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성인은 3세기 중엽 이집트 중부 코마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느 날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마태 19,21)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감화되어, 자신의 많은 상속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사막에서 은수 생활을 하였고, 많은 사람이 그를 따랐다.
그는 세상의 그릇된 가치를 거슬러 극기와 희생의 삶을 이어 갔으며,
‘사막의 성인’, ‘수도 생활의 시조’로 불릴 만큼
서방 교회의 수도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356년 사막에서 세상을 떠났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고치신다.
그런데 이는 중풍 병자의 믿음이 아니라,
그를 예수님께 힘들여 데려온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베푸신 것이다.
또한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심으로써
그의 마음까지도 깨끗하게 치유해 주신 것이다(마르 2,1-12)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의 믿음이 아니라,
그를 데려온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사제가 로마 시내에서 어느 한 거지를 만났습니다.
알고 보니 그 거지는 자신과 같은 날 사제가 된 신학교 동료였는데,
그가 성소를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사제가 다음 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알현하게 되었을 때,
친구 거지의 상황을 전했습니다.
교황은 그 거지와 함께 저녁 식사에 초대하였습니다.
저녁 식사 끝에 교황은 거지와 둘만 있게 해 달라고 하였고,
둘만 남게 되자 교황은 그에게 자신의 고해성사를 청하였습니다.
거지는 환속한 자신은 더 이상 사제가 아니라고 말하자,
교황이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로마의 주교입니다.
이제 잃어버린 당신의 사제 권한을 수여합니다.”
그는 교황에게 고해성사를 주었고,
이어 그 거지 사제 역시 교황에게 고해성사를 청하게 됩니다.
진정으로 회개한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에게
그가 구걸했던 거리에서 걸인들을 돌보는 일을 맡겼습니다.
이 사제가 죄를 용서받기까지 스스로 한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동료 사제와 교황의 도움만이 있었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주위의 선한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시어
그가 회개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서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려갔던
네 사람의 정성스러운 믿음으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다름없던 그가 온전하게 되살아난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 자신이 잘나서 용서받고 의인처럼 살 수 있었던 것만은 아닙니다.
누군가 우리를 위해 부단한 기도와 노력을 했던 것입니다.
가을 하늘을 떼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들을 보면 대개 삼각형 모양입니다.
조류 학자들에 따르면, 혼자서 날아가는 것보다
삼각형으로 함께 날면 공기 저항을 덜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상승 기류 때문에 70퍼센트가량을 더 날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삼각 형태의 맨 앞에 나는 새는 공기 저항 때문에 쉽게 지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다른 새가 앞으로 나선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러기들은 날아갈 때 울음소리 같은 것을 내는데, 이것은 서로 격려하는 것이며
특히 맨 앞에서 공기 저항을 가장 많이 받는 새에게 힘을 주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체력이 떨어지거나 아파서 낙오된 새가 있으면 반드시 동료 새 두 마리가
같이 땅에 내려와서 몸이 회복되도록 도와주고
기운이 회복되면 다시 대열에 합류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기러기는 협동심이 강하고 우애가 매우 돈독한 새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다는 집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때 네 사람이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모였기 때문에 문 앞을 지나 예수님께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네 사람은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냅니다.
이스라엘의 가옥 구조는 우리와 다릅니다.
그곳은 ‘비 오는 계절’과 ‘비 없는 계절’로 확연히 구별됩니다.
따라서 비가 없는 철에는 나뭇가지나 거적 같은 것으로 대충 덮어 두었습니다.
그랬기에 환자를 내려 보낼 수 있었던 겁니다.
아무튼 그들의 극성은 기적으로 보답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관계적 존재입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다른 사람의 마음과 하나가 되려고 노력할 때 조금씩 자라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이 닥칠 때 주위에서 받는 작은 도움에 큰 힘을 얻습니다.
마찬가지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주는 작은 도움은
그 사람을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기러기들이 하늘을 날아갈 때 서로 격려하고 어려울 때에 함께하듯이,
우리도 서로서로 격려와 용기를 주고받으면서 살았으면 합니다.
우애 있게 사는 우리 모습이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으실 것이며,
우리에게는 사람으로 사는 보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다.”(마르2,5)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는
누군가의 믿음이
주님께 감동을 준다네.
비록
우리의 죄는 크지만
그런 우리의 손목을 잡고
주님의 재단으로
이끌어주는 이의
믿음 때문에
아직도 세상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거라네.
- 김혜선 아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