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픈AI가 약 90년 동안 해결되지 않은 나비에–스토크스 존재성과 매끄러움 문제에 대한 해결을 88시간 만에 제시해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다만 클레이 수학연구소는 현재 이를 ‘해결된 것으로 보이는’ 결과로 소개하면서 향후 검증과 분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몇 년 전 파파고 같은 번역기들이 출시되었을 때, 사람들은 일상 회화에서는 사용하여도 전문 서적의 번역은 사람이 한 땀 한 땀 수작업을 통해 이루어지는 작업물로 여겼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LLM이 등장하자 형세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기존 코퍼스 기반의 번역보다 훨씬 좋아졌다. 필자 또한 2년 전 Chat GPT의 번역 결과물을 보면서 연수과정 2학년 정도라고 여겼는데, 2년 만에 상전벽해(桑田碧海)를 경험할 줄 몰랐다.
하지만 LLM의 방식은 무(無)에서 유(有)의 창출이 아니라 방대한 학습 자료를 바탕으로 단어와 문장 사이의 통계적·의미적 관계를 학습하고 문맥에 따라 출력을 생성하는 방식이다. 한문을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을 살펴보니 한자를 영어로 번역한 다음 영어를 다시 한글로 번역하는 중역(重譯)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LLM의 한문 번역도 기존의 수많은 번역서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번역이란 단순한 글자의 치환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아는 것으로 포섭하는 문화의 소화라고 할 수 있다. 전대(前代)에는 인도의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들 수 있고, 후대에는 서양의 학문이 일본 등을 통해 들어오는 과정을 들 수 있다.
무릇 유학자의 배움이란 조속히 그 지식을 지극히 해야 하고, 그 지식을 지극히 하려면 사물의 이치를 밝게 통달하는 데서 비롯해야 한다. 사물의 이치는 아득하고 은미하며, 사람의 재주는 아둔하고 어두우니, 이미 밝혀진 부분에서 말미암지 않고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거듭 미루어 나간다면, 내 지식이 어찌 지극해지지 않겠는가. 서방에 위치한 내 나라는 비록 작으나 학교에서 가르치는 格物窮理의 방법은 여러 나라와 비교해서도 유독 갖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서적도 매우 풍부하다. 저 학자들이 이론을 세우는 종지는 이치에 근거한 바를 숭상할 뿐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를 취하지 않는다.(후략) 夫儒者之學, 亟致其知, 致其知, 當由明達物理耳. 物理渺隱, 人才頑昏, 不因旣明, 累推其未明, 吾知奚至哉? 吾西陬國雖褊小, 而其庠校所業, 格物窮理之法, 視諸列邦爲獨備焉. 故審究物理之書極繁富也. 彼士立論宗旨, 惟尚理之所據, 弗取人之所意.(後略) 〈譯幾何原本引〉
원래 격물치지란, 사물에 나아가 그 이치를 궁구하는 유학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격치(格致)라는 전통적 개념을 서양의 자연철학과 과학 지식을 설명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한 인물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마테오 리치였다. 이는 마테오 리치가 기하원본의 번역서에 붙인 서문이다. 마테오 리치는 격물치지(格物致知), 궁리(窮理) 등의 개념으로 자연과학을 설명하였는데, 치지(致知)는 물리(物理)를 밝히는 데서부터 시작하며, 격물궁리의 방법을 이용하여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 바로 격치학(格致學)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작업이 바로 번역이다. *한성구(2006), 「중국 근대 “格致學”의 變遷과 中西 格致學 비교」, 『한국철학논집』 18, 433-434.
