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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믿음의 동역자분께 Buenos días 주제성구 마태복음 22장 39절 -네 이웃을 먼저 살펴라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 라는 말이 있다. 친척이라도 멀리 살아 소식이 뜸하면 살갑게 정을 나누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웃하고 있으면 작은 신음까지도 공유할 수 있으니 가까운 이웃과 정을 나누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어제 Potachuelo 라는 도시로 혼자 전도를 갔다. 그곳에 도착해 오토바이 택시를 대절해 먼저 교회를 찾아보기로 했다. 가톨릭교회는 도시 입구에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으니 굳이 찾으려 애를 쓰지 않아도 도시의 상징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개신교회는 찾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규모도 규모지만 목사들이 하나같이 일을 해야 하는 열악한 조건 때문에 4개 교회를 방문했지만 단 한명의 목사와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웃하고 있는 상점, 가정에 있는 사람에게 ‘이 교회 성도입니까?‘ 교회와 이웃한 자가 성도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또 ’목사를 잘 아느냐?“ 전혀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며 우리 Patuju 교회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Patuju 교회 또한 주변의 과반 이상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22:39)“ 예수님께서 히브리 식자들 앞에서 폼만 잡지 말고 네 이웃을 먼저 섬겨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다. 어떻게 보면 가까이 있는 사람이 편해서 또는 무관심해서 관계를 잘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복음을 나누는 것도 내 친족부터 하나하나 믿지 않는 자가 있는지 세밀하게 챙겨 그를 먼저 찾아 예수를 믿게 해야 할 것이다. 또 울타리를 이웃하고 있는 옆집을 먼저 전도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이다. 그래 어떤 자는 오지로 선교를 떠나는 선교사를 붙잡고 ‘멀리 가지 말고 이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라’고 한다. 일면 타당한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웃도 챙겨야 하지만 복음을 접해 보지 못하는 먼 이웃도 우리는 품어야 한다. 첫째 가까이 있는 자를 먼저 보살펴야 한다. 사람들은 두 가지 유형의 반응을 보인다. 자기 친족이나 고향사람이 전하는 말을 철석같이 믿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우습게 생각하고 콧방귀를 끼는 경우도 있다. 예수님도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신바 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상대가 자라온 환경이나 과거 찌질 했던 형편을 속속들이 아는데 그가 나보다 낫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이 사람이 가진 알량한 자존심이다. 과거 신분제도가 있었던 시절 머슴 아들이 출세해 ‘금의환향‘ 해도 주인집 사람들은 애써 인정하려 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 역사적으로 ’홍길동‘ ’일지매‘ 가 생긴 것이다. “온 율법은 네 이웃을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다. (갈5:14)” 신분이 미천하고 뼈대가 없는 가문에서 태어나 배척을 받고 조롱거리가 된다 해도 그런 것을 타파하고 친지와 이웃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나도 두메산골에서 태어난 보잘 것 없고 죄 많은 존재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예수의 보혈로 거듭난 것처럼 복음을 나눠 주님나라를 함께 갈 수 있도록 가장 가까운 곳부터 공략해 나가면 좋을 것이다. 둘째 그래도 오지를 찾는 자가 필요하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고전9:23)” 가까운 이웃에게 기쁜 소식을 먼저 전하는 것은 아주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작금 세상이 급변하며 자기 울타리를 높게 둘러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수년을 산다면 그것은 결코 좋은 모습이 아니다. 예수님은 강도만난 이웃을 도운 사마리아인을 빗대어 제사장, 레위인 중에서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질문을 하고 있다. 아무리 직함이 높고 권위가 있고 명성이 있다 해도 강도만난 이웃을 못 본채 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그래 내 가족과 이웃을 챙기는 것과 함께 주님의 이름을 듣지 못하는 곳을 향해 길을 나서야 한다. 그것 또한 주님의 뜻이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명령을 하신 것이다. 어제 화요예배(7:30pm) 또한 처음으로 출장 예배로 드렸다. 교회에 열심인 가족을 핍박하던 자를 찾아 지난 금요일 Campo(시골 농경지)로 심방을 했었다. 이번에는 그 가정에서 막내딸 생일이니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려 달라고 청을 해왔다. 그래 성도들과 함께 그 집 뜰에서 예배를 드렸다. 핍박을 했던 가장과 그의 부모와 동생 등 가족이 모두 참여해 함께 찬양을 하고 말씀을 나누는 은혜의 시간이 되었다. 그 가장도 40여명 성도들이 몰려와 찬양하고 자기 딸의 생일을 축하해 주자 황공해 하며 마냥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예배 후에는 그 가정에서 준비한 음식을 나누며 오랜만에 이웃의 정을 쌓았다. 그러며 주님은 부족한 목사에게 ‘네 이웃을 더 살갑게 챙겨라’ 고 말씀을 심어 주셨다. 멀리 전도를 나가는 것도 계속 하지만 틈을 쪼개어 교회와 이웃한 가정들을 매일 찾아가 안부를 묻고 대화를 할 생각이다. 할렐루야^^ 성경읽기 9월 10일 출애굽기 37 - 레위기 6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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