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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퍼붓고 천둥·번개가 친다. 창밖을 바라보던 두 사람은 동시에 이렇게 외친다.
A : 번개다!
한 사람은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에겐 ‘번개’뿐이다. 네이버에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를 연재하는 이수연 씨(27세) 이야기다. 그녀는 선천적 청각장애인이다. 그녀가 만화에서 그리는 표현을 빌리자면, 등 뒤에서 폭죽이 터지고 흥겨운 축제가 펼쳐져도 그녀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모든 소리는 진동으로 전해진다.
댓글에선 각종 ‘간증’이 이어졌다. 장애로 인해 겪는 어려움에 대한 놀람과 무지의 반성에서부터 자신 또한 장애로 겪는 어려움에 대한 공감과 위로가 베스트 댓글로 꼽혔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8월 11일, 네이버 정식 웹툰으로 연재가 시작됐다. 비슷한 시기, 동일한 제목의 책도 출간했다. (『나는 귀머거리다』, 서울문화사) 네이버 '도전만화'에서 '베스트 도전만화'로, 마침내 정식 웹툰으로의 채택. 화려한 출발이다. 비마이너가 ‘라일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웹툰 작가 이수연 씨를 만났다. |
![]() ▲'나는 귀머거리다' 작가 라일라(이수연 씨)와 비마이너 인터뷰 모습 ⓒ라일라 |
네이버 정식 연재를 축하한다. 기분이 어떠신가.
이수연 : 얼떨떨하다.
처음 웹툰을 그리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수연 : 후천적 청각장애인 친구가 선천적 청각장애인과 만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후천적 청각장애인은 소리를 배우고 말할 수 있는데 선천적 청각장애인은 소리가 아예 꽉 막힌 상태다 보니 성격도 이상하다는 것이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청각장애인도 청각장애인을 모르는구나 싶었다.
그중에서도 표현 방법을 ‘만화’로 택하게 된 건?
이수연 : 접근성이 좋으니깐. 고등학교 2학년부터 만화를 조금씩 그렸다.
만화가 밝고 활기차다. 성장 과정이 궁금하다. 초·중·고등학교 때 어떻게 지냈나.
이수연 : 어렸을 땐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어떤 세상이 있는데 그 세상에 계단이 없다면 지체장애인은 장애물 없는 세상에 살게 된다. 그런 것처럼 나 또한 귀가 안 들려도 (입 모양을 읽을 수 있게) 다시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고 말도 잘하다 보니 장애가 있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수학 시간 때 선생님이 낸 수학문제를 나는 풀고 다른 친구들이 못 푼 적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이 나를 가리키며 “쟤 같은 애도 푸는데 왜 너희가 못 푸느냐”라고 했다. 그때 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됐다.
중·고등학교 때는 큰 어려움이 없었나. 사춘기를 겪다 보면 예민해질 것 같은데.
이수연 : 내 귀가 들린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고민은 없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도 청각장애인이 있어 그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그게 나는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만화 그릴 때 가장 염두에 두는 부분은 어떤 건가.
이수연 : 민감한 부분은 최대한 좋게 풀어나가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면 구화와 수화에 대한 이야기, 혹은 영어 듣기 할 때 청각장애인에게 지문을 나눠주는 에피소드. 우리 사회에서 수학능력시험은 중요하니깐. 이 부분은 저도 그리며 좀 역차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방법이 없다. 그리면서 ‘아, 이걸 어떡해’ 하면서 그렸던 것 같다.
실제 듣기 시험 볼 때 어떻게 했나?
이수연 : 수능은 지문으로 봤다.
학창시절에도 종종 듣기 시험을 보는데 그때는?
이수연 : 초등학교 받아쓰기 땐 옆 친구가 쓰면 보고 따라 썼다. 중학교 땐 쓰기가 70% 맞았다면 듣기도 70% 맞은 거로 했다. 고등학교 땐 영어 듣기의 경우, 영어 지문을 줬다. 음악시험은 선생님마다 달랐다.
