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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참고말씀: 출32:26; 민25:14; 신33:1-29; 수9:23,27; 19:1,9; 왕상9:20,21; 대상9:1,2; 스2:43-58; 시27:1; 겔43:19; 44:15; 45:1-8; 롬12:2; 계21:3,4,10-16
읽을말씀: 겔48:1-35
주제말씀: 겔48:35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첫째, 각 지파들의 기업을 새롭게 나누어 주시다!
“이것은 너희가 제비 뽑아 이스라엘 지파에게 나누어 주어 기업이 되게 할 땅이요 또 이것들은 그들의 몫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48:29)
각 지파의 기업을 나누되, 본문 1-7절에는 북쪽부터 단(1절), 아셀(2절), 납달리(3절), 므낫세(4절), 에브라임(5절), 르우벤(6절), 유다(7절)의 몫이 차례대로 배정되었고, 8-22절은 중심부가 분배되었으며, 23-28절에는 베냐민(23절), 시므온(24절), 잇사갈(25절), 스불론(26절), 갓(27절)의 몫이 차례대로 배정되었습니다.
여호수아 때의 기업 분배와는 어떤 차이점들이 있습니까? 먼저는, 각 지파의 기업이 이전과는 상관없이 새롭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즉 각 지파들이 본래 점유하였던 지역과는 상관없이 제비뽑기를 통해 재분배된 것입니다. 왜 그리 하신 것입니까?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그대로 답습하거나 반복하지 않고 모두가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즉 다시 시작하는 만큼 모든 것을 새롭게 하기를 원하고, 새로워진 환경에서 다시 한 번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예컨대 시므온 지파는 일찍이 모세의 축복(신33:1-29)에서 제외된 바 있는데, 이는 시므온 지파가 주동이 되어 바알브올의 범죄 사건을 일으켰기 때문인 것 같으며,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 남자 곧 미디안 여인과 함께 죽임을 당한 자의 이름은 시므리니 살루의 아들이요 시므온인의 조상의 가문 중 한 지도자이며.”(민25:14).
실제로 여호수아 때 그들은 단독으로 기업을 받지 못하고, 오직 유다 지파의 기업 가운데서 비로소 자신들의 기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 시므온 곧 시므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들의 기업은 유다 자손의 기업 중에서라.”(수19:1) / “시므온 자손의 이 기업은 유다 자손의 기업 중에서 취하였으니 이는 유다 자손의 분깃이 자기들에게 너무 많으므로 시므온 자손이 자기의 기업을 그들의 기업 중에서 받음이었더라.”(수19:9)
하지만 여기서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새롭게 부어주시는 은혜들에 따라 그들도 이제 독자적으로 기업을 받게 된 것입니다. “베냐민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시므온의 몫이요.”(24절)
또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바쳐진 거룩한 땅이 중앙부에 위치하되, 유다 지파와 베냐민 두 지파 사이에 위치하게 하셨다는 점입니다. “르우벤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유다의 몫이요.”(7절) / “그 나머지 모든 지파는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베냐민의 몫이요.”(23절) 결과적으로 이 두 지파는 어디에 놓이게 된 셈입니까? 이스라엘 전역의 중앙부입니다.
왜 그리 하신 것입니까? 분열왕국 시대에 북쪽의 열 지파는 하나님의 성전을 떠났으나, 이 두 지파만은 끝까지 그 성전을 중심으로 신앙을 지켰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은 주께 끝까지 남아 있는 자들을 언제나 기억하시고 또 보상해주신다는 점입니다.
지금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따라 오늘도 새로워진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까?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별하고 이를 힘써 행하고 있습니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또한 하나님 편에 끝까지 서서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으로 힘 있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출32:26)
둘째, 여호와 삼마 하나님께서 언제나 거기에 함께 계십니다!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겔48:35)
8절부터 22절까지에는 무엇이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습니까? 앞서 한 차례 소개된 바 있는 중앙부에 대한 설명입니다(겔45:1-8). 이는 다시 어떤 순서대로 소개되어 있습니까? 중앙의 성소(8,9절)와 이를 포함하고 있는 제사장들의 땅(10-12절), 그 위쪽에 위치한 레위인들의 땅(13,14절), 아래쪽에 위치한 성읍기지(15-20절), 끝으로 좌우편에 위치한 왕의 기업(21,22절) 순입니다.
