롯이 품고 있는데다, 경관 측면에서도 보전 가치가 뛰어나 문화재청에서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공룡 발자국 화석
추도를 대표하는 또 다른 볼거리는 섬 오른쪽에 시루떡처럼 층층이 쌓인 해안가로 길이 84m의 퇴적암층의 공룡 발자국 화석이다. 해안은 모래 해변은 물론 몽돌 해변도 없으며, 해변 대부분이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퇴적암층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10m가 훨씬 넘는 절벽의 단면에는 수십 권의 책을 차곡차곡 쌓은 듯, 암층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공룡 발자국 화석이 무더기로 발견된 이 퇴적암층 앞에 서면 수천만 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한눈에 보고 있는 듯한, 묘한 기분에 젖게 된다. 이 퇴적층이 오랜 세월에 걸쳐 파도에 의해 기왓장처럼 떨어져나간 자리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것이다.
추도와 그 본섬인 사도 등 이 일대 섬에는 공룡이 찍어 놓은 발자국 3,800여 점이 남아 있다는데 이 지역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 화석 중 절반에 가까운 1,759점이 추도에서 발견됐다고 하니 가장 작은 추도에서 가장 많은 화석이 발견된 셈이다. 특히 84m에 달하는 43개의 조각류 보행렬은 세계에서 가장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열두 가구가 살았던 추도에 지금은 두 가구만 살고 있다. 나머지 집은 모두 폐가가 되었고, 폐교가 된 낭도초등학교 추도분교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바다와 섬은 그대로 주민들의 삶의 공간이었다. 지금까지 파괴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그곳에 ‘섬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들은 힘겹게 걸음을 옮겨 퇴적암층 해변에서 따개비를 줍는다. 추도의 퇴적암층은 이곳 사람들에게는 생활의 일부이자 삶의 터전인 셈이다.
김을심 할머니(84세)는 1959년 태풍 사라호 때 이제는 작고한 할아버지와 돌담을 쌓았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때 바람이 겁나게 불었제. 마루까지 날아든 돌을 이용해 다시 돌담을 쌓았는디, 그 후로는 한 번도 넘어진 적이 없어.”
그렇게 모진 세월을 함께 살아온 할아버지는 지난해 5월 세상을 떴다. 할머니에게는 지난겨울을 날 때 썼던 땔감을 이별의 선물로 남겨 주고 갔다.
섬에서 다시 섬으로, 세상에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서야 찾아갈 수 있는 섬, 추도에서 나서는 길에 해마다 질 좋은 미역을 바다에 방치한다는 말을 들었다. 고생하여 미역을 채취하여 말려도 값이 나가지 않기 때문이란다.
김, 톳, 다시마, 파래 등 바다 해산물처럼 무공해 건강식품은 없다. 60만 국군에게 일주일에 두세 번 미역국을 먹여 입맛을 길들이고 학교 급식에도 웰빙 식품으로 미역이 식탁에 올라갔으면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가 이루어져 추도도 살맛 나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품고 섬을 뒤로 했다.
출처 : 한국의 섬 - 전남 여수, 2010. 10. 18.
<한국의 섬> 시리즈 제1권, <전남 여수> 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중 하나인 백도를 비롯하여 전남 여수의 모든 유인도 섬 54개가 담겨 있다. 전남 여수의 섬은...
저자 : 이재언| 섬 탐험 전문가
섬에서 나고 자란 저자는 우리나라의 섬 탐험 전문가이다. 대학에서 복지학을 전공했고,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90년-1996년까지 바나바선교회 섬 선교사로 파송되어 선교선 등대호를 타고 선교활동을 하던중 섬의 중요성을 깨닫고 전국의 446개 섬을 3번이나 순회하였다. 저자는 많은 섬을 찾아다니며 섬의 기본 현황과 역사, 문화, 민속, 주업, 삶의 애환 등 수많은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사진을 촬영하여 기록을 남겼다. 2009년부터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에 재직중이며 전남일보 섬전문 시민 기자이다.
여수시 [사도&추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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