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사월(閏四月)
박목월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상아탑』 6호, 1946.5)
[어휘풀이]
-사 : ‘-야’, ‘-라야’에 해당하는 옛 조사
-문설주 : 문짝을 끼워 달기 위하여 문의 양쪽에 세운 기둥
[작품해설]
이 작품은 세련된 시어를 사용하여 순수한 산수의 서경과 인간 본연의 근원적 애수를
노래한 목월의 초기 시 세계를 대표하는 민요풍의 서정시이다. 7·5조를 바탕으로 기·승·
전·결의 구성을 취하고 있는 이 시는 어느 산 속의 풍경을 한 폭의 그림을 그리듯 보여 주
면서 그 속에서 눈 먼 처녀의 애틋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이따금 꾀꼬리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어느 한가로운 윤사월의 대낮, 노란 송화 가루가
바람에 날리는 외딴 봉우리 한구석에슨 산을 지키는 산지기의 집이 한 채 외롭게 서 있다.
그 집에는 산지기의 딸인 듯한 눈 먼 처녀가 살고 있는데, 모춘(暮春)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없는 그녀는 문설주에 기대어 꾀꼬리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봄의 알므다운 풍경을
상상하고 있다.
이 자품의 모티프는 ‘송화 가루’와 ‘꾀꼬리’, 그리고 ‘눈 먼 처녀’이다. 그런데 ‘송화 가
루’는 시각적인 것으로 ‘눈 먼 처녀’와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가지지 못하게 되는데, 이 양
작 사이에 교량적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꾀꼬리’의 울음소리이다. 꾀꼬리의 울음에 의해서
만 ‘눈 먼 처녀’는 윤사월의 무르익은 정경 속에 용해 될 수 있기에 꾀꼬리의 울음은 바로
그녀가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외딴 봉오리’ · ‘외딴 집’ · ‘눈 먼 처녀’라는 세 가지 비극적 소재로 배합된 이 작품에서 ‘눈 먼 처녀’는 내면적 설움과 고뇌의 소유자로서 작품의 중심을 형성한다. ‘눈 먼 처녀’는 한국적 자연의 일부로 동화되어 있어, 우리는 그녀의 가련함에서 더욱 깊은 고적감, 비애감을 느끼게 된다. ‘송화 가루’는 후각과 시각을 함께 드러내는 시어로 그것의 주된 색조는 ‘노랑’이다. 이것이 이 작품의 고적한 배경과 어우러지면서 토속적, 향토적인 애수와 고독을 더해 준다. 또한 ‘송화 가루’의 식물성 이미지와 ‘꾀꼬리’의 동물성 이미지가 노란색을 매개로 결합하고 있어 더욱 선명한 한국적 자연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작가소개]
박목월(朴木月)
본명 : 박영종(朴泳鍾)
1916년 경상북도 경주 출생
1933년 대구 계성중학교 재학 중 동시 「퉁딱딱 퉁딱딱」이 『어린이』에, 「제비맞이」가
『신가정』에 각각 당선
1939년 『문장』에 「길처럼」, 「그것이 연륜이다」, 「산그늘」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46년 김동리, 서정주 등과 함께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결성
조선문필가협회 사무국장 역임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사무국장 역임
1957년 한국시인협회 창립
1973년 『심상』 발행
1974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1978년 사망
시집 : 『청록집』(1946), 『산도화』(1955), 『란(蘭)·기타(其他)』(1959), 『산새알 물새알』(1962),
『청담(晴曇)』(1964), 『경상도의 가랑잎』(1968), 『박목월시선』(1975), 『백일편의 시』
(1975), 『구름에 달가듯이』(1975), 『무순(無順)』(1976), 『크고 부드러운 손』(1978),
『박목월-한국현대시문학대계 18』(1983), 『박목월전집』(1984), 『청노루 맑은 눈』(1984),
『나그네』(1987), 『소금이 빛하는 아침에』(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