기하는 동양 수학의 전통에서 “얼마”라는 의미로, 중국 고대 수학서 중 하나인 『구장산술(九章算術)』에서 이미 수학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왜 “얼마”라는 의미를 가진 기하가 geometrica의 번역어로 선택되었을까? 『기하원본』에 대한 중요한 저서를 남긴 Engelfriet는 기하라는 용어는 geometry가 아니라 『범주론(Categoria)』의 quantity를 고려한 번역어라고 지적한다. 『범주론』의 양의 희랍어 단어가 τόπόσον(to poson), 즉 (the) how much를 의미한다는 점과 연결시켜 생각해 볼 때 이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기하원본』은 중국의 전통적 용어와 언어 관습을 활용하여 번역하였으나 원래 예수회가 의도했던 아리스토텔레스적 논리학과 철학적 방법론의 전파라는 목표를 달성하기보다는, 기존의 상수학(象數學)적 사유 체계 내에서 기하학을 실용적 지식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이 책은 남구만과 홍계희에 의해 조선에 들어오게 된다. *소진형(2025), 「기하(幾何) 번역의 두 길과 상수학적 수용」, 『서양고전학연구』 64, 110, 126-127.
서양의 화학은 그보다 늦은 19세기 일본을 통해 들어오게 된다.
사밀(舍密, chemie)이란 무엇인가? 서양의 학문 과목이다. 이곳(동양)에는 없었는가? 우리나라(일본)와 중국 모두에 없다. 무릇 사밀이라는 학문은 물질을 합성하여 (화학적) 성질을 규명하고, 물체를 분석하여 원소를 밝혀내는 학문이다. 천지만물에 깃든 오묘한 이치를 근원부터 끝까지 참된 모습과 실제 이치를 알지 못하면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서양에서 이학(理學,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자들이 탐구하기 난해한 사물의 이치를 만나면, 또한 이 학문에 의지하여 밝은 거울을 얻게 되니, ‘조물주의 조화(化工)를 돕고 대자연의 비밀을 캐낸다’라는 말이 바로 이것 아니겠는가! 오늘날 뜻을 같이하는 선비들이 그 책(서양의 화학책)을 읽는다면, 이 학문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을 테지만, 세상에는 아직 이 학문을 명확히 풀어 설명한 자가 없었다. 우군(宇君) 요안(榕菴)은 일찍이 이 학문을 좋아하여 몇 년 동안 뼈를 깎는 노력으로 서양의 학문에 깊이 사색하여 그 조예는 매우 깊었다. 지난번 헨리(William Henry)의 책을 바탕으로 삼고, 여러 학자들의 학설을 모아 주석을 더하였다. 게다가 스스로 터득한 독창적인 견해를 비교하고 종합하여 한 권의 책으로 집대성하고 그 이름을 『사밀개종(舍密開宗)』이라 하였다. 아, 이 책이 한 번 세상에 나오면 온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새롭게 하고, 천고의 긴 탄식을 밝게 깨우쳐 줄 것이니, 참으로 통쾌하다 할 수 있겠다. 대저 의사들은 처방과 약으로 사람의 병을 다스린다. 만약 광물의 바탕과 성질, 그리고 친화하는 덕성과 힘을 숙지하지 않는다면 털끝만 한 차이가 천 리의 오류를 낳을 테니, 그 재앙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군의 이 책이 있으니, 의사들의 해와 달 같은 등불이라 부를 만하다. 