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역사란 무엇인가. 게다가 우리가 배우는 한국사라는 것은. 그리고 민족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난 도무지 이런 것들이 도대체 왜 존재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 그것은 내가 양아치 들 중에서 누군가를 찍어야 하고 그래야만 민주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라는 개소리와 같은 것이다.
자고로 민족이라는 말을 지꺼린 인간들이 바로 저런 양아치들이 권력을 잡은 19 세기 이후다. 조선시대 까지 우리가 교육 받았고 거의 상식화 되어 있는 한국사와 민족의식을 규정 짓는 고려사 삼국유사 삼국사기는 서민들은 도저히 구경도 할 수도 없는, 선비들일지라도 거의 읽을 수도 없었던 희귀한 문서였다. 게다가 단군신화가 몇 줄 언급되어진 신화에 관한 이야기는 아마 만주 동북 지구 어느 만주 부족 마을에서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 정도일 것이다.
물 건너 일본 사기 역시 19 세기가 한참을 지나서 극우파 일본 정치인들이 어디선가 발굴해낸 것이다. 아니, 그 전에는 거의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을 명치유신 이후로 세상에 등장을 시킨 것이다. 중국 서점에 가 보면 수없이 돌아다니는 통감절요 역시 그렇다.
발해를 한국사에 편입시킨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대조영이 고구려인인가 말갈인인가 대해서는 논쟁이 많지만, 대체적으로 학계에서는 말갈인으로서 고구려의 신하였다는데 동의를 하는 편이다. 대조영이 고구려의 신하였기 때문에 발해의 상층부는 고구려인이고 하층부는 말갈인이라는 논리는 기가 막히다. 우리의 위대한 한국사는 당연히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민족 한족은 만주 벌판을 장악하고 호령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잠시 강대국에 움추려 숨을 죽이고 있는 민족이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영토 만주 벌판을 되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에 대한 역사 왜곡과 무엇이 다른가.
아마, 국가주의 전쟁 때문에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말갈족이 있다면 기가 막혀 웃을 것이다.
게다가 명문화된 역사란 것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석연치 않는 구석이 너무나 많다. 후세에 남겨진 극소수 사료만으로 기술된 허구라는 것이다. 더구나 그 상상된 이야기 조차도 보편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혀 없고 권력을 가진 자와 또는 가지려고 하는 자와, 그래서 그런 자들이 쓸 수 밖에 없는 영웅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징기스칸이 그렇고 광개토왕이 그렇고 풍신수길이 그렇다.
얼마전, 방송에서 인기리 방영되어진 주몽의 이야기는 비록 무협지 같은 헛소리지만 그래서 봐 줄 만하다는 것이다. 어차피 역사라는 것은 그네들의 영웅 무협지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19 세기 까지 전 세계 인구는 15억에서 20억 사이로 추측이 된다. 그 인구는 거의 이천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20 세기 들어와서 인류의 생활과 성문화가 극도로 발달하여 지금은 70 억 가까운 인구가 되었지만,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인구가 그렇게 급작스럽게 늘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중세까지의 인류의 역사는 유럽의 역사와 인도와 동 서아시아 일부의 역사가 전부다. 중세까지의 역사에 등장한 인구수를 대충 잡으면 5천만명이 넘지 못한다. 나머지 14억 오천만의 역사는 어디에 있는가. 아메리카 아프리카 남 아시아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의 부족들 그리고 북극의 부족들의 역사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나머지 14억 5천만의 역사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기록되어지지 못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를 형성하지 못했고 권력을 잡지 못했을 뿐이다. 그들의 문명 역시 그들의 사회와 자연환경에 맞추어 건재하고 있었다. 그들이 글자를 갖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을 미개인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래서, 역사란 강제된 기록이고 허구라는 것이다. 그것에 준거하여 민족이란 말이 탄생된 것이고, 그것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한국사라는 것을 우리는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 증거는 발해의 역사가 한국사냐 중국사냐를 따지는 것이고, 일본사기를 두고 백제인인가 일본인인가 또는 백제 귀화인인가를 따지는 것이다. 그것은 보편적인 삶을 살아가는 일반인들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도대체 보편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우리 아이들은 왜 돈까지 내면서 학교라는 감옥에서 거짓 이야기를 배워야 하는가.
근세 역사에 등장했던 자본주의 역사와 사회주의 역사 또한 거기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다. 보편적인 삶을 살고 있는 인민들과는 늘 떨어져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기록한 역사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곳 진보신당에서도 역시 그렇다. 아마, 현재 한국의 진보좌파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는 누군가는 틀림없이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승자이고 강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진정한 진보좌파였는가 아닌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로지 이기면 그뿐이이다. 그것이 역사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이 진보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가는 길은 아니다.
어쩌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보편적인 삶(가난하고 약한자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진정한 가치를 실현하는 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