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않은 나의 인생경험에 비추어 볼때 밤 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는 대개가 가슴 덜컹 내려앉는 사연들로 다가와 팍팍해진 가슴에 지워지기 어려운 육중한 멍자국를 가슴에 심어 놓는다. 지난 월요일(4.16)새벽, 병원 응급실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 아내는 마른 햇볕에 굳어진 모래성이 소나기를 만난것 처럼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수화기를 들 기운조차 이미 상실한 아내는 수화기 저 편의 목소리에 숨을 죽인채 떨리는 음성으로 그저 “예...”, “예...”만 악보위 도돌이표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불안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하듯 아들놈 방문을 급히 열어 보았으나 썰렁한 냉기로 가득찬 빈방의 차가움과 침대 위의 홀로 누운 배게의 각진 눈초리가 나를 쏘아 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한 겨울 찬 새벽, 알몸에 냉수를 들이분것 처럼 생각들이 얼어붙고 발 굵은 소름덩이가 온몸에 가시처럼 돋았다. 수화기 저 편에서 아들놈의 교통사고를 알리는 응급식 직원의 건조하고 사무적인 목소리가 악덕 사채업자의 독촉말처럼 숨 쉴 여유조차 앗아가 아내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매일을 노심초사 하면서 걱정했던 일이 기어이 벌어진 것 같았다. 거의 먹물빛을 한 아내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였다. “여보, 유휘가 어젯밤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가 나서 지금 백병원 응급실에 있데요, 유휘란 놈이 당신에게 혼날까봐 보호자 연락을 거부 하더래. 응급실에서는 얘가 미성년자라 절대로 그냥 보낼수가 없어서 녀석을 여지껏 설득 하다가 이제야 연락을 한거래요. 여보, 어떡해...”
두려움과 절망감에 뒤섞인 아내의 음성이 아들놈에 대한 분노로 나를 얼어붙게 하였다. 아버님이 병원에 계신것 만으로도 머리에 유황기름이 이글대는데 녀석이 기어코 성냥불을 그어댄 것이다. 차가운 분노와 심한 조갈로 정신을 가다듬기 힘들었다. 그렇게 타일렀건만, 그렇게 일깨웠건만, 그렇게 기도했건만,,, 머릿속이 하얘지고 말문이 굳어지며 주체하기 힘든 절망의 나락으로 한 없이 빨려드것 같았다.
거의 넋을 놓고 주져 앉아 있는 아내를 보며 내가 정신을 차려야 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으며 “당신은 집에 있어. 내가 가보고 연락줄게, 너무 앞서 생각치 말고...”하며 아내를 타일렀으나 자기도 굳이 가야 겠다며 따라 나섰다. 다급한 마음은 이미 병원의 응급실로 들어 섰으나 발걸음에 납덩이를 두른 더딘 걸음이 4월 중순의 싱그러운 새벽공기를 무겁게 가라 앉혔다.
새벽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은 마치 누구 하나가 으스러져야 승자가 되는 ‘치킨런’게임을 즐기듯 목숨을 내놓고 달렸다. 무지막지하게 내달리는 차량들의 꼬리등 불빛 속에 아들놈의 울먹이며 겁먹은 얼굴이 뿌옇게 떠오르다 사라져갔다. 옆에 앉은 아내는 말 없이 눈을 감은채 무슨 주문을 외듯 연신 입을 씰룩대고 있었다.
마음은 속절없이 타들어 가는데 설상가상으로 신호는 만날 때 마다 빨간불 이었다. 지나치는 차량들이 별로 없었기에 그냥 달리고픈 유혹이 강렬했으나 왠지 불길한 예감에 파란불이 될 때까지는 그야말로 일각이 여삼추였다. 평시에 15분이면 닿을 거리를 150분이나 걸린듯 하여 백병원 응급실에 닿았다.
응급실을 표시하는 빨간색의 표지판이 시야를 자극 한다는 인상을 안은채 응급실을 들어섰을때 병원 특유의 날카로운 포르말린 냄새와 종류를 알수 없는 습한 땀냄새가 날카로와진 신경을 더욱 주눅 들게했다. 시급을 다투는 긴박함에 정신없이 움직이는 간호사들과 젊은 수련의들은 허겁지겁 들어서는 우리 부부에게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은채 각자의 소임에서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온기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이 너무도 기계적이고 사무적인 그들의 견고함에 일말의 야속함이 들었으나 자식놈 생사의 칼자루를 그들이 쥐고 있다는 인식 앞에서 결코 내색 할 수가 앖었다. 당직 간호사에게 방유휘의 보호자임을 밝히며 아들놈의 상태를 물으니 “담당의사가 와서 설명해줄거”라며 “아들놈 침대 옆에서 기다리란” 말만 남긴채 바삐 사라져 갔다.
