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15-18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갈 때에 대제사장의 집 안뜰에 들어가지 못하자 뒤 따라온 다른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였기에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다. 베드로는 하인들과 성전 경비병들 사이에 끼어들어 함께 불을 쬐고 있었다.
이전 말씀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로마 군대에 협조요청을 해서 예수를 잡아다가 당시 실제 대제사장이던 안나스에게 먼저 데리고 갔다. 요한은 형식적인 대제사장이던 그 사위 가야바는 한 사람이 온 백성을 위해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전에 말했던 사람이라고 증언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베드로가 다른 제자의 도움으로 대제사장의 집 안뜰에 들어가 다른 사람들과 불을 쬐고 있는 장면이다.
다음에 등장하는 사람은 베드로와 다른 제자이다. 15절은 그런데 시몬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예수를 따라갔다는 말로 시작한다. 시몬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함께 따라간 것이 아니라 시몬 베드로가 먼저 따라간 것이다. 그 뒤에 다른 제자도따라갔는데 그 제자는 대제사장과 잘 아는 사이라서 예수님과 함께 대제사장의 집 안뜰까지 따라들어갔다고 했다.
다른 제자가 누구일까? 전통적인 해석은 다른 제자가 사랑 받는 제자이고 사도 요한이라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스라엘의 가장 북쪽인 갈릴리의 고기잡이 하는 가정의 아들이 남쪽 유대지방의 대제사장과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사이가 되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요한이 대제사장에게 물고기를 공급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단지 추정일 뿐 그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에 꽂혀서 자신의 생각에 성경을 꿰어 맞추려 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문맥을 따라 해석해야 한다. 바로 이어서 16절에 보면 그러나 베드로는 대문 밖에 서 있었다고 했다. 베드로는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들어가지 못하고 문 밖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원어에는 이어서 “그러므로” 라는 말이 있다. 베드로가 들어오지 못하고 문 밖에 서 있었으므로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인 그 다른 제자가 나와서, 문지기 하녀에게 말하고,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다는 것이다.
만약 다른 제자가 요한이라면 대제사장에게 물고기를 공급하는 사람이 문지기 하녀에게 베드로를 들여 보내라고 명령하고 데리고 들어온 것이 된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요한 자신도 안뜰까지 들어갈 수 없을 뿐 아니라 베드로까지 들어오게 할 가능성은 더더욱 없다. 문지기에게 말해서 통과시키라고 하려면 최소한 산헤드린 공회원 정도의 신분은 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제자는 아리마대 요셉이나 니고데모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제자라고 하면 반드시 12제자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기에 요한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는 12명만이 아니었다. 요한복음에서 제자라는 말이 12 제자만 따로 가리킬 때는 열 두 제자라는 따로 구별된 말을 썼다.열 두 제자라는 말은 요한복음에서 4번이 나오는데 그중 세번이 열 두 제자 중 하나를 가리키는 경우에 썼다. 그러나 제자들이라는 말은 70번 이상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제자는 당시 유대교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세상에서 누리고 있는 것을 잃을까봐 염려하여 자신의 믿음을 숨긴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의 중심인물은 베드로이다. 17절은 원문에서 “그러므로” 라는 말로 이어진다. 다른 제자가 들어오게 하라고 한 뒤 데리고 들어가므로 라는 뜻이다. 대제사장과 잘 아는 고위층이 들여 보내라 하니 들여 보내기는 한 것이다. 그런데 들어가는 베드로의 얼굴을 자세히 본 여종이 “당신도 이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라고 물은 것이다. 문지기 여자가 이렇게 의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베드로를 들여 보낼 가능성은 전혀 없다. 만약 다른 제자가 대제사장과 잘 아는 유대교 고위층이 아니라면 말이다.
문지기는 여자이기에 당시 대제사장의 수하에 있는 사람 중에 신분이 낮은 자이다. 이런 사람 앞에서 베드로는 “나는 아니오” 라고 대답했다. 신분이 낮은 사람 앞에서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 수치로 여겨지던 일이었다. 요한복음 9:27-29절에서 당시 존경 받던 바리새파 사람들이 가장 무시당하던 소경이었다가 눈 뜬 사람에게 아니라고 부인한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 경우에는 가장 신분이 낮은 죄인이 가장 존경 받던 사람들 앞에서 아니라고 했기에 수치는 아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스스로 나서셔서 내가 그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베드로는 가장 낮은 여종의 말에도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베드로는 무사히 그 문을 통과했다. 18절에서는 종들과 부하들이 숯불을 만들어놓고 곁에 서 있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날씨가 추웠기 때문에 그들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있었다고 설명이 덧붙여있다. 그런데 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몸을 따뜻하게 하면서 서 있었다고 했다. 종들과 성전 경비병들을 뜻하는 부하들과 함께 불을 쬐고 있었다는 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것이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증거를 드러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말로 전해지고 글로 전해지던 당시에는 이러한 증인들이 많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거짓말로 꾸민 내용이라면 이런 내용을 전할 수 없다. 이러한 내용이 초대교회에서 선포될 때 그 때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칼을 휘두르다가 도망을 간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집 안뜰까지 들어간 것은 대단한 용기이다. 베드로가 칼을 휘둘렀기에 베드로를 잡으러 왔던 성전 경비병들은 모두 다 알아볼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맹세한대로 죽더라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함께 죽겠다는 각오로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간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베드로는 그러한 다짐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다. 인간적인 생각과 결심만으로는 주님을 끝까지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