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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흙비기록
요즘 황사가 심하다.
조선도 황사보다 더한 토우土雨가 내렸다.
그래서 조선실록의 황사현상 즉, 흙비의 기록을 골라봤다.
과연 이기록이 한반도라고 할수있을지.. 지금 중국의 고민을 조선이 하였다.
글고 왕을 上이라 하였다. 上은 황제를 칭한다.
上이 있는곳을 경사京師라 하기도 하고 경성京城이라 하기도 한다.
그곳이 조선의 왕이 있던 곳이다.
조선의 上은 바로 황제였다. 그 上이 있던곳이 지금의 중국 서안西安이다.
서안고성이 바로 조선의 왕이 있던 경사京師 또는 경성京城이다.
조선때 기근과 재해의 고민은 지금 중국이 겪는 고민과 똑같다.
조선때의 흙비는 지금 중국 내몽골 섬서 산서 하북 하남의 황사와 같다.
한반도는 멀어서 먼지가 날리지만 지금 중국은 흙비가 내려 농작물의 피해가 생긴다.
가까우니 황사의 농도가 진한것이 바로 흙비다.
조선때 이렇듯 자주 내리는 흙비가 일정때부터 지금까지 없다는건 한반도에서
흙비가 내리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고로 조선이 곧 중국이다.
중국中國이란 말은 나라의 중앙 즉 수도首都, 경사京師라는 말이듯이...
연산 40권 7년 4월 25일 (임인) 평안도 가산嘉山·삭주朔州 등지에 흙비가 내렸다.
삭주朔州 는 산서성 북부 대동大同 아래 있읍니다. 여기가 녕하성 은천지구와 같이
내몽골로 나가는 길목이다. 내몽골이 만주다. 신흥무관학교는 여기서 찾아야한다.
심양 무순가서 백날찾아도 죽은자식 불알만지기다.
세종 57권 14년 7월 27일 (계미) 장杖 1백 대를 치고 3천 리 밖에 귀양보낼 것입니다.
삼천리 밖이면 오까나와 정도인데 해외로 귀양을 보냈구만..
서울 부산이 419키로이니 약 천리. 귀양을 보내기엔 넘 가깝다.
삼천리밖으로 보내는건 반란시 시간을 벌기위해서이다.
호남성이 서안에서 대략 삼천리가 된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삼천리를 채우기위해 뱅글뱅글 돌았다 한다.
돈넘의 새퀴덜...
그래서 호남인들을 관료로 등용치 말라고 했던 거다.
손문이 광동성廣東省 향산香山 출신이다. 광동은 탐라지방이라 한다.
전라남도를 운남성雲南省이라 한다.
모택동이 호남성 상택湘澤출신이다. 상湘자가 들어가면 호남식당이다.
공교롭게도 왕건의 훈요십조가 맞아버렸다.
호남인을 관료로 등용치말고 경계를 해야 하는데 재정이 모자라
그만 호남인에게 당하고 말았다...
물론 한반도 호남 이야기가 아니다.
부의.. 참 불행한 제왕이다. 정원관리사로 죽었던가?
부의 팔자가 조선의 순종 팔자와 비슷하다.
요건 담에...
아래는 조선실록의 기록이다. 무쟈게 기니까 시간날때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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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흙비 기록
태종3회 세종17회 문종1회 세조1회 성종37회 연산군16회 중종52회 인종1회 명종17회 선조7회 광해군일기6회 인조3회 현종1회 숙종 5회 경종1회 영조4회
태종 11권 6년 2월 9일 (경오) 동북면東北面 단주端州에 토우土雨가 내리기를 무릇 14일 동안이나 하였다.
庚午/東北面端州, 雨土凡十四日。
태종 24권 12년 11월 21일 (임인)
흙비오고 안개가 끼어 지척 사이에서도 사람의 모습을 분간할 수 없었고, 기온이 봄같이 따뜻하여 강 위의 얼음이 모두 녹았다.
壬寅/雨土霧塞, 數步之內, 不辨人形, 氣暖如春, 江氷盡釋。
태종 29권 15년 6월 8일 (계유)
명하여 각전各殿의 점화탄點火炭을 정지하게 하였으니, 매우(霾雨흙비) 의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命停各殿點火炭, 以非霾雨時也。
점화탄(點火炭) : 장마 때 습기를 말리기 위하여 때던 숯
세종 3권 1년 3월 13일 (정사)
흙비가 내리어 젖은 곳은 새까맣게 되니, 사람들이 먹비라고 불렀다.
丁巳/雨土, 所霑皆黑。 時人謂之墨雨。
세종 3권 1년 3월 24일 (무진) 흙비가 내리다
戊辰/雨土。
세종 12권 3년 6월 8일 (기해)
흙비가 내려서 자욱하게 어두웠다.
己亥/雨土濛昧 : 가랑비올 몽濛
세종 29권 7년 7월 1일 (무진)
“가뭄이 너무 심하다. 소나기가 잠시 내렸으나, 안개가 끼고 흙비가 왔을 뿐이다. 기후가 순조롭지 못하여 이렇게 되니, 장차 벼농사 형편을 나가 보리라.”
戊辰朔/上曰: “天旱太甚, 驟雨暫下, 霧暗土雨而已。 氣候不調, 乃至如此,
驟雨취우 :잠깐내린비 취:달리다 빠르다.
세종 32권 8년 5월 11일 (갑진)
근일의 기후가 음습陰濕하다가 또 어제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천기를 보니 장차 흙비장마가 질 것 같으니 술을 드시기를 청합니다.”
近日氣候陰濕, 又昨日始雨,觀其天氣, 將爲霾霖, 請進酒。
세종 35권 9년 1월 8일 (정유)
짙은흙비가 종일토록 내렸다.
