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삼청동 재즈스토리에서 학무님과 출판사 기획실장과 같이 만남을 가졌다. 요즈음 내가 쓰고 있는 책과 그 책의 부록으로 들어갈 노래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였다. 학무님이 그 장소를 택한 것은 그 출판사 기획실장에게 멋진 라이브 공연을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날은 우리 사오모 회원이기도 한 윤준님과 어느 여자 가수가 번갈아가면서 노래를 부르는 공연이었다.
그 친구들은 주로 팝송을 많이 불렀다. <The Boxer>, <California Dreaming>, <Without You>, <Hotel California> 등등 실로 오랜만에 옛날 학창시절에 듣던 팝송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중 <Sealed With A Kiss>가 나오는 순간 갑자기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 노래는 바로 내가 최초로 좋아하였던 팝송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하였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음악을 쉽게 접할 수는 없는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집에 TV도 없었고 라디오가 하나 있기는 있었지만 독점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라디오에서 음악이 나오면 곧잘 흥얼거렸고 거리의 레코드 가게를 지나다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 서서 그 노래가 끝날 때까지 듣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중학교에 진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다. 아버지께서 조그마한 트랜지스터 라디오 하나를 선물로 주셨다. 라디오 몸통보다 더 큰 밧데리를 고무줄로 칭칭 묶어서 들어야 했던 자그만 라디오였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보물단지였다.
그 당시 우리 집은 오랫동안 계속된 단칸 방 신세를 겨우 면하여 방 두 칸 집에 살고 있었지만 우리 식구만 여섯 명에다 시골에서 올라온 친척도 같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독방은 엄두도 못 내었다. 그래서 음악을 듣고 싶을 때는 주로 늦은 밤의 심야방송을 애청하였다. 당시는 학교가 걸어서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어서 꽤 피곤하였고 잠도 한참 많은 시절이었지만 오로지 음악을 듣겠다는 일념으로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일단 낮잠을 한 숨 자고서는 저녁 늦게까지 버티곤 하였다.
모두들 잠든 밤, 방 한쪽 구석의 조그만 앉은뱅이책상에 앉아서 나는 조그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심야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당시 심야방송으로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 <0시의 다이얼>, <꿈과 음악 사이에>, <별이 빛나는 밤에>가 있었는데 다른 것들은 서울에서만 방송하고 부산에서는 들을 수 없는 것이어서 주로 부산 MBC 방송국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었다. 부드러운 목소리의 DJ가 노래를 신청한 사람의 사연을 읽어주고 신청곡을 틀어줄 때 간혹 내가 좋아하는 곡이 흘러나오면 얼마나 기뻐하였던가.
잉크를 찍어 쓰는 철 펜으로 ABC를 겨우 배우고 이제 막 "I am a boy, You are a girl" 등의 문장을 배우기 시작할 때여서 영어가 뭔지도 제대로 모를 때였지만 나는 점차 팝송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어떤 노래가 내 귀를 두드렸다. "신청하신 곡목은 Sealed with a kiss, 키스로 봉한 편지라는 뜻이죠. 여름에 만난 연인을 잊지 못하고 그녀에게 매일 키스로 봉한 편지를 보내면서 9월이 오면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는 내용입니다." DJ의 노래 소개에 뒤이어 흘러나오는 달콤한 멜로디는 이제 막 사춘기의 문턱에 들어선 무뚝뚝한 경상도 머슴애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기에 충분하였다.
봉건적이고 약간은 메마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던 나에게 매일 키스로 봉한 편지를 보낸다는 가사의 내용은 얼마나 낭만적이었던가. 그리고 당시의 많은 청소년이 그러하였고 지금의 청소년도 그러한 것처럼 미국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물론 큰 작용을 하였으리라. 나는 그 뒤부터 그 노래의 노예가 되었다. 매일 밤마다 라디오 앞에서 오직 그 노래만 나오기를 기다렸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한 번 나온 노래가 다시 나오는 데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였다. 게다가 나는 당시 노래를 신청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그 노래가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왔을 때의 그 기쁨이란 정말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나는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었다. 그래서 서점에 가서 그 노래가 실려 있는 팝송 노래책을 구입하였다. 그리고는 노래책을 라디오 앞에 놓고 그 노래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그 노래가 나오는 날이면 노래책을 펼치고는 흥분된 마음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곤 하였다. 노래가 끝날 무렵이면 얼마나 아쉽던지. 지금 생각하니 그리 명곡은 아닌데 그때는 왜 그 노래에 그렇게 심취하였던지...
