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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독립운동사 원문보기 글쓴이: 신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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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을 중심으로 구밋들 우각산, 강단산, 백전리 돌산, 세성산, 아우내 장터 뒤 갓모봉, 봉화대, 개목산 등 일곱 개의 산에서 불길이 솟아 올랐다. 거의 같은 시간에 광덕산, 덕산, 화산, 진천의 덕유산, 구도산,서림산 동남편의 약사산, 청주방면의 수리봉, 남쪽의 백석봉, 남산, 발산, 망경대, 연기지방의 율산, 서남으로 마산, 장명리의 장산에서 또한 횃불이 치솟았다. 모두 24개소나 타 올랐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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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상해에서 간행된 김병조의 『한국독립운동사』(상)에도 아우내독립만세운동의 기사가 실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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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내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6개월이 지난 1919년 9월 29일 조선군사령관 우츠노미야타로가 본국의 육군대신 다나카에게 3.1운동 중의 사상자에 대한 종합적인 보고를 하였는데 다음은 그 가운데 충청남도 천안군 병천에서 일어난 시위운동에 관한 기록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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