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노루
박목월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룹나무
속잎 피어가는 열두 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3인 공동 시집 『청록집』, 1946)
[작품해설]
이 시는 현실과 단절된 이상적 세계의 정경을 노래하고 있다. 목월의 초기 시에는 간결한 언어와 민요적 리듬 속에 이상화된 전원 세계를 그린 작품이 많은데, 그 대표적 시가 바로 「청노루」 · 「산도화」 등이다. 이 시에서도 시인은 가능한 한 언어를 절제하고 리듬을 단순화하여 마치 선경(仙境)을 그려놓은 듯한 한 폭의 담수채(淡水彩) 동양화를 펼쳐 보이고 있다. ‘청운사’ · ‘자하산’은 현실적인 공간이 아니라, 이상향과 같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표상으로 향토색을 풍기고 있는 배경이다. 그 속에 ‘청노루’라는 신성화(神聖化)된 동물이 속세로부터 멀리 떠나 평화롭게 뛰놀고 있다.
‘청노루’가 ‘푸른빛 노루’이듯 ‘청운사’는 ‘푸른 구름’, ‘자하산’은 ‘보라빛 놀’로 시각적 색채감을 높여 더욱 환상적 분위기를 배가시킨다. ‘청노루/맑은 눈에 // 도는 / 구름’이라는 구절의 느린 호흡과 정서적 여백은 시인이 추구하는 이상 세계가 현실의 갈등과 일제 치하의 암울한 역사로부터 초월하고 싶어하는 평화와 안식의 공간임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또한 ‘청운사’ · ‘기와집’ · ‘자하산’의 정적(靜的) 이미지와 ‘청노루’ · ‘구름’ 의 동적(動的) 이미지가 조화를 이루며, ‘청운사’ · ‘청노루’의 푸른색과 ‘자하산’의 보라색, ‘느릅나무 속잎’의 초록색 등의 색채적 심상은 밝고 선명한 정서를 더 한층 형상화한다.
[작가소개]
박목월(朴木月)
본명 : 박영종(朴泳鍾)
1916년 경상북도 경주 출생
1933년 대구 계성중학교 재학 중 동시 「퉁딱딱 퉁딱딱」이 『어린이』에, 「제비맞이」가
『신가정』에 각각 당선
1939년 『문장』에 「길처럼」, 「그것이 연륜이다」, 「산그늘」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46년 김동리, 서정주 등과 함께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결성
조선문필가협회 사무국장 역임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사무국장 역임
1957년 한국시인협회 창립
1973년 『심상』 발행
1974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1978년 사망
시집 : 『청록집』(1946), 『산도화』(1955), 『란(蘭)·기타(其他)』(1959), 『산새알 물새알』(1962),
『청담(晴曇)』(1964), 『경상도의 가랑잎』(1968), 『박목월시선』(1975), 『백일편의 시』
(1975), 『구름에 달가듯이』(1975), 『무순(無順)』(1976), 『크고 부드러운 손』(1978),
『박목월-한국현대시문학대계 18』(1983), 『박목월전집』(1984), 『청노루 맑은 눈』(1984),
『나그네』(1987), 『소금이 빛하는 아침에』(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