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예방과 치료 노력이 강화된 덕분에 세계인의 사망률이 크게 낮춰졌다. 한국인 남성 평균 수명은 78세, 여성은 85세로 일본,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와 더불어 세계적인 장수 국가 반열에 들어섰다.
한자 파자로 77세를 희수(喜壽)라 하고, 88세를 미수(米壽)라 불렀다. 90세를 졸수(卒壽)라 함은 “아흔살이되면 얼굴에 반점이 생겨 언 배 껍질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하며, 91세를 망백(望百)이라 부른 것은 “바야흐로 100세를 바라 보는 나이에 들어섰다”란 뜻이다. 또 99세를 백수(白壽)라 함은 일백백(百)에서 하나(一)가 모자라는 99이므로 백수라 했다. 99를 이루는 9라는 숫자는 기본수의 종결인 10에서 하나가 모자란 숫자로 어떤 일의 결론, 끝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사람에 관한 모든 것들의 완성, 종국, 은혜와 종말의 숫자다.
애난데일에 거주하시던 곽 권사님이 지난 주일 오후 주의 부르심을 받았다. 올해 아흔아홉살. 1916년 전주 완산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29대 총회장을 엮임했던 곽진근 목사와 김숙근 사모의 차녀로 태어나 일제 강점기 시절 전주 여고를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 오까야마 사범 대학을 졸업한 신여성이었다.
일제가 여전히 서슬퍼런 식민통치로 한반도 구석구석을 수탈할 때인 1938년 귀국하여 서울 마포, 경기도 곤지암, 전북 부안 초등학교에서 조선의 미래인 소년소녀들에게 암울한 현실을 타개할 꿈과 소망을 불어넣었다. 실향민들이 모여 살던 곳에 손수 흙벽돌을 쌓아 예배당을 짓고 피아노와 풍금을 치며 찬양을 선도했던 열정적인 전도자였다.
치료 불가능한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 병을 앓기 시작한 것이 2008년이다. 기억정보, 언어 능력, 시공간 능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끝내는 모든 활동을 접은 채 투병생활을 했다. 증상이 점점 심각해지자 임종 직전까지 만 7년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폈던 아들 부부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다. 몸은 점점 쇄약해져 갔고 신장 기능은 완전히 손실되었다. 노모의 환후가 회복되기만을 고대하던 아들이 정성껏 만든 미음조차 삼키지 못하면서 몸은 점점 수척해져만 갔다.
그의 얼굴엔 죽음의 검버섯이 하나도 피지 않았다. 영화의 면류관 같은 백발이 단정하게 빗겨져 있었다. 망각의 병이 깊은 와중에서도 예배드릴 땐 무의식의 심연에서 실낱같은 기억을 건져내 함께 찬양하며 반색하던 그였다. 그가 머물던 방엔 일반 환자에게서 날법한 악취가 없었다. 효성스런 아들 내외가 그의 지척에 머물면서 대소변을 받아냈고, 혹여라도 욕창이 생겨 환후가 깊어질까봐 시간마다 잠자리를 점검해준 사랑스런 수고 때문이다.
긴 병에도 노모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던 효성스런 아들과 자부를 보았다. 천국으로 환송하면서도 이생에서 다시 볼 수 없다는 절박함에 고희의 아들이 눈시울을 적신다.
“노쓰 베모쓰 엔 엘 씨엘로(Nos Vemos en el Cielo, 천국에서 뵈어요).”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