나 역시 일찍이 스말렌뷔르흐(F. van Catz Smallenburg)의 『소씨사밀(蘇氏舍密, Leerboek der Scheikunde)』를 얻어서 읽은 지 오래되었는데, 그 새롭고 훌륭한 학설에 책상을 치며 놀라고 감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참에 이를 우군에게 보여주었더니, 그가 보고 매우 기뻐하며 이를 번역하고 선별하여 주석으로 더하였으니, 나는 우군의 허심탄회한 성정과 방대한 자료 수집에 더욱 감동하였다. 이 책이 출판되자 나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는데, 나처럼 비루한 이가 어찌 감히 쓰겠는가. 그렇지만, 이 훌륭한 일이 내 마음을 먼저 사로잡은 것이 기뻐서 마침내 이를 기록하여 증정하는 바이다. 그러니 어찌 감히 서문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 덴포(天保) 8년(1837) 정유년 중춘 가케가와(掛川) 토츠카 세이카(靜海戶冢)* 점지(漸識) 舍密者何? 泰西之學科也. 此間無有乎? 我與漢皆無有也. 夫舍密之爲學也, 離合物品而考究其性情, 剖析物體而覈明其元質. 天地之奧萬有之藴, 源委顚末, 不認其眞相實理則弗措也. 是以泰西之科於理學者, 或遇物理之難究探, 亦藉斯學, 以得其鏡明, 眞所謂參眞宰之工, 抉造化之秘者乎? 當今同臭之士, 苟讀其書, 莫不知其必宜學, 而世未有講明斯學者矣. 宇君榕菴, 夙好斯學, 刻苦勉勵, 潛思狄鞮者若干年, 其造詣殊深, 頃以賢理氏之書爲本, 匯諸家之說爲增注, 加以獨得之見, 參伍錯綜, 集成一書, 名曰舍密開宗. 嗟乎此書一出, 則創新一世之耳目, 啓明千古之長歎, 可謂快矣. 夫醫家以方藥對人病, 苟不諳金石之資質性能, 與夫親和之力德, 豪氂謬千里, 其禍之勝言哉? 然則有宇君之此書, 其謂之醫家日月燈可也矣. 予亦曾得蘇氏舍密之書, 讀之久矣. 其創論偉說, 未嘗不拍案駭歎也, 因示之宇君, 君見之喜甚, 乃譯采爲增注, 予益感宇君之虛襟曠懷, 採收之博, 及此書刻來, 徵予序, 予譾陋何敢? 雖然, 喜斯擧之先得吾心, 遂記之以贈, 豈敢謂之序. 天保八年龍集丁酉仲春之月, 掛川 靜海戶冢漸識. - 〈舍密開宗序〉 *토츠카 세이카이(戶塚靜海): 1799~1876. 이름은 維泰. 일본 에도 시대 말기부터 메이지 초기에 활약한 대표적인 서양 의사[蘭方醫]이다.
일본의 화학은 스기타 겐파쿠(杉田玄白), 마에노 료타쿠(前野良澤) 등의 난학자(蘭學者)에 의한 네덜란드 서적의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고즈카바라(小塚原)의 형장(刑場)에서 시체를 해부하는 데 입회하고는, 그들이 입수한 난서(蘭書) 『아나토미쉐 타벨렌(Anatomische tabellen)』 (1743)라 불린 인체 해부서의 정확도에 놀랐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사전도 없는 시대에 고심하며 번역해 1774년 『해체신서(解体新書)』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 난학의 시작이라 일컬어진다.
겐즈이(玄隨), 신사이(榛齋), 요안(榕菴) 3대로 이어진 난학자 집안인 우다가와(宇田川) 집안에서는 서양 의학 가운데서도 내과학을 일본에 도입하는 것에 가업의 차원에서 힘을 쏟았다. 요안은 1833년에 『식학계원(植學啓原)』이라는 책을 저술해 일본에 처음으로 서양 식물학을 소개하였다. 요안은 약물학을 연구하던 가운데 아직 일본에 알려져 있지 않은 화학이라는 학문이 서양에 있다는 사실을 일본인으로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요안은 남은 반생을 화학을 일본에 소개하고 이식하는데 정열과 노력을 기울였다.
