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일(월) 이사야 59:15b-21 찬송 10장
15b. 여호와께서 이를 살피시고 그 정의가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16.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17.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18.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원수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19. 서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쪽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강물 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2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개역 개정)
-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예언 -
지난 말씀(59:1-15a)에서 남유다 백성들의
사회적 도덕적 죄악들에 대해 신랄하게 지적하였던 이사야는
오늘 말씀에서 회개 권면이나 심판 경고를 주지 않고
돌연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은
모든 불의와 불공평을 시정하여 공의를 세우실 것이며(15b-19절),
죄악에서 돌이켜 회개하는 백성에게는
구속자를 보내주실 것이라는 언약의 말씀을 예언한다.(20-21절)
선민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불의와 불공평을 행하는 것과 달리
하나님께서 직접 능동적으로 심판을 행하셔서 공의를 세울 것이라는 예언은
본 이사야서의 핵심적인 주제들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같은 하나님의 공의의 역사는 메시야를 통하여 완전히 실행될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평화가 가득한 메시야 왕국을 이루실 것이라고
본서는 거듭 거듭 예언한다.(2:2-4; 9:1-7; 11:1-9; 43:8-21; 45:14-25; 54:11-17 등)
결국 본문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끝내 회개치 않는 자들에게는 불가피하게 멸망의 징벌을 내리시긴 하나
택한 백성들은 모두 반드시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나타낸다.
본문에서 심판자로 오시는 하나님을 ‘공의를 갑옷으로 삼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계시는 모습’(17절)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기서 구속자는 바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결국 멸망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 죄인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와 구속자로 보내주신 사실은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이다.(롬5:8; 8:31-39)
22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하나님께서 죄과에서 떠나는 당신의 택한 백성을 위하여
구속자를 보내실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시온’과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는 같은 대상을 가리킨다.
따라서 구속자가 시온에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이 어떠한 자들인지를 알 수 있다.
여기서 구속자가 임하는 대상이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이다.
하나님은 야곱 자손에게 구속자가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다.
하나님은 야곱 자손 중에서도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구속자가 임할 것이라고 말씀한다.
이는 혈통적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자손으로 태어났다 해서
구원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죄과에서 떠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는다.
그리고 그들이 진정한 의미의 시온이며 이스라엘이다.
성경에서 ‘구속자’라고 하면 일반적으로는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구속자로 오신 것은
죄인들 스스로 죄에서 떠나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보면 구속자가
죄과에서 떠난 자에게 임한다는 것은 어폐(語弊)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20절의 죄과에서 떠난 자들은
스스로 죄에서 떠난 자들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시온에 구속자가 임한다는 것도 꼭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여기서 시온에 구속자가 임할 것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을 말씀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렇게 볼 경우 20절은 일차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징계를 통하여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며 회개하고 당신을 배반한 길에서 돌이킨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뼈저리게 뉘우치고 옛 사람의 죄악된 삶을 버리고
의로운 삶을 사는 자들을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러한 말씀은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에 속한 자들이라고 해서 다 구원의 은혜를 입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교훈한다.
누군가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에 속하였다는 것은
그가 구원받기에 필요한 조건의 일부를 갖추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에 속하였다 해서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어부가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면 모든 고기를 그릇에 담는 것이 아니다.
어부는 자기에게 필요한 고기만 담고 쓸데없는 고기들은 버린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교회로 부르신 자들 가운데서
당신께 합당한 자들만 골라 천국 구원을 허락하신다.
그들이 바로 죄과에서 떠난 자들이다.
즉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인 교회 안에 속하여 있으면서
죄과에서 떠난 자들만이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필요·충분 조건을 다 갖춘 자들이다.
그러므로 내가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로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옛사람의 죄악된 모습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를
행하는 삶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데 전념해야 한다.
그리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 매일 매일의 삶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 한량없이 베푸시는 놀라운 축복으로
더욱 더욱 든든하게 세워진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행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