丁酉/ 翳霾終日。 翳霾예매:검은흑비,짙은흙비
세종 39권 10년 3월 2일 (갑신)
예전에는 흙비와 더위로 인하여 처녀들이 치장할 포백布帛을 염색하지 못했는데 지금까지 사신이 분개하여 성내고 있다. 사신이 이제 반드시 나올 것이니 세 처녀의 치장을 미리 염색하여 기다리도록 하라.”
甲申/視事。昔因霾熱, 未能染處女理裝布帛, 至今使臣憤?。 使臣今必出來, 可預染三處女之裝以待之。”
세종 49권 12년 7월 27일 (을축)
“올해는 흙비霾雨가 너무 심하여 밭곡식은 거개가 결실이 잘 되지 않았사오나, 논곡식만은 풍년이 더할 수 없게 들었습니다.”
乙丑/受常參, 視事。“今歲霾雨太甚, 旱田多不實, 水田則豊年, 無以加矣。”
세종 49권 12년 8월 2일 (경오)
그러나 금년에 흙비霾雨가 몹시 많이 내렸고, 절기節氣도 또한 늦어서 결코 매를 잡을 시기가 아니라고 하여, 넌지시 막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였다.
庚午/受常參, 視事。 然今年 霾雨甚多, 節氣又晩, 甚非捕鷹之時。 以此微辭止之可也。”
세종 57권 14년 7월 27일 (계미)
‘요사이 황충蝗蟲과 수재·한재로 인하여 완전히 실농失農하여, 백성들이 모두 의창義倉에 의뢰하여 먹고 살고 있습니다. 금년 6월에 또 흙비를 만나 곡식이 손상되었는데, 더구나 녕북진寧北鎭에 성을 쌓고, 중국-이말없음-과 무역할 소를 박천博川에서 교환하게 되고. .. 흥정꾼牙人인 궁노宮奴 윤천尹天에게는 장杖 1백 대를 치고 3천 리 밖에 귀양보낼 것입니다.’
癸未/召三議政議曰: “曾令咸吉道築寧北鎭城, 永興、安邊、高原、預原、龍津等官居人狀告: ‘近因蝗蟲水旱之災, 全失農業, 民皆仰食義倉。 今年六月, 又値霾雨, 損傷禾穀, 而加以築城寧北鎭, 交割易換牛隻于博川... 牙人宮奴尹天, 杖一百、流三千里。’
세종 64권 16년 5월 21일 (정유)
례조에 전지하기를, “흙비가 내리고 일기가 더운 계절이니, 이제 5월 23일부터 7월 초10일까지는 상참常參을 정지하라.” 하였다.
傳旨禮曹: 時値霾熱, 自今五月二十三日至七月初十日, 除常參。
세종 65권 16년 7월 13일 (무자)
정사를 보았다. 임금이 말하기를, “금년에 경기에서는 흙비霾雨가 비록 오랫동안 내렸으나, 큰 수해水害는 없었고, 충청·전라·경상 세 도는 이때에 수재의 보고가 없으나, 북쪽 지방의 일이 깊이 근심스럽다.
戊子/視事。 上曰: “今年畿甸之間, 霾雨雖久, 然無大水害稼, 忠淸、全羅、慶尙三道, 則時無水災之報, 北方之事, 深可憂也。
세종 77권 19년 6월 11일 (기사)
신은 지금 5월에는 흙비霾雨가 내려서 일을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고, 도로 희천熙川으로 향하였다가 조명간의 사변을 듣고 달려서 그 곳에 이르니 비도 그쳤습니다.
臣以爲時方仲夏, 霾雨乃作, 難以制事, 還向熙川, 得聞趙明干之變, 馳到其處, 雨且止矣。
세종 82권 20년 7월 10일 (임진)
여름부터 가을까지 흙비와 장마가 개이지 않았고, 또 풍재風災의 변이 있어 풍년을 기필할 수 없는 바입니다.
壬辰/議于政府六曹曰: 然自夏至秋, 霾霖不霽, 且有風變, 未可必其有年也。
세종 92권 23년 4월 4일 (경오)
“이제 여름철을 당하여 흙비霾雨가 있을까 염려되는 까닭으로, 래월 초하루에는 환궁하고자 한다.” 하였다.
庚午/都承旨趙瑞康等問安, 上曰: “今當夏月, 恐有霾雨, 故欲於來月初吉還宮。
세종 106권 26년 11월 15일 (경인)
만약 흙비가 끼거나 추워 얼게 될 때를 당하면 그 고을 관원에게 명하여 두꺼운 물건으로 잘 싸서 손상되지 않도록 할 것이오며...
如値霾雨寒凍時, 令所在官以物厚?, 勿致損毁。
세종 150권 지리지 / 경상도/ 안동 대도호부 / 의성현
의성현義城縣
흙비霾雨가 오면 얼음이 풀린다. 봄과 가을에는 춥지도 하니하고 덥지도 아니하며, 겨울에는 따뜻한 기운이 봄과 같다.
義城縣: 霾雨則氷釋。 春秋不寒不熱, 冬則溫氣如春。
문종 8권 1년 6월 22일 (기축)
지난달부터 흙비가 열흘 동안 내려서 그 잎이 다 떨어지더니, 이달에 이르러 잎이 다시 살아나고 꽃도 봄처럼 피었다.
傳旨禮曹曰: 自前月, 霾雨彌旬, 其葉盡落。 至是, 月葉更生, 花亦發如春。
세조 42권 13년 5월 28일 (임진)
김백겸이 또 아뢰기를, “어유소魚有沼가 거느린 군사軍士는 흙비霾雨로 인하여 군장軍裝과 기계器械가 거의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壬辰/伯謙又啓曰: “魚有沼所領軍士, 因霾雨, 軍裝器械, 殆不可用。
성종 3권 1년 2월 5일 (갑인)
전라도全羅道·경상도慶尙道 두 도에 흙비가 내리었다.
