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먹는 행위에도 많은 철학을 부여할 수 있읍니다.
삶의 희망이 충만하였을 때는 먹기위해 살았지만 생명연장이 더 시급한 지금쯤은 살기위해 먹는 것이 되었죠.
이제는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은 삶을 오롯이 나의 生에 매진할려고 합니다.
어차피 그러한 삶은 고독이라는 공허함을 비켜나갈 수 없읍니다.
깔치가 생각해 낸 소박한 삶은 단순한 느림을 선택할 수 밖에 없고 가까이는 생명연장이라는 삶도 마치 收奪(수탈) 자본주의 파생상품처럼 많은 행위의 가지(단계)를 낳고 있읍니다.
깔치찌개가 무시를 부르고, 이 무시를 연장하기위해 무시청무침을 생각해내고, 무시청 된장국에 필요한 된장을 생각해내고, 된장에 필요한 콩을 재배하고,..... 나열하면 끝이 없어요.
이를테면 나비효과 같은 것이죠.
수많은 다단계를 거쳐 깔치찌개를 맛보았지만 여전히 작품은 완성되지 못했읍니다.
열무처럼 짧은 무시와 콩간장을 찾지못해 시장에서 구입한 조선간장이 옛날의 味感(미감)을 찾지 못했읍니다.
자급의 성장은 시행착오를 필요로 하지요.
짧은 무우를 알이 찬 무우로 바꾸고 자급된장으로 보완한다면 옛날의 味覺(미각)을 회복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열무처럼 작은 크기의 김장무우를 솎음으로 있는 자원을 최대한 이용할려고 하였음.
첫댓글 입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된장을 조금 보내 드릴까요?
감사합니다.
님의 따뜻한 마음만 오롯이 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