당시 내가 다른 학생들과 다른 대우를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은 안 들었나?
이수연 : 심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재밌다? 부당한 대우 받으면 화나겠지만 당시엔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 시험 볼 때 선생님이 ‘넌 하지 마’ 하면 화나는데 대체할 수 있는 숙제를 내주면 하고.
그런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만화의 소재가 되는 것 같다. 만화가 굉장히 유쾌하다. 그래서 청각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던 사람도 ‘아, 그렇구나’하면서 부드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이수연 :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재미’다.
미술고등학교에 이어 미대를 나왔다. 미술 쪽에 관심 두게 된 계기가 있나.
이수연 : 예술은 자기 내부를 표현하는 거니깐. 그런 기본적인 이유로 시작하게 된 것 같다.
좋아하는 예술가나 작품 있나? 영감 받은 사람들.
이수연 : 인물화를 좋아한다. 고흐, 에곤 실레, 르네 마그리트, 윌리엄 부그로. 동양 쪽은 서위, 오도자, 안견 정도.
학교는 언제 졸업했나.
이수연 : 작년 가을. 미술과 함께 국문학을 복수전공 했다. 청각장애인은 글을 못 쓴다는 생각이 있는데 그 열등감 때문에.
수화는 언어체계가 정말 많이 달라서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이수연 : 많이 다르다. 수화엔 조사가 없다. 그래서 수화 쓰는 사람 중엔 조사를 빼먹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너 좋아하는 동물 뭐?” 이렇게 끝난다. 그런데 구화 쓰는 사람도 언어를 잘 못 쓴다. 그 이유는 후에 만화로. (웃음) 사람들이 한국에서 20년 동안 영어 공부해도 영어 잘못 쓰는 거랑 비슷하다. 구화인들도 사람과 대화 안 하고 책 안 읽으면 글 못 쓴다. 요즘은 인터넷 때문에 이런 점이 많이 괜찮아졌지만.
작가님은 ‘구화를 사용하는 농인’이다. 만화에서 구화 배우는 과정이 흥미롭게 나오는데 농인에게 구화란 무엇인가.
이수연 : 농인에게 수화는 문화고 구화는 기술이다. 구화는 상대방의 협력도 필요하다. 상대방이 입을 열어 말한다고 다 알아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상대방이 말하는 걸 알아채야 하기에 기술이다.
수화도 사용하나?
이수연 : 아주 간단한 것만.
농인 사회에서 수화를 잘 사용하지 못하기에 불편한 건 없나
이수연 : 수화 쓰는 농인 만나면 힘들다. 이 에피소드도 만화로 그리려고 한다.
![]() ▲8월 책으로 출간된 『나는 귀머거리다』(서울문화사) |
만화에서 한 친구가 “장애를 개성”이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좋은 말이긴 하나 이 말이 현실의 고통을 은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수연 :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싫어하는 사람은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경우엔 신기했다. 비장애인이 애초에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베스트 도전만화 때 반응이 엄청났다. 댓글이 많이 달리던데 인상 깊은 댓글이 있다면?
이수연 : “장애인 그리는 웹툰이라고 해서 보러 왔는데 잘 살고 계시네요.” 그렇다. 잘 살고 있다.
잘 사는 건 어떤 건가?
이수연 : 장애에 대한 어두운 시선, 편견이 없는 것.
작업하는 데 있어 장애가 특징임과 동시에 한계로 작용하진 않을지, 이에 대한 고민은 없나.
이수연 : 없다. 사건을 만나면 그때 생각한다. 청각장애인의 한계에 부딪히는 사건들.
네이버 정식 연재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수연 : 사람들이 네이버를 많이 보고 연령층도 중·고등학생이 많다. 중학교 때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 그때 같은 반 아이들이 장애인에 대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장애인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다. 제 웹툰을 보고 장애인에 대한 지식을 조금이라도 얻으면 좋겠다. 그럼 제가 당했던 일이 안 일어날 수도 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