全羅、慶尙兩道, 雨土。
성종 4권 1년 4월 21일 (기사)
삼도下三道에 흙비가 내렸다는데, 그러한가?” ... 리숭원은 아뢰기를, “신이 어제 중僧 수미守眉의 말을 들으니, 예전에도 흙비가 내린 일이 있는데 그 해에 풍년이 들었다 합니다.
聞下三道雨土, 然乎?” ... ” 李崇元啓曰: “昨日, 臣聞僧守眉言, 古有雨土, 其年大有
성종 6권 1년 7월 7일 (계미)
다만 지금 매우霾雨를 당하여 향온香醞을 올리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但今當霾雨, 進香醞, 可也。”
성종 54권 6년 4월 1일 (기묘)
흙비土雨가 내렸다.
朔己卯/雨土。
성종 91권 9년 4월 1일 (임진)
흙비土雨가 내렸다.
朔壬辰/雨土。
성종 91권 9년 4월 1일 (임진)
승정원承政院에 전교傳敎하기를, “이제 흙비가 내렸으니 천견天譴이 가볍지 아니하다. 예전에 수隋나라 황제가 산을 뚫고 땅을 파며 급하지 아니한 역사役事를 하자 마침 하늘에서 흙비가 내렸는데, ...도승지都承旨 신준申浚 등이 아뢰기를, “신 등은 단지 날씨가 흐린 것만 보았고 흙비가 내리는 것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만일 혹시 알았다면 어찌 감히 아뢰지 아니하였겠습니까?”
傳于承政院曰: “今有雨土, 天譴非輕。 昔隋帝鑿山堀土, 役在不急, 會天雨土。... 都承旨申浚等啓曰: “臣等但見陰?, 不知雨土。 如或知之, 何敢不啓?”
성종 91권 9년 4월 1일 (임진)
지난 달에는 지진地震이 있었고 이 달에는 흙비가 내리니, 재변災變이 오는 것이 어찌 불러 일으키게 하는 바가 없겠는가?
前月地震, 今月雨土, 災變之來, 豈無所召? 予未知賦斂重歟?
성종 91권 9년 4월 3일 (갑오)
그러나 지금 흙비土雨의 변變이 있으니, 천심天心에 부응副應하지 못함이 있지 아니한 것인가?” 하였다. 정창손이 말하기를, “지금 흙비뿐만 아니라 또 지진地震이 있었으니, 옛사람은 지진을 큰 변으로 여겼습니다.”
甲午/然今有雨土之變, 無乃未副天心歟?” 昌孫曰: “今非徒雨土, 又有地震, 古人以地震爲變之大。
성종 91권 9년 4월 4일 (을미)
요즈음 지진과 흙비土雨의 재변災變이 잇달아 일어나므로 ... 지금 흙비의 변으로 인하여 이를 모두 행할 수 있겠는가?’ 하기에 신도 옳게 여겼기 때문에 아뢰지 아니하였습니다.” 하였고, 이경동은 말하기를, “전일 흙비가 있었을 때에 예문관藝文館에서 옛 일을 상고해 말하기를, ‘흙비는 전대(前代)에서도 자주 있었습니다.
近日地震雨土, 災變相繼, ...今因雨土之變, 可盡行之乎?’ 臣亦以爲然, 故不啓。” 李瓊仝曰: “前日雨土時, 藝文館考古事來言曰: ‘雨土於前代比比有之。
성종 91권 9년 4월 7일 (무술)
“금년에 두 번 흙비의 변變이 있어 전하께서 바야흐로 몸을 닦고 마음을 반성하여 이를 삼가시면서 금주禁酒는 허락하지 않으시니, 천견天譴에 공경히 답하는 바가 아닙니다.”
박숙달이 말하기를, “한(漢)나라 선제宣帝때에 흙비가 내렸고 평제平帝 때에는 지진이 있었는데, 그때 의론하는 자가 말하기를, 렬후列侯가 많이 분쟁하여 어지러워질 조짐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두 번의 흙비가 내리자 의논하는 자가 말하기를, ‘토목土木의 일을 번거롭게 일으킨 소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今年再有雨土之變, 殿下方修省謹災, 而不許禁酒, 非所以敬答天譴也。
叔達曰: “漢宣帝時雨土, 平帝時地震, 其時議者以爲, 列侯衆多紛爭爲亂之兆。 今再雨土, 議者以爲, 土木繁興所致。
성종 91권 9년 4월 7일 (무술)
석강夕講에 나아갔다.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 흙비가 내렸으니, 어찌 억울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御夕講。 上曰: “今雨土,無奈有冤抑乎?
성종 91권 9년 4월 15일 (병오)
이달 초하루에 하늘에서 흙비土雨가 내리자 이튿날 하교下敎에 이러이러 하였으니...경인년 여름에는 적지천리赤地千里이었고, 임진년 에는 가을에 복숭아와 오얏 꽃이 피었으며, 정유년에는 산이 무너지고 가물며 황충蝗蟲이 있었으며, 무술년에는 지진과 흙비가 있었습니다.
月初一日天乃雨土, 翌日下敎云云。...庚寅之夏, 赤地千里, 壬辰之秋, 桃李花開, 丁酉山崩旱蝗, 歲戊戌地震雨土。
성종 93권 9년 6월 15일 (을사)
또 근일近日에 흙비가 내린 변變을 가지고,
又以近日雨土之變,
성종 117권 11년 5월 3일 (임오)
흙비가 내렸다.
