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밀월여행
소리새/박종흔
수년 전 뙤약볕이 쨍쨍 내리쬐는
팔월초의 한여름.
우리 부부는 밀월여행 같은 기분으로
커다란 가방을 두 개 꾸리고
오랜만의 여행에 나섰다.
청주까지는 승용차로 간 후
차를 시골집에 주차하고
속리산으로 향하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랜만에 단둘이 하는 밀월여행이다 보니
청년 시절의 기상과 풋풋함이 나왔다.
버스가 청주 시내를 벗어나 시외로 빠지자
예전에 한창 주가를 올렸던
러브호텔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도대체 저런 데는 일반 여관과 무엇이 다를까?
하는 궁금증이 있던 터였다.
외부부터 요란한 장식으로 치장하고
요즘은 장사가 잘 안되어 그런지
현수막을 길게 늘어뜨렸다.
"물침대 완비"
"러브 침대"
"거울 요술 방"
"자동안마 체어"
애들 보기에 민망한 구절들로 가득했다.
차창 밖으로 외관도 맘에 들고
눈에 확 띄는 문구가 들어와서
아내에게 넌지시
"우리 저 모텔서 자고 가자"하고 웃었다.
어차피 일박은 속리산 부근서 해야 하니
가능하면 색다른 곳에서의 하룻밤 생각에
배시시 ~ 절로 웃음이 나왔다.
속리산에 근접하자 버스가 산 위의 도로를
지그재그로 곡예 운전한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매미의 악쓰는 소리는 고막을 울리고
나무 이파리조차 열기에 지쳐 시무룩하다.
.................
잠시 지난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해서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다.
취직 후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였다.
성품이 온화한 아내는
시골에서 옆 동네에 살던 초등학교 후배이다.
내 성품이 빡빡하고 급한 편이라
고향 친구들 모임에 가면
"너 아직 이혼 안 하고 잘사느냐"
하는 농담을 가끔 듣는다.
우리는 결혼생활 이십 년 동안
사소한 신경전은 있었지만
크게 싸운 적은 없는 듯하다.
아직 이혼을 당하지 않고 사는 것은
아내의 선처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을 양보하는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신혼여행은 제주도로 다녀왔다.
신혼부부만 단체로 가는 여행단에 합류해
쌍발 프로펠러기에 탑승하였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라 겁이 났다.
처음 비행기를 보았지만
겉에서 보기에도 고물 비행기 같아 보였다.
비행기가 시동을 걸자
붕붕~거리며 진동이 무척 심했다.
비행기가 이륙을 시작하고 진동이 더 심해지자
기내 안의 신부들이 단체로
"꺄~~~악!"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구닥다리 쌍발 프로펠러기는
제주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우리 신혼부부들은 호텔 객실로 향하는데
호텔 안내원이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
호텔서 가방을 안내원에게 주면
팁을 줘야 한다는 친구의 말.)
그래서 됐다고 손을 저으며
큰 가방을 둘러메고 객실에 여장을 풀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일이지만....^^
대충 샤워를 하고
늦은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모였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호텔의 뷔페식당은 신혼부부들만 있었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내 앞의 여자가 뭐라 중얼거리며
밥을 식판에 담는다.
뒤에서 보니 밥통에 남은 밥이 일인분은
훨씬 넘고, 이 인분은 빠듯하다.
잠시 고개를 옆으로 두어 번 돌리더니
결심을 한 듯
이내 밥주걱이 식판으로 날아든다.
설마!~~~
아!~~~~~^^
나도 반신반의하며 마지막 남은
내 몫의 밥을 기대했지만
으!~~
남은 밥을 자기 식판에 몽땅 쓸어 담는다.
식판의 밥은 시골에서 장정이 먹는 머슴밥처럼
산 같은 높은 봉우리를 틀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온다.
우와!~~~ㅋㅋㅋ
단체로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자
그 신부하는 말이 더 웃음을 선사한다.
"내가~~ 너무 많이 담았나?"
그 신부는 시골 출신 아가씨인 듯하다.
하긴 우리도 배고픈데...
다음날 아침 식사 후
본격적인 관광 레이스에 들어갔다.
주로 사진 찍기가 전부였지만 모두 즐거워하였다.
(몇 쌍은 입이 댓 발 나와 있었지만...)
나도 아버지의 수동식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가 카메라를 땅에 떨어뜨렸고
셔터가 눌러지지 않아
카메라에 관한 지식도 없이 이것저것 만져보다
필름 뚜껑이 열렸다.
같이 다니던 부부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
같이 사진 좀 찍고
우편으로 보내 달라고 아부를 떨었다.
그나마 붙임성이 좋은 성격 때문인지
수십 번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러나 집에서 일주일, 한 달을 기다렸지만
이십 년이 지나도록 사진은 오지 않았다.
전화번호라도 받아 둘 것을...
무심한 사람들 같으니....
덕분에 신혼여행의 사진은 한 장도 없다.
그 얘기로 핀잔주는 아내에게 달리 할 말이 없다.
산다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남들처럼 열심히 살았다.
남 눈에 눈물 나게 하지 않고 살기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가까워지는 속리산 절경을 감상하였다.
버스에서 내려서 본 동네는
생각보다 작고 초라 해보였다.
호텔이라는 간판이 있었지만
시내의 장급 수준도 안 되는 듯했고
여관이라는 곳은 여인숙 정도...
태양의 열기는 점점 더해져 가고
가방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짐을 일단 여관에 맡기기로 하고
여관주인과 흥정을 하였다.
