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주님의 은혜! 주님의 사랑의 음성!
나와 같은 불쌍한 자를 구해주셨네!
한때 방황했으나 나 지금 길을 찾았네
한때 나 눈멀었으나 지금 볼 수 있다네
우리가 부르는 찬양은 곡에 맞게 번역하기 위해서 삭제된 내용들이 꽤 많은데요.
위의 것은 1절 원 가사를 직역해놓은 것입니다.
작시자는 죄인이었던 자신의 모습을 고백하면서
그와 같이 비참했던 자신을 구원하신 주님을 찬양하고 있는데요.
두려움을 가르치신 것도 은혜요 그 두려움을 없애주신 것도 은혜라고 또한 찬양하고 있습니다.
작시자는 이 찬양을 통해서 삶에 많은 위험한 일들과 어려움, 그리고 유혹들이 있었지만
안전하게 지금까지 인도하셨음을 감사하면서,
주님께서 그 은혜로 끝까지 아버지 집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
이 찬송은 한때 노예상인이었던 존 뉴턴이 쓴 찬송시 중의 하나인데요.
이 안에는 그의 체험이 녹아져 있습니다.
John Newton (24 July 1725 – 21 December 1807)
존 뉴턴은 1725년 7월 24일 런던에서 선장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독실한 신앙인이었는데요.
그녀는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했고
그 덕분에 뉴턴은 세 살이 못 되어서 영어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기억력이 좋았던 뉴턴은 많은 성경구절과 찬송가들을 외웠는데요.
어머니를 사랑했던 그는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을 기뻐하며
즐겁게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아들을 위해서 늘 기도하던 어머니는
존 뉴턴이 일곱 살이 되던 해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는데요.
그 이후 뉴턴의 삶은 암흑으로 변하게 되었죠.
뉴턴은 어머니의 사후로 열 살까지만 학교에 다녔고
그 이후엔 아버지를 따라 선원생활을 시작하면서 방탕하고 거친 생활을 했죠.
그리고 해군에 입대했지만 탈영과 사고를 일삼았습니다.
그는 아프리카로 가는 노예상선에 팔리게 되어 격심한 노예생활을 하기도 했죠.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를 가진 뉴턴이었지만
그는 무신론자가 되어서 누구를 만나든지 하나님을 모독하며 그의 신앙을 깨뜨리고자 했죠.
그런데 그가 배를 타고 나간 어느 날 큰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거센 바람에 배의 돛은 떨어져나갔고 뱃전은 함몰되었으며 바닷물이 갑판 위로 쏟아졌는데요.
선원들은 모두 익사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죠.
뉴턴은 그렇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을 부인했던 과거의 죄를 뉘우치면서,
그가 그토록 외면했던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폭풍우는 잠잠해졌는데요.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셨을 지도 모른다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존 뉴턴은 그가 죽음의 위기를 면했던 그 날,
1748년 3월 10일을 가리켜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놀라운 은혜를 주신 날,
내가 처음 하나님을 믿은 날’이라고 하여 죽을 때까지 평생을 기념했다고 합니다.
(Thomas à Kempis, 1380~1471.7.25)
이런 체험 후에 그는 토마스 아 켐피스의 저서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게 되었는데요.
그 서적을 통해서 드디어 거듭나게 되었고 헌신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통해서 우리는 문서선교의 중요성과
이것 역시 우리가 수고해야 할 부분임을 알 수 있죠.
1754년 5월에 존 뉴턴은 리버풀에 본사를 둔 노예선 ‘아프리칸’의 책임을 맡게 되었는데요.
그의 배는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싣고 대서양을 건너와서
서인도제도의 작은 섬 ‘세인트 키츠’를 향했습니다.
그는 흑인들을 불쌍히 여기는 인도적인 입장을 취하려고 했지만
당시 노예매매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어디서고 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노예매매는 필요한 일로, 심지어는 자랑스러운 일로 간주되었죠.
세인트 키츠로 가면서 그는 두 가지를 위해서 집중적으로 기도했는데요.
첫째는 그가 하기 싫은 노예매매업에서 손을 떼게 해달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하나님을 더 잘 알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인트 키츠 섬에 도착했을 때 존 뉴턴은 농부들의 저녁식사에 초대되었는데요.
거기서 그는 30대 후반의 선장을 한 명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대화하는 가운데
서로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그 선장을 통해서 뉴턴은 신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성경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죠.
그는 그때까지 두려움과 겸손과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겼지만,
하나님에 대한 친밀한 감정이나 기쁨은 없었는데요.
그때 그는 하나님이 그의 친구가 되셔서 함께 동행해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존 뉴턴은 노예매매업을 그만 두고 리버풀의 세관에서 좋은 직책을 맡게 되었는데요.
거기서 그의 신앙은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조지 휫필드가 리버풀에서 했던 집회를 참석하여 그의 설교를 들은 후에
존 뉴턴은 그의 남은 생애를 ‘놀라운 은혜’를 전하는데 바치겠다고 결심했죠.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후 뉴턴은 안수를 받고 성직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때 노예매매업을 했던 존 뉴턴은
노예무역금지법이 영국의회를 통과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요.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1833)는
당시 노예제도 존속을 주장하는 정적들과의 싸움에서 분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존 뉴턴을 찾아가 노예무역의 추악하고 비참한 상황을
의회에서 직접 증언해달라고 요청했는데요.