壬午/雨土。
성종 133권 12년 9월 2일 (계유)
7, 8월 동안에는 항상 흙비가 많이 내리는데, 만약 이러한 근심이 있다면 신 등도 반드시 전철(前轍)을 밟게 될 것이니,
七八月之間, 恒多霾雨, 脫有此患, 則臣等必復蹈前轍矣,
성종 134권 12년 10월 7일 (무신)
신과 윤필상尹弼商이 수록 면포水綠綿布를 바쳤는데, 흙비를 맞아 색이 조금 변했었습니다.
臣與弼商, 進水綠緜布, 經霾色稍變。
성종 153권 14년 4월 28일 (경인)
더구나 산림山林에 흙비霾雨가 내려 오래 머물음이 마땅하지 못함에리이까?” 하고,
況山林霾雨, 不宜久留。”
성종 188권 17년 2월 22일 (무술)
유원진柔遠鎭의 토성土城은 흙비霾雨가 올 때마다 바로 붕괴되어서, 수축하는 폐단이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먼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위엄을 보일 수도 없으니, 청컨대 말한 바대로 석성石城을 쌓게 하소서.
柔遠鎭土城, 每遇霾雨, 輒至崩頹, 非徒修築之弊不貲, 亦非所以威示遠人。 請依所言築石城, 一。
성종 192권 17년 6월 20일 (계사)
“요즈음 흉년 때문에 춘궁의 역사를 멈추었는데, 이제 흙비가 매우 심하니, 장만한 재목이 올해를 지내면 반드시 다 썩을 것입니다.
癸巳/“近者以年險, 停春宮之役。 今霾雨太甚, 所備材木若過今年, 必皆腐朽。
성종 242권 21년 7월 16일 (병인)
요즈음 오랫 동안 비가 오고 흐려서 열흘이나 연하여 흙비가 내리고 괴려乖戾한 기운이 금액禁液에 나타나니,
乃者若雨積陰, 連旬曀霾, 乖戾之氣, 發洩於禁掖,
성종 253권 22년 5월 15일 (경인)
다만 흙비가 내리고 물이 불은 것이 염려될 뿐이니 들어가 정벌하는 것은 모름지기 10월 초순初旬의 달이 밝을 때를 맞추어야 하겠습니다.”
但恐霾雨水漲。 且入征須趁十月初旬月明時也。
성종 256권 22년 8월 23일 (정묘)
혹은 흙비가 내림으로 인하여 한 고을에 오래 머물고 있으면 수많은 추종騶從을 접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며,
或因霾雨久留一郡, 數多騶從, 難以支供,
성종 287권 25년 2월 7일 (병인)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 조위曹偉가 치계馳啓하기를, “지난 정월 14일에 도내의 온양溫陽·평택平澤·천안天安·신창新昌·례산禮山·전의全義·목천木川 등 고을에 토우土雨가 내렸습니다.” 하였다.
忠淸道觀察使曺偉馳啓曰: “去正月十四日, 道內溫陽、平澤、天安、新昌、禮山、全義、木川等邑, 雨土
성종 295권 25년 10월 19일 (갑술)
근년 이래로 육기六氣가 불화不和하여 재앙이 거듭하여 자주 이르러서 봄에 흙비土雨가 내리고 여름에 심히 가물며, 가을에 큰 바람大風이 불고 우박雨雹이 내렸으며 또 명특螟螣이 있어 이리저리 옮겨 다녀도 그대로 두고 보아 길들여 흉년凶歉을 초치하였으니, 하늘이 경계를 보임이 지극하였습니다
명특螟螣 : 마디충과 벼메뚜기
而近年以來, 六氣不和, 災眚荐臻, 雨土於春, 旱暵於夏, 大風雨雹於秋, 而且有螟螣。 轉轉相仍, 馴致凶歉, 天之示戒,
연산 14권 2년 윤3월 25일 (임신)
흙비가 내렸다.
壬申/雨土。
연산 40권 7년 4월 25일 (임인)
평안도 가산嘉山·삭주朔州 등지에 흙비가 내렸다.
平安道^嘉山、朔州等地雨土。
연산 42권 8년 1월 24일 (정유)
령의정 한치형韓致亨, 좌의정 성준成俊, 우의정 리극균李克均이 와서 아뢰기를, “신 등이 집에 있으면서 흙비가 번갈아 내림을 보고, 관상감觀象監에게 물었더니, 신 등의 본 바와 같았습니다.
領議政韓致亨、左議政成俊、右議政李克均來啓曰: “臣等在家, 見土雨交下, 問觀象監, 則與臣等所見同。
연산 46권 8년 9월 1일 (경오)
여름을 지나 가을철에 이르러 흙비가 재해가 되고 남방의 여러 고을에는 수재가 계속 일어나서, 백성들의 가옥이 물에 잠기고 사람과 가축이 물에 떠내려가고 나무가 꺾이고 뽑혔으며, 곡식이 손상되었으니, 천재天災와 지변地變이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은 옛날에도 또한 듣기 드문 일인데, 근일에는 서울에 지진地震까지 있었습니다.
歷夏抵秋, 霾雨爲災, 南方列郡, 水異繼作, 渰浸民廬, 漂溺人畜; 摧拔樹木, 損傷禾稼。 災變至此, 古亦罕聞。 近日地震國都,
중종 14권 6년 6월 30일 (무신) 간
간원이 상차하기를, “근자에 보건대, 흙비霪霾가 멎지 않고 순일旬日(열흘)을 끌어 달을 채우니, 재앙의 변괴가 근고에 없던 바라, 신 등은 숙야宿夜로 근심하여 드릴 말씀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음매霪霾 : 10일이상 내리는 흙비장마
諫院上箚曰伏見近者霪霾不止, 連旬彌月, 災沴之作, 近古所未有, 臣等夙夜憂慮, 罔知所言。
중종 24권 11년 3월 15일 (병신)
의주義州에 흙비가 내렸는데 빛깔이 검었다.