삼만 원인데 첫 손님이라 이만 원에 구했다.
만 원을 깎았다는 뿌듯함.
우리부부는 의기투합하여
숙박은 올 때 봐둔 러브호텔서 자기로 하고
속리산 구경을 할 동안
이만 원에 짐을 맡긴다 생각했다.
산에 오르지 않고, 아래서 구경만 하고
목적은 "러브호텔"에서의 하룻밤.
그래서 등산복도 등산화도 준비하지 않고
아내는 맨발에 하얀 실내화,
나는 면바지에 구두 차림이었다.
내가 산을 좋아하지 않아서 산행은 처음이었다.
아내의 간청에 못 이겨 마지못해
입구만 본다는 생각으로 동행한 산행이었다.
그전까지 아내는 몸이 무척 아팠다.
서울, 대전.... 전국병원이며 한의원
심지어 용하다는 돌팔이 한약방까지.......
라디오와 TV에서 명의가 나와서 강의를 하면
방송국으로 문의해서 찾아가기도 했지만
뚜렷한 병명과 처방을 받을 수 없었다.
아내도 거의 포기상태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밀월여행을 생각했음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아내는 자기가 대학 다닐 때
등산을 좋아했었고 산을 잘 탔었다고...
그리고 자신이 죽기 전에
나와 함께 산행을 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참으로 나는 눈치가 없나 보다.
속리산 입구의 절 구경을 하던 중
아내가 갑자기 산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무심결에 따라 갔지만 발걸음이 꽤나 빨랐다.
산에 오를 거냐 했더니 ~
싫으면 혼자 다녀올 테니 기다리라 한다.
남자 체면에 그럴 수는 없는 일.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할딱이며
열심히 아내 뒤를 따랐다.
첫 번째 간이휴게소에서 물을 사려고
얼마냐 물었더니 천원 달랜다.
동네 큰 슈퍼에서 오백 원이면 사는데 완전 곱빼기다.
괘씸해서 그냥 가고, 다음 휴게소서 사기로 했다.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었지만
오를수록 경사가 가파르다.
두 번째 휴게소에 이르러
숨을 할딱이며 물을 달라고 했다.
얼마냐 물었더니 천오백 원 내라고 한다.
오백 원이 더 올랐다.
이런 ~열 받는다.
내 성격에 절대 그런 꼴 못 봐준다.
그냥 논스톱으로 다시 정상을 향해 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맞는다.
쉬지도 않고 논스톱으로 정상까지 올랐으니.
산 정상에 오르자 간이식당이 있고
물이며 국밥 등을 판다.
냉 동동주 한 사발이 천 원이라고 쓴 문구도 있다.
"아저씨! 물 얼마예요?"
물었더니 이천 원 달랜다.
또 오백 원이 더 올랐다.
그래도 마셔야 한다.
ㅋㅋ 된장국이다 !
그렇지만 두말하지 않고 사서 아내에게 건네줬다.
화가 난 김에 술도 못하면서 목을 시원케 할 겸
냉 동동주 한 사발도 달라고 했다.
목이 타서 한 모금 마셨는데
시원함도 잠시....
눈물이 핑 돌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코가 찡하다.
나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한 모금 마시고는
남은 동동주를 주인에게 건네주며
술을 못하니 대신 마시라고 했다.
"문장대"에서 처음으로
야호!~를 세 번 외쳐보았다.
꼭대기에서 바라보니
한눈에 여러 풍경이 들어왔다.
정상에 오른 후 정확히 오 분후
내려가자고 아내를 재촉했다.
산에 오르기보다 내려오는 길이
더 힘들다는 것을 실감했다.
내려오는 것도 역시 논스톱.
왕복 네 시간 정도 걸려서
정상까지 왕복했으니 무식한 산행이었다.
그것도 나는 면바지에 구두를 신고
아내는 맨발에 얇은 하얀 실내화로.
속리산 입구에 내려오자 다리도 풀리고
발바닥이 너무 아파 더는 걸을 수 없었다.
양말을 벗어보니
콩알만 한 물집들이 수십 개 생겼다.
저녁은 먹어야 해서 절뚝거리며 식당에 가서
비빔밥으로 대충 때웠다.
여관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니
올 때 봐둔 러브호텔로 간다는 것은 무리였다.
너무 아쉬웠지만 포기했다.
너무 발이 아파 그냥 거기서 자기로 했다.
촌구석의 허름한 여관서의 밀월여행이라.^^
에어컨이 있나 살펴봤더니
다행히도 창문에 붙어 있다.
그래도 있을 건 모두 있나 보다.
에어컨을 작동시키자 어디서 탱크가 달려온다.
"와르르르~~크르르르~~"
정말 소음이 장난이 아니다.
로고를 보니 지금의 엘지전자 전신인
왕관형의 "럭키금성" 로고이다.
우와!~~ 완전 골동품인데....
소음이 장난이 아니지만
그래도 냉기는 제법 나온다.
너무 힘들어서 밀월여행의 본질은 외면한 채
둘 다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돌아오는 길에
전날 봐 뒀던 "러브호텔"을 지나면서
아내 손을 꼭 잡고
담엔 저기서 자자며 빙그레 웃었다.
벌써 많은 세월이 흘렀다.
수년이 지난 지금
아내는 그전보다 훨씬 건강해졌다.
그것에 만족하며 감사한다.
다음 밀월여행은 정말 멋지게 해주고 싶다.
첫댓글 밀월여행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