여기서는 어떤 점들을 보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까? 먼저, 제사장들의 땅은 곧 사독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한정된다는 점입니다. “이 땅을 사독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지어다...”(11절 상) 어째서입니까? 앞서 두 차례나 언급한 것처럼, 그들은 다른 이들이 다 그릇되어 성소를 떠날 때에도 끝까지 자기 직분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될 때에 레위 사람이 그릇된 것처럼 그릇되지 아니하였느니라.”(11절 하)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를 가까이 하여 내게 수종드는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에게 너는 어린 수송아지 한 마리를 주어 속죄제물을 삼되.”(겔43:19) /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44:15)
또한 성읍기지, 곧 속된 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 있습니다. 이곳 중앙에는 무엇을 세우게 하셨습니까? 성읍입니다. “이 이만 오천 척 다음으로 너비 오천 척은 속된 땅으로 구분하여 성읍을 세우며 거주하는 곳과 전원을 삼되 성읍이 그 중앙에 있게 할지니.”(15절) 성읍의 크기는 각각 얼마로 정하셨습니까? 동서남북이 모두 4,500척으로 정방형입니다. “그 크기는 북쪽도 사천오백 척이요 남쪽도 사천오백 척이요 동쪽도 사천오백 척이요 서쪽도 사천오백 척이며.”(16절)
성읍의 들도 동서남북으로 각각 250척이었는데, “그 성읍의 들은 북쪽으로 이백오십 척이요 남쪽으로 이백오십 척이요 동쪽으로 이백오십 척이요 서쪽으로 이백오십 척이며.”(17절) 성읍의 길이와 합하면 동서남북으로 각각 4,750척씩의 정방형이 됩니다.
중앙의 성읍을 빼면 각각 얼마씩 남습니까? 동쪽으로 10,000척, 서쪽으로 10,000척입니다. “예물을 삼아 거룩히 구별한 땅과 연접하여 남아 있는 땅의 길이는 동쪽으로 만 척이요 서쪽으로 만 척이라 곧 예물을 삼아 거룩하게 구별할 땅과 연접하였으며...”(18절 상)
이 땅들은 어떤 용도로 사용하게 하셨습니까? 성읍에서 일하는 자들의 경작지, 곧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가운데서 그 성읍에 들어와 일하는 자들의 경작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 땅의 소산을 성읍에서 일하는 자의 양식을 삼을지라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 그 성읍에서 일하는 자는 그 땅을 경작할지니라.”(18,19절)
이들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정확하지는 않으나, 아마도 12지파에서 선발되어 성읍을 건축하는 일꾼들이나 성을 파수하는 군인들, 그 성에 거주하는 노동자들, 성전에서 봉사하는 비(非)레위인들 등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참고로, 여호수아 시대에 기브온 족속이 대를 이어 하나님의 성소를 위해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었는데,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대를 이어 종이 되어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리라 하니.”(수9:23) / “그 날에 여호수아가 그들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로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수9:27)
이들은 어느 때까지 존재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을 때입니다. 즉 이들은 외국인이었다가 이스라엘에 종이 되었던 자들로 소위 ‘느디님 사람들’(‘주어진 자들’이란 뜻)으로 불렸으며 종종 성전 수종자라고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성전을 위해 물 긷는 일이나 나무를 패는 허드렛일 등을 도맡았는데도 불구하고, 한 번 알게 된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함께 귀환했던 것입니다.
아울러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으로 일컫는 사람들이 존재했는데, 이들은 솔로몬이 가나안 땅에 남아 있었던 원주민들을 종으로 삼아 역군을 부린 바 있었는데(왕상9:20,21) 이들의 후손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그들은 바벨론으로 함께 사로잡혀갔다가 이스라엘 백성이 귀환할 때 함께 돌아왔는데,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거나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때 역군으로 참여한 듯합니다.
“느디님 자손들은 사하 자손과 하수바 자손과 답바옷 자손과...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이 삼백구십이 명이었더라.”(스2:43-58) / “온 이스라엘이 그 계보대로 계수되어 그들은 이스라엘 왕조실록에 기록되니라 유다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더니 그들의 땅 안에 있는 성읍에 처음으로 거주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이라.”(대상9:1,2)
한편, 이 성읍의 출입구는 모두 몇 개나 되었습니까? 북쪽으로 르우벤 문, 유다문, 레위문 3개, 동쪽으로 요셉 문, 베냐민 문, 단 문 3개, 남쪽으로 시므온 문, 잇사갈 문, 스불론 문 3개, 서쪽으로 갓 문, 아셀 문, 납달리 문 3개 총 12개입니다.
“그 성읍들의 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따를 것인데 북쪽으로 문이 셋이라 하나는 르우벤 문이요 하나는 유다 문이요 하나는 레위 문이요 동쪽으로 너비는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요셉 문이요 하나는 베냐민 문이요 하나는 단 문이요 남쪽의 너비는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시므온 문이요 하나는 잇사갈 문요 하나는 스불론 문이며 서쪽도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갓 문이요 하나는 아셀 문이요 하나는 납달리 문이며.”(31-34절)
왜 이 같은 12개의 문을 두신 것입니까? 이스라엘 12지파 사람들은 물론 그 가운데 거주하는 타국인까지 누구를 막론하고 이 성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장차 모든 성도들이 새 예루살렘의 12문을 통해 들어가게 될 것처럼 말입니다.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문이니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자를 가졌더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계21:10-16)
이 성읍의 이름은 ‘그 날 이후로’ 무엇이 된다고 하셨습니까?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란 뜻을 지닌 ‘여호와 삼마’입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영원히 동거하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35절)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환상의 결론은 여호와 삼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오셔서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점입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3,4)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여호와 삼마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심을 깨닫고,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도 결코 흔들리거나 뒤로 물러서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두려울 수 있단 말입니까!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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