丙申/義州雨, 土色黑
중종 24권 11년 4월 10일 (신유)
... 우물의 샘이 고갈되고, 흙비가 내리다 우박이 쏟아지다 하며,
...泉脈枯涸, 土雨震雹,
중종 24권 11년 4월 12일 (계해) 김
중외中外에는 지진하며 남방에는 우박이 내리고 서쪽에는 흙비가 내리는 데다가 또한 해남海南 고을에서는 머리 하나에 얼굴이 둘 붙은 송아지가 생겼으니 이는 어찌 평범한 인사人事가 잘못되어 생기는 변괴이겠습니까?
地震于中外; 南方雨雹, 西州雨土。 又於海南縣, 有牛生犢一頭兩面, 此豈尋常人事之失, 而有如此變異哉?
중종 24권 11년 4월 19일 (경오)
서쪽 고을에는 흙비가 내리고 남방에는 우박이 오니, 하늘의 견고譴告가 어찌 까닭이 없겠는가?
西州雨土, 南方雨雹, 天之譴告, 豈無所由?
西州雨土 : 평안도에서 흙비가 내렸다. 돈황일 가능성이 높다.
중종 25권 11년 5월 18일 (무술)
각궁角弓 같으면 흙비霾雨 때에 쉽게 파손되나, 대竹는 흙비를 당할지라도 파손되지 않습니다. 신이 이미 시험하였으므로 와서 바칩니다.”-위화도회군
若角弓則霾雨時, 易至破損, 竹則雖當霾雨, 亦不破毁。 臣已試之, 故未獻耳。”
중종 25권 11년 7월 15일 (갑오)
더구나 지금 가뭄이 재변일 뿐 아니라, 흙비가 내리고 우박이 내리며 닭이 요사하고
況今非特旱魃爲災, 雨土、雨雹, 雞妖
중종 33권 13년 5월 27일 (을축)
경기 양성陽城에 흙비가 날리고 바람이 크게 불어, 수목이 뽑히고 마맥麻麥이 쓰러졌다.
京畿^陽城雨土, 大風拔樹木, 偃麻麥。
중종 33권 13년 6월 19일 (정해)
근일에 상체上體가 미령하신데 날씨가 지독하게 덥고 흙비까지 오며 찌는 듯하니, 보통 사람도 견디기 어려운데 하물며 옥체玉體이겠습니까?
丁亥/近日上體未寧, 日氣酷熱, 重以霾雨薰蒸, 常人猶苦之。 況玉體乎?
중종 38권 15년 3월 16일 (갑진)
전라도 광주光州 등 13읍에 눈이 오고, 순천順天에 서리가 내리고, 해남海南·강진康津에는 안개가 어두컴컴하게 끼고 우박과 흙비土雨가 왔다.
全羅道^光州等十三邑雨雪; 順天隕霜; 海南、康津黃霧晦暝, 雨雹雨土。
중종 38권 15년 3월 21일 (기유)
안악군安岳郡에 흙비土雨가 왔는데 밤과 같이 어둑컴컴할 때도 있었다.
安岳郡雨土, 有時晦暝如夜;
중종 38권 15년 3월 22일 (경술)
황해도黃海道 안악安岳에 흙비가 내리고, 곡산谷山 등 8읍에 우박이 내렸다.
黃海道^安岳雨土; 谷山等八邑雨雹;
중종 41권 16년 3월 10일 (임술)
이 고을은 여름과 가을로는 늘 음산하고 흙비가 내리므로 각궁角弓을 사용하기가 곤란합니다. 그래서 공물貢物인 마근馬筋을 목궁木弓에 접착시켜 뜻밖의 변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濟州牧使李耘馳啓曰:
其邑夏秋陰霾, 難用角弓, 以貢物馬筋, 着諸木弓, 以備不虞。
중종 47권 18년 3월 1일 (임인) 경성과 경기의 려주·양근에 흙비가 내리다
경성京城에 흙비가 내리고 경기京畿의 려주驪州와 양근楊根에도 흙비가 내렸다..
壬寅朔/京城雨土, 京畿^驪州、楊根亦雨土。
중종 50권 19년 4월 6일 (경자)
요즈음 화순和順이 어울리지 않고 재변이 번갈아 이르러, 가뭄이 계속되며 풍매風霾가 날마다 일며 우박이 제철이 아닌 때에 내리고 흙비가 괴변을 보이는데 어찌 한가지 정사政事도 잘못이 없기에 상하가 양손을 모으고 중외中外가 입을 다뭅니까?
풍매風霾 : 바람이 불고 흙비가 내리는 것.
庚子/弘文館直提學閔壽千等上疏曰:
今者, 和順不應, 災變迭臻, 亢旱踰時, 風霾日作, 雹出非節, 土雨示怪, 豈無一政一事之失, 而上下叉手; 中外結舌, 脂韋相尙, 雷同爲俗, 士風至此, 豈不寒心?
중종 50권 19년 4월 19일 (계축)
요즈음 보면 흙비·우박·서리·지진地震이 잇달아 끊이지 않고 강릉江陵의 화재가 있었으니, 이는 비상한 재변입니다.
近見, 土雨、雨雹、降霜、地震相繼不絶, 而又有江陵火災, 此乃非常之變也
중종 50권 19년 4월 22일 (병진) 황해도 강령현에 흙비가 내리다
황해도 강령현康翎縣에 흙비가 내렸다.