여린 살을 붉게 물든 화상으로 자지러지게 울부짖는 갓난아이의 울음소리에 너무 아프겠다는 생각을 느낄 겨를도 없이 그 옆 침대에서 아들놈이 아침에 집 나설 때의 복장을 완전 해제하고 환자복을 입은채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응급실에 들어 섰을때 부터 녀석은 이미 나와 아내를 먼저 알아 차리고 미리 머리를 굴리고 있는듯 했다.
얼굴과 양손은 멀쩡 했으나 녀석의 왼발은 미이라의 발처럼 삼베같은 누런붕대가 5개의 발가락만 숨쉬게 한 채 엉덩이 아래 부분까지 겹겹이 감겨져 피부 위 모든 숨구멍은 밀랍처럼 봉인되어 있였다. 붕대에 감싸여져 두툼해진 왼발에 비하여 멀쩡한 오른발은 애처러울 정도로 유난히 가늘어 보였다.
투명한 링거줄을 흐르는 항균제, 포도당, 식염수등 여러 종류 링거액의 작은 방울들이 경쟁적으로 벽시계의 초침보다 느린 간격으로 녀석의 몸속으로 감질나게 스며들며 가뜩이나 조급해진 마음을 비웃는것 같았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너무도 기가 막혀 녀석의 이름을 부르기 보다 귀방망이를 올려치고 싶었으나 아내가 먼저 간절한 음성으로 고개돌린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모든 애미들이 그렇듯 아내는 본능적으로 녀석의 자잘못은 망각한채 오직 녀석의 안위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녀석에게 동정의 눈빛을 들키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강한 노여움의 표정을 지으며 무언의 압박으로 녀석을 몰아 쳤으나 영악한 아들놈은 아내의 품속으로 깊숙이 몸을 숨기며 나의 노여움을 담 넘는 구렁이 처럼 피해 나갔다.
사고의 정황을 다그치는 나의 닦달에 오토바이를 타고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는 순간 갑자기 튀어 나오는 자건거를 피하여 급브레이크를 밟다 관성에 의해 몸이 튕겨져 나가 바닥에 무릎 먼저 떨어 지면서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 앉아 있다가 지나는 이의 도움으로 119구급차에 실려 왔다는 것이다.
2~3년 전에도 오토바이 사고로 팔이 부러져 그렇게도 애간장을 태워 놓더니... 참 징한 녀석이다. 새벽의 어둠이 걷히고 동틀 무렵 에서야 피곤에 쩔은 몸으로 마주한 담담의사의 진단은 절망을 안겨주고 희망으로 달래 주었다. “CT사진 판독결과 무릎뼈가 박살 났습니다. 무릎관절도 찢어지고, 인대도 파열되어 상태가 심각한 편입니다. 수술이 잘 된다해도 후유증이 없다고 보장은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정상인보다 10년정도 일찍 관절염이 찾아올수도 있고...”
피곤에 쩔은 허접한 음성 이었지만 바늘 하나 꽃을 한 치의 빈틈도 허용치 않고 너무도 매정할 정도로 확신에 찬 설명을 이어 나가는 까칠한 의사가 차라리 돌팔이 이기를 바랬다. 옆에서 숨죽이던 아내는 할 말을 잊은채 좁은 어깨를 들썩이며 나에게 슬픈 눈빛으로 기대는것 같았다. “여보, 무슨 말이라도 해봐요. 어떻게라도 상황을 역전 시켜봐. 당신이 가장이잖아...”
아내의 간절한 눈빛처럼 차가운 의사와의 대화가 더 이상의 아무런 말없이 이렇게 끝나 버린다면 아들 녀석은 영영 의사의 말대로 굳어질것 같았다. 뭔가 이 절망의 늪을 빠져 나올수 있는 돌파구를 그 짧은 시간에 찾아 내야 했다. 나는 기우뚱대는 정신줄을 치켜 세우며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선생님, 치료를 잘 받는다면 정상보행은 가능 하겠습니까?” 잠시 머믓대던 의사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두리뭉실한 답변으로 사그라 지는 불빛에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글쎄요, 장담은 못하지만 정상보행이 가능 하도록 최선을 다 할테니 너무 염려 마십시오. 오토바이 사고는 대개가 사망 아니면 식물인간 인데 아드님은 헬멧도 안 쓴 상태에서 머리 다치지 않은것 만으로도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 집니다...”