하여튼 그렇게 밤마다 키스로 봉한 편지를 듣기 위해 계속 음악을 듣다보니 자연 다른 팝송도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매일 밤 노래책을 펼쳐놓고 있다가 내가 아는 노래가 나오면 얼른 찾아서 따라 부르곤 하였다. 그렇게 매일 팝송을 흥얼거리다보니 당시 웬만한 팝송은 다 흥얼거리면서 따라 부를 수 있었고 가사를 줄줄 외우는 팝송도 백곡은 넘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들어와서는 친구들 사이에 팝송 도사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아무튼 어제 학무님 덕에 모처럼만에 나를 팝송으로 인도해 주었던 소중한 곡이었던 <키스로 봉한 편지>를 디지털이 아니라 아나로그로 들을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첫댓글 이 글을 읽고 나니, 그 노래가 듣고 싶어져서 '음악 한곡' 방에 올려놓았던 곡을 찾아봤습니다. Bobby Vinton이 부른 곡과 Brian Hyland가 부른 곡, 두 곡이 같이 있었는데, 지금은 Brian Hyland가 부른 건 안 나오네요. 몇년전인가 서세원씨가 진행하던 프로그램 중, 시골에 사시는 부모님들과 영상편지를 주고 받는 코너가 있었지요. 그 코너 시작할때인지 끝날때인지 항상 이 노래가 나오곤 했었는데, 그 때마다 코 끝이 찡했다는. ... 근데,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어요. 부모님들께서 딴청 부리시면서 '그렇다구 내가 그걸 사래는 건 아니다' 라고 하시던 말투가 유행하기도 했었죠.
요즈음은 음악 듣기가 참 편하지요. 그런데 엠피쓰리로 들으면 별로 맛이 안나는 것같아 잘 안듣게 되요. 엠피쓰리보다는 시디가 조금 낫고 엘피가 더욱 좋죠. 더좋은 것은 라이브겠죠.
저도 이 노래 가끔 부르곤 합니다. 너른돌님 처럼 특별한 추억은 없지만... 일단 따라 부르기가 쉽고... 노래외에도 반주도 참 좋지요...
맞습니다. 반주가 참 달콤하지요. 마치 아이스크림같아요. ^^
삼청동 재즈 스토리.. 참 안가본지 오래 됐습니다. 10년? ... 그 후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싶군요~
하나도 안변했습디다..함 가보세요^^ 더구나..우리까페 회원이신..윤준님이 항상 노래 부르고 있으니..신청곡도 들으실 수 있을거예요 너른돌님..노래에 대한 추억 뿐 아니라 그시대 우리들의 삶까지 들여다 보이네요.. 저도 때..방 세칸짜리 양옥집으로 이사하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저는 처음 가보았답니다.^^;; 그런데 곧 철거될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더군요. 철거되기 전에 꼭 가보시기를...
앗.. 철거된데요? 정말 그 전에 가봐야 하겠네요~~
중2때로 기억합니다. 그때 첨으로 녹음기를 아버지가 가져오셨지요. GE로고가 있었는데 뒤를 보니 Made in Japan이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GE의 일본 OEM제품이었지요. 라디오 켜놓고 좋아하는 노래 나오면 녹음기 갖다대어 녹음하려고 신경 곤두세워 라디오를 듣곤했지요. 그때 녹음한곡이 Mother of mine, Papa, 눈물의 토카타..등등
저는 고등학교 때 전축이 생겨서 엘피도 듣고 녹음도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런데 녹음해놓은 것은 없답니다.
제가 중학시절 같은 재단의 고등학교에 축제가 있던 날 특히 중학교 반장들만 초청을 했는데 남자 고등학생 형이 기타를 치고 또 옆에선 다른 학교의 여고생 누나가 탬버린을 치면서 부르던 노래가 Sealed With A Kiss 바로 이 노래였답니다.근데 노래도 노래려니와 학생이 함께 노래 부르는 모습이 얼마나 부럽던지 '나도 고등학교 진학하면 저렇게 함 멋지게 여학생과 노랠 불러봐야지 하는 야무진 꿈을 가슴에 품었었다는 .참고로 제가 처음 접했던 팝송은 El Condor Pasa등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였지요.^^
훈장님, 가슴에 품었던 그 야무진 꿈은 이루셨나요? ㅎㅎㅎ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 부산진역 근처에 있는 YWCA의 싱어롱 모임에 가서 여학생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곤 하였죠.
중학교때 밤에 잠을 안자고 팝송을 듣다가 아버지에게 호되게 벌 받은 적이 있었는데...우리 카페 회원이 될려면 이 정도의 추억은 필수 인가요? ㅎㅎㅎㅎ
이곳의 회원들은 누구나 어린 시절 음악에 대한 추억들이 있죠. 저의 아버님은 참 엄하신 분이었는데 제가 음악듣는 것은 관대하게 봐주셨습니다. 밤늦게 책상에 앉아서 책을 펴놓고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게 공부하는 것인줄 아셨거든요.^^ 사실 눈은 책을 향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노래를 따라 저 머나먼 곳에서 노닐고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