黃海道^康翎縣雨土。
중종 54권 20년 4월 1일 (경인) 흙비와 우박이 내리다
흙비가 내리고 우박이 내렸다.
雨土雨, 雹。
중종 56권 21년 1월 20일 (계묘) 흙비가 오다가 눈이 내리다
이 날 흙비가 오다가 눈이 내렸다.
是日雨土雪。
중종 58권 22년 3월 27일 (갑진)
충청도 청안현淸安縣에는 눈이 내렸고, 전라도 강진康津에는 흙비가 내렸다.
忠淸道^淸安縣下雪, 全羅道^康津雨土,
중종 59권 22년 6월 10일 (을묘) 큰
큰 비가 오고 우박이 내렸다. 바람 때문에 흙비도 내렸다.
乙卯/大雨雹, 以風且雨土。
중종 60권 22년 12월 5일 (무신)
중동中冬이 다 지나도록 봄날씨 같고 음산한 흙비와 짙은 안개에 뇌성치고 지진하는 재변이 잇달아 발생하니,
戊申/大司諫韓承貞等上疏曰:
仲冬之月, 竟朔如春, 陰霾昏霧, 雷動地震, 相繼而發, 此,
중종 60권 23년 3월 14일 (을유) 밤에 흙비와 우박이 내리다
밤, 흙비와 우박이 내렸다.
夜, 雨土、雨雹。
중종 61권 23년 4월 13일 (갑인)
전라도 고창高敞·흥덕興德·정읍현井邑縣 등 및 장흥長興·금산군錦山郡 등에 흙비가 내렸다.
全羅道^高敞、興德、井邑等縣, 長興、錦山等郡雨土。
중종 61권 23년 5월 13일 (계미)
충청도 청양靑陽·홍산鴻山·천안天安·옥천沃川·청풍淸風·석성石城·부여扶餘·회덕懷德 등의 고을에 우박이 내렸다. 단양丹陽에도 우박이 내리고 흙비가 왔다.
忠淸道^靑陽、鴻山、天安、沃川、淸風、石城、扶餘、懷德等邑雨雹, 丹陽雨雹、雨土。
중종 65권 24년 2월 1일 (정묘) 흙비가 내리다
흙비가 내렸다.
雨土。
중종 67권 25년 3월 9일 (기해) 서울에 흙비와 우박이 내리다
서울에 흙비와 우박이 내렸다.
京都, 雨土, 雨雹。
중종 70권 26년 3월 10일 (을미) 흙비가 오다
흙비가 왔다.
乙未/雨土。
중종 71권 26년 윤6월 3일 (을유)
정원에 전교하였다. 요즘 흙비霾雨가 그치지 않고 있다.
乙酉/傳于政院曰: “霾雨不絶, 孝敬殿親祭久廢。
중종 81권 31년 5월 10일 (갑자)
마량馬梁과 서천포舒川浦에 소장된 병기는 오랜 세월 동안 흙비를 맞아 화살의 깃이 모두 파손되어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如馬梁、舒川浦所藏兵器, 年久經霾, 箭羽皆破, 不可用之。
중종 86권 33년 1월 16일 (신묘)
진시辰時. 흙비와 눈이 섞여서 내리고 밤에 번개가 쳤다.
辰時, 土雨與雪交下。 夜電。
중종 102권 39년 3월 12일 (경술)
평안도 평양平壤·상원祥原·자산慈山·숙천肅川·영유永柔 등지에 흙비가 내렸다.
平安道^平壤、祥原、慈山、肅川、永柔等地, 雨土。
명종 7권 3년 3월 28일 (계묘)
강원도 철원鐵原에 천둥과 번개가 치고 흙비가 왔다. 경기 파주坡州 등 열 다섯 고을에 우박이 내렸다. 음죽陰竹 사람 안석숭安石崇이 벼락에 맞아 죽었는데, 이마에서부터 콧마루를 거쳐 흉복부胸腹部까지와 두 발꿈치에서부터 장심까지가 마치 칼로 벤 것 같았고, 머리칼은 모두 타버렸다.
江原道^鐵原雷電雨土。 京畿^坡州等十五官雨雹。 陰竹民安石崇震死, 自額角至鼻梁胸腹, 自兩脚踉至脚心, 如刀割, 頭髮盡燒。
명종 10권 5년 2월 27일 (임술)
서울에 흙비가 내렸다.
京師雨土。
명종 10권 5년 3월 22일 (병술)
서울에 흙비가 내렸다. 전라도의 전주와 남원에는 비가 내린 뒤에 연기같은 안개가 사방에 꽉 끼었으며, 기와와 풀과 나무에는 모두 누르고 흰 빛깔이 있었는데, 쓸면 먼지가 되고 흔들면 날아 흩어졌다. 25일까지 쾌청하지 못하였다.
京城雨土。 全羅道^全州、南原, 灑雨後, 烟霧四塞, 屋瓦草樹, 皆有黃白之色, 掃之成塵, 搖之飛散。 至二十五日, 專不快開。
명종 11권 6년 3월 1일 (기축)
흙비와 눈이 번갈아 내렸다.
己丑朔/雨土與雪交灑。
명종 11권 6년 3월 2일 (경인)
전교하였다. 어제 있었던 바람과 눈은 심상한 것이 아니었는데, 오늘 또 흙비가 내리는 변이 있으며, 도성 안에서는 닭이 병아리를 깠는데 날개가 넷, 발이 넷인 것이 있다고 한다. 어찌해서 재이(災異)가 이렇게까지 중첩되는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傳曰: “昨日風雪非常, 又有雨土之變, 都城有雞生雛, 四翼四足。 災異之重疊, 至此何耶? 罔知所措。”
명종 13권 7년 2월 14일 (병인)
오시午時에 태백이 신방申方에 나타났다. 밤에 달무리가 졌다. 전라도 담양潭陽·라주羅州·광주光州·해남海南·임실任實·화순和順·고창高敞·진원珍原·무안務安에 5일 동안 흙비가 내렸다.
