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추억
박연숙
길을 걷다보면 한 집 건너 한 집이 커피숍이다. 오고가는 행인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길을 가며 마시는 게 자연스런 풍경이 되어 버렸다. 2017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커피원두 수입액이 2조 3천억이다. 연평균 성인 1인당 413잔을 마셨다고 한다. 한 잔에 3,000원씩 계산하면 인당 백 이십만 원이나 된다. 정말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이다.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거대한 커피공화국이 되었을까?
우리의 청년시절은 ‘레지’라고 불리는 예쁜 도우미 아가씨가 있는 퇴폐다방이 성행했다. 그래서 여자들은 드나들기가 불편한 곳이었고 젊은이들은 주로 음악다방을 이용했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뜻도 모르는 팝송을 멜로디와 분위기에 심취해서 들었다. 멋있는 DJ가 있는 다방은 여학생들이 많았고 쪽지에 사연을 적어서 신청곡을 주문했다. 자신이 쓴 사연을 DJ가 읽어주고 신청곡을 들려주면 세상을 얻은 것 같이 좋아했다, 그 때는 쓴 커피를 맛이 아닌 겉멋으로 마셨던 시절이었다.
내가 커피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이스커피의 달콤 시원과 고소함 때문이다.
고모의 친구 분이 초등학생인 딸의 공부를 도와달라고 하셔서 소위 과외를 하게 되었다. 1970년대 초 는 서민들은 어쩌다가 얼음집에서 자그마한 얼음을 사서 송곳과 망치로 쪼개어 수박화채나 미숫가루를 해서 많은 식구가 나누어 먹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 집은 냉장고 문에 달린 작은 문에서 귀한 각 얼음이 콸콸 나오는 엄청 큰 미제 냉장고가 마루에 떡 버티고 있는 아주 부잣집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달달한 커피에 각 얼음을 잔뜩 넣어 주시는 아이스커피가 내게는 커피의 신세계였다. 그때는 지금처럼 원두나 믹스커피가 있는 게 아니고 가루커피와 설탕 그리고 액상 크림을 기호에 맞게 배합해서 마셨다. 나는 그 재미로 그 해 여름 석 달의 아르바이트를 잘 넘겼다.
그 뒤로 나는 40년을 줄기차게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 사이 다방은 커피숍에서 카페가 되고 기호에 따라 수십 종류의 커피가 사랑받고 있다. 작년에 캐냐에 가서 커피공장을 방문했다. 캐냐 커피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현장에서 볶는 커피 향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공장 책임자가 한국 사람이어서 커피 생산 공정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우리나라의 커피 전문가나 바리스타들이 아프리카에 많이 진출해 있다고 한다. 커피도 한류가 대세이다. 우리의 믹스커피는 휴대용으로 아주 우수한 발명품이다. 공장을 나왔는데도 커피 향이 옷에 묻어 따라 나와 코를 즐겁게 한다. 나는 믹스도 원두도 가리지 않고 형편에 따라 마신다. 하루에 네다섯 잔 정도 마셔도, 밤늦게 마셔도 이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은 없다. 최근에 병원을 갔더니 여러 가지 이유로 커피를 마시지 말란다. 커피의 효능과 부작용은 빛과 그림자의 관계이니 굳이 커피를 멀리 할 계획은 없다. 대신 두 잔 정도로 줄이고 믹스는 멀리 하려고 한다.
커피의 어원은 Kaffa로 이슬람어 이고 뜻은 힘이라고 한다. 이슬람교도들이 장시간 기도 중에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마시기 시작해서 전 세계로 널리 퍼졌다고 한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밥값보다 커피 값이 훨씬 더 비싸다. 만남의 즐거움과 잔잔한 음악과 아늑하고 쾌적한 공간을 함께 사는 값이긴 하지만 새로운 문화가 되어 우리 생활 깊숙이 친근하게 들어와 생활의 활력을 주는 커피의 몸값이 좀 더 겸손해지면 참 좋겠다.
2018. 6. 2
첫댓글 커피에 대한 상식만큼 커피에 대한 추억도 많군요. 커피를 마시고도 아무런 후유증이 없다니 커피체질인가 봅니다. 그것도 행운입니다. 커피를 많이 즐기시기를. 잘 읽었습니다.
커피를 그렇게 좋아하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커피에 대한 정보나 상식, 관심이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하루에 네다섯잔이나 마셔도 밤에 불면 걱정이 없으시다니 그 만큼 건강하시다는 뜻이겠지요. 부럽습니다.커피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커피와 처음 만남과 커피의 맛을 느끼고 커피의 본고장에 가서 제조과정을 견학한 얘기를 통해 진정 마니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추억이 깃든 사랑하는 커피, 많이 드시고 건강하십시요.알콜도 분해능력에 따라 주량이 달라지듯 커피 역시 사람의 체질에 따라 그 양이 달라 지는 것 같습니다. 기호 식품 내가 좋아하는 만큼 즐기시는게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추억의글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그렇네요. 한 잔의 커피 값이 수퍼에서 파는 소주 몇 병 값이라고 주당들은 욕을해 댑니다.
저도 한 때는 하루에 열잔 넘게 마신적도 있는데 어느해 입원한 후로 하루 한 잔으로 절제하고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시골에 자라서 그랬는지 처음 대구에와서 1961년 좀 잘사는 친구집에 놀러갔더니 커피를 대접을 하더랍니다. 그때 미제커피 와 양과자 쓴 커피는 별로고 양과자가 어찌나 맛있던지 나도 당돌하게 친구보고 다음에 너거 집에 가거던 커피말고 양과자 달라고 했으니 지금도 그친구가 그럼니다. 한 동안 고구마 삶은거하고 카스테라를 보면 내 생각이 난다고 그러던 내가 하루 몇잔을 마시니 어째 우리나라 커피소비가 늘지않겠나 하고 냄새만 맡아도 황홀하답니다
커피 문화의 변화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커피 메니아시군요. 커피와 얽힌 옛날 다방 이야기가 정겹습니다.저도 커피값이 겸손해졌으면 하는바램입니다.
커피에 대한 여러가지 상식 배우며 잘 읽었습니다.
옛날 그시절엔 예쁜 다방 레지가 있고 분위기 좋은 다방은 손님들로부터 인기가 높았고, 그런 다방만을 주로 찾아 다니는 잘 나가던 친구들이 떠오릅니다. 추억이 묻어나는 커피 문화의 변천사, 커피 마니아가 들려 주는 커피 이야기 음미하며 잘 읽었습니다.
커피는 일상생활이 되었습니다. 카페에서 파는 커피값은 우리나라가 가장 비쌉니다. 정겨운 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