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강론>(2024. 10. 18. 금)(루카 10,1-9)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9
그때에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0,2-9).”
1) ‘루카’의 직업이 의사였다는 전승이 있는데,
그 직업은 그 자신이 선택한 것이고, ‘글 쓰는 재능’은
주님께서 특별히 주신 탈렌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탈렌트는 흔히 생각하는 재주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 건설에 참여하는 데에 필요한 능력”입니다.
루카가 쓴 복음서와 사도행전 덕분에
많은 이들이 큰 은혜를 받았으니, 루카는 받은 탈렌트를
잘 활용하여 많은 결실을 얻은 ‘충실한 종’입니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 25,16.19-21)”
복음을 선포하고 신앙을 증언하는 일은 ‘말’로 할 수도 있고,
‘글’이나 ‘그림’이나 ‘음악’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인다운 삶’으로
복음과 신앙을 증언하는 일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하든지 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한다면, 그것은 받은 탈렌트를 잘 활용해서
주님께 큰 기쁨을 드리는 일이 되고, 그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는 일이 됩니다.
<루카의 직업이 의사였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그가 의사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선교활동에 동참한 것을,
오늘날의 상황을 기준으로 해서 생각할 때,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제자였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의사라는 직업을 버린 것은, 어부 출신 사도들이 어부라는
직업을 버린 것보다, 또 세리 출신 사도인 마태오 사도가
세리라는 직업을 버린 것보다 더 큰 것을 버린 것입니다.
그 시대 의사들의 사회적 위치가 오늘날과는 좀 다르겠지만,
어떻든 루카는 열두 사도 못지않게
‘버림’과 ‘따름’을 실천한 신앙인입니다.>
2) 자기가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과
원하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이 하나로 일치하는 사람은,
그리고 그 일들이 모두 하느님 뜻에 합당하고
선한 일이라면, 그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만일에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과 원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이 모두 다르다면,
일에서 행복과 기쁨을 누리기는 무척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에 그 중에 하나라도 악한 일이 있다면,
또 자신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일이 바로 그 악한 일이라면,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기도 하고,
멸망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선택한 일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각자 스스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신앙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을,
정말로 내가 원해서 하고 있는가?
해야 하는 일이라서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하는 것은 아닌가?
‘그 일을 잘하는가? 못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 내가 평소에 좋아해서 즐겨 하는 일들이
‘나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가? 방해가 되는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일이 악한 일이라면 무조건 중단하고 끊어버려야 하지만,
악한 일이 아니라고 해도, 신앙생활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고 방해만 되는 일이라면,
과감히 중단하는 것이 ‘신앙인의 지혜’입니다.
<사실 그 일 자체는 악한 일이 아니라고 해도,
신앙생활을 방해한다면, 방해한다는 것 자체가
‘선의 반대쪽’이기 때문에 그것은 ‘악’입니다.>
3) “나는 잘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탈렌트를 조금도 안 주셨다.” 라고 불평하는 경우가 있고,
그렇게 불평하면서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불평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옹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한 덩이는 귀한 데
쓰는 그릇으로, 한 덩이는 천한 데 쓰는 그릇으로
만들 권한이 없습니까?(로마 9,21)”
<이 말에서 ‘귀하다. 천하다.’ 라는 말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고, ‘모든 사람’은 전부 다
하느님의 ‘귀한 자녀’ 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 나오는 라자로의 경우를 보면,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가 단순히
가난한 병자라는 이유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사실 어떤 상황이라도 ‘기도’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출처]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