午時, 太白見於申地。 夜日暈。 全羅道^潭陽、羅州、光州、海南、任實、和順、高敞、珍原、務安, 雨土五日。
명종 14권 8년 4월 6일 (신사)
경기 지평砥平에 우박이 내리고 장단長湍에 흙비가 내렸다.
辛巳/京畿^砥平雨雹, 長湍雨土。
명종 16권 9년 1월 24일 (을축)
전라도 령암靈)에 흙비土雨가 4일간 내렸다.
全羅道^靈巖, 雨土四日。
명종 24권 13년 2월 28일 (병오)
평안도 의주에 종일 흙비가 내리고 어두웠다.
平安道^義州, 終日雨土矇霧。
명종 29권 18년 4월 12일 (기미)
전라도 익산益山·함열咸悅·림피臨陂 등지에 안개가 끼어 어두웠고 흙비가 내렸다.
己未/全羅道^益山、咸悅、臨陂, 霧暗雨土。
명종 31권 20년 3월 5일 (임인)
평안도의 가산嘉山에 지진이 일어났고 정주定州에 흙비土雨가 오고 지진이 일어났다.
平安道^嘉山地震, 定州雨土地震。
선조 9권 8년 3월 12일 (신해)
어제부터 토우土雨가 내렸는데 해질녁에 비가 내리자 토우가 드디어 그쳤다.
辛亥/自昨日土雨。 日暮雨下, 土雨遂息。
선조 39권 26년 6월 13일 (병신)
매일 내리는 흙비와 축축한 습기로 인하여 거처하시는 곳이 불결하고 침수寢睡가 편안치 못하여 다른 증세가 나타나고 있으니, 만일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안정을 위주로 조리를 하면 약을 쓰지 않아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緣霾雨陰濕, 居處阨陋, 寢睡不寧, 餘證轉發。 若移寓他處, 專靜調理, 勿藥可期。
선조 78권 29년 8월 20일 (을묘)
강원도 녕월군寧越郡에 광풍狂風이 불며 큰비가 내려 화곡禾穀이 손상되었다. 평해군平海郡은 4∼5월엔 잇달아 가물었고 7월에는 흐리다 비오다 하며 날마다 흙비가 개이지 않았는데
乙卯/江原道^寧越郡, 狂風大雨, 禾穀損傷; 平海郡, 四五月連旱, 七月或陰或雨, 連霾不霽,
선조 125권 33년 5월 8일 (경술)
약방(藥房)이 아뢰기를, 요즈음 날씨가 무덥고 흙비가 끼었는데 상上의 인음증引飮證은 지금 어떠하십니까?
庚戌/藥房啓曰: “近來日候炎霾, 自上引飮之證, 今則何如?
선조 125권 33년 5월 28일 (경오)
약방 부제조藥房副提調 홍진洪進 등이 아뢰기를, 흙비가 오랫동안 그치지 않고 더위는 찌는 듯한데 성후聖候가 어떠하십니까?
庚午/藥房副提調洪進等啓曰: “霾雨久不止, 暑濕蒸鬱, 聖候何如, 前日引飮之證, 今則何如?
선조 136권 34년 4월 27일 (갑오)
강원도 관찰사 홍인헌洪仁憲이 치계하기를, 강릉 부사 신식申湜의 정문에 ‘늦은 봄 이후로 쌀쌀한 바람이 계속 불고 흐리고 흙비가 내려 파종한 씨앗이 모두 썩어버려 전혀 싹이 나지 않았으며, 본월 5일에는 비와 눈이 섞여 내려 산야山野가 하얗게 덮였다.’ 하였습니다. 지금 계절이 하절夏節인데 비상한 변이變異입니다.”하였는데, 례조에 계하하였다.
江原道觀察使洪仁憲馳啓曰: “江陵府使申湜呈內, 春晩以來, 凄風長吹, 陰霾恒作, 苗種腐(融)〔蝕〕, 絶不立苗, 本月初五日, 雨雪交下, 山野遍白, 時屬夏節, 變異非常事。” 啓下禮曹。
선수 7권 6년 2월 1일 (임자)
날이 가물고 흙비가 내렸다.
朔壬子/旱, 雨土。
광해 3권 즉위년 4월 1일 (정사)
엊그제 하늘에서 흙비·풀씨·우박이 내렸으며, 또 흰빛을 뿜는 유성의 변이가 나타났는데, 이는 인자한 상제上帝가 전하를 깨우치기 위해 일러준 애틋한 일들입니다.
頃日天乃雨土、雨草實、雨雹, 又出流星白氣之變, 上帝仁愛所以警告殿下者, 至深切矣。
광해 14권 1년 3월 27일 (무신)
련산連山에 흙비가 내려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다.
戊申/雨土于連山, 咫尺不辨。
광해 137권 11년 2월 21일(을해)
먼동이 틀 무렵부터 신시申時까지 【흙비가 내려】 〈 마치 흙먼지 비가 내리는 듯이〉 사방이 깜깜하였다.
自昧爽, 至申時, 雨土, 四方昏蒙。
광해 172권 13년 12월 20일 (정해)
비변사가 아뢰기를, “밤에 성변星變이 나타나니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하늘빛이 이상하고 게다가 납일이 자나갔는데도 련일 흙비가 내리는 것이 꼭 송나라 말에 여진족이 군사를 일으키던 때와 같습니다.
