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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 근절되지 않는 피의사실 공표... '여론 재판' 유감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TV조선 재승인 의혹'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기 위해 22일 오전 서울 도봉구 북부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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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사 정보는 누가 흘렸을까.
종합편성채널 TV조선 재승인 심사에 대한 검찰 수사를 보면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우선 배경부터 설명하면 이렇다. 현재 서울 북부지방검찰청은 지난 2020년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TV조선 재승인 심사에서 심사위원들이 고의로 점수를 낮게 준 것으로 의심하면서 수사를 이어오고 있다.
검찰은 심사 업무를 수행한 방통위 국장과 과장, 당시 재승인 심사위원장을 구속 기소했다. 지난 22일에는 한상혁 방통위 위원장을 소환 조사하고 이틀 뒤인 24일 위계공무집행방해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
여기서부터는 의문의 핵심. 한 위원장에 대한 소환 조사가 이뤄졌던 22일 당시 KBS 보도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재판에 넘겨진 방통위 국장이 '위원장 지시가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마디로 TV조선 심사 점수를 매기는 데 위원장이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 한상혁 위원장은 그동안 종편 재승인 심사에서 어떠한 관여나 불법도 없었다고 밝혔는데, 이런 입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내용이다. 이 기사에서 정확한 정보의 출처를 정리하면 '방통위 국장의 검찰 진술'이다. 그러면 해당 기자는 방통위 국장이 검찰에서 한 진술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해당 기자는 당연히 정보원에 대해 함구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궁금하다. 구속된 방통위 국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을까. 아니면 검찰의 피의자 조사가 이뤄지는 사무실에 있었던 걸까. 담당 검사나 수사관이 말해준 것은 아닐까. 답은 오로지 이를 취재한 기자, 이 내용을 '알려준' 누군가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비슷한 의문이 드는 지점은 또 있다. 지난 1월 11일, 이날은 관련 조사를 받았던 방통위 국장과 과장에 대한 법원의 영장실질심사가 있는 날이었다. 이날 <조선일보>는 TV조선 수사와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기사('방통위 간부들, 민언련 간부 심사위원 앉혀 TV 조선 점수 조작 혐의')를 보도했다.
검찰의 구체적인 수사 내용과 방향이 자세히 담긴 기사였다. 해당 국장 등이 심사 점수 결과를 다른 관계자에게 이야기하면서, 점수 삭감을 요청한 단서를 검찰이 확보했다는 내용도 확인할 수 있다. 수사 담당자가 아니라면 알기 어려운 정보들이다.
<조선일보> 기자의 취재력이 뛰어난 것일까. 아니면 검찰 내부의 누군가가 흘려준 것일까.
764건 접수, 처벌은 0건... 검경은 의지가 없다
▲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TV조선 재승인 의혹'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기 위해 22일 오전 서울 도봉구 북부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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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와 관련된 이런 보도들이 가져오는 효과는 자명하다. 한상혁 위원장을 비롯해 검찰 수사 대상자들은 법정에서 유무죄를 다퉈보기도 전에, 여론 재판의 패자가 된다는 점이다. 한 위원장은 지난 22일 검찰 소환 조사에서 '포토라인'에 서면서 여론 재판의 한복판에 섰다.
한 위원장을 향한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고, 언론들은 이를 경쟁하듯 보도하고 있다. 이런 경우 대다수 언론사들은 기소 단계까진 떠들썩하게 보도하지만, 재판에서 당사자의 무죄가 나왔을 경우 보도를 않거나,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다. 소환조사 사진에 등장한 당사자가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범죄자'라는 낙인을 지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여론 재판의 부정적 효과를 막기 위한 형법 126조, 피의사실 공표죄라는 것이 있다. 검사나 경찰 등 범죄수사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 제기 전'에 공표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사문화된 지 오래다. 1995년부터 2021년 3월까지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764건의 고발장이 접수됐지만 처벌이 이뤄진 것은 단 한 건도 없다.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지금까지 피의사실을 공표한 검사나 경찰관이 없어서라기 보기는 어렵다.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검경의 수사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상식에 부합한다.
검찰이 한상혁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검찰 수사는 이제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 앞으로 이어질 재판에서 언론에 일방적으로 흘러나온 수사 관련 내용과 정보들의 사실 여부는 어떻게 판가름 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