사무적이고 의례적인 위안 이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며 어둡고 칙칙했던 절망의 늪에서 비로소 한 발짝 빠져 나오는것 같았다. 칠흑같던 새벽길을 나서며 여지껏 내 머릿속을 지배 하였던 불안, 분노, 침울, 초조, 다급함, 슬픔, 절망, 걱정... 등 이 모든 관념들이 안개처럼 걷히고 “멈췄을때 비로소 보인다”는 혜민스님의 속삭임이 지금껏 생각지 못했던 ‘다행’이란 희망을 보이게 하였다.
내 안에서 느껴지는 좋고 싫고 힘들고 괴로운 감정의 원인은 살아 오면서 알게 모르게 내가 심어 놓은 것일 것이다. 내 마음의 눈이 어떤 상태냐에 따라 그 마음 그대로 세상이 보일 것이기에 내 안에 내재된 불행의 선입견을 이제는 내 스스로 거둬 들여야 했다. 시한폭탄 처럼 거친 오토바이 사고에도 뷸구하고 그나마 머리통에 작은 기스 없이, 녀석의 싱싱한 장기(臟器)들도 전과 변함없이 팔팔하게 꿈틀 댄다는 사실이 불행에 주저 앉기 보다 먼저 다행을 깨우쳐준 까칠한 담당의사에게 무한정으로 감사하게 했다.
하늘은 언제나 폭풍우가 몰아치기 전 인간들에게 번개와 천둥이란 시그널을 주어 심각한 재난으로 부터 미리 대비하게 하였다. 오늘의 사고는 아들녀석의 길고도 지난한 인생에서 천둥과 번개로 기억되길 믿고 싶었다. 녀석이 살아가면서 천둥,번개소리에 움추리지 말고 잠시 멈춰서서 좀더 몸을 낮추고 고개를 숙이는 지혜와 성숙을 지닐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여기고 싶었다.
여지껏 과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등한시 한 채 막연히 아들녀석이 공부를 잘하면 ‘잘 먹고 잘 살수 있을거’란 추상 덩어리에 집착 했었다. 그것에 얽메어 항상 녀석을 닦달하고 몰아치며 ‘애비’라는 권위에 취해 있을때 그만큼 녀석은 시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돌아보게 되었다.
거추장스럽고 서로를 얽어메는 ‘권위’라는 허명을 내려 놓으며 녀석이 평생을 걸어가며 의지해야 할 애비의 말 한마디 쯤은 들려 주고 싶다.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현상과 사실에는 예외없이 부정과 긍정이 함께 존재 하기에 항상 밝은 면만 볼 수있는 가슴를 키워 가라고... 어떠한 불행과 고난에서도 웃음을 잃지 말고 그것을 긍정으로 받아 들일수 있는 지혜와 유머를 넓혀 나가라고,.. 모든 것은 다 주어도 따뜻한 가슴 만큼은 잃지 말라고...
비온 뒤에 땅이 단단해지고, 추위와 눈보라에 단련된 겨울나무가 건실한 열매를 맺듯 하늘이 무너진 듯한 녀석의 사고가 잠시 스쳐 가는 여름 소나기가 아닌 생각의 높이가 길어지고 긍정의 가치와 첫 인사를 나눈 성장통으로 기억되길 바랬다. 아들놈이 누운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긍정의 가슴으로 녀석의 밤을 지켰다.
나 보다도 가야할 길이 몇 배나 많이 남아 있는 녀석의 인생길에서 마주하게 될 폭풍우는 이번 만이 아닐것이다. 더욱 거대한 비바람과 험한 파도를 만날 때 마다 자신을 위해 긍정의 뜬 눈으로 밤을 지킨 애비, 애미를 생각 한다면 ‘그 어떤 불행도 녀석의 삶 앞에서는 빛이 바랠것’ 이라는 긍정의 확신이 녀석의 깨진 무릎을 한 동안 애증의 눈길로 바라보게 할 것이다.
첫댓글 형님,형수님 맘고생 심했겠네요.항상 모든것 잊고 제자리로 가고 싶은게 인생이겠지요.화이팅입니다.
자식키우는 부모는 누구나 같은 마음이지요. 용석아우님 큰아이가 몇살인지?... 절대 오토바이타지 말라고 주지 시켜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잘 하시겠지만... 언제나 행복한 나날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