備邊司啓曰: “夜來星變極駭。 天色異常, 繼以過臘之後, 陰霾連日, 政似宋末女眞動兵之時。
광해 173권 14년 1월 2일 (무술)
정월 초하룻날은 〈 새해의 첫날인데 이른 아침에 천랑성天狼星이 나타나더니 정오가 되기 전에〉 지진이 있었고 저녁 때까지 흐리고 흙비가 내려 여러 현상들이 좋지 않았는데 앞으로 또 무슨 변고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元日地震, 終夕陰霾, 景象不佳, 不知前頭, 更有何變。
인조 40권 18년 2월 28일 (기묘)
평안도 순안順安과 영유永柔 등에 흙비가 내려 지붕 위의 기와가 모두 붉게 물들었다.
己卯/平安道^順安、永柔等縣雨土, 屋上蓋瓦色赤。
인조 44권 21년 2월 28일 (임진)
사간 김익희金益熙가 상소하여 호서湖西에 성묘省墓하러 가겠다고 청하고 아울러 시사時事를 진술하기를,“근래 천심이 편치 않아 매서운 경계가 몰립니다. 별의 재앙과 무지개의 변괴가 매일 발생하다시피 하며 기타 일식, 먼지바람, 누런안개, 흙비 등의 이변이 청대淸臺가 보고하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司諫金益熙上疏, 請省墓於湖西, 仍陳時事曰:近來天心不享, 疾威沓臻。 星災、虹變, 式日斯生, 其他日蝕、風霾、黃霧、土雨之異, 不但淸臺之所報而已。
인조 44권 21년 3월 3일 (병신)
평안도에 큰바람이 불고 흙비가 내렸다.
平安道大風雨土。
현종 5권 3년 3월 18일 (신묘)
해가 피血처럼 붉고 흙비가내렸다.
辛卯/日赤如血土雨。
숙종 3권 1년 4월 25일 (계축)
평안도平安道 순안順安 등의 고을에 흙비가 내렸고, 자산慈山 등의 고을에는 3월인데도 눈이 내렸다. 충청도忠淸道 황간현黃澗縣에도 눈이 내려 산 꼭대기가 모두 희었다.
平安道^順安等邑土雨, 慈山等邑三月下雪。 忠淸道^黃澗縣下雪, 山頭盡白。
숙종 11권 7년 2월 18일 (임인)
강계부江界府에 정월 23일에 눈이 한 치 가량 내렸는데, 날씨가 갤 때 흙비土雨가 섞여져 내려서 황색黃色이 두루 산야山野를 덮었으므로, 도신道臣이 계문啓聞하였다.
江界府正月二十三日下雪寸許, 臨霽, 土雨交下, 黃色遍滿山野。 道臣以聞。
숙종 11권 7년 4월 7일 (경인)
강원도江原道에서 3월 그믐부터 3일 동안 계속해서 토우土雨가 내려 옷에 맞으면 황색黃色을 이루었는데, 보면 바로 혼탁混濁한 황토물이었으며, 밤낮으로 안개가 끼어 어두웠다. 평안도平安道에서는 3월 19일에 눈이 내렸고, 구성龜城·강서江西 등지에서는 토우가 내려 초목草木을 적시니 모두 황색이었다.
江原道自三月晦間, 連三日土雨, 着衣成黃。 視之則乃渾濁黃土水, 晝夜昏霧。 平安道三月十九日雨雪, 龜城、江西等地土雨, 着草木皆黃。
숙종 25권 19년 2월 18일 (임진)
바람이 몹시 불고 매우霾雨가 내렸다.
壬辰/大風霾。
숙종 29권 21년 9월 9일 (무진)
경상도慶尙道에 천둥하고 안개 기운이 있어 모양이 흙비 같았으며, 햇빛이 누릇하였다. 경상도의 성주星州와 충청도忠淸道의 여러 고을에 우박이 내렸으니, 큰 것은 달걀 같고 작은 것은 참새알 같았다.
慶尙道雷有霧氣, 狀如土雨, 日色黃。 慶尙道^星州、忠淸道諸邑, 雨雹, 大如鷄卵, 小如雀卵。
경종 14권 4년 4월 15일 (무오)
충청도 연기현燕岐縣에 흙비가 내렸다.
忠淸道^燕歧縣, 雨土。
영조 33권 9년 3월 8일 (기축)
하늘이 캄캄하게 흙비가 내렸는데 마치 티끌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乙)〔己〕丑/昏霾若下塵。
영조 33권 9년 3월 10일 (신묘)
우박이 내리고 어두컴컴한데 흙비가 내렸다.
辛卯/雨雹, 昏霾。
영조 53권 17년 5월 15일 (무인)
요즈음 항우恒雨가 보리를 수확하는 데 방해가 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비가 3일 이상 내려야 장마라고 하는데, 아직 3일을 지나도록 흐리고 흙비가 내린 것이 곡식을 병들게 할 정도는 아닙니다.
近日恒雨, 縱有妨於收麥。 然雨三日以上謂之霖, 而姑未有過三日陰霾, 可以病禾稼者。
영조 69권 25년 4월 3일 (경진)
흙비가 내렸다.
庚辰/霾。
첫댓글 전 역사에 대한 문외안이라 그런지 조선이 황제국이였다는 소리를 들어본적이 없어요,,ㅠㅠㅠ 이런 글을 읽다보면 카페 모든글이 믿어지지 않거든요,,, 골라서 올려 주세요,,
잘 보았습니다 ^^
흙비와 황사라,이런 저런 증거들도 자꾸 헷갈리게 만든다는.....
잘봤수
암흑기니 흙의 비가 내렸죠 ㅎㅎㅎ 이제부터 햇님의 날이 오실꺼에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