예전 노예무역을 했으나 이제는 존경받는 성직자가 된 존 뉴턴의 고백과 증언은
결국 노예무역금지법이 영국 의회를 통과하게 만들었죠.
2007년 2월 18일 주일, 영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교회들이 이 곡을 찬양했는데요.
노예무역 폐지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 날을 ‘에메이징 그레이스 주일'(Amazing Grace Sunday)로 정했던 것이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이 찬양시는 1779년 존 뉴턴이 54세가 되던 해에 지은 것인데
뉴턴이 올네이지방에서 목회를 할 때 주일설교를 위해 만든 찬송시 중의 하나입니다.
죽음의 위기를 면했던 그 날을 기억하고 그 크신 사랑을 감사하는 이 찬송시는,
처음에는 영국의 민요에 붙여 불러졌는데요.
1900년 에드윈 오텔로 엑셀(Edwin Othello Excell, 1851-1921)이
미국의 남부 전래민요 가락을 편곡하여
현재 우리가 부르는 곡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 찬송은 존 뉴턴 목사가 작사한 찬송시 모음인
‘올니 찬송가’
(Olney Hymns, by J. Newton and W. Cowper, 1779)에
처음 발표되었는데,
원래 가사는 6절이었지만
‘개편 찬송가, 1967’을 편찬할 때 로버트 콜먼이 편찬한
미국찬송가에 수록되면서 4절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절은 작사 미상입니다.
이 찬송이 우리 찬송가에 처음 수록된 것은
생명의말씀사에서 편찬한 ‘청년 찬송가,1959’인데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가사는 ‘개편 찬송가, 1967’에 수록된 가사를
‘통일찬송가,1983’ 편찬 때 어미를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이 찬양은 오랜 세월 동안 대중적 인지도를 넘어서 거의 신앙의 표준처럼 되어왔는데요.
이 찬송이 처음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1971년 Juddy Collins가 편곡하여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이 곡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앨범 레코딩을 기록한 곡 중의 하나이며
많은 집회와 각종 시위현장 등 크고 작은 모임에서 끊임없이 불려왔습니다.
그리고 세대와 계층, 또한 장르와 인종을 넘어서 이 찬송은 모든 사람을 하나가 되게 만들었죠.
Juddy Collins
또한 이 찬송은 영어 찬송 중 TV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질 만큼 가장 애창되는 찬송이며,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저 유명한 ‘저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설교를 하던 날,
그리고 넬슨 만델라가 석방 된 날에도 함께 울려 퍼졌습니다.
또한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장례식(2004.06.11)에서도 불렸죠.
우리나라에서도 인순이, 솔리드와 같은 크리스천 뮤지션들이 이 찬양을 연주함으로써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받는 어떤 은혜보다 가장 귀한 은혜는
바로 구원 받은 은혜인데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된 신분을
그리스도께서는
놀라운 사랑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언제 육신을 떠나더라도
하나님의 품으로 갈 수 있도록 말이죠.
이렇게 큰 은혜를 받았기에
우리는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며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 비록 존 뉴턴이 일곱 살이 되던 해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결국 그 어머니의 기도는 확실하게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네요!^^
존 뉴턴은 그의 어머니에 대해서 이런 간증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어릴 때 어머니께서 가르쳐주신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을 신앙으로 가르치기 위해 수고하셨던
어머니의 많은 기도와 눈물이
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묘비에는
"심부름꾼 존 뉴톤은 우리의 주님 되시고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로 보존되고 회복되고 용서받고
또 자기가 오랫동안 대적하고 파괴하려 했던 믿음을
오히려 전하게 되었습니다."고 적혀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현재 모습을 보고 그 모습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며
그 기도로 말미암아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만드실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1)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2)
’Twas grace that taught my heart to fear,
And grace my fears relieved;
How precious did that grace appear
The hour I first believed!
3)
Through many dangers, toils and snares,
I have already come;
’Tis grace hath brought me safe thus far,
And grace will lead me home.
4)
The Lord has promised good to me, 주님 하신 그 약속은
His Word my hope secures; 절대 변치 않네
He will my shield and portion be, 주님은 나의 방패요
As long as life endures. 영원한 내 소망
5)
Yea, when this flesh and heart shall fail, 나의 몸 날로 쇠하여
And mortal life shall cease, 나의 목숨 끊어지면
I shall possess, within the veil, 기쁨과 평화 넘치는
A life of joy and peace. 천국에 살겠네
6) (영어 찬송가에도 이 절은 빠졌음)
The earth shall soon dissolve like snow, 이 지구는 눈처럼 녹아지리
The sun forbear to shine; 햇빛 안 비치면
But God, who called me here below, 그 때 주님 날 부르사
Will be forever mine. 주 함께 영원히 살리라
7. (그리고 이 절이 추가되었다.) 우리 찬송가의 4절
When we’ve been there ten thousand years,
Bright shining as the sun,
We’ve no less days to sing God’s praise
Than when we’d first beg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