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는 엄청난 변화와 가능성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무한한 성장에로의 가능성 이면에는 인간의 한계성도 점점 더 첨예하게 드러나고 있다. 무한한 가능성이란 한낮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점점 더 실감하고 있다. 에너지 자원은 고갈되어 가고 있고, 환경은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다. 인간은 과학문명 발달의 주체자이면서도 다른 한편 자신의 환경세계, 정신세계 및 감정세계에 대한 적절한 통제력을 잃어버린 듯 하며, 삶의 진정한 행복도 점차 상실되어 가는 것 같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억압되고 지친 정신세계를 만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다. 생의 진정한 근거와 의미와 목표, 헌신과 신앙의 대상에 관한 질문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신앙할 수 있으며, 어디에서 우리 삶의 확고한 토대, 그리고 궁극적인 목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신앙은 어떤 특별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예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필수적인 삶의 행위이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그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말한다. “신이란 인간의 마음이 전적으로 걸려 있는 존재이기에 인간은 누구나 제각각 자기만의 신에게 마음을 걸고 있다.”라고.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힘 안에 놓여 있든지 사탄의 힘 안에 놓여 있으며, 중립지대는 없다고 말한다. 인간의 의지란 마치 말과 같아서 하나님이 그 위에 올라타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가고, 사탄이 그 위에 올라 타면 사탄이 원하는 곳으로 간다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는 오직 하나님의 전능하신 역사 때문이다(루터의 논문 “노예의지론”). 20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폴 틸리히(Paul Tillich)도 말하기를 “인간의 궁극적 관심 속에는 절대자에 대한 관심이 표현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떤 종류의 절대자를 선택하고 버릴 수는 있을지언정, 절대자 그 자체로부터 결코 도피할 수는 없다.
이것을 시편기자는 시편139편에서 마음과 같이 고백한다.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신앙은 맹목적으로 운을 잡으려는 투기가 아니며, 삶의 벼랑 끝에 매달려 마지막으로 몸을 던지는 모험행위도 아니다. 신앙이란 삶 그 자체에 든든히 뿌리내리고 있는 인간의 전인적인 신뢰행위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자신이 신앙하는 대상에 대하여 지정의라는 전인적인 차원에서 알고 싶어 한다. 우리는 그 대상을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특별히 구약성서에서 말하는 신앙이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인간의 끈임 없는 확신으로서 개인과 역사에 개입하시는 그 어떠한 하나님의 결정과 행동에 대해서도 끝까지 신뢰를 잃지 말고 올바르게 응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하박국 선지자는 잘 표현하고 있다.
2 야훼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가 받은 말을 누구나 알아보도록 판에 새겨두어라.
3 네가 본 일은 때가 되면 이루어진다. 끝 날은 반드시 찾아온다. 쉬 오지 않더라도 기다려라. 기어이 오고야 만다.
4 멋대로 설치지 마라. 나는 그런 사람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공동번역개정판 하박국2:3~4)
그러면 신약성서에서 말하는 신앙은 어떠한가? 먼저 복음서를 보면, 신앙은 자주 예수의 병자를 고치시는 능력과 용서하시는 권세에 대한 신뢰와 관련되어 있다. 즉 인간을 곤경으로부터 구원하시는 예수의 소명과 능력에 대한 신뢰이다. 그러나 비록 예수는 특별한 경우에 곤경에 빠진 인간을 긍휼히 여기사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구원해 주셨지만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인간을 하나님의 보다 궁극적인 구원행위의 소식(복음)에 대한 증인으로 삼고자 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이해하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란,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에 대하여 온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신약의 나머지인 역사서, 바울서신서, 일반서신서를 보면신뢰뿐만 아니라 신앙의 내용에 대한 인식과 동의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대체로 기독교적인 신앙이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첫째, 신앙은 어떤 사실보다도 하나님의 인격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신앙은 인격적인 신뢰의 행위이지 단순한 객관적인 지식과 정보에 대한 긍정이 아니다. 또한 신앙은 개인의 잠재력이나 가능성에 대한 확신도 아니며, 개인의 한계성을 뛰어 넘기 원하는 더 높은 소원이나 열망의 표출도 아니다. 기독교적 신앙은 개인과 역사 안으로 스스로 들어오셔서 말을 걸어오신 인격자(하나님)를 향해 있다.
둘째, 신앙이 하나님의 인격과 관련되어 있다면 그것은 또한 그분이 행하신 역사적 사건과도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은 행동함으로써 존재한다. 하나님은 그리스철학에 나오는 형이상학적 최고신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안에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그분이 행하신 과거의 역사를 회상하면서 앞으로 행하실 그분의 역사하심을 간절히 기다렸고 또한 예배했다. 신약성서에서도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까이 온 하나님의 나라와 그 미래를 온전히 주목한다.
셋째, 신앙이 하나님의 인격과 그분의 역사하심과 관련되어 있다면 신앙이란 항상 결단과 사건으로서 존재하는 것이지 어떤 상태나 소유물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신앙에는 확실성은 있어도 안정성이나 지속성은 보장되어 있지 않다. 신앙은 단 하루라도 묵은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 매 순간 새롭게 신앙의 토대 위에서 벽돌을 쌓아올리는 꾸준한 행위이어야 한다. 신앙은 매 순간의 결단이고 매일의 헌신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은 또한 인간의 과제이기도 하다.
넷째, 신앙은 정지해 있는 사물과 관련되어 있지 않고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행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신앙은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인격(약속)과 행동을 뒤따르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앙은 희망적이고 미래적인 구조를 갖는다.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
(공동번역개정판 히11:1)
다섯째, 신앙은 우리가 매 순간 의지해야 할 버팀목을 매 순간 붙잡아야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신앙에는 신뢰의 성격만이 아니라 인정, 지식, 지혜 및 고백의 성격도 갖고 있다. 즉 신앙은 허공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지를 향하여 달음박질하는 것이기 때문에 목적지에 바르게 가기 위해서는 지식을 가져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있어야 한다. 아니 목적지에 더 가까이 갈수록 목표는 분명해져 오고, 그것은 우리에게 분명한 동의와 고백을 요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은 신뢰적 지식이고 지혜로운 확신이다. 신앙은 항상 의식적이고 고백적이어야 하고, 또한 다른 신앙들과도 지식적으로 대화하면서 대결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은 신학을 필요로 한다. 신앙은 기도와 더불어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신앙이 성숙한 신앙이 될 수 있다.
이신건박사(독일 튀빙엔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