요안은 1837년부터 10년 동안 영국 윌리엄 헨리(William Henry)의 저서 『Elements of Experimental Chemistry(화학요론)』의 네덜란드 번역서를 저본으로 20여 종의 서적을 참고하고 인용하여 『세이미 카이소(舍密開宗)』를 저술하였다. 현재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말, 예컨대 산화, 환원, 결정, 시약 등 많은 화학용어도 이때 요안에 의해 창작된 것이다.* *시바 데쓰오, 『일본 화학의 개척자들』
하지만 시대적 한계에 따른 오역(誤譯)도 분명히 있다. 일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산화(酸化)의 개념은 산소(酸素)를 번역할 때와 핵산(核酸)이 발견되었을 때가 다르다. 산소의 이름은 1777년 프랑스의 화학자 라부아지에가 연소 생성물 대부분이 산의 성질을 갖는다는 사실에 착안해 ‘oxygen(신맛의 제조자)’라고 이름을 붙였고, 이를 산소라고 번역하였지만, 염산 등이 발견되면서 산화란 산소 원자의 이동이 아니라 수소 또는 전자를 잃는 모든 화학 반응을 뜻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요안의 잘못이 아니라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를 거쳐 네덜란드어까지 모두 O에는 산소, H에는 수소의 의미를 도입시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후 1869년 스위스의 생화학자 프리드리히 미셔가 세포의 핵 속에서 인산기(燐酸基, H3PO4)를 처음 발견하고 ‘핵 안에 있는 산’이라 하여 ‘Nucleic acid’이라고 명명하였고, 이를 핵산이라고 번역하게 된다. 그래서 산소의 산(酸)은 O를 뜻하지만 핵산의 산(酸)은 인산기의 수소이온(H) 때문에 붙여졌다. 같은 한자 ‘산(酸)’이 들어가더라도 그것이 가리키는 개념적 근거는 서로 다르다.
이처럼 번역이란 밖에서 관망하는 자리에서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와각지쟁(蝸角之爭)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미지의 지식을 기존의 문화적 사유 체계 속으로 포섭하여 소화해 내는 치열한 격물(格物)의 과정이다. 비록 시대적 한계나 과학의 발전에 따라 과거의 번역이 오역으로 판명되거나 의미가 굴절되기도 하지만, 그조차도 새로운 지식에 도달하기 위한 거대한 지적 탐구의 일부라 할 수 있다.
또한 격물치지로서의 번역은 서양의 학문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과거 문헌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얼핏 『승정원일기』도 LLM으로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수많은 제도 용어를 정의하는 연구 작업이 번역에 수반된다. 고전번역원에서 정리한 역사문헌어휘는 무려 3,831 건으로, 이는 번역위원들과 번역원의 역자들이 십수 년 동안 용례를 하나하나 쌓아올린 연구 성과물이다. 최근에 승정원의 주요 업무지침서인 『은대편고』가 완역되었는데, 여기에도 역시 1,200여 어휘를 해설한 별책 사전을 따로 만들었다.
그리고 글자 교정의 문제가 있다. 『승정원일기』는 조선 후기 승지들이 남긴 필사본으로 글자 수는 대략 2억 4,300만 자나 된다. 한두 사람의 필체로 이루어진 기록이 아니라 여러 승지와 주서 등이 장기간 작성한 공공 기록이다. 필체도 다르고 정성껏 쓰지 않기도 하고, 틀린 글자를 적기도 한다. 게다가 좀이 슬거나 종이가 썩어서 결락(缺落)되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선대 학자들이 일일이 탈초하였지만, 애당초 오류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자료이다. 따라서 『승정원일기』 번역은 원문의 판독과 교감, 표점 등의 작업에서부터 시작된다.
게다가 『승정원일기』는 상소나 계사도 있지만, 임금과 신하가 국정을 운영하며 나눈 대화를 기록한 입시 기사가 핵심이다. 이는 마치 모르는 사람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보는 경우와 같다. 그래서 주어와 목적어가 생략되어 전후 사정을 파악하려면 최소 몇 주, 최대 몇 년 전까지 검색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AI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사실처럼 제시하는 이른바 환각(hallucination) 문제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번역이란 용어와 개념을 새롭게 확정하고, 당시 상황을 최대한 복원하는 매우 난해한 정신적 작업이지만, 밖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 AI의 번역 능력 역시 과거 수많은 학자가 미지의 학문을 탐구하며 축적해 온 번역과 연구 성과를 중요한 지적 자원으로 삼고 있다. 최근 고전번역학회의 발제 논문 중 번역가는 AI에게 고급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기계가 번역을 잘 할 수록 격물치지로서의 번역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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